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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영웅이었지만…낯선 땅에서 쓸쓸한 말년

'봉오동 전투' 영웅이었지만…낯선 땅에서 쓸쓸한 말년
입력 2021-08-12 20:23 | 수정 2021-08-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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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도 어쩌면 많은 분들이 잘 몰랐을 겁니다.

    대체 독립 전쟁의 영웅이 어떻게 낯선 땅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 건지, 왜 이제서야 꿈에 그리던 해방된 내 나라로 돌아오게 됐는지, 그의 생애를 배주환 기자가 돌아 보았습니다.

    ◀ 리포트 ▶

    18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무장투쟁을 상징하는 총을 늘 지니고 다녔던 홍범도 장군.

    평민 출신인 그는 함경도에서 명포수로 이름을 날리다 1907년부터 의병활동에 투신했고 일제 추격을 따돌리는 활약 덕에 '날으는 홍범도'라는 노래까지 만들어져 구전되기도 했습니다.

    [날으는 홍범도가(歌)]
    "홍 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 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1920년, 일본군 토벌대 '월강추격대대'를 만주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해 섬멸한 봉오동 전투.

    전사자 수 일본군 157명, 독립군 4명으로 압도적 승리였습니다.

    우리 독립전쟁사에서 첫 승리로 남겨진 이 '봉오동 전투'의 한 가운데에도, 독립군 연대장 홍범도 장군이 있었습니다.

    넉 달 뒤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 대첩'에도 함께 참전해 대승에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만주 한인들을 수천 명 이상 학살한 '간도참변' 등 일제의 탄압이 계속되자, 홍 장군은 만주를 떠나 1921년부터 연해주에 정착했다, 다시 옛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탓에 1937년 중앙아시아,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한번 거처를 옮겨야 했습니다.

    혈혈단신.

    아내는 이미 일제의 고문으로 숨졌고, 함께 의병 활동을 하던 두 아들들도 전사하거나 결핵을 얻어 숨진 상태였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의 노년은 쓸쓸했습니다.

    고려인 극장의 수위로,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며 여생을 보냈고, 조국의 독립을 불과 2년 앞둔 1943년, 낯선 땅에서 유족도 없이 숨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78년.

    홍범도 장군은 그토록 바랐던 독립된 고국에 이제서야 돌아오게 됐습니다.

    MBC뉴스 배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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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편집 : 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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