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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인터뷰] 박찬대 "정청래 법사위는 나의 자랑‥내란 동조정당에 400억 NO"

[외전인터뷰] 박찬대 "정청래 법사위는 나의 자랑‥내란 동조정당에 400억 NO"
입력 2025-07-11 15:22 | 수정 2025-07-1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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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방송 : MBC 뉴스외전 (월~금 오후 01:50)
    ■ 진행 : 이언주 기자
    ■ 대담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

    [주요 발언]

    "살아서 원내대표 임기종료 감사‥국민이 지켜줘"

    "정청래 지난 정권 사이다같은 역할‥제가 만든 원내전략 잘 따라줘"

    "내란특별법 6개월 준비‥당대표 출마용 아냐"

    "내란 동조정당에 400억 국고 보조?‥반발 앞서 내란의 강부터 건너라"


    ◎ 진행자 > [人터뷰] 시간입니다. 오늘은 민주당 대표 후보로 나선 박찬대 의원과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 박찬대 > 네, 안녕하세요.

    ◎ 진행자 > 안녕하세요. 어제 후보 등록하셨고 기자회견도 하셨고

    ◎ 박찬대 > 네, 그렇습니다.

    ◎ 진행자 > 상투적인 질문부터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 당대표다. OOO 수식어, 뭡니까?

    ◎ 박찬대 > 저는 저 개인을 내세우기보다 우리 구성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팀 전체의 승리를 이끄는 감독이다. 섬기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 진행자 > 섬기는 리더십의 당대표다, 이렇게 규정을 하셨습니다. 제가 외모 평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지금 말씀도 그렇고 굉장히 부드럽게 하시잖아요. 외모에서 보면 모난 데 없다 이런 평가들을 많이 하시는데 회의할 때 보면 단단하다를 넘어서 딴딴하다 이런 느낌도 들고 격하다 이런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다 아시지만 회계사 출신이셔서 지적이다, 이런 얘기도 하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이 평가할 때 나는 진짜 이런 이런 모습이다.

    ◎ 박찬대 > 사람을 대할 때는 부드러운 건 사실입니다. 말을 해도 내용이 단단할 뿐이지 거칠거나 예의에 어긋나거나 이런 부분은 없어서 원내대표가 되고서 첫 번째 했던 원구성 협상에서도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끝까지 관철했지만 태도 자체가 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한 번 국회의장 단상에 뛰어올라간 적은 한 번 있습니다. 국회의장이 너무 코너로 몰려들고 있어서 그런 거 막기 위해서. 그 내란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란 종식과 관련된 어떤 의사결정도 하지 못했던 국힘당의 원내대표와 의원들의 난동을 보면서 그럴 때는 단호하게 뛰어 올라가지만 대부분은 부드러운 인상과 태도 유지하고 있다.

    ◎ 진행자 > 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고 있지만 못 참을 때는 한 번씩은 올라간다, 그렇게 이해를 하겠습니다. 저는 의원님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원내대표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할 정도로 원내대표로 굉장히 각인이 돼 있으세요. 국민들이 보시기에도. 왜냐하면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 박찬대 > 그랬죠.

    ◎ 진행자 > 계엄도 있었죠. 탄핵도 있었죠. 여야 관계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권교체까지 왔습니다.

    ◎ 박찬대 > 네, 맞습니다.

    ◎ 진행자 > 소회를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 박찬대 > 6월 13일 날 1년 1개월 열흘의 원내대표를 마쳤는데요. 보통 우리 원내대표들은 거센 당원들 틈에서 사실 임기를 다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짧으면 3개월, 6개월 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저는 1년을 훌쩍 넘어서 원내대표를 이행을 했는데, 그 사이에 지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계엄도 있었고 대통령 탄핵도 있었고 파면 결정에 대선까지 있어서 참으로 길었다. 그 사이에 또 당대표 직무대행도 두 번이나 했습니다. 또 총괄선대위원장도 했기 때문에 엄청 났었는데 6월 13일 날 의총에서 소회를 얘기하라 그래서 일단 살아서 임기를 종료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다. 우리 국민들께서 지켜주셨다 그 생각이 들었는데요. 결국은 6월 3일 날 대선을 치르고 6월 13일 날 사퇴했는데 그 열흘 뒤인 6월 23일 날 다시 당대표 출마 선언하는 어떻게 보면 기구한 그런 팔자 아닌가 이런 생각이 좀 듭니다.

