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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지지 않은 5·18의 진실들‥"죽음으로 묻을 수 없다"

밝혀지지 않은 5·18의 진실들‥"죽음으로 묻을 수 없다"
입력 2021-11-23 19:53 | 수정 2021-11-2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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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서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있습니다.

    당시 최초의 발포 명령자는 누구인지,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등 모두 규명해야할 사안들인데요.

    관련 단체들은 "죽음으로 진실을 묻을 수 없다"면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동훈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 리포트 ▶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함성을 뚫고, 총탄이 날아들었습니다.

    [김영택/당시 동아일보 기자(5.18 청문회, 1989년)]
    "젊은 사람 대여섯 명이 태극기를 들고 다시 구호를 외칩니다. (계엄군이) 거기에다 정조준을 해서 쏜 겁니다."

    10분간 계속된 조준 사격.

    누군가의 아들 딸, 남편을 기다리던 임산부마저.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처참하게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무자비한 헬기 사격.

    [최윤춘/헬기 사격 목격자(당시 간호실습생, 19년 6월)]
    "위에서 아래로 쐈어요. 누가 봐도 사람한테 쏘는 거예요. '따다다다' 쐈죠. '따다다다'"

    누가 최초의 발포 명령을 한 건지, 헬기 사격은 실제 있었는지,

    1988년 특별청문회와 검찰 수사, 국방부 과거사위 진상조사, 헬기 사격 특별조사위까지 꾸려졌지만, 끝내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재의/5.18재단 연구위원]
    "(전두환 정권하에서) 관련된 문서들을 전부 다 없애버렸습니다. 군 주요 문서들을 왜곡시켜버렸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다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은 상황이죠."

    '자위권' 발동이라며 발포를 정당화해온 전두환.

    [전두환(2019년 11월)]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난"
    (왜 모르세요. 직접 책임 있으시잖아요?)
    "내가 왜 직접 책임이 있어."
    (발포명령 내리셨잖아요?)
    "내가 왜 발포 명령을 내렸어. 발포명령 내릴 위치에도 있지 않은데…"

    최근에도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출석을 요구했지만 끝내 거부했습니다.

    "역사에 사죄하실 겁니까? 헬기 사격 책임 인정하십니까?"
    "..."

    진상규명위는 "지난 41년간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전 씨는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해 왔다"며, 진상규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행방불명자의 재조사, 암매장한 장소 확인과 유해 수습, 그리고 계엄군과 보안사 수사관의 성범죄 폭로, 계엄군의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의혹 등도 밝혀내야할 과제입니다.

    MBC뉴스 정동훈입니다.

    영상취재 : 송록필 / 영상편집 :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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