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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김수근, 손하늘, 김지인

[단독] "옷 벗겨 문신 검사"‥6년차 36살 노동자의 유서

[단독] "옷 벗겨 문신 검사"‥6년차 36살 노동자의 유서
입력 2022-01-24 20:11 | 수정 2022-01-2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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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국내 중견 철강 회사인 세아베스틸에서 근무하던 서른여섯 살 노동자가 3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그의 부모와 가족들이, 이 죽음을 세상에 알려달라면서 저희 MBC에 연락을 해왔습니다.

    계약직으로 입사를 해서 정규직이 됐고 승진까지 앞두고 있었던 그는 자신이 왜 죽음으로까지 내몰렸는지, 25분 분량의 영상과 마지막 글을 남겼는데요.

    여기엔 상사들에게 지속적으로 당했던 성추행과 괴롭힘의 구체적인 기록이 담겨 있었습니다.

    먼저 김수근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 리포트 ▶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는 9명의 남성.

    2명만 옷을 입었고, 나머지는 발가벗은 채 가랑이만 손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6월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제강팀 동료들의 야유회 사진.

    당시 입사 두 달 된 막내 유 모 씨는, 다른 사원들 뒤에서 어깨를 웅크린 채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6년이 지난 2018년 11월 25일, 유 씨는 금강 하구의 한 공터,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故 유00 유족]
    "운전석에서 이렇게 쓰러져 있더라고요. 만지는 순간 '아, 이거 진짜 잘못됐구나'라는 생각이 딱 들면서…"

    공장 앞 "자취방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다음 연락이 끊긴 지 3일 만이었습니다.

    함께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마지막 순간 촬영한 25분 분량의 영상과,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유서가 있었습니다.

    입사 초기 야유회 사진 가장 왼쪽, 옷을 입은 채 모자를 거꾸로 쓴 반장급 지 모 씨.

    유 씨는 단체 나체사진을 두고 "지 씨가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진"이라며 "회사 PC에 더 있을 테니 낱낱이 조사해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유 씨는 입사한 직후부터 지 씨가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괴롭힘을 저질렀다고 지목했습니다.

    [유서(대독)]
    "지 씨가 입사한 달(2012년 4월) 문신이 있냐고 물어봤다. 팬티만 입게 한 뒤 몸을 훑어보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줬다. 찍히기 싫어서 이야기 못 했다. 한이 맺히고 가슴 아프다."

    "2016년 12월 10일 16시 30분경 한 복집에서 볼 뽀뽀, 17시 40분경 노래방 입구에서 볼 뽀뽀"

    구체적인 기록과 함께, "그렇게 행동하는 게 너무 싫다"고도 적었습니다.

    2014년 무렵 유 씨가 뇌종양의 일종인 '청신경종양'으로 큰 수술을 받을 때도, 면박을 줬다고 했습니다.

    [유서(대독)]
    "고함치듯 소리가 들려온다. 너 뇌종양이야?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왜 그렇게 여러 사람 있는 데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야만 하고, 위로는 못 할망정 상처를 주는지…"

    작업할 때 소음이 심한 부서라 청력 저하로 힘들어하던 유 씨가 부서를 바꿔달라 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故 유00 유족]
    "'너무 힘들어, 막 나를 욕하고 나를 괴롭혀' 이 정도 선에서만 가족들한테 얘기했지, 자세한 건 얘기를 하진 않았어요. 상황이 그렇게까지 심각한지는 아무도 몰랐죠."

    야유회 사진 가운데, 역시 옷을 입고 있는 선배 조 모 씨.

    유 씨는 조 씨에 대해선 "왜 이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났냐, 성기 좀 그만 만지고 머리 좀 때리지 말라"며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썼습니다.

    인사팀 송 모 차장에 대해서는, 절차대로 쓴 연차를 문제 삼거나, "귀는 잘 들리냐" 확인하면서, 귀에 체온계를 강제로 꽂았다고 했습니다.

    세아베스틸에서 일한 6년간 당했던 일들을 낱낱이 적은 유 씨는, "쓰레기 같은 벌레 때문에 고통받지 말자"며 후배들에게 남긴 말로 글을 끝냈습니다.

    [故 유00 유족]
    "얼마나 이 맺힌 응어리가 컸으면 자기가 당했던 안 좋은 기억들만 얘기하고 그냥 그런 선택을 했겠나 싶은 거죠."

    MBC뉴스 김수근입니다.

    영상취재: 허원철 강종수 / 영상편집: 김재환

    ◀ 앵커 ▶

    고인의 충격적인 유서 내용은 회사 측의 조사에서도 사실로 드러났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그런데도 회사 측은 관련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면서, 고작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어서 손하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MBC가 입수한 당시 사건 조사 보고서입니다.

    세아베스틸의 의뢰를 받아 한 노무법인이 한 달간 관련 직원 15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유서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관련 직원 5명은 "'상관인 지 씨가 신입사원들을 모아 놓고 '문신 검사를 하겠다'며 옷을 모두 벗게 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유 씨의 입사동기는 "지 씨가 '문신 있는 사람 있냐'고 물어, 유 씨를 포함해 '없다'고 답했지만,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게 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습니다.

