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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국민 시각으로 보면 추경호 영장 발부될 것" [모닝콜]

박찬대 "국민 시각으로 보면 추경호 영장 발부될 것" [모닝콜]
입력 2025-12-02 07:42 | 수정 2025-12-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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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 : MBC 뉴스투데이 (월~금 오전 06:00, 토 오전 07:00)
    ■ 진행 : 정슬기
    ■ 대담자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의원,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변인



    정슬기> 네 12.3 비상계엄 1년을 하루 앞두고 투데이 모닝콜에서는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민주주의가 벼랑 끝에 섰던 그 밤, 제1 야당의 원내 사령탑으로서 국회를 지켰던 분이죠.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찬대 의원 나오셨습니다. 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박찬대>네 안녕하세요.

    정슬기>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비상계엄 당시에 의원님께서는 어디에 계셨고 또 어떻게 그 소식을 접하셨는지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박찬대> 예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좀 경과했는데요. 그 당시에 정기국회가 12월 10일까지 있었고 11월 말에 예산안이 감액으로 통과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정기국회의 예산 협상과 관련된 내용들을 좀 정리하기 위해서 국회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계엄이 터지고 나서 김용민 의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아서 계엄이 공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국회로 뛰어들어가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졌었죠. 많은 분들이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됐을 때 굉장히 당황스럽고 황당했겠지만 우리 지도부에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오래전부터 비상 상황이 발생할 개연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계엄이 터진다 라고 하면 신속하게 계엄을 해제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로 모여야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다행스럽게 12월 4일 오후 2시에 이창수 중앙지검장을 포함한 검사 3인과 체제 감사원장을 탄핵하기 위한 안건이 상정되어 있어서 지방에 거주하시는 우리 의원들이 집에 가지 않고 국회 주변에 대기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거든요. 12월 3일 날 계엄이 터질지는 몰랐지만 이러한 사전의 준비가 신속하게 의원들이 국회로 모일 수 있었던 부분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정슬기> 네 의원님 국회로 가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또 그것도 좀 궁금한데요.

    박찬대>저 같은 경우는 신속하게 국회로 왔기 때문에 아직은 국회의 정문이 차단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경찰들이 와서 좀 소란한 상황이지만 대문은 아직 통제되지 않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체포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특히 이재명 당 대표와 국회의장 그리고 박찬대는 아무래도 계엄 해제를 위한 시도를 막기 위해서 체포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사실 통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부터 넘었는데 우리 세 사람의 행동은 동일했던 것 같아요. 계엄이 터졌다는 얘기를 듣고 이재명 당 대표와 바로 통화를 했거든요. 무사히 집에서 나오셨는지 국회로는 오고 있는지 그리고 나서 국회의원들을 제가 바로 소집을 하고 그리고 각자가 다 담을 넘어서 국회에서 만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 10개 정도 되는 국회의 대문 중에서 2문과 3문 사이에 국회 경비대가 있는 담 등장 밑이 어둡지 않겠냐라는 생각으로 경비를 피해서 담을 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슬기> 네 비상계엄 당시에 이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을 했는데 당시 원내대표로서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도 좀 궁금합니다.

    박찬대> 사실은 이러한 상황이 올 수 있다라는 것을 마음에 두기는 했지만 실제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고 있다라는 정보를 들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빠른 시간 내에 계엄군들이 국회를 침탈해서 우리들을 끌어내기 전에 먼저 우리가 신속하게 계엄을 해제해야 된다 이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의원들을 독려해서 과반수를 넘겨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졌고요.그때 여당이었던 국민의 힘에서도 18명의 의원이 이미 들어와 있었지만 그들의 결정에 대해서 어떤 가능성도 우리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야당 의원만으로 150명이 넘을 때까지 기다렸었습니다. 신속하게 점검하고 그래서 12시 30분쯤 계엄이 선포되고 한 2시간쯤 경과했을 때 야당 의원만으로 150명이 넘었고요. 그 즉시 우리는 개의를 통해서 신속한 계엄 해제를 국회의장께 요구를 했죠. 150명이 찾는 그 순간에 국회 의장께서도 자리를 지켜주시고 이재명 대표도 사실은 몸을 피해서 은신하고 있다가 바로 나타나셔서 계엄 해제를 준비를 했는데 실질적으로 계엄이 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30분 정도가 경과가 됐습니다. 계엄이 터졌던 순간보다도 150명의 국회의원이 모였던 그 순간보다도 그 순간부터 계엄 해제 의결이 될 때까지의 30분이 가장 초조하고 절박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슬기> 네 이 내용과 관련해서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을 받고 있는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오늘 구속 심사를 받습니다. 당시에는 추 의원과 소통을 하셨는지도 궁금한데요.

