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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인터뷰] '제주 4·3' 유네스코 등재‥세계가 주목한 이유는?

입력 | 2025-04-17 15:12   수정 | 2025-04-1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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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방송 : MBC 뉴스외전 (월~금 오후 01:50)
■ 진행 : 오승훈 아나운서
■ 대담 :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 진행자 > 제주4.3 기록물이 지난주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냉전시대의 국가 폭력과 아픔 상처, 그리고 화해와 상생의 가치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평가들이 있는데요. 유네스코 등재와 함께 파리 현지에서 열린 제주4.3 국제특별전도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관련해서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모시고 자세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 양정심 > 감사합니다.

◎ 진행자 > 4월 11일 우리 시간으로 오전 6시경이라고 들었는데 그때 평화재단 분들은 파리 현지에서 등재 소식 들었다고

◎ 양정심 > 저희 이사장님 가셨습니다.

◎ 진행자 > 어떠셨을까요? 처음 들었을 때.

◎ 양정심 > 사실은 급작스럽게, 발표가 한 며칠 더 있다가

◎ 진행자 > 당겨져서 발표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양정심 > 당겨져서 거기 시간으로 밤 11시였으니까 모든 분들이 해산하고 나서 기다리던 소식이 좀 늦게, 그러니까 해산하고 나서 들렸기 때문에 아주 갑작스럽게 다시 모여서 아주 환영하고 기뻐했다고 들었습니다.

◎ 진행자 > 주무시러 다 가셨다가 다시 모여라.

◎ 양정심 > 맞습니다.

◎ 진행자 > 그렇군요. 축하도 아직까지 계속 받고 계시죠?

◎ 양정심 > 예, 맞습니다. 제주사회에서는 아주 들썩들썩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제주에서는요. 서울에서도 들썩들썩합니다.

◎ 양정심 > 감사합니다.

◎ 진행자 >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제주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의미라고 할까요, 의의라고 할까요? 설명을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양정심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세계적 중요성입니다. 이게 역사적으로 인류가 보존해야 될 가치 있는 중요한 기록인가가 중요한 심사 요건입니다. 그래서 저희 4.3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것은 인류가 보존하고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미래 세대가 기억해야 될 인류의 소중한 자원이 되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록이 되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세계가 인정한 기록 유산인 거잖아요.

◎ 양정심 > 맞습니다.

◎ 진행자 > 유네스코 등재위원회가 특별히 등재를 시킬 때 밝히는 사유 같은 것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에는 뭐라고 돼 있을까요?

◎ 양정심 > 저희 신청서에도 제가 주목했던 지점이기도 한데요. 사실은 국가 폭력에 희생되었던 이 지점은 사실은 이미 많이 등재가 돼 있습니다. 우리 5.18을 비롯해서 남미나 캄보디아 같은 경우도 등재가 된 경우들이 있어서 저희도 4.3 당시에 희생자와 유족의 기록뿐만 아니라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아래로부터 자발적인 진상규명을 했고 그리고 그걸 토대로 국가의 공식 조사를 이끌어냈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화해와 상생을 지향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이 가서 우리 과거사 해결에 모범이 되었다는 지점에서 저희가 평가를 받았고 이런 것들은 저희의 신청서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진행자 >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게 발표가 된 거면 굉장히 뿌듯하셨을 것 같습니다.

◎ 양정심 > 개요에 200자 정도밖에 쓸 수가 없어요.

◎ 진행자 > 신청서에요.

◎ 양정심 > 예, 맞습니다. 저희가 핵심을 다 거기에 집어넣어야 되기 때문에 저희가 주안점을 뒀던 것 중에 하나가 진상규명의 역사 기록을 중심으로 저희가 넣었었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14,673건의 기록물이 등재됐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한 건가요?

◎ 양정심 > 네, 맞습니다.

◎ 진행자 > 얼마나 준비를 하셨을까요?

◎ 양정심 > 2018년 4.3 70주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저희가 공동으로 신청을 했고요. 준비를 차근차근 해 왔어요. 근데 중간에 아시다시피 일본이 난징하고 정신대 여기에 반발해서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일본이 반발하는 바람에 수년째 문을 닫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재개가 됐고 신규로는 저희가 2023년에 재개되자마자 2월 27일에 제가 신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됐는데요. 기록들이 14,673건 중에서는 4.3 당시의 기록은 저희가 많지 않아요. 희생자들이 형무소에서 보낸 엽서, 가족들한테 보낸 엽서 25건, 그리고 이 수용인 명부라고 불리는 희생자의 기록, 이런 것들이 있지만 그 이후로 아까 말씀드렸던 진상규명운동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70년대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 소설, 그리고 80년대 저희가 행사했던 부분들 90년대 4.3 50주년을 기념 전후해서 특별법제정운동을 저희가 펼칩니다. 거기에 팸플릿들 그리고 90년대 중반에 제주도의회에서 피해신고서를 받아요. 유족 분들한테. 그게 건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거의 1만 4천 건에 가까운 건수가 제주도의 피해신고서입니다. 한 분 한 분의 아주 거친 피해 신고가 돼 있어요. 그리고 화해 상생의 기록으로 하귀 영모원 비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또 같이 해나가고자 했던 화해 상생의 회의록들을 저희가 화해 상생의 기록으로 집어넣었고 그리고 또 하나는 국가의 공식 조사서는 저희 진상조사보고서,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서명문서도 있습니다.