    ◎ 진행자 > 쉬지 못하시는 팔자이시라는 말씀이신가요?

    ◎ 박찬대 > 네, 사실은 4년 동안을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정말 거침없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왔던 것 같아요. 월화수목금금금이었고 13개월 열흘 동안 있었던 원내대표 그 기간 동안에 우리가 세웠던 그리고 실행했던 원내 전략이 정말 수백 수천 가지가 되는데 돌이켜서 생각해 보니까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모든 성과를 잘 마무리해서 또 대가 없이 참 너무 감사하다. 근데 저의 이러한 전략적 의사결정과 행동의 기반은 저한테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누굴까? 저는 우리 국민들이라고 봅니다. 얼마 전에 했던 내란종식특별법 그것도 왜 갑자기 이것을 지금 냈냐라고 하는데 시기와 내용은 이미 국민들 오랫동안 주장했던 내용들을 잘 집대성해서 전략적으로 냈을 뿐이거든요. 우리 국민들께 감사하고 다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또다시 국민들한테 양해도 구하고 지지와 성원도 요구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 진행자 > 지금은 1년 1개월 웃으면서 말씀을 하시는데 너무 힘드시지 않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언제일까요?

    ◎ 박찬대 > 일단 계엄이 터졌을 때, 그리고 저는 12월 14일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은 12월 7일 날 국민의힘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할 때를 많이 기억해 주시는데 저는 그때 탄핵안을 가결시키는 거는 사실상 어렵다라는 인식은 있었어요.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내가 다 불러서 이 사람들이 들어와서 탄핵안을 가결시켜 줄 걸 기대하기에는 상당히 상황은 어려웠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절실하게 그들의 이름을 불렀을 때 오히려 국힘당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는데 그게 국민들의 가슴을 움직였던 것 같아요. 일주일 뒤에 그 효과가 나타나서 100만 명이 훨씬 넘는 약 200만 명의 우리 주권자들이 여의도로 진군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그 장면을 보니까 그 장면 볼 때마다 울컥한 것 같아요. 국회를 압박하고 그다음에 탄핵 표결을 하라라고 했던 그 압박에 국힘당 의원들이 국회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형식적인 투표였는데 그중에 10표 이상을 더해서 간신히 204표로 탄핵안을 가결하지 않았습니까. 그때가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 같고 또 가장 어려웠던 것은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난 이후에 오히려

    ◎ 진행자 > 왜요?

    ◎ 박찬대 > 조희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서울고법에서 완벽한 법적 논리로 무죄를 선언했던 그것을 단 한 달여 만에 두 번의 심리를 통해서 파기환송 하는 것을 보면서 언제까지 이 뿌리 깊은 이들의 저항과 준동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이 좀 들었었습니다. 중요한 결단의 순간 목숨을 건 순간 나중에 한번 얘기하려고요. 제가 13개월 동안 사실 입을 닫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을 세워서 일을 했지만 저는 거의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 진행자 > 바쁘셔서 못 나오셨던 거 아니고요?

    ◎ 박찬대 > 첫 번째는 실력이 탄로 날까봐, 두 번째는 지켜야 될 원내 전략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를 드러내지 않고 사실 많은 상임위원장들을 제가 세우지 않았습니까? 법사위 세우고 과방위 세워서 가장 보람 있는 것은 MBC를 지켰다는 것이죠.(웃음) 또 예결위원장 세워서 우리 국회 선진화법 이후에 최초로 입법부가 예산 심사를 완결하고 우리가 의결했다는 것, 그것이 아마 윤석열을 아주 크게 압박했던 것 같아요.

    ◎ 진행자 > 지금 의원님 말씀하실 때 내가 법사위도 세우고 과방위도 세웠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은근히 정청래 후보, 정청래 의원을 견제하시는 것 같은데요.

    ◎ 박찬대 > 아닙니다.

    ◎ 진행자 > 아니에요?

