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지난 66년 동안 한국 영화와 함께해 온 대한극장, 함께한 시간만큼 정말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었는데요.
예전에는 이렇게 줄을 길게 서서 예매를 하곤 했었죠.
지금과는 참 모습이 많이 다르기도 한데요.
이제 내일, 9월 30일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한국영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낭만의 거리, 충무로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 건데요.
사람들 기억 속, 대한극장 이야기를 임소정 기자가 들려드립니다.
◀ 리포트 ▶
남산 자락에 옹기종기 집들이 자리잡은 동네, 필동.
골목을 따라가면 작은 대문 하나가 나옵니다.
이경순 씨.
대한극장에서 영화 간판 그리는 남편을 19살에 만나 이곳에 머문 지도 벌써 50년이 넘었습니다.
[이경순(74)/필동 50년 거주]
"(남편이 간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죠. 영화배우도 그 사진 하나 보고 그리는 거 보면 신기할 정도로‥"
1958년 국내 최초로 70mm 영사기를 도입한 2천 석 규모의 대한극장,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충무로의, 상징 같은 곳이었습니다.
[고 이수경/대한극장 간판 화가 (이경순 씨 남편)]
"제일 좋았죠. 대한극장이 대한민국 땅에서는‥한 게 많아요. 뭐 빨간 마후라도 있고 미워도 다시 한 번도 있고."
벤허나 마지막 황제 같은 대작이 걸리면 사람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섰고,
[원동연/영화제작자 (필동 30년 거주)]
"대한극장을 한 바퀴 돌고 한옥마을이라고 하는 곳까지 줄을 섰어요."
뜨거운 인기는 암표로 이어졌습니다.
[이경순(74)/필동 50년 거주]
"암표 장사도 많았어요. 필동에 아줌마들."
[원동연/영화제작자 (필동 30년 거주)]
"꼬마 놈들은 돈이 없으니까 사람 나올 때, 몰래 싹 꼼수를 부리다가 경비 아저씨한테 잡혀서‥"
극장을 놀이터 삼던 꼬마가 영화인으로 성장하는 사이, 여러 영화를 한꺼번에 올리는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렸습니다.
대한극장도 생존을 위해 재단장했습니다.
[원동연/영화제작자 (필동 30년 거주)]
"올드보이도 거기서 시사를 했었고, 시사실이라고 기자들한테 "야 그 영화 어때?" 막 우리 경쟁작이 되는 영화들의 정보를 캐기도 했었던."
하지만 OTT 서비스 등장에 영화사들마저 강남으로 떠나면서 대한극장도 문을 닫게 됐습니다.
누군가에겐 젊은 시절의 상징이자,
[김유리]
"친구들한테" 충무로 1번 대한극장에서 만나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는데‥"
평생을 지켜 온 삶의 터전,
[이경순(74)/필동 50년 거주]
"(남편이 필동을) 떠나기 싫다더라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고 꿈을 기르는 밭이 되어준 곳.
[원동연/영화제작자 (필동 30년 거주)]
"영화의 꿈을 키웠던 그 극장 자체가 사라진다는 게 너무 속상하죠."
낭만의 거리 충무로를 마지막까지 지킨 대한극장은, 이제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게 됐습니다.
MBC뉴스 임소정입니다.
영상취재: 윤병순, 강재훈, 임지환 / 영상편집: 조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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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임소정
역사의 한 장이 저물다‥66년 만에 문 닫는 대한극장
역사의 한 장이 저물다‥66년 만에 문 닫는 대한극장
입력
2024-09-29 20:20
|
수정 2024-09-2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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