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놀랍게도 소설 속 모습은 꼭 12월 3일 서울의 밤,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겹쳐져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멀어진 지 십 분이 채 되지 않아 군인들의 소리가 들렸다.
수천 사람의 단호한, 박자를 맞춘 군홧발 소리. 보도가 갈라지고 벽이 무너질 것 같은 장갑차 소리.
그러나 2024년 겨울,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맨몸으로 장갑차에 맞서고, 군인들을 설득한 시민들. 가장 소극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부당한 상황에 맞선 사람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쓴 병사들이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 부를 때 광주는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임'을,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임'을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숙명 같은 고통을 감내한 이들'과 '언어라는 실을 통해 그 고통에 기꺼이 연결되는 이들'.
이들은 연결됐고 앞으로도 연결될 것이므로, 그의 소설 마지막처럼 함께 촛불을 밝히고 서로에게 빛이 되어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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