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우리나라 한 해 사망자 수 30만 명 가운데 10%인 3만 명은 사망 원인을 모르는 '원인 불명'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사실 아십니까.
사인을 규명하는 기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데, 정작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건 속으로', 조재영 기자입니다.
◀ 리포트 ▶
7년 전, 한 농촌 마을에서 여든 살 할머니가 이불 안에서 혼자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고령에다 지병도 있어, 의사는 사망원인을 '단순병사'로 판단했고, 부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례까지 치른 뒤, 타살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이웃 남성이 할머니를 살해한 범죄가 자칫 자연사로 묻힐 뻔했던 '증평 살인 사건'.
이후 사인규명을 위한 부검이 늘었습니다.
1년에 1만 건씩 부검이 이뤄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 1인당 매년 2백 건 가까이 부검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굳이 부검까지 하지 않아도 유족들의 거부감을 줄이면서 사인을 밝힐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시신에서 채취한 단 1ml의 혈액만 있어도 독극물에 중독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선춘/국과수 전 법독성학과장]
"마약류 포함, 농약, 약물 해서 3천5백에서 4천5백 개 되지 않을까 싶네요."
CT도 찍을 수 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골절과 내부 출혈을 확인하는데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이수경/국과수 법의검사과장]
"디지털 영상은 계속 보관이 되니까 추후에 (장례 이후) 또 확인할 때 도움이 되는…"
'과학 검안'으로 불리는 기술입니다.
부검보다, 인력과 시간의 부담이 훨씬 줄어듭니다.
[양경무/국과수 법의학부장]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상황인가요?)
"아니요.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제도가 없습니다."
제도가 없다, 무슨 말일까요?
현행법상 검시의 주체는 '법의관'이 아닌 '검사'입니다.
시신에서 혈액을 채취하거나 CT를 찍고, 사망자의 의료기록을 확인하려면 매번 검사가 영장을 청구해줘야 합니다.
영장 없이는 법의관이 과학검안을 실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범죄 혐의점이 없는 대부분의 사망은 수사기관이 개입하지 않으니, 결국 사인을 눈대중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양경무/국과수 법의학부장]
"(시신의) 겉만 보고 진단하는 것은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사인이 확실치 않을 땐 '원인불명'이라고 쓰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원인불명' 사망은 10건 중 1건. 미국의 5배, OECD 회원국 최상위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회사 화장실에서 혼자 쓰러져 숨진 40대 남성.
얼굴에 큰 상처가 남았지만 타살 정황이 없어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검안서에 사망원인을 '원인불명'으로 기재했고, 유족들은 장례를 치렀습니다.
남성은 생전 상해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유족들은 당연히 보험금을 받으리라 생각했지만 보험사는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사인이 '원인불명'으로 돼있으니 '상해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중석/SJS 법의학연구소장]
"유족들은 이제 혼돈과 경악에 빠지는 것이죠. '왜 못 받지, 그럴 줄 알았으면 부검할 걸.' 근데 이미 시신은 사라진 것이죠."
전문가들은 과학검안이 보다 활발히 이뤄진다면 '원인불명'으로 분류된 사망들의 사인이 상당수 밝혀질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같은 국가는 검시 절차 전반을 수사기관이 아닌 법의학 전문가들이 주도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검 이전 '과학검안'을 활성화하자는 법안조차,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선미/더불어민주당 의원('법의관법' 발의)]
"입법부 안에서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검경 수사기관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고요."
국과수의 법의학 인력과 장비 수준은 해외에서도 우수하다며 견학을 올 정도지만,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마련이 시급해보입니다.
MBC뉴스 조재영입니다.
영상취재: 정인학, 이준하 / 영상편집: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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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조재영
[사건속으로] '원인불명 사망' OECD 최고 수준‥"보험금도 못 받는다"
[사건속으로] '원인불명 사망' OECD 최고 수준‥"보험금도 못 받는다"
입력
2023-04-08 20:22
|
수정 2023-04-0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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