◎ 진행자 > 그렇군요. 그 이후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다 기록으로 남기신 거를 모아서.

◎ 양정심 > 근데 안타깝게도 유네스코 등재에 주요한 게 완결이 돼야 됩니다. 현재 진행되는 것들은 사실 넣지 못했습니다. 완결성이 있어야만 됩니다.

◎ 진행자 > 완결된 문서까지만 해서 등재를 신청하신 거군요.

◎ 양정심 > 예.

◎ 진행자 > 신청한다고 다 등재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굉장히 어려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양정심 > 국내 심사가 어렵습니다.

◎ 진행자 > 어떤 점이 유네스코 등재라는 결과를 만들었을까 어떻게 분석하고 계세요?

◎ 양정심 > 유네스코 평가처럼 저희가 국가 폭력 같은 경우는 이미 등재된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진상규명운동, 그리고 어떻게 보면 희생자와 유족 분들의 증언을 통해서 4.3의 국가 폭력의 실체를 밝혀내기도 하고 아픔을 밝히기도 하고 진실규명을 하고 그 이후에 시민사회단체 제주도민 그리고 유족 분들의 자발적인 진상규명 운동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싸우지 않는 화해와 상생을 지향을 했다 여기에 큰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화해와 상생까지, 알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감상이 들어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4.3 기사들을 정명이라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실장님께서 2008년에 내신 책도 4.3 항쟁 저항과 아픔의 역사였습니다. 4.3 사건을 4.3항쟁이라는 이름으로 정명 이렇게 불러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기사였는데 그런데 이 기록물들을 보다 보니까 4.3 사건으로 이름을 붙여서 신청하셨더라고요.

◎ 양정심 > 거기도 제주4.3 사건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는 저희가 특별법 때문에 쓰는 표현이고요. 근데 저희도 요즘에는 제주4.3이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쓰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사건 항쟁 이런 거 안 붙이고 제주4.3

◎ 양정심 > 예. 제주4.3 기록물 이런 표현으로 저희가 유네스코를 비롯해서 다른 재단에서 나오는 것들 제주도에서도 요즘은 제주4.3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아무래도 공식적으로 할 때는 특별법에 제주4.3사건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 진행자 > 특별법 때문이었군요. 저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요. 4.3항쟁이라고 하면 항쟁 그 시절 그 자체에만 초점을 둘 수가 있기 때문에 사건이라고 하면 그렇게 사건이라고 부름으로써 항쟁 이후에 해결 과정이라든지 아니면 화해 과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다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해석을 해봤는데

◎ 양정심 > 맞습니다. 왜냐하면 제주4.3에는 항쟁의 역사도 있고 희생의 역사도 있고 왜냐하면 항쟁의 측면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집단학살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희생됐기 때문에 그리고 이후에 저희 수십 년에 걸친 진상규명의 노력들이 있기 때문에 제주4.3의 표현은 사실은 그 모든 걸 담을 수 있었다는 최근까지도 계속 제주4.3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는데 정명이라는 부분은 또 하나 우리가 지속적으로 4.3을 기억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과정 속에서 제기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당시에 제주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나 희생이 됐다고 하고요. 자료를 보다 보니까 기록물 가운데 희생자 유족 증언이 가장 많다 이렇게 들었는데요. 찾고 준비하시고 하시는 과정도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 양정심 > 우리가 제주4.3의 어떤 진실을 규명하는 데 중요했던 거는 희생자 유족 분들의 증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당시 기록도 없고 증언이 없었다면 4.3이 이렇게 알려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80년대부터 이미 제주도 지역의 시민사회 단체 분들 증언을 토대로 해서, 그때만 해도 증언하기가 대단히 어려웠고요. 그리고 이후에 또 4.3위원회에서 증언 채록을 통해서 또 문헌 자료랑 교차 검증을 통해서 진상조사 보고를 썼습니다. 저희는 그때의 기록들을 주로 갖고 있습니다.

◎ 진행자 > 모으는 과정은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모으셨어요?

◎ 양정심 > 저희가 이미 갖고 있는 증언들이 있고 다른 시민사회단체에서 증언집 같은 부분들은 소장기관의 동의서를 받아야 됩니다. 동의서를 받고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기관 이름도 같이 씁니다.

◎ 진행자 > 현기영 작가와 한강 작가 등이 소설을 통해서 제주4.3의 진실과 아픔을 다루기도 했잖아요. 작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리포트가 있거든요. 잠깐 함께 보실까요?

