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투데이
기자이미지 현인아

[기후환경 리포트] 흙탕물에 부서지고 긁히고, 눈을 의심케 하는 국보 상황

[기후환경 리포트] 흙탕물에 부서지고 긁히고, 눈을 의심케 하는 국보 상황
입력 2023-10-26 07:40 | 수정 2023-10-26 07:42
재생목록
    이것은 지난해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뒤 반구대의 모습입니다.

    국보 285호 반구대를 흙탕물이 뒤덮었고 물 위는 쓰레기가 뒤덮었습니다.

    반구대로 쓰레기가 접근하지 못하게 그물을 치고 있습니다.

    빠르고 거친 물살에 실려 온 쓰레기에 부딪히면 귀중한 암각화가 손상될 위험이 높습니다.

    [문명대/동국대 명예교수 (반구대 암각화 발견자)]
    "나무라든가 부유물이 부딪히면 끝부분이 자꾸 깨질 것 아녜요. (암각화의) 그림들이 자꾸 손상되는 것이죠."

    지난해 암각화가 물에 잠긴 날은 23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80일이 넘어 상황이 더 나쁩니다.

    최근 취재진이 찾은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입니다.

    화면에서 오른쪽 아래가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인데 절반이 물에 잠겨 보이지 않습니다.

    암각화가 물에 잠기면 수중에서 어떻게 되는지 MBC 취재팀이 촬영한 영상입니다.

    암각화 표면에 이끼가 붙어 있고, 공처럼 보이는 식물성 플랑크톤도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암각화 연구자들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뚜렷이 보이던 그림 중 많은 수가 지금은 알아보기 힘들게 변했다고 말합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약 7천 년 전, 신석기 시대에 한반도에 정착한 인류가 하나하나 바위에 새긴 겁니다.

    암각화 왼쪽에는 많은 고래와 거북 등 바다 생물이 보입니다.

    중앙부터 오른쪽에는 호랑이와 사슴 등 육상 동물들이 새겨졌습니다.

    사람의 얼굴과 사냥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입니다.

    많은 동물 중 반구대 암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동물은 고래입니다.

    반구대에서 하천을 따라 1km쯤 상류로 올라가면 또 다른 암각화가 있습니다.

    천전리 암각화입니다.

    왼쪽에는 기 싸움을 하는 듯한 사슴, 짝짓기하는 동물 그리고 화살을 들고 사냥을 하는 사람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엔 고래 대신 동심원 모양과 마름모 모양 등 기하학적 문양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암각화는 빛을 받으면 더 신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빛의 효과까지 고려한 예술 작품입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것은 반구대에서 수천km 떨어진 러시아에서 발견된 암각화입니다.

    수중 동물과 육상 동물, 사냥하는 사람의 모습이 반구대 암각화를 연상케 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암각화를 그린 사람들의 의식 구조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암각화를 그린 인류가 대륙을 가로질러 교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수천 년 전, 지구의 생태계와 인류 문명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주는 반구대 암각화는 그래서 공개 당시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두 암각화가 국보로 지정된 데 이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이유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올해 80여 일, 작년보다 4배 가까이 침수된 원인은 뭘까요?

    침수 원인은 폭우입니다.

    8월 이후 이곳에는 장마와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550mm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많은 비가 오면 반구대 주변 수위는 급격히 상승합니다.

    하류의 사연댐 때문입니다.

    사연댐은 1965년부터 울산 시민의 식수와 산업시설에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댐이 건설되면서 대곡천의 수위가 높아지고 암각화의 위기가 시작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13일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를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최종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사연댐과 반구대 수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등재가 힘들다는 분석입니다.

    2021년 환경부와 문화재청, 울산시 등 정부와 지자체는 사연댐에 수문을 내고 댐의 만수위를 60m에서 47m로 13m 낮추기로 합의했습니다.

    반구대가 잠기는 수위인 53m보다는 6m 낮습니다.

    [김종오/케이워터 울산권 지사 차장]
    "수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홍수량을 조절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물에 빠진 반구대를 구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습니다.

    반구대 주변에 생태 제방을 설치하는 것, 하천의 길을 바꾸자는 안이 있었고요.

    이동식 물막이 댐을 설치하거나 아예 떼서 박물관에 두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모두 반구대의 역사적인 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높아 부결됐고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 됐습니다.

    문제는 댐의 수위를 낮추면 물의 양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울산에 공급할 물은 대구의 동의를 받아 운문댐에서 가져오기로 했는데, 대구는 그 대신 안동댐에서 물을 가져오려 합니다.

    그러나 지자체들이 얼마나 많은 물을 주고받아야 할지에 대해 합의가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647억 원의 예산까지 확보한 사연댐 공사는 당초 올해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7천 년 전 선조가 남긴 보물의 미래가 지금 후손들의 합의에 달려있습니다.

    기후환경리포트였습니다.

    MBC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