    ◎ 박찬대 > 저는 정청래 의원을 세워서 그가 재발견될 정도로 큰 성과를 낸 건 저의 자랑으로 생각해요. 왜냐하면 정청래 의원이 그전에 4선 의원으로 과방위원장을 1년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1년을 다른 상임위를 추가로 하기로 했는데 사실 좌절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수석최고위원인 그를 다시 상임위의 왕이라고 하는 법사위원장으로 세우는 것은 원내대표의 권한만 가지고는 밀어붙이기 쉽지 않거든요. 다시 한 번 의총에서 반대할 수 있는데 우리 의원님들이 저를 따라주셔서 정청래를 세울 수 있었고 그리고 제가 세웠던 모든 원내 전략을 잘 소화해 주셔서 성과를 내지 않았습니까. 많은 분들은 정청래 의원이 법사위원장 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와 기대가 같이 있었는데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우리 앵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진행자 >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떻게 해요? (웃음)

    ◎ 박찬대 > 제가 볼 때는 독은 아니고 약도 아니었다. 보약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 사실 답답한 윤석열 정부의 그 무능한 정국을 시원하게 풀어줬던 정청래 의원의 그 사이다가 큰 보약이 됐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는 거기에다 살짝 숟가락을 얹으면 저의 용병의 결과였다라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 하나는 최민희 의원과 김현 간사를 과방위원장과 또 간사로 세우지 않았습니까? 전투력 강한 그 두 분이 과연 시너지를 내서 성과를 낼까. 혹시 둘이 싸우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바깥에 방통위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외적을 만나고 나니까 똘똘 뭉쳐서 팀으로 과방위는 정말 팀으로 대단했어요. 그 과방위원 전체를 상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것도 잘했고 예결위도 너무 잘했는데요. 얼마 전에 국회의장께서 최우수 상임위 3개를 뽑았는데 어디인지 아세요?

    ◎ 진행자 > 그 세 개입니까?

    ◎ 박찬대 > 그렇습니다. (웃음)

    ◎ 진행자 > 제가 의원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다른 의원들 칭찬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나 이만큼 잘했어 라고 지금 자랑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 박찬대 > 아니요. 이게 아까 말씀드렸던 팀을 승리로 이끄는 감독의 전술 아닐까.

    ◎ 진행자 > 나의 리더십이다.

    ◎ 박찬대 > 아니죠. 선수들이 잘한 거죠.

    ◎ 진행자 > 알겠습니다.

    ◎ 박찬대 > 덕분에 저도 같이 숟가락을 올리는 것, 팀 전체의 승리를 이끄는 플레잉 코치이자 감독, 그게 저의 강점이다.

    ◎ 진행자 > 내가 한 건 아니다.

    ◎ 박찬대 > 제가 다 할 수가 없죠. 그들이 없었으면 못했죠.

    ◎ 진행자 > 그러면 본격적으로 경쟁 후보와 한번 비교를 해 보겠습니다. 정청래 후보가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이재명 대통령과 나 짝꿍이었다 하면서 돈독함을 강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가까운 걸로 따지면 박 의원님 못지않으실 것 같은데요.

