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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5·18 소요죄' 무죄‥"폭도'의 눈빛만 거둬 줬으면"

43년 만에 '5·18 소요죄' 무죄‥"폭도'의 눈빛만 거둬 줬으면"
입력 2024-05-17 19:51 | 수정 2024-05-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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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지난 2017년, 검찰이 과거 유죄 판결을 받았던 5·18 관련자들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이후 지금까지 180여 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는데요.

    지난해 말, 광주 민주화 운동 참여 후 43년 만에 그것도 세상을 뜨고 난 뒤에야 무죄를 선고받은 한 화가가 있습니다.

    고 이강하 작가인데요, 그가 남긴 작품과 유족들을 백승우 기자가 만났습니다.

    ◀ 리포트 ▶

    군인들이 총과 몽둥이를 들었습니다.

    하늘엔 헬기가 떴습니다.

    쓰러진 사람들과 울부짖는 사람들 한가운데 시위대가 섰습니다.

    고 이강하 작가의 작품 '아! 광주'입니다.

    1980년 5월, 평범한 미술교육과 1학년생이던 이 씨는 광주로 들어가기 위해 송암동 고개에서 시위를 벌이다 붙잡혔습니다.

    [이정덕/고 이강하 씨 아내]
    "젊은이로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그래요. 이걸 내가 그냥 나만 편하자고 이렇게 못 본 척해야 되나"

    광주 상무대에서 우측 팔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엄군에게 개머리판과 몽둥이로 구타를 당했습니다.

    2달 만에 훈방조치 됐지만, 경찰은 또다시 이 씨를 잡으러 왔고, 이를 피해 도망치면서 지명수배자가 됐습니다.

    [이정덕/고 이강하 씨 아내]
    "'야 누가 가자고 했냐' 이제 이런 거 물어보고 그러면 '이강하다', '이강하다' 하니까 이제 주동자로 돼가지고 지명수배가 그렇게 내려졌던 거예요."

    2년 만에 자수한 이 씨는 소요죄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5·18은 낙인이 돼 이 씨를 따라다녔습니다.

    미술교사로 뽑혔지만, 신원조회에서 5·18 관련자라 채용이 취소됐고, 여행을 가선 지명수배 이력 때문에 유치장에 갇히는 일도 겪었습니다.

    [이 선/고 이강하 씨 딸]
    "아버지가 제가 학교를 가려고 하면 '누가 혹시 폭도 이강하 딸이냐, 자식이냐 물어보면 뭔가 소리를 치고 도망가라'…"

    이 씨는 1987년 6.29선언에 따라 복권됐지만, 여전히 집행유예 기록은 남아있었습니다.

    지난 2008년 숨진 이 씨를 대신해 유족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이 씨는 지난해 12월, 4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전두환 등이 저지른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맞서,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명시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지금까지 무죄를 선고 받은 건 182명, 기소유예 처분이 죄가 안 되므로 변경된 경우가 115명입니다.

    생전에 화가는 5·18과 얽힌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진정 필요한 건 폭도라는 눈빛을 거두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정덕/고 이강하 씨 아내 (이 씨 경위서 대독)]
    "용감하지는 못했지만, 정의를 찾아가던 과정의 이야기를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나의 자식들에게 들려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소시민의 소망입니다."

    MBC뉴스 백승우입니다.

    영상취재: 위동원 / 영상편집: 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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