조명 뒤의 사람들을 조명하는 앵커로그입니다.
오늘은 6·25전쟁 71주년을 앞두고, 특별한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라미 현/사진작가]
"안녕하세요."
(참전용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그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라미현)
(오전 6시 30분, 부지런히 준비해 달려간 곳)
지금 여기에 임시 스튜디오가 차려졌는데요.
참전용사들께서 도착을 하셔서, 곧 촬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 촬영 시작, 사진을 찍으려는데…)
[임장수/6·25전쟁 참전용사]
"손자랑 왔는데…"
[라미 현/사진작가]
"아, 어디요, 어디. 손자 어디 손자 어디 이리로 와요. 할아버지 한번 업어볼까? 업혀보세요. 업을 수 있어! 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오케이 어우 건강하네! 스마일! 이번엔 웃는 거야! 하나둘! 어떠세요."
[임장수/ 6·25전쟁 참전용사]
"따끈따끈해요."
[라미 현/사진작가]
"따끈따끈하죠."
선생님 어떻게 참전하셨는지…
[임장수/6·25전쟁 참전용사]
"병과가 통신이라 연대에 근무하면서 7년 8개월 근무하고 제대를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분들도 있나요?
[임장수/6·25전쟁 참전용사]
"10명이면 일고여덟 명은 다 그냥 일주일도 못가고 전사 해버리는 거예요."
[김찬열/손자]
"여기에서 이렇게 사진 찍고 보니까 (할아버지가) 좀 멋있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라미 현/사진작가]
""참전용사라서 겁쟁이다"라고 얘기를 하세요. 살아왔기 때문에. "전우들 다 죽었는데 나만 살아왔어.""
[라미 현/사진작가]
"백허그 할까요, 백허그?"
[이희중/셋째 아들]
"이렇게요?"
[라미 현/사진작가]
"아니요, 백허그 밑으로 해야죠. 그렇죠. 아, 이제 웃으시네!"
아버지와 참전 이야기 같은 거 평소에 많이 하셨어요?
[이희중/셋째 아들]
"아버님이 (6·25 때) 총상을 입으셔갖고…"
[이억성/6·25전쟁 참전용사]
"(총알이) 흉부 관통하고, 여기 팔하고 두 군데 총을 맞고 따발총에…"
이게 지금 (총알이) 여기로 들어가서 여기로 나온 거예요?
[이억성/ 6·25전쟁 참전용사]
"여기서 여기로 나가고."
(4년 전 해외 6·25전쟁 참전용사를 찍기 시작)
지금 몇 개국까지 도신 거예요?
[라미 현/사진작가]
"영국 미국 지금 한 40번 왔다 갔다 했습니다. (처음에는) 되게 퉁명스러우셨어요. 이거 얼마에 팔러 온 거야?"
아… 처음에 장사하러 온 줄 알고…
[라미 현/사진작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참전용사들 한 명당 얼마씩 받느냐 돈이 안 되면 왜 하냐."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 걸까요?
[라미 현/사진작가]
"나는 요만큼 하는 거예요. 근데 저 사람은 자기 인생을 다 보상 받는 거 만큼 그런 표현을 해줘요."
[라미 현/사진작가]
"(해외참전용사 촬영 당시)선생님이 액자 값을 물어보신다면. 69년 전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선생님 같은 분들에게 많은 빚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중에 작은 부분을 갚으러 온 것 뿐입니다."
(본인) 물건도 많이 팔았다고 들었어요.
[라미 현/사진작가]
"진짜 돈이 없었거든요. 카메라 렌즈, 차, 스피커, 책, 돈 되는 거 다 파는 거죠. 수많은 후원자분들이 다 도와주셨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멈추지 않고 간신히 살아서 온 거예요."
[라미 현/사진작가]
"여기 밑에 보면 이 액자를 후원하신 분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선생님 사진은 박보검 씨가 후원했고요. 그 탤런트 박보검 씨 있죠."
[라미 현/사진작가]
"(우리 참전용사는) 유엔군 참전용사 분들하고는 좀 달라요. 국군 참전용사 분들은 오시면 본인들이 주인공인데도 불편해하세요."
왜 그런 거죠?
[라미 현/사진작가]
"평생 그런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본인의 삶을 희생해서 이 나라 지켰는데, 사람들의 인식 조차도 6·25? 잊어도 되잖아.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에휴 노인네들 또 그러네.그런 것들이 한이 남으신 거예요."
(촬영 날 홀로 군복을 입고 온 참전용사, 알고 보니…)
[유현규/ 6·25전쟁 참전용사]
"(6·25때 북파공작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거기를 들어갔어요. 적 후방, 평양까지. (부대원이) 3만 명인데 휴전이 딱 되고 나서 만 명에서 한 백 명이 모자라. 2만 명은 죽었다는 얘기야."
이건 북파공작대이고, 이건 월남전 참전이고, 또 이건 공수 부대, 그리고 상이용사….
(보훈수당을 받는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은 제외)
[유현규/6·25전쟁 참전용사]
"이건 내가 6·25때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입어서 상이용사가 됐는데 상이수당하고 (기초연금) 이게 어떻게 같아."
[오호석/남양주 상이군경회 사업부장]
"보훈 급여금을 받으시든지 아니면 보훈급여를 포기하고 기초연금을 받을지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라는 거죠. 참전한 분들에게 더 좋은 혜택을 드려야지."
(드디어 주인을 만날 사진들… 바로 인화해 액자 작업까지 완료)
[라미 현/사진작가]
"짠,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참전용사]
"인물 잘났네. 누구야. 이거?"
[라미 현/사진작가]
"자, 선생님 사진. 어떠세요. 맘에 드세요?"
[참전용사]
"나는 얼굴이 왜 이렇게 망가졌냐. 하하하…"
[라미 현/사진작가]
"손자 등에 업혀있는 거 어때요?"
[참전용사]
"아유, 상상 외인데?"
[라미 현/사진작가]
"선생님 다시 한 번, 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간 사진 찍어준 참전용사만 약 1,500명)
[라미 현/사진작가]
"(사진 받은 분이) 처음으로 자기가 대접받는 걸 느꼈대요. 요만한 작업이지만 그분들의 그 한을 조금이라도 녹여줄 수 있다는 거. 그분들이 원하는 건 한 가지거든요. 내가 싸웠던 한 가지만 알아달라는 건데,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그분들은 사라지는 거고 그러면 결국에는 우리는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거예요."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라미 현/사진작가]
"마지막 한 분 살아 계실 때까지 해야죠."
생존해있는 국내 6·25참전용사는 7만여 명.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말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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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앵커로그] 카메라 앞에 선 참전용사들
[앵커로그] 카메라 앞에 선 참전용사들
입력
2021-06-19 20:24
|
수정 2021-06-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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