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3.1운동은 일제강점에 맞서 우리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항쟁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죠.
일제가 물러난 이후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냈던 민간 의병 조직, '독도의용수비대'도 그런 면에서 이 3.1운동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부를 대신해 일본의 독도침입에 맞서 싸웠던 마지막 독도의용수비대원, 정원도 선생을 고병찬 기자가 만나고 왔습니다.
◀ 리포트 ▶
빛바랜 사진 속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군사용 망원경으로 적의 정세를 감시하고 소총을 들고 전방을 경계합니다.
이들 앞에는 한자로 '독도의용수비대'라는 명판을 세워놨습니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무릎앉아 자세를 취하는 청년, 올해 아흔다섯 살인 정원도 씨입니다.
[정원도/독도의용수비대 제2대장]
"일본에서 팻말도 꽂고, 다케시마 자기 땅이라고 해서. 그런 일이 있어서 우리가 독도로 가서 내던지고 그때부터 시작했죠."
정 씨는 일본이 패망하고 물러난 이후 1952년부터 독도 인근에 일본 함정 출몰이 잦아지자, 독도를 지키기 위해 울릉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독도의용수비대에 참여했습니다.
33명으로 구성된 이들 '의병'은 1956년 말 국립 경찰에 업무를 인계할 때까지 3년 8개월 동안 독도를 지켰습니다.
[정원도/독도의용수비대 제2대장]
"이순신 장군과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자…우리가 36년 동안 식민지 생활했기 때문에 그래서 독도를 뺏긴 거니까 우리가 찾았다는…"
이들은 혁혁한 전과도 올렸습니다.
1954년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박격포로 물리친 격전은 '독도대첩'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우리나라의 독도 실효지배를 입증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하준/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학예연구사]
"장비들이나 건축물들이 독도경비대에 그대로 인수됐거든요. 대한민국의 국민이 생활을 했고, 방위차원에서도 실효지배를 했다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저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젊은 시절을 바쳤던 정원도 씨는 여전히 일본이 독도에 대한 야욕을 내비치는 것에 울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정원도/독도의용수비대 제2대장]
"경찰이 약 20여 명이 지키고 있죠. 이제는 많이 좀 튼튼하지만, 아직까지 좀 불안해요. <왜 불안하세요?> 뭐라고 자꾸 하고, 저 사람들이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되어 있는 걸 보면 좀 불안해요."
아흔다섯 살 노장은 독도에서 87km 떨어진 이곳 울릉도에서 여전히 우리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33명의 전우 가운데 이제 생존해 있는 의용대원은 정 씨를 포함해 세 명입니다.
남은 소망은 청춘을 바친 자신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정원도/독도의용수비대 제2대장]
"독도는 어디까지나 우리 땅이고, 우리의 조상들이 지킨 곳이기 때문에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영원히 우리 거라고 못을 박도록 해야 합니다…한번 보고 죽어야 되겠는데, 그걸 보고 죽을는지…"
MBC뉴스 고병찬입니다.
영상취재: 손지윤 / 영상편집: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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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고병찬
울릉도에 마지막 남은 독도의용수비대원‥구순 노인의 한탄
울릉도에 마지막 남은 독도의용수비대원‥구순 노인의 한탄
입력
2024-03-0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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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4-03-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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