    ◎ 박찬대 > 두 분 짝꿍 맞았죠. 왜냐하면 당대표하고 수석최고위원 아니었습니까? 만약에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이 만약에 아주 예전에 민주당의 최고위원의 모습대로 사실 행동을 했다라고 하면 1기 당대표였을 때 그때 아직 우리 당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지 못했잖아요. 뼈아픈 체포동의안 가결 사건도 있었고 그 와중에서 정청래가 중심을 잘 잡아줬기 때문에 단짝이었던 것도 맞고 또 돈독한 것도 맞습니다. 그래서 명심이 자기한테 있다라고 얘기했을 때 제가 그거 부인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나는 없냐, 이렇게 제가 얘기한 거죠. 나도 친하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보실 때 이제 단순 야당이 아니고 이재명 대통령을 보유한 집권여당 아닙니까? 그러면 국민들 앞에서 내가 더 친해, 명심이 나한테 있어. 물론 저는 명심 경쟁을 해도 자신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당대표가 결정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어떤 형태로든 당무에 개입하거나 관심을 갖거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는 정청래 의원은 잘 싸우는데 박찬대는 못 싸우냐,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원내 전략이 이 안에서 일어났고요. 특히 마지막에 원내대표를 종료하면서 특검법 3개를 동시에 발족시켰어요. 그러다 보니까 세 분의 특검이 경쟁적으로 잘하지 않습니까?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제 대통령이란 말 쓰면 안 되죠 윤석열 씨와 김건희 씨는 3특검 어디로부터 자유롭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내란 특검에서도 부를 수 있고 채해병 특검에서도 부를 수 있고 김건희 특검에서도 부를 수 있다. 그러면 각각의 특검이 서로 경쟁, 그다음 조화를 이뤄내지 않을까 굉장히 강하죠. 그 다음에 또 이번에 13개월 동안 추진해 왔었던 검찰, 언론, 사법 개혁도 열심히 지금 추진되고 있지 않습니까? 검찰 개혁은 추석 이전까지 반드시 완료할 거다. 일단 그 그림도 보이고 대통령께서도 얼개가 다 추석 전까지 마무리될 거다 얘기했습니다. 언론 개혁도 방송3법 그거 통과시키지 않았습니까? 소위에서. 아마 곧 본회의에서 결단만 내리면 바로 통과시킬 수 있는데 그것도 제가 원내대표 마지막에 마무리를 하려고 그랬는데 대통령께서는 좀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주고 정치적 후견 제도를 더 완화시키며 현장의 목소리를 더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숙려하자라는 의견 제시가 있어서 벌써부터 당정 협의가 들어갔었던 거죠. 그래서 이렇게 했었고. 마지막으로 내란은 빨리 종결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란 종결, 내란종식특별법을 발의를 했는데 많은 분들이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혹시 발의했을까 생각하는데 이것은 6개월 이상 준비된 내용들입니다. 12월 3일 날 계엄이 터지고 내란 상태가 지속되지 않았습니까? 특히 특별재판부 같은 경우에는 지귀연 판사의 탈옥 사건, 석방 사건이라든가 파면된 이후에 조희대 대법원의 파기환송 사건 사법부의 일부 판사, 또는 사법부 전체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결정들을 내렸을 때 과연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들고 있는 내란 사건에 대한 재판부가 기존의 사법부 내의 체계로 가는 것이 적절하겠느냐, 그 부분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사항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 부분을 반영한 거죠. 새로운 사법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서 3인으로 전담되어 있는 별도 부서를 따로 만드는 거니까 의미가 있었고, 그것도 제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그 얘기가 많이 나왔었습니다. 그래서 논의는 했지만 제 임기 내에는 관철하지 못했고 마무리하는 차원으로 전 원내대표는 야차처럼 싸웠지만 지금 원내대표는 협치를 이끌어가는 협상에 좋은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내란 종식까지는 벌여놨던 일을 내가 마무리하겠다라는 입장으로 내놓았다는 것.

    ◎ 진행자 > 근데 들어오시면서 들으셨을 텐데 앞서서 두 패널이 내란특별법을 가지고 공방을 벌였습니다. 국민의힘에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 같아요. 왜냐면 내란범이 속해 있는 배출한 정당에는 국고보조금을 중단한다 그 조항 때문이고, 국민의힘에서는 그래서 의원님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당대표 후보로 나오면서 상징적으로 들고 나온 거 아니냐, 위헌적인 부분도 있다라고도 얘기를 했잖아요.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

    ◎ 박찬대 > 반박이 아니고 그대로 인정합니다. 당대표하기 위해서 들고 나온 거는 아니고 이러한 법안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 송언석 대표는 그 이전부터 이것과 관련된 반박문들을 많이 냈었어요. 특히 금융 치료라는 말이 우리 민간에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사실 돈 치료해야 된다. 결국 벌금이라든가 페널티가 있어야 된다는 얘기인데 지금 아까 두 패널의 이야기를 저희가 잠깐 대기하면서 봤는데 국회당 반성해야 됩니다. 아무리 윤석열 정부 하에 집권여당이라고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초 질서가 흔들릴 때 그거를 지지하고 잔당 소리 들어가면서 버티는 이유가 뭡니까? 2016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이거보다 훨씬 약한 국정농단 사건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민주주의 전체가 흔들리고 삼권분립이 되고 비상계엄으로 인해서 내란이 일어나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사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피를 흘릴 수 있는 상황에서 거기서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거는 국힘당이 민주주의 국가 사회에 정당으로서 존속하기 사실상 어렵다. 오히려 저는 이걸 가지고서 위헌 논란이라든가 아니면 서로 이 부분에 대해서 맹렬한 디베이트가 일어나는 것이 대한민국의 삼권분립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국고보조금과 관련된 부분, 그런 정당에 어떻게 국민의 혈세를 투여합니까? 한 400억 정도 될 거로 생각이 되는데요. 그 정도 금액에 대한 부담은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진짜 동료 의원으로 그들과의 협치를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집권여당의 당대표가 아니라 일반 국회의원이라 하더라도 결국 국민을 위해서 복무하고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행복을 사실 정치가 제시해야 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내란에서 벗어나야 되고 그 강을 넘어야 됩니다. 그래서 맹렬한 논쟁이 있는 거 좋고요. 여기에다 불을 더 지피기 위해서 100만 명 서명운동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오히려 공론화를 시키는 게 이런 거는 좋은 거다.

