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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이준범

[알고보니] '서울의 봄' 그 후‥반란에 맞선 대가는?

[알고보니] '서울의 봄' 그 후‥반란에 맞선 대가는?
입력 2023-12-12 20:06 | 수정 2023-12-1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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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

    12.12 당시 군인의 본분을 지키며 반란군에 맞섰던 핵심 인물들은 이후 오랜 세월 분노와 고통 속에 수모를 견뎌야 했습니다.

    군사 반란 이후 달라진 그들의 삶을 팩트체크 <알고보니>에서 알아봤습니다.

    ◀ 리포트 ▶

    [영화 '서울의 봄']
    "너희가 지금 서울로 진입하면 그 즉시 전쟁이야."

    12.12 당시 병력을 동원해 반란을 막으려 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

    결국 강제 전역을 당한 정 전 사령관은 전두환이 아직 대통령이었던 1987년 11월, 기자회견을 자처했습니다.

    "12.12는 지휘계통을 무시한 하극상"이었다고 규정하며 진상규명의 전면에 선 겁니다.

    [정병주/전 특전사령관(1987년 11월)]
    "모든 국민들이 이걸 올바르게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저희들의 충정이고, 군도 좀 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보자는 충정입니다."

    그런데 기자회견 1년도 안 돼 정 전 사령관은 실종됐고, 5개월 뒤 경기도 양주의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수사기관은 자살로 결론 내렸지만, 의문사라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1989년 3월 6일 뉴스데스크]
    "정 씨의 사망 시기가 경찰 추정과 부검 의사의 소견이 다른 점 등을 들어서 타살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병주 전 사령관을 체포하려던 반란군에 맞서다 총에 맞아 숨진 김오랑 중령.

    그 충격으로 시력을 잃은 김 중령의 부인은 1990년 전두환·노태우 등 반란 주범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 준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역시 소송 포기 협박에 시달리다 5개월 뒤 자택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끝까지 반란에 저항한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은 이등병으로 강등된 뒤 아버지가 화병으로 숨지고, 외아들이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장태완/전 수경사령관(1995년 11월)]
    "총칼로 나라를 뒤집어엎어서 국권을 찬탈하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반란 당일 신군부에 납치됐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역시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17계급이나 강등되는 수모와 함께 내란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73세로 숨질 때까지 어떤 공직도 맡지 않은 채 조용히 여생을 보냈습니다.

    [정승화/전 육군참모총장(1995년 11월)]
    "심지어 나하고 과거에 친했던 예비역 장성들까지도 일일이 감시를 하면서, 그놈들이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해서 은폐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바람에…방대한 그 조직에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어요."

    반면, 나중에 법원에서 유죄를 받은 반란군 핵심 인물 15명은 두 명이 대통령, 5명이 장관, 나머지는 감사원장, 안기부장,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을 나눠 가지며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알고보니, 이준범입니다.

    영상편집: 권지은 / 자료조사: 도윤선, 김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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