[4월 11일 뉴스데스크]

[4월 11일 뉴스데스크]

- 제주에 뿌리를 둔 작가 현기영에게 4.3을 글로 옮기는 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현기영/작가] 제주도 온 도민이 앓고 있는 트라우마가 4·3이고… 그들(피해자들이)이 내게 전하면서 흘렸던 눈물… 나도 울면서 쓰는 거예요, 울면서.
- 박정희 독재 정권은 작가를 보안사로 끌고 가 고문하고, 소설을 금서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금기를 깨고 국가의 폭력을 고발한 글은, 진상규명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순이 삼촌>에서 반세기가 지나 4.3의 아픔을 마주한 한강 작가는 아직 그 일을 사건이라 부르는 사회에 학살이었다고 일깨웠습니다.
[한강/작가 (2021년, 유튜브 ′YES24′)] 제주 민간인 학살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걸 제대로 좀 들여다봐야 된다고 생각이 돼요.
[한강/작가 (2024년 12월,.. 노벨문학상 수상강연)]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 진행자 > 현기영 작가와 한강 작가 소설은 국민들께서 많이 읽어보셨을 것 같고요. 이 소설들이 4.3을 국내외로 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양정심 > 당연합니다. 저희가 유네스코 심사를 준비하면서 유럽에서도 그때 그 행사를 했는데 그 와중에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아서 제주도도 들썩들썩 광주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도 저희 기념관에 환영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습니다. 저희 기념관 안에도 한강 작가 이야기했고 현기영 선생님은 그전에 이미 있고 그리고 현기영 선생님은 4.3하는 사람들한테는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입니다. 고문도 당하시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고 눈물로 쓰는 거는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 진행자 > 현지에서 계실 때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 양정심 > 아닙니다. 저는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 진행자 > 평화재단 팀들이 거기 가 있을 때

◎ 양정심 > 이사장님하고

◎ 진행자 > 굉장히 남다른 느낌이 드셨을 것 같아요.

◎ 양정심 > 심지어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거기에 ‘작별하지 않는다’의 4.3 유족의 이름이 정심입니다.

◎ 진행자 > 나 아니야? 생각을 하셨을 거 같은데

◎ 양정심 > 그건 아니겠지만 그분이 대구형무소로 끌려가신 오빠를 잃은 유족인데 그 일도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그 이름으로 해서 이렇게 본인의 이름을 떠올리셨다는 데서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런 생각을 했네요. 알겠습니다. 제주4.3의 상징 꽃이 있다고요.

◎ 양정심 > 동백꽃입니다.

◎ 진행자 > 어떤 의미일까요?

◎ 양정심 > 동백꽃은 흐트러지지 않게 뭉툭하게 딱 떨어집니다. 그 동백에서 보면 그 당시 희생당했던 분들을 어떻게 보면 기억할 수 있는, 그리고 그분들을 묘사하는 동백꽃이라고. 왜냐하면 빨갛고 그리고 흩어지지 않고 툭 이렇게 떨어지는 이 모습들을 해서 우리가 4.3 70주년에 동백배지를 통해서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 진행자 > 그렇군요. 모습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떨어지는.

◎ 양정심 > 그런데 그게 선연한.

◎ 진행자 > 그런 뜻을 담고 있군요. 알겠습니다. 우리가 제주하면 참 평화롭고 아름답고 동백꽃도 같이 떠오르는 그런 곳인데, 우리 국민 모두가 가고 싶은 섬이죠. 4.3운동에 대해서도 짚어보고 싶어서요. 4.3운동의 주요 과제가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이라고 하는데 그동안의 성과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양정심 > 4.3은 차근차근 과거사 해결의 모범을 밟아왔는데요. 저희가2000년 특별법 제정되고 나서 2003년에 정부의 공식적인 진상규명 조사 보고서가 있고 그리고 그걸 통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하셨고요. 그리고 그 명예회복 과정으로 저희 4.3평화공원 4.3평화기념관 저희 재단도 만들어지고 이런 명예회복 과정이 쭉 있다가 2021년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안 속에서 희생자 보상에 이르기까지 진상규명, 명예회복, 피해회복 이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왔고 그 과정 속에서 저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세계화까지 저희는 사실 많은 걸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정말 그동안 많이 애쓰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나가실 텐데 남은 과제 같은 것들 짤막하게 말씀해주시죠.

◎ 양정심 > 4.3을 기억하는 건 미래 세대 앞으로 몫이기 때문에 4.3을 알리는 기념사업들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4.3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이 부분이 앞으로는 저희가 중점을 두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가 알아야 4.3이 기억되기 때문에 그래서 앞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들을 젊은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런 지점으로 됐으면 좋겠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양정심 > 고맙습니다.

◎ 진행자 >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이었습니다.

기사 본문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할 경우, [MBC 뉴스외전]과의 인터뷰라고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