    ◎ 박찬대 > 그럼요.

    ◎ 진행자 > 국민 전체가 이거 다 느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말씀이신 거네요.

    ◎ 박찬대 > 내란이 벌어졌을 때 어느 소속당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입법부의 일환으로 이 내란도 친위 쿠데타였잖아요. 그러면 어떤 게 민주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인지를 한번 토론해 보자는 거죠. 나는 그래서 여기에 청문회도 하고 싶어요. 5공 청문회를 통해서 국민들이 다 들여다보지 않았습니까? 이 내란 과정에 대해서 국힘당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는지, 혁신안은 왜 8분 만에 부결됐는지 왜 도로 친윤당이 됐는지 그래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지 이 부분에 대한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지켜보고 있는 청문회도 꼭 필요하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이 단순한 정쟁을 뛰어넘어서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볼 수 있는 건데 뭐에다 비유하고 싶냐면 우리가 반민특위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거 강제 해체됐죠. 그래서 우리가 친일을 청산하지 못해서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과의 관계도 정립이 되지 않고 역사관 뉴라이트를 비롯해서 국민의 단합을 해치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그거는 이미 광복을 맞고 난 이후에 사후 수습 관계였잖아요. 이거는요. 일이 또 터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진짜 카뮈의 말을 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의 죄악을 용서하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사실 용기를 주는 거다. 이런 부분이 있어서 우리가 80년이 지난 지금 친일 청산과 관련된 역사 논쟁을 다시 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민 분열이 발생하는 것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국가 대한민국 공화국을 지키기 위한 논쟁은 꼭 필요하다. 저쪽에서 후끈 달아오를수록 환영하는 바입니다.

    ◎ 진행자 > 오히려 환영한다. 정청래 의원이 이런 얘기를 했잖아요. 협치 같은 좋은 얘기는 대통령이 하시고 저는 싸우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의원님은 나는 칼과 붓 함께 들고 싸우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잖아요. 근데 지금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야당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다, 이렇게 느낄 것 같은데요.

    ◎ 박찬대 > 그래도 뭐랄까 제가 태도가 좋아서 그런지 상당히 그래도 앞에서는 반기는 편이에요. 제가 주장이 달라서 그렇지 그분들이 저를 비판하거나 논쟁을 벌일 수는 있지 박찬대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 진행자 >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앞서서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 박찬대 > 서로 입장이 다르니까. 우리 당내에도 의견들이 굉장히 많아요. 한 3시간 동안 의총을 하고 나면요. 너무너무 다양하면서도 반대되는 의견들이 팽팽하게 나오거든요. 물론 잘 지켜보면 어떤 게 다수 의견인지 어떤 게 소수 의견인지 있는데 그거를 수용하게 하는 방법을 우리 당내에서도 사실은 의견을 존중합니다. 제가 첫 번째 물어보는 게 그거예요. ‘많은 의견이 나왔는데 이 중에 틀린 말이 있습니까?’ 제가 꼭 물어봐요. 그러면 다들 수준이 있으셔서 ‘틀린 말은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러면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던가요?’ 꼭 물어봐요. 그러면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의사결정을 뒤로 미뤄야 될까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요. 그러면 그때 제가 조심스럽게 ‘그러면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 진행자 > 그냥 끌려 들어가면서 설득이 되는데요.

