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군사독재 정권에서 고문으로 공안 사건을 조작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해쳤던 이근안의 장사 절차가 끝났습니다.
입에 담기조차 힘든 잔혹한 고문을 정당화하는 입장을 내놨던 그는 끝내 사죄도 배상도 없이 세상을 떴는데요.
숱한 피해자들이 고문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고, 이미 목숨을 잃었는데, 생존해있는 피해자들은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윤수한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장례식장 1층에 뜬 부고 안내문, 전직 경찰 이근안입니다.
'목사'라고 적었지만, 세상은 그를 '고문 기술자'로 기억합니다.
군부 독재 시절 이근안은 숱한 공안 사건 조작에 앞장섰습니다.
잠 안 재우기부터 물고문과 전기고문까지 상상조차 힘든 잔혹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김근태/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1999년 10월, 뉴스데스크)]
"전류를 때로는 강하게 길게도 하고 짧게도 하고, 고통과 공포는 주되 사람이 목숨을 잃지는 않도록‥"
[이재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1999년 10월, 뉴스데스크)]
"이런 데를 이제 친다고요, 이렇게… 치면 이게 딱 빠져버려 그냥. 그래서 이근안을 고문기술자라고 하는 거야."
대가는 성공이었습니다.
남들보다 승진도 빨랐고 대통령 훈장, 장관 표창도 받았습니다.
'민주화가 되면 나를 고문해 복수해라'며 피해자들을 조롱했던 그는 민주화 이후 자취를 감췄습니다.
잠적 10여 년 뒤, 공소시효가 대부분 지나고서야 자수했습니다.
징역 7년을 살고 나오면서도 제대로 된 반성은 없었습니다.
[이근안 (2006년 11월, 경기 여주교도소)]
"<고문 피해자들한테 한 말씀 한 마디만 해 주시죠.> ‥‥‥. <과거의 고문 피해자한테 한 마디만 해 주시죠.> ‥‥‥."
이근안은 출소 2년 뒤 목사로 변모했습니다.
반성과 회개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말뿐이었습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일하겠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고문 수사가 애국이었다"며 궤변으로 유족들을 괴롭혔습니다.
급기야 목사직을 박탈당했지만 자서전을 내가며 자기 정당화에 주력했습니다.
[이근안 (2012년 12월, 자서전 출판기념회)]
"그 당시야 그게 애국 아니면 누가 가정도 모르고 열심히 목숨 내놓고 일을 했겠어요."
법원에서 확정된 이근안의 피해 배상금은 모두 36억 원.
하지만 그는 한푼도 내지 않은 채 88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전기고문을 당해 디스크가 녹아내린 납북 어부 김성학 씨는 "조금이라도 사과할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또다른 이근안들에게 피해자들은 오늘도 묻고 있습니다.
[유동우/학림사건 고문 피해자]
"지금도 그때, 그때처럼 나를 보느냐‥ 지금도 그걸 왜곡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근안의 죽음이 그의 만행을 지울 순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MBC뉴스 윤수한입니다.
영상취재: 김민승 / 영상편집: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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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한
윤수한
고문 피해자가 살아있을 '이근안'들에게 던지는 질문
고문 피해자가 살아있을 '이근안'들에게 던지는 질문
입력
2026-03-27 20:19
|
수정 2026-03-2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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