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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간다] 맨몸으로 잔디 깎고 배설물 치우고‥"지옥 벗어나고 싶다"

[바로간다] 맨몸으로 잔디 깎고 배설물 치우고‥"지옥 벗어나고 싶다"
입력 2022-07-04 20:18 | 수정 2022-07-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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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

    바로간다, 사회팀 김세영 기자입니다.

    저는 전북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교 앞에 와 있습니다.

    농어업 인재를 키우는 국내 유일한 3년제 국립 전문대학교인데요.

    이 학교 학생이 농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사고로 숨진 뒤, 열악한 실습 환경에 대한 제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뭐가 문제인지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지난달 말, 전남 지역의 한 당근밭입니다.

    두 명의 젊은 남성이 날카로운 날이 돌아가는 기계를 들고 잡초를 깎고 있습니다.

    현장실습 중인 한국농수산대 학생들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실습생들이 예초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서는 얼굴과 다리에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하지만 사복을 입고 장화만 신은 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초기를 쓰려면 반드시 얼굴과 무릎 등의 부상을 막는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합니다.

    잘려나간 풀이나 나뭇가지가 얼굴에 튈 수 있고 자칫 넘어지면 예초기의 날카로운 날에 다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농수산대 원예학부 2학년]
    "많이 위험하죠. 아무래도 작업할 때 돌이라든지 이런 날카로운 게 좀 튀길 수도 있고 노면이 일정치가 않아서 넘어질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현장에서 보호장구가 지급되지 않아, 학생들은 매번 풀을 벨 때마다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실습을 지도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앞서 지난달 20일, 화훼학과 학생이 실습 도중 기계에 끼어 숨지자 학교 측은 이틀 뒤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실습현장을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마침 이 현장에도 교수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묵는 숙소에 가서 면담만 하고, 차로 20분 거리인 실습 현장은 들르지도 않고 떠납니다.

    [한국농수산대 원예학부 2학년]
    "현장 조사 없이 저희한테만 물어봤죠. 현장에 점검은 안 나가고 그냥 저희한테 '이러이러한 거 있냐' 물어보는 식만…"

    전화만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농수산대 관계자]
    "19개 학과에 지금 5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우리가 다 그렇게 (직접 관리)할 수는 없거든요."

    이렇다 보니 실습생들은 거의 전적으로 농장주들의 관리 아래 놓여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축산농가 실습생은 20kg에 달하는 사료 포대를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옮기다, 결국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습니다.

    한 달을 쉬고 돌아왔더니,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한국농수산대 축산학부 2학년]
    "쪼그려서 앉아서 풀을 뽑는 거잖아요. 그래서 허리도 아픈데 그날 풀 뽑고 허리가 더 안 좋아졌었거든요."

    농장주의 개를 산책시키거나 배설물을 치우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실습생의 일기장에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내 인생에서 2022년이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처럼 실습생들은 농장주의 주말 체험농장 프로그램에 동원되는가 하면, 부모의 묘지 벌초, 대리운전, 밥짓기 등 온갖 잡일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한국농수산대 축산학부 2학년]
    "별의별 일을 다 시켜요. 개 배설물 치워라. (외국인 노동자에게) 계란 삶아줘라. 빵 데워줘라."

    학교의 입장은 어떨까, 찾아가서 물어봤습니다.

    대부분 관리가 되고 있다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한국농수산대 관계자]
    "해당 전공에서 거의 다 관리를 하고… <그럼 (본부는) 책임이 없으시다?> 아니 학생들의 요구와 현장과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왜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언론에만 제보하냐는 말도 합니다.

    [한국농수산대 관계자]
    "이렇게 제보를 할 수는 있는데 당당하게 교수님 앞에서 얘기를 못 하는 거야. <왜 그러겠어요?> 모르겠어요."

    학생들로선 문제를 제기했다간 불이익만 받을 거라는 두려움이 큽니다.

    실제로 지난 5월, 익명 설문조사에서 '1점'을 주며 개선을 요구한 학생들은 "교수가 전화를 달라고 한다"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한국농수산대 축산학부 2학년]
    "설문조사를 했을 때 '1점' 주고 안 좋은 말들을 썼단 말이에요. 근데 '불만인 사람 자기한테 전화해달라'… (그러면서) 더 힘든 목장이 있거든요? '네가 거기를 가고 싶어하는구나.'"

    또 이번 사건 이후, 10개월이던 실습기간을 학교 규정대로 8개월만 하겠다고 말한 학생은 교수로부터 비아냥과 욕설을 들었습니다.

    [한국농수산대 축산학부 교수]
    "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어쨌든 네 마음대로 해. 너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너 좋을 대로 해. 끝까지 나한테 속이고 지금 거짓말을 하면서 XX 끝까지 가지고 노는구나."

    이 교수는 이번 화훼학과 학생의 사망과 관련해 학생의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농수산대 축산학부 교수]
    "(숨진 학생이) 비닐 털털 털어 넣다가 비닐이 빨려 들어가서 그걸 꺼내려다… 비닐이 빨려 들어가면 손을 놔야지."

    문제를 제기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겁니다.

    [고갑석/노무사]
    "(졸업 후) 농수산부와 관련된 기관이나 또는 연구소 그런 직종에 취직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이나 또는 그 대학의 영향을 좀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열악한 실습실태에 대한 대책을 묻는 취재팀의 질문에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습니다.

    바로간다, 김세영입니다.

    영상취재: 김준형 / 영상편집: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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