    ◎ 박찬대 > 그래서 우리가 170명이나 되지 않습니까? 마지막 질문할 때 ‘여러분이 세워주신 원내대표한테 맡겨주시겠습니까?’ 그러면 정말 충실한 70명의 초선의원들이 ‘예’ 이렇게 얘기하죠. 재선의원 47명도 ‘예’ 이렇게 얘기하고 3선 이상부터는 끄덕끄덕. 그래서 선수별로 응답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하나로 잘 이끌어 왔는데 그거는 제가 카리스마를 가진 뛰어난 개인기의 리더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항상 170명의 의원 앞에 설 때는 여러분의 총무 박찬대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옛날에는 원내 총무라는 말이 총재가 세운 총무였잖아요. 지금은 총재가 없고 당대표 마음대로 하는 그런 당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은 170명의 국회의원들의 총무 역할을 하는 원내대표가 그 일을 한다라는 입장이어서 그렇게 13개월을 같이 일을 했더니 이번에 뒤늦은 결심으로 뒤늦게 뛰어들었는데 사실 우리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 진행자 > ‘뒤늦게 뛰어들었다’ 이 말씀을 하셨잖아요. ‘의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여론조사 보니까 정 의원님이 조금 앞서는 듯 그런 수치가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런데 분석을 보니까 그런데 의원들의 표심은 박 의원님께 가 있다, 이런 분석도 많더라고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박찬대 > 정치 고관여층 입장에서는 당위적으로 저를 많이 지지하는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당정대가 원팀이 돼서 정말 모든 역량을 모아서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켜야 되거든요. 특히 우리는 신혼여행 중 아닙니까? 허니문 기간이죠. 그래서 서로가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격려하면서 잘하게 되게끔 원팀을 만드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거죠. 저는 2021년 7월 1일부터 만4년 넘도록 이재명 대통령과 때로는 수석대변인으로 때로는 비서실장으로 때로는 최고위원으로 또 때로는 원내대표로 두 번의 자리를 비웠을 때는 약 3~4개월 동안을 당대표 직무대행으로 그리고 마침내 대선 때는 상임총괄선대위원장으로 큰 실수 없이 모든 전략 전술을 사실은 성공시키고 정권까지 재창출했기 때문에 앞으로 잘할 거다가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경로를 봐라. 이 정도면 원팀을 이끌 만한 팀장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냐라는 거를 주장하는 거고요. 또 하나는 그 과정 속에서 함께했던 170명의 의원들의 압도적인 수가 지지를 하는 것이다. 지금 앵커님 말씀대로 그게 왜 여론조사에 다 반영이 되지 않겠냐라고 하는데 그거는 시차가 필요합니다.

    ◎ 진행자 > 조금 늦게 출마 선언하셨잖아요. 이제 시작이죠.

    ◎ 박찬대 > 이제 2일 차입니다. 어제가 1일 차, 오늘이 2일 차인데 그래서 앞으로 3주 정도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 당원들과 시민들의 마음속에 좀 더 스며 들어가는 거, 그걸 찬며 들어간다고 하거든요. 그러기에는 시간이 필요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한 번도 넉넉하고 만만한 선거를 해본 적이 없어요. 20대 총선에 국회의원 될 때도 그때도 우리 당 가장 적은 표차로 당선이 돼서 한 석 차이로 1당을 만드는 데 사실은 기적 같은 역할을 했었거든요.

    ◎ 진행자 > 그랬었나요? 잊고 있었는데요.

    ◎ 박찬대 > 네, 2016년 20대 총선 때 인천 연수갑에서 당선이 됐는데요. 그 지역은 헌정 사상 단 한 번도 민주당으로 당선돼 보지 못한 지역이에요. 그거를 제가 214표 차이로 당선이 되면서 우리 당이 1석 차이로 1당이 됐었는데 그때 그 기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늦었지만 부족하지만 맹추격을 하고 있고 반드시 이번에도 기적을 이루어 낼 거라고 믿습니다.

    ◎ 진행자 > 의원실도 옮기셨잖아요. 의원실 방 옮기신 거 아니에요?

    ◎ 박찬대 > 네, 네.

    ◎ 진행자 > 그래서 더 운이 올 거다 이런 말씀도 하셨던 것 같은데요.

    ◎ 박찬대 > 사실은 어떤 분들은 무속을 의지하는데 저는 무속을 의지하지는 않고 불확실한 정치권에서 우리가 노력을 해도 그 응답이 합리적으로 정확하게 예측되질 잘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할 때가 있는데 제가 818호에 들어간 것은 그 전 주인이 이재명 대통령이셨어요. 당대표였죠. 그 이전의 주인은 송영길이었어요. 당대표였죠. 그리고 또 세 사람이 다 인천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기는 좀 더 어렵고 더 마음에 드는 것은 818호가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 서거일이에요. 사실 민주 정부 1기를 만들어내고 4기 올 때까지 정권 재창출까지 해냈던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하면 우리 김대중 전 대통령 아니십니까? 정치 보복도 없었고 그다음에 IMF라는 위기도 극복했고 그다음에 우리의 먹고사는 정보통신 ICT도 열었던 분이고, 남북의 평화의 가능성도 최초로 열었던 분이기 때문에 그 818호는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숫자이며 송영길, 그리고 이재명, 그리고 박찬대로 연결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용기도 나고 기운도 나고 반드시 잘될 거라고 하는 믿음도 생기죠.

    ◎ 진행자 > 묘하게 설득이 되는데요. 결과를 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의원님과의 만남은 여기까지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찬대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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