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인아/기자 ▶
9월 22일, 호주 남동부 태즈메이니아섬 서해안의 모습입니다.
파도치는 해변을 따라 검은 물체들이 보입니다.
해변에 늘어선 검은 물체는 고래들인데, 돌고래의 일종인 파일럿 고래입니다.
호주 당국은 9월 21일, 230마리의 파일럿 고래가 태즈메이니아섬 서해안에 좌초됐다고 밝혔습니다.
수많은 고래가 바다를 떠나 해변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호주 당국은 구조대를 급파해 아직 살아있는 고래 구조에 나섰습니다.
젖은 천으로 고래의 몸을 덮고 물을 부어주기도 합니다.
발견 당시 이들 고래 중 절반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구조대가 살아있는 고래를 발견해 다시 바다로 보냅니다.
고래가 너무 크고 무거워 몇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구조대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 고래는 전체 230마리 중 44마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좌초돼 죽어가는 파일럿 고래는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뉴질랜드 동쪽의 채텀 섬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이곳에서 250마리의 고래가 좌초된 채 발견됐습니다.
채텀 섬에서 30 km쯤 떨어진 곳에는 피트 섬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당국은 이곳에서도 250마리를 더 발견했습니다.
호주에서 230마리, 뉴질랜드에서 500마리, 다 합치면 730마리나 되는 파일럿 고래가 좌초됐습니다.
구조된 고래는 그중 일부에 불과하고, 대다수 고래는 결국 죽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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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고래는 돌고래 중에서도 덩치가 큰 돌고래입니다.
몸길이가 최대 6~7m에 달하고 몸무게는 최대 3톤에 달합니다.
해변에 좌초된 고래는 자신의 거대한 몸 때문에 죽어갑니다.
무거운 체중이 호흡기와 장기를 눌러 숨쉬기가 어렵고, 물 밖에서는 체온 조절도 힘들어 결국 죽게 됩니다.
고래는 차가운 바다에서 견디기 위해 많은 열을 내는데 육지에서는 열을 식히지 못하는 거죠.
전문가들은 수많은 고래가 떼를 지어 해변으로 밀려오는 현상을 가리켜 ‘좌초됐다’고 말합니다.
좌초라는 말은 의도하지 않은 사고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많은 고래가, 그것도 한두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고를 당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현장에서 발견된 이 고래의 모습을 한 번 보시죠.
고래가 꼬리를 흔들고 있는데요, 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고래가 머리가 나쁜 동물도 아니고, 조금만 힘을 쓰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파일럿 고래들은 2년 전에도 비슷한 곳에서 수백 마리가 좌초됐는데 그 당시 좌초 모습은 더 이상합니다.
당시 좌초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을 같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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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인 2020년 9월 촬영된 호주 태즈메이니아 서해안입니다.
올해 고래가 좌초된 곳과 가까운 해역에서 수백 마리의 파일럿 고래가 좌초됐습니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많은 고래가 반쯤 물에 잠겨 있습니다.
얼마든지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 이들 고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호주 당국에 의해서 확인된 고래 수는 460마리.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총력전을 폈지만 결국 390마리가 죽었습니다.
고래가 좌초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추정되는데요, 그중 하나는 감각 기관 손상입니다.
[박겸준/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박사]
"고래가 소리를 이용해 방향을 탐지하거나 물체의 크기 등을 확인하는데 이 중요한 감각에 손상을 입거나 문제가 생겨 방향을 잘못 잡았을 수도 있고요."
전문가들은 질병에 걸렸거나 독극물에 중독됐을 가능성, 지구 자기장 변화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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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궁금한 건 많은 고래가 집단으로 방향 감각이 망가질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방향 감각을 상실한 고래가 한 마리 있는데 하필 그 고래가 집단을 이끄는 우두머리 고래라면 어떨까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고래들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결속돼 있다는 점입니다.
[박겸준 박사/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고래가 사회성이 매우 강해요. 그래서 어떤 한 개체가 아프거나 힘들면 나머지 개체들이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돌보고 하는 그런 모습이 자주 관찰되는데. 그래서 아픈 개체가 힘없이 있다가 죽어서 뭍으로 떠밀려오니까 나머지 개체들도 떠나지 못하고 주변에 있다가 같이 좌초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향 감각을 상실한 우두머리 고래가 좌초됐는데, 우두머리를 따르던 고래들이 같이 좌초됐을 가능성.
그리고 좌초되지 않은 고래도 먼저 좌초된 고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다 같이 좌초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고래의 사회성이 이번 경우에는 비극을 불러왔다는 거죠.
전문가들의 지나친 상상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고래들이 그렇게 죽은 걸까요?
우리는 여기에 대해 아직 아는 게 많이 없습니다.
고래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기후환경리포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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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환경 리포트] 730마리 고래들은 왜? 풀리지 않는 의문들
[기후환경 리포트] 730마리 고래들은 왜? 풀리지 않는 의문들
입력
2022-10-25 07:34
|
수정 2022-10-2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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