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김정우

5·18 조사위 "최소 20곳·50회 시민에 발포"

입력 | 2023-05-17 06:37   수정 | 2023-05-1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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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43주년을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앞두고 진상조사위원회가 대국민보고회를 열었습니다.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발포가 최소 50회 넘게 이어졌고, 발포 경위에 대한 의미있는 진술도 있었다고 밝혔지만, 최초 발포 명령자는 공식화하지 못했습니다.

김정우 기자입니다.

◀ 리포트 ▶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대치하던 시위대를 향해 계엄군의 무차별적 발포가 이뤄졌습니다.

정부 공식 기구인 5.18 진상조사위원회는 당시 계엄군의 발포가 ′최소 20곳에서, 50회 이상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안길정/5.18진상규명조사위 조사4과장]
″광주와 전남으로는 최소 20곳 이상에서 50여 회 이상의 발포가 있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실탄이 미리 분배돼 있었다는 진술을 통해, 의도적 발포였다는 점도 명확히 했습니다.

총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35명, 부상자만 300명 이상으로 조사됐습니다.

시위와 무관한 민간인도 섞여 있었고 43년이 지난 지금도 총탄을 제거하지 못해 후유증을 앓는 피해자들이 많았습니다.

관건은 이같은 피해자를 낳은 집단 발포 명령의 주체가 누구냐는 겁니다.

위원회는 발포의 지휘계통에 관련된 주요인물 7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진술을 얻어냈다고 밝혔습니다.

[안길정/5.18진상규명조사위 조사4과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 박 모 씨로부터는 ′발포 명령은 문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것에 대해서 동감한다′(라는 진술을 확보했고)‥″

또 ′실질적 사령관이던 참모차장 황영시를 움직인 사람이 전두환이었다′는 진술도 확보됐습니다.

다만, 신군부 핵심 인사들은 책임 추궁에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조사위는 실질적 책임자들의 인정과 사과를 얻어내진 못했다는 한계와 함께, 올해 말 조사를 종료한 뒤 내년 6월 종합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입니다.

MBC뉴스 김정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