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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홍범도 지우기'‥어느 정부도 '문제'삼지 않았다

근거 없는 '홍범도 지우기'‥어느 정부도 '문제'삼지 않았다
입력 2023-08-28 19:46 | 수정 2023-08-2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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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역대 어느 정권도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을 지금처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그에게 훈장을 추서하고, 유해 봉환을 위해 애썼습니다.

    그는 그저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독립운동가였고, 혁혁한 공을 세운 무장항일투쟁의 영웅이었기 때문입니다.

    엄지인 기자입니다.

    ◀ 리포트 ▶

    1922년, 식민지 대표 자격으로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

    정부는 홍범도 장군이 이때 소련 지도자 레닌에게 권총 선물을 받고, 이후엔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사실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이종섭/국방부장관(지난 25일)]
    "북한을 대상으로 해서 전쟁을 억제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인데, 공산주의 경력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하지만 일제 강점기, 특히 연해주 지역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연계해 독립 운동을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권에서조차 "과도한 사상적인 낙인찍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김근식/국민의힘 전 비전전략실장(CBS 김현정의 뉴스쇼)]
    "2차대전 기간에 미국과 소련은 같은 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시 일제하에서 독립운동한 사람은 민족주의 계열도 있고 사회주의 계열도 있고‥"

    홍범도 장군은 당시 소련 입국 조사서에 자신의 직업은 '의병'으로, 참가 목적은 조국인 '고려 독립'이라고 적었습니다.

    일부에선 1921년 독립군이 궤멸된 '자유시 참변'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개입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옛 소련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한 뒤 극장 경비원으로 일하던 그가 숨진 건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북한 정권이 세워지기도 전이었습니다.

    [우원식/더불어민주당 의원(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 CBS 김현정의 뉴스쇼)]
    "북쪽의 정권 수립에 관여했다거나 6.25전쟁에 참전한 것도 아닌데, 독립운동의 좌우가 따로 있습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에 묻힌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시도했습니다.

    해군 잠수함에 '홍범도함' 이름을 붙인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순국 78년 만에 홍범도 장군을 모시고 추가로 '대한민국장'을 건넸습니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를 넘어 그의 이력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군은 유해 봉환 당시 전투기를 보내 호위하고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년만에 그 예우를 뒤집고 있습니다.

    MBC뉴스 엄지인입니다.

    영상편집 : 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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