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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M] "그날의 공기가 평생 남는다"‥순직자보다 극단선택이 더 많다

[집중취재M] "그날의 공기가 평생 남는다"‥순직자보다 극단선택이 더 많다
입력 2022-03-14 20:35 | 수정 2022-03-1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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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불이 나거나 사람이 다치거나 급한 상황이 생기면 누구나 제일 먼저 떠올리는 번호가 있죠.

    바로 119인데요.

    거리로, 집으로, 공장으로‥ 끔찍한 사고의 현장을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사람들.

    바로 소방관들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

    한 해 출동 건수만 4백만 건이라고 합니다.

    매일 생사를 오가는 현장에 투입되는 이들은 육체적인 위험은 물론이고요.

    정신적인 충격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정혜인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 리포트 ▶

    처참하게 찌그러진 흰색 승합차.

    천장은 그대로 주저앉았고, 운전석과 좌석들도 마구 구겨졌습니다.

    타고 있던 승객 12명 중 7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10여 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송현대 구조대원,

    이날 아침의 광경이 소방관으로 17년 동안 본 현장 중 가장 참혹했다고 기억합니다.

    [송현대/구조대원]
    "압사됐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눈뜨고 돌아가신 분도 계셨고, 팔이 이렇게 꺾여가지고 그대로 돌아가신 분도 계셨고‥"

    송 대원과 동료들은 도로 위에 마치 파편처럼 흩어진 시신들을 수습했습니다.

    숨진 이들은 일감을 찾으러 새벽에 나갔다 허탕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일용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송현대/구조대원]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누군가의 다 가족일 텐데, 좀 마음이 좀 되게 그렇더라고요."

    21년차 구급대원 염귀희 씨는, 현장에서 두 번이나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지난 2005년 한 포장마차에 출동해, 손을 다친 취객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엉뚱한 다른 취객이, 염 대원의 머리를 쇠의자로 내려친 겁니다.

    이후 한동안 구급차를 타지 못했습니다.

    [염귀희/구급대원]
    "뇌진탕이 생겨가지고 구급차를 타면 멀미를 너무 심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구급차뿐만 아니라 차들도 다 못 탔어요."

    3년 뒤, 이번엔 의식을 잃고 축 늘어져 있던 100킬로그램 남성 환자를, 동료와 함께 옮기다가 쓰러졌습니다.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나면서, 척추신경 다발이 끊어져 버렸고, 8차례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염귀희/구급대원]
    "하지로 감각이 없는 거예요. 소대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상황이고 스스로 저를 자해하고 자살 (시도를)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송 대원도, 염 대원도, 그날 그곳의 공기가 머리 어딘가 새겨졌다 자꾸 기어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송현대/구조대원]
    "거기 (사고현장 근처를) 지나가면 그때 사고가 났던 게 기억이 나기도 하고, 그 소리와 그 질감 이런 게 남아 있는 거죠."

    [염귀희/구급대원]
    "불현듯 그 감정이 확 떠올라요. 숨을 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날의 공기, 냄새, 그때 느꼈던 이런 바람의 느낌 이런 건 그대로 남아요."

    지난 2016년, 강에서 구조를 하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故 강기봉 소방관,

    그런데 3년 뒤, 당시 현장에 함께 출동했던 선배 소방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옷장에선 먼저 떠난 후배의 옷이 나왔습니다.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 나도 언제든 변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소방관들은 늘 죽음을 생각합니다.

    [박영석/선문대 응급구조학과 교수(전직 소방관)]
    "몇 시간 전까지 얘기하고 했던 동료가 피투성이가 돼서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더라고요. 저 동료가 내가 될 수도 있다."

    충격을 받은 뒤 계속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매년 2천 명 넘는 소방관들이 증상을 보입니다.

    10년간 소방관 10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현장 순직자보다 2배 가까이 많습니다.

    소방청이 대책으로 여러 가지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물어봤습니다.

    [송현대/구조대원]
    "(대전의 경우) 1천6백 명 되는 직원인데 상담사 선생님 네 분이 배정이 돼요. 한 분당 4백 명씩을 상담을 하셔야 되는 거거든요."

    그나마 부족한 상담사도 1년마다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염귀희/구급대원]
    "2021년에 제가 좋아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상담 회사가 다른 회사로 이제 바뀌었어요. 그러면 다른 상담사님한테 다시 상담을 또 받아야 돼요."

    사명감을 중시하는 소방관 특유의 문화,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아프다"는 말 자체를 망설이게 합니다.

    [구조대원]
    "'너희는 소방관이니까 당연히 해야 돼, 이런 거 보면 괜찮아야 돼' 그러는 거죠. 마음의 병이 커지는 거예요."

    국립소방연구원은 화재 발생 원인이나 진압방법에 대해선 활발하게 연구하지만, 소방관들의 정신적 충격 같은 문제는 아무래도 뒷전이라고 합니다.

    경찰들을 위한 병원은 9곳이나 있지만, 첫 국립소방병원은 3년 뒤에야 문을 엽니다.

    체계적인 연구와 치료는 물론 "소방관도 언제든 아플 수 있다"는 공감대를 조직 안에서도, 사회에서도 넓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안세윤/건양대 심리상담치료학과 교수]
    "조직과 동료들이 이 외상이나 그 외상 이후에 겪은 다양한 심리적인 어려움들에 대해서 함께 이해하고 그것들을 돕기 위한 제도적 개선들이 필요한데‥"

    [염귀희/구급대원]
    "저희는 화재 현장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직원들을 보는 거예요. 무사히 잘 집에 돌아오기를.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몰라…"

    MBC뉴스 정혜인입니다.

    영상취재 : 전승현 / 영상편집 : 유다혜 / 삽화: 임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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