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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궁 상징 '용머리 기와', 왜 갯벌에서?

조선 왕궁 상징 '용머리 기와', 왜 갯벌에서?
입력 2022-06-29 20:38 | 수정 2022-06-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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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충남 태안의 한 갯벌에서 조선 왕실 건축의 상징물인 '용머리 기와'가 나왔습니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동네 주민이 발견해서 3년 동안 대규모 발굴 조사가 이뤄졌고, 드디어 오늘 완전체가 공개됐는데요.

    김정인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부릅뜬 눈 위로 솟아난 뿔.

    날카로운 이빨 옆으로 갈퀴가 휘날립니다.

    상단에 있는 작은 용의 비늘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높이 1미터에 무게만 110kg.

    조선 왕실 건축물을 상징하는 용머리 기와 '취두'입니다.

    화마를 막으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기와 위에는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구름 모양의 칼, '검파'를 꽂았습니다.

    [김성구/기와 전문가·전 국립경주박물관장]
    "(올라간 용이) 본래 성질이 매우 게을러요. 그래서 칼을 박아가지고. 너, 이 집을 지키라고. 화재를 막고 사(악한)기를 막는 역할을 충분히 해라."

    그런데 조선 왕실의 기와가 발견된 건 서해안의 갯벌.

    조개를 캐던 주민이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3년간의 발굴 끝에 용머리 기와와 검파, 잡상 등을 찾아냈습니다.

    "이거 저거 아니야? 상면 위에 꽂는 그거 아니야?" "아!"

    지금의 서울 용산에 있던 기와 공방인 '와서'에서 만들어 지역의 행궁 등 왕실 건물에 쓰기 위해 배로 옮기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채 6백 년간 갯벌에 잠들어 있었던 겁니다.

    [양기홍/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사]
    "이제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보이면서 정교한 형태의 문양이 나와 있는 이제 기와가 확인됐기 때문에 벅차오르는 감정…"

    제작 시기를 따져보니 15세기.

    1592년 경복궁이 전소되며 실체가 사라졌던 조선 전기 궁궐 기와 장식의 원형을 보여주는 유일한 유물입니다.

    [김성구/기와 전문가·전 국립경주박물관장]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어떻게 말하면 조선 왕실 기와에서 최고 수준을 점할 수 있는 기와다 이렇게 이야기를 드릴 수 있겠습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기와를 싣고 가던 고선박과 관련 유물들이 추가로 있는지 발굴조사를 계속 이어갈 계획입니다.

    MBC뉴스 김정인입니다.

    영상취재 : 이지호 / 영상편집 :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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