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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검열에 묻힌 '미완의 취재'

신군부 검열에 묻힌 '미완의 취재'
입력 2022-05-19 20:34 | 수정 2022-05-1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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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42년 전 오늘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무력 진압으로 수 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식들은 단 한 줄도 신문이나 방송에 실리지 못했는데요.

    신군부의 언론 검열 때문이었습니다.

    직접 목격한 참상을 낱낱이 적고도 단 한 줄도 보도할 수 없었던 기자들의 증언을 이다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리포트 ▶

    연기와 불길로 뒤덮힌 거리.

    돌 던지는 시민에게 곤봉을 내리치는 군인.

    하지만 언론에 묘사된 5.18 민주화운동은 불순분자들의 폭동이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의 시가지 데모가 격화돼 닷새째 유혈 사태를 빚고 있다거나, 광주 상황을 '무정부 상태'라며 시민군을 '난동자'로 표현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새벽에 공수부대 학교 진주. 여학생 짓밟히고 페퍼포그와 몽둥이 구타가 심했음.'

    '오후 1시 반에서 2시. 최미애. 유탄으로 두부 관통상.'

    목격한 참상은 낱낱이 적혔습니다.

    [조광흠/당시 조선일보 광주 주재기자]
    "난사가 시작된 거예요. 그냥 '다당탕탕'하니까 나도 이제 겁이 나고. 그 전일빌딩 앞에 있던 거기 사람들이 그때 집단 발포를 해서 많이 죽었죠."

    사진기자도 필름 위에 선명히 새겼습니다.

    [나경택/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
    "광주 역사는 내가 기록했다는 그 자부심, 그 마음을 갖고 일했기 때문에 그 무서운 것이 별로 안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단 한 줄도, 단 한 장도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1980년 들어 더욱 심해진 신군부의 검열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신문을 내기 위해 다른 인쇄소까지 찾았던 전남매일 기자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고,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며 집단 사직서를 냈습니다.

    [나경택/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
    "광주 역사는 내가 기록했다는 그 자부심, 그 마음을 갖고 일했기 때문에 그 무서운 것이 별로 안 보이더라고요."

    이후, 검열을 피해 '피로 물든 무등산 그림'을 실은 월간지는 폐간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신군부의 언론 통제로 광주의 실상은 알려지지 못했고 광주는 더욱 고립됐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MBC뉴스 이다현입니다.

    영상취재 : 김상배(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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