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기자이미지 김세진

[집중취재M] 가게 주인이 배달노동자 폭행한 이유…화장실 이용해서?

[집중취재M] 가게 주인이 배달노동자 폭행한 이유…화장실 이용해서?
입력 2021-08-26 20:28 | 수정 2021-08-26 20:30
재생목록
    ◀ 앵커 ▶

    음식 배달원 같은 길 위의 노동자가 화장실을 한 번만 쓰게 해 달라고 사정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중 화장실이 없으면 배달하는 식당의 화장실을 쓸 수밖에 없는데, 사정사정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폭행까지 당한다고 하니 각박한 인심만 탓할 상황이 결코 아닙니다.

    김세진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광주 남구의 한 음식점.

    배달기사 A 씨는 음식배달을 하다 갑자기 화장실 급해 평소 자주 배달을 다니던 옆 가게에 들렀습니다.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화장실을 쓰고 나왔는데 갑자기 사장의 폭언이 시작됐습니다.

    자기 허락 없이 화장실을 갔다는 겁니다.

    [배달기사 A - 음식점주]
    "<화장실 쓴다고 이야기했잖아요> 내가 사장이라고 ***아. 내가 쓰라 했어?"

    직원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막무가냅니다.

    [배달기사 A - 음식점주]
    "<화장실 쓴다고 하니까 '예 쓰세요' 그랬어.> 내가 사장이라고 ***야, 내가 사장이라고. (화장실 쓴 거) 그냥 미안하다고 하라고."

    A 씨는 어이가 없었지만 다음 배달을 하러 그냥 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게 점주는 피우던 담배를 A 씨 얼굴에 던지고 헬멧을 잡아 흔들더니 출발하려는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아채 함께 넘어뜨립니다.

    A 씨는 무게 200kg짜리 오토바이에 발이 끼어 인대를 다쳤는데, 마음에 상처가 더 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배달기사 A씨]
    "억울해서. 잠이 안 와서 깨고요. 화장실 하나 썼다는 이유로 그렇게 인간보다 낮은 무시를 당하니까…"

    시내에선 공공화장실을 찾기 어려운 상황.

    [배달기사 A씨]
    "교회 , 상가 (화장실) 그런 데를 코로나 때문에 많이 닫았더라고요."

    음식 배달을 맡기는 가게마저 꺼립니다.

    "<사장님, 화장실 써도 돼요?> 아, 안 돼요. 안쪽에 있어 가지고요."

    일부 가게엔 '화장실 열쇠 절대 안 빌려준다' '라이더는 화장실 금지' 같은 문구를 걸어 두기도 했습니다.

    배달기사들은 아무리 급해도 눈치를 봅니다.

    [배달기사 B씨]
    "괜히 상점하고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되면 또 저한테 피해가 올까 봐."

    배달앱 업체들이 설치한 자체 마트에서는 어떨까.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서울의 한 마트입니다.

    이 마트에 배달 물품을 받으러 온 '배달의 민족' 기사가 화장실을 써도 되는지 묻습니다.

    [배달기사 C씨]
    "저 혹시 화장실 좀 쓸 수 있어요? <안 된다고 하는데요.> 화장실 못 써요?"

    마트 직원은 대신 지하 화장실로 가라고 안내합니다.

    하지만 출입구 비밀번호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배달기사 C씨 - 마트 직원]
    "지하 1층에 화장실 있어요. 비밀번호 치고 들어가는… 비밀번호도 몰라요? <아, 네. 저희는 모르죠.>"

    이 배달앱 업체가 운영하는 또 다른 마트.

    "죄송한데 화장실 좀 빌리겠습니다. <저희 없어요. > 네? 화장실이 없다고요? <네네. 따로 안쪽에 있는데 여기 안에는 (라이더는) 안 되거든요.> 아이…다 같은 (배달의 민족) 직원인데…"

    배민 마트의 직원은 쓰는 화장실을, 배달의 민족 기사는 쓸 수 없는 겁니다.

    [배달기사 C씨]
    "내가 여기 직원이고 직원이 화장실 좀 당연하게 쓸 수 있는 건데…"

    몰리는 배달 물량에 쫓겨 화장실을 찾는 것도 부담인 배달기사들.

    화장실 이용을 거절당할 때마다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배달 기사 A씨]
    "공사장 옆쪽이라든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거기 가서 노상방뇨하고…"

    음식점 업주들 입장에선 배달기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면 위생 관리도 어렵고 손님들의 불만도 많다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은 우리만 겪는 게 아닙니다.

    영국이나 미국 등 배달앱 시장이 급성장한 나라에선 배달기사들의 화장실 사용을 아예 법제화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한 이탈리안 음식점.

    음식 배달을 하러 온 기사가 화장실 사용을 거절당하자 실랑이를 벌입니다.

    [영국 배달앱 기사 - 음식점주]
    "가게 화장실이 있다면서 배달기사는 사용 못 한다고 했잖아요? <그냥 나가라고.> 밀지 마세요."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

    [영국 배달앱 기사 - 음식점주]
    "<배달기사는 화장실을 쓸 수 없어.> 난 당신 가게를 위해서 음식 배달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나한테 말 걸지 마. 난 화장실 문제는 모른다고…>"

    다툼이 커져 경찰까지 출동합니다.

    공공화장실이 크게 부족한 뉴욕에서도 배달기사의 67%가 화장실 이용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조사됐습니다.

    거대 유통기업 아마존의 한 배달기사가 페트병에 소변을 보는 모습까지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칼리나 리베라 뉴욕시의원]
    "배달기사들이 휴식을 하거나 화장실을 쓸 때 기본적인 대우도 못 받는 상황인데, 최근엔 음식점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5달러나 내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선 배달기사의 화장실 사용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국가나 지자체가 배달 노동자들을 위해 화장실 등을 설치할 수 있게 하는 법이 지난달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배달기사를 활용해 수익을 내는 배달앱 업체들은 놔두고, 정부나 음식점주에게만 책임을 돌려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영주 연구위원/노동문제연구소 '해방']
    "기본적으로 플랫폼 기업에게 이윤이 돌아가는 사업인데, 근로자의 화장실에 대한 접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기업이 책임을 지지 않고 사회로 떠넘기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마저 참아가며 일하는 배달기사들.

    누구도 선뜻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그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세진입니다.

    MBC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영상편집:김진우/자료조사:박상진/영상자료:유튜브 Wyatt bonnette, sabbir.M. brict tv)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