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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희생자 1만 명 '억울한 죽음'‥日, 유골도 차별

한국인 희생자 1만 명 '억울한 죽음'‥日, 유골도 차별
입력 2021-09-14 20:26 | 수정 2021-09-1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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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1945년 일본의 패전 직전, 마지막 격전지였던 오키나와에서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희생된 한국인들도 1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죠.

    일본 정부가 뒤늦게 유족들에게 유골을 돌려주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한국인 희생자들은 신청조차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도쿄에서 고현승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4월, 미군은 오키나와 상륙작전을 감행합니다.

    치열한 전투가 몇 달간 이어졌고, 군인과 민간인 등 20만 명 넘게 숨졌습니다.

    강제 동원된 한국인도 1만 명 넘게 포함돼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70년 넘도록 사망·실종자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오키나와 곳곳엔 유골이 방치돼있습니다.

    정부 대신 유골을 찾아나선 건 오키나와의 시민단체.

    1970년대 초부터 발굴 작업을 벌여 수백 명의 유골을 찾아냈습니다.

    [구시켄 타카마쓰/시민단체 '가마후야' 대표]
    "처음에는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유골을) 보내주자 해서 지금껏 해왔습니다."

    뒤늦게 일본 정부는 5년 전부터 유골과 유족들의 DNA 대조 신청을 받았는데, 신청 대상에서 한국인은 쏙 빠져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타이완의 유족들도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함께 진행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이런 사실조차 몰랐던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은 지난 6월에서야 DNA 감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협의회 대표]
    "(일본 정부는)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 내 유골을 수습해 가족 품으로 돌려보낼까 고민하고, 이 희생자들이 어떤 분들이었나 (생각해 주십시오.)"

    신청자는 이제까지 11명, 남아있는 유족들 대부분이 고령이라 시간이 많지 않은데, 일본 정부는 절차를 따지며 검토하겠단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미군 비행장 이전에 필요한 토사를 유골이 많이 묻혀 있는 지역의 흙을 활용하기로 해 유골 훼손도 우려됩니다.

    [일본 방위성 관계자]
    "토사 조달에 대해 확실하게 검토하겠습니다. (검토만 할 게 아닙니다. 더 늦추면 안 됩니다.)"

    가족이 강제로 끌려가 숨진 것도 억울한데 76년이 지나 유골이나마 수습할 수 있을지..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에 유족들은 절망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 김진호(도쿄) / 영상편집: 민경태 / 자료: 가마후야·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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