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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인 1,300여 명 구한 46년 전의 '미라클 작전'

베트남인 1,300여 명 구한 46년 전의 '미라클 작전'
입력 2021-09-10 20:13 | 수정 2021-09-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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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를 한국으로 데려온 '미라클 작전'.

    사실, 반세기 전에도 이와 비슷한 작전이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직후, 당시 '정치 난민'으로 불리던 베트남인 천 3백여 명을 한국에 데려온 건데요.

    한국 최초의 난민 구호 활동을 류제민 기자가 돌아보았습니다.

    ◀ 리포트 ▶

    1975년 5월, 부산항.

    가슴에 번호표를 단 사람들이 해군 함정에서 줄지어 내립니다.

    갓난아기부터 젊은 부부, 나이 든 할머니까지.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착한 베트남 '정치 난민'들이었습니다.

    [당시 현장 취재 기자 / 1975년 5월]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어린이들을 끌어안고 차례대로 버스에서 내리는 이들은
    기나긴 항해에도 불구하고 모두 건강한 모습이었고…"

    베트남전이 끝난 2년 뒤 정부는 우리 교민과 외교관을 구출하기 위해 해군 수송함을 급파했습니다.

    이른바 '십자성 작전'이 시작된 겁니다.

    한국으로 향하는 함정에는 베트남인 1천 300여 명도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피란민의 도시 부산은 평화와 자유를 찾아온 이들을 품었습니다.

    [정혜인 / 숙명여대 역사학부 박사]
    "베트남 전쟁에 참전을 했었다는 책임의식도 일정 부분 차지했었던 것이고, (베트남 난민이) 공산주의 치하를 탈출했다는 시각 때문에 (수용 여론이 높았습니다.)"

    1977년, 적십자사는 부산 해운대 옆에 베트남 난민 보호소를 세웠습니다.

    그 속에서 어린이들은 공부를 했고, 장기를 두거나 축구를 하는 등 일상도 이어졌습니다.

    [허영자 / 당시 베트남 난민보호소 자원봉사자]
    "(베트남 어린이가) 얼마나 똑똑한지 똑순이라고 이름을 지어줬거든요. 우리 한국말도 빨리 배우고 한국 문화를 빨리 익혔어요."

    대부분은 제3국으로 떠났고, 끝까지 남은 150여 명은 1993년, 뉴질랜드 정부가 이민을 허락하면서 부산 난민보호소와 작별했습니다.

    [조호규 / 제주도혈액원장, 90년대 난민보호소 담당]
    "마지막 환송식을 보면서 제2의 조국 코리아라는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다시는 이런 사람들이 나라 잃은 아픔을 겪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18년간 이어진 헌신적인 노력은 한국이 해낸 최초의 난민 구호활동으로 기록됐습니다.

    MBC뉴스 류제민입니다.

    영상취재 : 이경수(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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