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걸리면 죽고, 한 마리 걸리면 일대가 쑥대밭이 되는 무서운 가축 전염병.
아프리카 돼지 열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취한 대표적인 조치가 철책을 치는 겁니다.
4년 전 국내 첫 발병 이후 전국에 설치한 철책길이가 1800킬로미터가 넘습니다.
병을 옮기는 야생멧돼지의 이동을 막겠다는 건데, 정작 멧돼지 막는 효과는 별로 못보고, 애먼 다른 야생 동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류현준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경북 상주의 한 양돈농가.
치명적인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막기 위해 입구부터 철저한 소독을 하고 있는데, 바깥에도 축사를 빙 둘러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있습니다.
열병을 옮길 수 있는 야생 멧돼지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2019년 경기도 파주에서 국내 첫 발병이 확인된 돼지열병은 경기북부 전체로 들불처럼 번졌고, 2년 전 강원도 영월까지 확산 됐습니다.
이어 지난해 경북 상주에서 감염된 멧돼지 사체가 발견되면서, 경북지역 양돈농가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최영태/대한한돈협회 상주지회장]
"많이 불안하죠. 차단 방역을 하고 있는데 야생 멧돼지가 어떻게 어디서 출몰할지 그거를 모르니까."
야생 멧돼지는 전국에 약 7만 7천 마리, 정부는 방역 대책의 하나로 멧돼지의 남하를 막는 철책을 세웠습니다.
첫 발병 후 두 달 만에 파주에서 철원까지 118km를 설치했지만 얼마 못 가 방어선은 무너졌습니다.
그 아래로 다시 철책을 세우고 뚫리면 또 세우기를 다섯 차례나 반복했고, 지금은 무려 1천8백km가 넘는 긴 철책이 들어선 상태입니다.
설치비로 1천1백억 원 넘게 썼는데도 초기 확산 속도를 늦추는 정도에 그쳤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강원도 인제국유림에 설치된 철책입니다.
굳게 닫혀 있어야 할 출입문이 어설프게 열려있고, 아예 철망이 찢어진 부분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철망이 망가진 지점은 올해 1분기 조사에서만 4백 곳이 넘습니다.
게다가 지형이 험산 산지나 물길 등에는 아예 철책이 없습니다.
경기 파주에서부터 300km가량 이어진 철제 울타리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계곡 위로는 칠 수가 없어서요.
헤엄도 잘 치는 멧돼지들을 막는 데는 별 소용이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철책이지만, 야생동물들에겐 큰 장애가 됩니다.
철책 주변에 설치한 카메라를 살펴보니, 꼬리가 하얀 동물 한 마리가 가던 길이 막히자 철책을 따라 걸으며 두리번거립니다.
멸종위기 1급 산양입니다.
또 다른 영상에선 산양이 높이 1.5미터의 철책을 뛰어넘으려다 부딪히는 모습도 확인됩니다.
이동 경로가 막히고 고립되고 있는 겁니다.
[한상훈/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
"먹이 활동을 해야 되는데, 펜스로 차단을 시켜놓으니까 고립돼서 탈진해서 죽는 애들이 발견됐죠."
인위적으로 세운 철책이 부작용을 낳고있는 건데, 유엔 식량농업기구도 "철책이 바이러스의 장거리 확산을 막지 못할 것"은 물론이고 "야생동물 보전에 맞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오연수/강원대 수의학과 교수]
"처음에는 막을 수 있었는데 유효기간이 한참 지났다 이렇게 보여질 수 (있습니다.) 서서히 철거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런데도 정부는 기존 철책 유지보수에 한해 50억 원씩 쓰고 있고, 다시 예산을 더 들여 철책을 계속 깔고 있습니다.
MBC뉴스 류현준입니다.
영상취재: 정인학 / 영상편집: 김하은 / 영상제공: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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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류현준
무용지물 된 멧돼지 철책 1,800km‥야생동물만 피해
무용지물 된 멧돼지 철책 1,800km‥야생동물만 피해
입력
2023-05-22 20:17
|
수정 2023-05-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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