    박찬대>그렇죠. 저하고 원내 협상의 상대 파트너였기 때문에 늘상 일상적인 소통은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전화를 받지 않더라고요. 제가 한 11시경에 국회에서 본회의장에서 12시 반까지 1시간 반을 기다리는 동안 추경호 원내대표한테 여러 차례 전화를 통화를 시도를 했는데 한 번도 받지는 않았고요. 실질적으로 우리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대기실에서 국힘당의 18명 의원들 중에서 국힘당의 당직자가 최경호 원내대표한테 전화하고 따지고 항의하는 소리를 들었는데요. 아마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 의장이나 아마 국힘당의 당직자들하고는 어느 정도 전화 통화를 하고 소통했던 것 같은데 제 전화는 일체 받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슬기>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정말 방해를 했다고 생각을 하시는지요.

    박찬대> 네. 국민들의 생각과 동일합니다. 아마 충분한 그런 개연성은 가지고 있다. 그 부분이 실질적으로 검토되지 않겠는가 계엄이 선포되기 전후로 해서 여러 차례 주요 인사들하고 통화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국힘당의 의원들 한 50여 명이 당사에 몰려 있는 그 상황까지도 여러 차례 의총 장소를 바꾸는 등 실질적으로 국힘당의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오는 부분에 대해서 협조적이지 않았고 방해한 개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가지고 영장 실질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요. 아마 국민의 시각으로 보게 될 때는 오늘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슬기> 네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 1년 동안 여러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가장 좀 심각한 순간을 뽑았다면 어떤 순간이었을까요?

    박찬대> 사실은 12월 3일 밤 10시 27분에 계엄이 선포되고 난 이후부터 계엄 해제의 순간 그리고 윤석열의 체포 순간, 탈옥 순간 서부지원 폭동 순간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아주 지속적으로 위기감을 더 많이 발생시켰던 것은 12월 7일과 12월 14일 날 두 번에 걸쳐서 탄핵안이 상정돼서 마침내 12월 14일 날 윤석열이 탄핵되지 않았습니까? 그 이후에는 헌법재판소에서 당연히 심의를 통해서 파면 결정이 나야 될 텐데 헌법재판관이 9명으로 구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회 몫 추천 몫 3명에 대해서 그 당시에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것을 하지 않아서 그 시점에 한덕수를 탄핵하는 그 의사결정이 상당히 어려움이 좀 있었고요. 대통령 탄핵에 이어서 국무총리 탄핵까지 이어지는 것에 대한 사실 반대 의견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을 해보면 한덕수를 탄핵하고 그 이후에 최 상무 권한대행을 다시 세워줬을 때 그때 3명이 아니라 2명 세워서 결국은 궁극적으로 8대 0 파면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데요. 그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실질적인 파면은 4월 4일 날 이루어졌는데요. 100일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에 헌법재판소에서 사실 판결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순간들 원래 9대 0으로 당연히 파면돼야 될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8 대 0으로 다시 7 대 1로 그리고 5대 3으로 밀려가는 그 긴박한 그 상황을 지켜내면서 국민과 견뎌냈던 것이 가장 어렵지 않았나 이 생각이 드는데 결국은 4월 4일 헌법재판소 8대 0의 파면 판결로 내란은 1차례 수습은 했지만 아직 내란 종식을 위한 국민의 노력과 정치권의 노력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슬기> 우리가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사회적으로 어떤 조치가 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박찬대> 저는 45년 만에 발생했던 이런 불법 계엄이 다시금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원인과 처벌이 단호하게 이루어져야 된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5.18 때 내란을 일으켰었던 전두환 일당에 대한 사실은 사면과 관대한 처분이 그 이후에

    범죄에 대한 용기를 주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되고요. 아직도 내란이 종식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내란을 일으켰던 대통령을 보유했던 국힘당이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서 내란의 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1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 몇몇 소수의 의원들이 그거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과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지만 장동혁 대표를 비롯해서 아직도 국민들이 나뉘어서 싸우고 있거든요. 저는 단호한 처벌, 그리고 사면 없는 관용 없는 이러한 뒤처리가 미래의 범죄를 막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이 되고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민주적 질서를 분명하게 채워 나가야겠다 생각합니다.

    정슬기> 네 더 드리고 싶은 질문이 많은데 시간 관계상 오늘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박찬대> 네 고맙습니다.



    # <투데이 모닝콜> 인터뷰 전문은 MBC뉴스 홈페이지(imnews.imbc.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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