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이 전남 도청에서 집단발포를 하기 하루 전 날, 광주역 에서도 시위대를 향한 총격으로 시민들이 사망했습니다.
신 군부 세력은 이 총격을 우발적인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발포 명령이 있었다는 문서와, 계엄군의 증언이 확인됐습니다.
송정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전남도청에서 집단발포가 있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앞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던 시위대를 향해 갑자기 총알이 날아왔고 시민 4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동안은 당시 박 모 대대장 등이 시위대의 차량 공격을 저지하느라 바퀴에 권총을 발사했고, 총격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현장에 있던 계엄군 작전장교와 사병 등 5명이 3공수여단장의 발포 명령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12·12 군사반란에도 가담했던 최세창 3공수여단장이 권총 3발을 공중에 발사했고, 이걸 신호로 받아들인 계엄군들이 집단 발포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송선태/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장]
"당시 제3공수여단장 최모 씨가 권총 3발을 공중에 발사하는 등의 현장지휘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
또 명령계통의 누군가가 3공수여단장에게 발포를 허가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송선태/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장]
"'최모 여단장이 무전으로 발포승인을 요청하였다'는 무전병의 진술을 바탕으로 현장지휘관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발포가 아니라‥"
이 증언을 뒷받침할 문서도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광주소요사태진행상황' 문건을 보면 5월 20일 21시 50분 '3여단장이 각 대대에 M16 실탄 배부와 장착을 지시'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전 진돗개 하나가 발령돼 실탄이 지급됐고, 발포 권한을 병사 개인에게 부여하는 등 3차례 발포지시가 군부로부터 내려진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김희송/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
"사격에 대한 명령 없다고 했지만 실제 군 수뇌부가 명령했던 군 기록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조사를 우선적으로 좀 할 필요가‥"
신군부의 명령에 의해 집단발포가 이뤄졌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면서 발포 명령의 최고 책임자를 서둘러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영상 취재 : 강성우(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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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송정근
"권총 3발이 신호"‥"광주역 집단발포 명령 있었다"
"권총 3발이 신호"‥"광주역 집단발포 명령 있었다"
입력
2022-05-12 20:13
|
수정 2022-05-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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