    심지어 지 씨는 부서 야유회에서 찍었던 나체 사진의 경우엔, 수년간 회사 컴퓨터에 보관하고, A4용지에 출력해 신입 사원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故 유00 유족]
    "벌거벗은 사진을 공용 컴퓨터에 저장을 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만들어 놓고, 자랑처럼 보여줬다고 하더라고요. 신입사원에게도 '이거 봐' 하면서…"

    지 씨가 회식자리에서 취하면 습관적으로 남자 선후배들에게 뽀뽀를 하고,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故 유00 후배(조사보고서 대독)]
    "한번 말을 시작하면 기본 30분이고, 보통 1시간씩 말하는데 말하면서 쿡쿡 찌르는 듯하는 말로 스트레스를 줬습니다."

    또 다른 선배 조 씨에 대해서도, "사무실에서 유 씨의 성기를 수시로 만졌고, 유 씨가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고 남자 직원 2명이 증언했습니다.

    이들은 유 씨뿐 아니라 자신들도 같은 피해를 당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노무법인은 62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내고, "반장인 지 씨와 선배인 조 씨가 명백한 가혹행위를 했고, 유 씨가 심각한 수치심과 스트레스를 호소했다"며 "가해자들에게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특히 "지 씨의 탈의 지시, 회식 중 성추행, 알몸사진 촬영 같은 직장 내 성희롱은 '면직'까지 가능한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두 사람의 각종 가혹행위를 알고도 방관한 제강팀장에 대해서도 "직위해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뒤 나온 회사 측의 징계 결과는 유족들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가해자들 행동이 "기업질서를 심각하게 문란하게 하는 행위"였다면서도, 반장 지 씨는 정직 3개월, 선배 조 씨는 정직 2개월에 그쳤습니다.

    "본인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개전의 정이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관리책임이 있는 제강팀장은 아예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습니다.

    [故 유00 유족]
    "(가해자들이) 그때 징계받았을 때만 잠깐 급여가 정지되고 반성하는 척하다가 이제 '나 그렇게 안 했는데' 하면서‥ 그냥 미치겠는 거예요."

    가해자들은 정직 기간이 끝난 뒤 복귀해 지금도 버젓이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MBC뉴스 손하늘입니다.

    영상취재: 이상용 / 영상편집: 송지원

    ◀ 앵커 ▶

    회사 측은 "가해자들이 잘못을 뉘우쳤다"고 했지만, 이들의 언행은 반성과 사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회사 조사에서도 비아냥과 조롱으로 답변을 대신 하는가 하면, 심지어 고인의 장례식장에서까지 막말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는데요.

    억울한 가족들이 경찰을 찾아갔지만 이젠 증인들이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계속해서 김지인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 리포트 ▶

    세아베스틸의 조사 보고서.

    가해자로 지목된 반장급 지 모 씨에게 '왜 여러 명 앞에서 옷을 벗겨 문신 검사를 했는지' 묻자, 지 씨는 "그게 문제면 목욕탕을 못 가죠"라고 답했습니다.

    야유회의 알몸 사진은 "공 차고 더워서 물속에 들어가려고 벗은 것"이지 "자신이 시킨 게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복됐던 '볼 뽀뽀' 성추행에 대해선 "어제도 우리 딸에게 뽀뽀해 주고 왔는데, 큰일났네요"라고 했습니다.

    지 씨는 고인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에 와서도, 부하 직원들 앞에서 "관짝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잘하라"고 막말을 했다고 합니다.

    [故 유00 동료(2020년 8월 녹취)]
    "'너희도 저렇게 관짝에 들어가, 저렇게 안 되려면 잘 하라'고 이렇게 얘기했죠. 그 화장터에서."

    또 다른 가해자 조 모 씨는, 성기를 반복해 만진 성추행에 대해, "말수가 적은 고인을 살갑게 대하려 한 것"이었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놨습니다.

    사건을 조사한 노무법인은 보고서에 "피해자의 수치심에 공감 못하며, 변명으로 일관하며 반성하지 않는다"고 적시했습니다.

    [故 유00 유족]
    "(가해자들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막 동생 욕을 하면서, '죽으려면 곱게 죽지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느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작년 1월 근로복지공단은 유 씨의 죽음이 직장내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맞다고 인정했고, 유족들은 지 씨와 조 씨를 성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오래전 일들이라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냈습니다.

    회사 조사 당시에는 증언을 했던 동료들이 여전히 세아베스틸에 다니고 있어 제대로 협조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故 유 씨 측 변호사]
    "(동료들이) 증언을 하셔도 좀 핵심적인 거에 대해서는 말을 좀 회피하시는 분이 계시고.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 이유라도 알 수 있게 좀 도움을 주셨으면…"

    가해자 지 씨는 MBC 취재진의 연락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선배 조 씨는 "2018년 당시에는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을 시인했을 뿐, 사실 잘못한 게 없다"고 답했습니다.

    [조 모 씨]
    "사과했던 이유요? 사회적 분위기가 정말 이상했어요. 2018년도 미투 사건을 이용한 건지… 잘해준 것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유족들은 최근 검찰에 재조사를 해 달라며 항고장을 내고,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습니다.

    [故 유00 어머니]
    "잊어버려야 하는데 그게 잊어버려 지나요… 아이고 얼마나 불쌍하냐고. 아이고 불쌍해서 어떡해요…"

    MBC뉴스 김지인입니다.

    영상취재: 박주일 / 영상편집: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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