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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힘에서 열림으로]③ "나데르가 우리 반 반장이에요"‥'제주 예멘 난민'의 4년

[닫힘에서 열림으로]③ "나데르가 우리 반 반장이에요"‥'제주 예멘 난민'의 4년
입력 2022-03-21 20:20 | 수정 2022-03-2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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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3월 21일, 오늘은 유엔이 정한 인종차별 철폐의 날입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5백 명 훌쩍 넘는 예멘 난민들이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들어왔던 게 4년 전입니다.

    그때만 해도 '가짜 난민이 몰려와서 일자리를 뺏는다. 치안도 불안하게 한다'‥이런 차가운 여론들이 만만치 않았죠.

    지금은 어떨까요?

    정착 4년 만에 이제 '제주사람' 다됐다는 다섯남매, 특히 학교에서 반장까지 맡고 있다는 둘째 나데르를 손하늘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빨간 모자를 쓴 소년이 상대편 친구를 향해 공을 던지면서 '피구' 경기를 주도합니다.

    사회 시간엔 손을 번쩍 들고 앞에 나와 발표도 합니다.

    "저요 저요! <'모둠'에서(조별로) 한 명만 나와서 발표할 건데> 데르야 가!"

    [나데르]
    "자기의 인권은 법과 어떻게 관련이 있을까…"

    원래 이름은 '나데르'인데, 마치 '나 씨' 성을 가진 것처럼 '데르'라고 불립니다.

    이번달 새 학년에 올라와선 5학년 2반 대의원 2명 중 1명 즉, 남자 반장으로 뽑혔습니다.

    [강정인]
    "데르가 평소에 긍정적으로 발표를 해서 저는 듬직할 것 같고, (전교회의를) 가면 학급에서 전해준 얘기를 곧바로‥"

    24살 큰 누나 나디아와 동생 누프, 나와프, 나덴까지…

    나데르 5남매는 내전을 피해 예멘을 떠나 4년 전 이곳 제주에 왔습니다.

    엄마는 탈출 도중 세상을 떠났고, 같이 온 아빠마저 인도적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해 8개월 만에 강제 출국되면서, 졸지에 아이들만 남겨졌습니다.

    [박희순/당시 교장]
    "부모가 없잖아요. (아이들이) 충격을 받으니까 말도 안 하려고 하고, (당시엔) 완전히 위축돼 있었어요."

    5남매는 후견인 역할을 하겠다는 이주민센터의 도움으로 제주에 남았지만, 처음엔 지낼 곳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김상훈/제주 나오미센터 사무국장]
    "주민들이 '무서우니까 좀 나가게 해달라'고 계속 연락을 했던 거죠. (집주인이) '계약은 다 했지만 사정이 이러니 좀 방을 빼달라'고‥"

    "국민이 먼저다! 국민이 먼저다!"

    이방인을 향한 차가운 시선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선명히 남았습니다.

    [나데르]
    "시위하는 사진 봤을 때 왠지 환영을 받지 않은 것 같았어요."

    [누프]
    "(손 색깔이) 이러잖아요. 그래서 맨날 숨기고 흑인 보이지 않게 숨기려고 하다가 들켰지만…"

    그런데, 아이가 숨겼던 손을 다시 꺼내 잡아준 것도 한국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와프]
    "저는 원래 '아싸'(주변인) 였거든요. 조금씩 친구들이랑 '뭐 해! 우리 같이 놀자!' 이렇게 하면서, '인싸'가(인기인이) 됐어요."

    지원단체는 5남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줬고, 학교는 4명의 아이들을 받아줬습니다.

    [박희순/당시 교장]
    "(일부 학부모님들이) 직접적으로 '안 된다'는 말씀도 있었고‥ 슬픔을 겪은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을 학교에서 쫓아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죠."

    선생님들은 방과 후까지 남아, 4남매에게 '가나다라'부터 가르쳤습니다.

    [안영숙/퇴직 교사]
    "여기에서 살아갈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야겠다‥ 한글 낱자 다 만들어서 오리고, 글자 가르치고…"

    더듬거리던 남매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제주 사람'이 됐습니다.

    [김철훈/담임교사]
    "토박이 친구들보다 제주도 사투리를 더 잘 쓸 때 저도 가끔 놀라기는 합니다. 저도 잘 모르는 사투리를 갑자기 쓰면 깜짝 놀라서‥"

    제주에 온 예멘인 550명 중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건 412명.

    이중 3백여명이 내륙으로 흩어졌고, 약 1백명이 제주에 정착했습니다.

    사람 구하기 어려웠던 사장님은 기꺼이 예멘 청년들을 고용했습니다.

    [조성호/업체 대표]
    "한국 분들이 현장 일의 난이도를 너무 가려가면서 직업을 택하시고, 외국인 근로자들도 일부 좀 있지만 그걸로 부족해서‥"

    일자리가 생긴 예멘 청년들은, 기도는 쉬는 시간에 맞춰 올리고, 식사가 제한된 종교 행사 기간에도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을 유지했습니다.

    [말렉]
    "라마단(금식 기간) 동안 똑같은 시간에 일하고, 7시에 일 끝나요. 모든게 일상적이에요. 일을 절반 정도 하면 기도하고, 일 끝나면 기도해요."

    주방장 출신 한 난민은, 한국인과 결혼해 이슬람식 '할랄' 음식 식당을 열었는데, 지역 '맛집'이 됐습니다.

    [아민]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예멘인들이 친구들이나 한국인들을 여기 데려와서 예멘 음식을 먹었어요. 누군가 걱정하거나 한다면, 일단 와 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나데르 남매들은 지원센터 공부방에서 지금도 한국어를 공부합니다.

    [김은정/제주 나오미센터 교사]
    "가정통신문이라든가 용어에 대해서 이해를 못해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저희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방 안에는 태극기를 걸어놨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학급 과제 게시판, '데르'는 "총알이 아닌 아름다운 꽃을 주고받아야 인간답다"고 썼습니다.

    [나데르]
    "아무리 문화도 안 똑같고 그래도 차별을 안 하고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서로 서로 존중하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MBC뉴스 손하늘입니다.

    영상취재: 장영근/영상편집: 박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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