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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M] 아내가 써준 성범죄 반성문도‥'진지한 반성' 집행유예

[집중취재M] 아내가 써준 성범죄 반성문도‥'진지한 반성' 집행유예
입력 2021-12-10 20:17 | 수정 2021-12-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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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성범죄자들이 형량을 줄여보려고 기부도 하고 헌혈도 하고 반성문도 쓰는 실태 연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MBC가 지적하는 핵심은 과연 이 '진지한 반성'이란 걸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그 반성 속에 거짓이 가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재판부가 진지한 반성을 인정해주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어느 성범죄자의 뻔뻔한 반성을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먼저, 김세진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경기도에 사는 A 씨는 아동과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음란물 2백여 개를 구입했다가 지난해 기소됐습니다.

    자신의 재판 과정을 '성범죄자 카페'에 수시로 남겼습니다.

    [성범죄 전과 A 씨]
    "실형 나올 가능성은 없겠죠? 제가 원하는 게 집유(집행유예)예요."

    재판정에 들어가기 직전, A 씨의 행동은 반성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성범죄 전과 A 씨]
    "공소장 받고 공판 대기 즁에도 야동 보는 내가 미처가는 구나 ㅜ.ㅜ 핸폰에 저장도…"

    그러면서 판사에게 낼 반성문은 아내에게 준비시켰습니다.

    [성범죄 전과 A 씨]
    "술 한잔 따라주면서 반성문은 와이프가 써주고, 성교육 동영상도 밤에 와이프가 보고 감상문을 쓰고…"

    A 씨에겐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습니다.

    성범죄자 카페 댓글엔 '고생 많았다'는 위로가 쏟아집니다.

    재판부는 A 씨가 범행을 자백했고, '진지한 반성'의 태도를 보인 점을 반영했다고 밝혔습니다.

    형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에 '반성문' 작성은 필수 제출 항목이 됐습니다.

    반성문 작성 프로그램도 등장했습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선 3만 원만 내면, 최대 10만 개의 반성문을 뽑아 줍니다.

    [반성문 프로그램 제작 변호사]
    "좀 우려의 시선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 부분을 생각을 하긴 했었죠. 그런데 일단 수요자(피고인)들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췄죠…"

    또 심리상담업체에선 깊이 반성하고 있어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식의 유리한 소견서를 써주는 곳도 있습니다.

    [현직 변호사]
    "써주는 비용이 한 100만 원이다 하면 그중에 한 20% 정도를 소개해준 변호사한테 상품권으로 보상 지급해준다고 (업체에서 제안받은 적도 있습니다.)"

    ◀ 기자 ▶

    올해 법원 토론회에서 한 현직 판사는 이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반성 여부라는 건 피고인의 내면적 의식을 말하는 것이어서 정확히 알 방도가 없다."

    그런데, 왜 '진지한 반성'은 여전히 형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을까요?

    이어서 장슬기 기자의 보도 보시죠.

    ◀ 리포트 ▶

    300명 가까운 여성 체조 선수들을 성폭행한 미국 체조 국가대표 주치의 '래리 나사르'.

    최대 360년 형을 받은 그는, 두 번째 재판과정에서 반성문을 냈습니다.

    그런데 담당 판사는 반성문을 읽다가 이내 내던져 버립니다.

    [로즈마리 아킬리나/'래리 나사르' 사건 판사]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요, 당신은 위험해요. 당신은 여전히 위험하다고요."

    취재진은 아킬리나 판사를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성범죄자들의 반성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습니다.

    [로즈마리 아킬리나/미국 미시간주 판사]
    "(성범죄자가) 자기가 너무 미안하다고, 자기가 이런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걸로 충분할까요? 절대 아니죠."

    반성문이나 헌혈, 장기 기증을 감형 이유로 들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로즈마리 아킬리나/미국 미시간주 판사]
    "헌혈을 했다고 성폭행해도 된다는 건가요? 피해자가 '당신은 헌혈을 했으니 날 성폭행하는 거구나' 이렇게 얘길 하겠어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이웃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사죄의 뜻'을 명확히 한 기부의 경우 변호사협회가 받아 공익 변론에 씁니다.

    그러나 성범죄자가 헌혈이나 장기 기증, 반성문을 내는 사례는 없다고 합니다.

    [이정규/일본 변호사]
    "헌혈증, 장기기증 서약서는 (양형 자료로 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고요. 결국은 이게 판결의 공정성 문제에도 관련이 될 것 같고요."

    양형위원회가 권고한 성범죄 양형기준에 '진지한 반성'은 형량을 '감경'해줄 수 있는 요건이 됩니다.

    범죄자를 교화시켜 재범 가능성을 줄인다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재판부가 '반성'으로 인정할 행위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때 벌어집니다.

    [유승희/변호사]
    "기부, 헌혈, 장기 기증, 봉사 활동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피해 회복이나 피해자들의 용서를…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과 관계가 없어요."

    성범죄 피해자들이 절망하는 대목입니다.

    [성범죄 피해자]
    "(가해자가) 사과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근데 공판 기일이나 고소 갱신 기간 그런 게 다가올 때마다 계속 반성문을 몇 장씩 쓰고… (반성했다고 받아들여지면) 저는 그때 정말 못 버틸 것 같아요."

    MBC가 시민 1천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기부나 헌혈 등은 반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답변이 84.9%에 달했습니다.

    '진지한 반성'의 의미를 무겁게 들여다보려는 재판부의 노력, 현실적인 양형 기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MBC뉴스 장슬기입니다.

    영상취재: 김재현 독고명 / 영상편집: 양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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