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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도심 속 꿀벌치기' 어떠세요?

'도심 속 꿀벌치기' 어떠세요?
입력 2013-08-26 09:35 | 수정 2013-08-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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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 복판에 자리한 한강 노들섬.

    한 켠에 사람들이 모여 떠들썩합니다.

    벌꿀을 잔뜩 머금고 있는 묵직한 벌집들.

    꿀 짜내는 통 안에 집어넣고 손잡이를 돌리자 진한 꿀향기가 바람을 일으키자 탄성이 터집니다.

    "완전 꿀바람같아요, 꿀바람."

    진한 황금빛 벌꿀이 줄줄 쏟아져 나오고, 절로 군침이 도는 건 여간해서 참기 어려운 유혹.

    성급한 이들은 벌집째 베어 물기도 하고, 손가락을 쪽쪽 빨아도 여기선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습니다.

    ◀SYN▶ 우정아
    "너무 달아요. 하하..쫀득쫀득하니 맛있네요"

    ◀SYN▶ 이주희
    "맛있고요, 벌집은 껌같이 변해요. 카라멜 먹는 것 같아요...방금 따는 걸 눈으로 보고 나서 먹으니까 만족감이 더 크네요."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직접 벌통을 놓고 꿀벌을 치는 '아마추어 양봉가'들입니다.

    각자의 벌통을 한데 모아 놓고, 양봉 교육을 받으며 애지중지 꿀벌들을 길러 온 첫 결실을 맛보는 자리입니다.

    ◀SYN▶ 김행란
    "집에 텃밭이 있어서 그 텃밭 농사지으면서 하다 보니까 벌도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자급자족이 되죠. 되게 재밌어요, 한 번 해보세요"

    콘크리트 건물 숲 속 도시민 여러분, 요즘 주변에서 혹시 꿀벌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에서 벌을 치는 분들이 알게 모르게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는데요.

    색다른 재미에 친환경적 의미까지 더할 수 있다는 이른바 '도시 양봉'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노들섬 벌꿀 채취 행사에 참여했던 13살 김혜성군.

    주변에서 '꿀벌 소년'으로 통하는 김 군에게 이번 여름방학은 짧기만 했습니다.

    오랜 소망이었던 자신만의 벌통이 생겨 밤낮으로 꿀벌들을 살피느라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린 겁니다.

    진지한 눈빛에 능숙한 손놀림, 전문 양봉가 못지 않습니다.

    ◀SYN▶ 김혜성
    "걱정인 게 꽃가루가 별로 있지를 않아서, 꽃가루가 조금 필요할텐데 지금"

    비가 그칠 날이 없었던 지난 장마철에도 김 군은 꿀벌 걱정에 벌통이 있는 노들섬을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노들섬에서 경기도 광명의 집까지는 버스로 1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벌통을 집 근처 학교 뒷산에 옮겨놓을 작정입니다.

    ◀SYN▶ 김혜성
    ("이 쪽 자리 어디에다가 이렇게 좀 평평하게 해가지고, 놓을 생각이야..")
    "근데 여기도 놓으면 밭 주인한테도 얘기해야 되지 않나?

    초등학교 4학년이던 3년 전, 책에서 우연히 접한 꿀벌의 세계에 빠져든 김 군,

    벌을 기르는 열정 못지 않게 지식도 해박합니다

    방 책장에는 읽기 쉬운 교양서는 물론, 대학생 형들조차 버거워 하는 전공 서적까지 벌 관련 책들이 그득합니다.

    ◀SYN▶ 김혜성
    (어렵지 않아요? 혼자 공부하기에는?)
    "기본적인 개념들 이런 게 좀 많이 공부가 되어 있으니까, 어려운 거 봐도 힘들지만 볼 수는 있어요"

    지난 주말 서울 은평구의 한 야산 텃밭.

    요즘 '꿀벌 전도사'로 소리 없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박 진 씨가 수강생 10여 명을 모아 놓고 꿀벌 강의에 한창입니다.

    ◀SYN▶ 박 진
    "도시같은 경우는 시골에 비해서 (벌이) 생존하는 비율이 20% 정도 높았고요."

    간단한 이론 수업에 이어 벌통 속의 꿀벌들을 직접 관찰하는 순서.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 방충복을 갖춰 입고 벌통 앞에 서자 긴장감마저 흐릅니다.

    ◀SYN▶ 박 진
    "벌들이 산란을 잘했는지 화분이 잘 들어오는 지 꿀이 잘 들어오는 지 그런 부분에 대해 확인을 하셔야 해요..근데 벌이 지금 너무 많잖아요..안 보이죠. 그럴 땐 이렇게 털어줘야 해요..조심하세요.." ("우와!!!!")

    손수 벌집을 집어들고 눈 앞에서 꿀벌들과 교감하다 보니, 막연한 두려움도 달아납니다.

    ◀SYN▶ 구소연/수강생
    "실제 벌이라고 하면 저희가 무섭게만 생각했는데 장비도 이렇게 갖추고 있으니까 그렇게 무섭지는 않은 것 같아요"

    ◀SYN▶ 황주진/수강생
    "저는 옥상에서 텃밭을 운영하면서 뭐 여러가지 상추나 이런 걸 따먹으니까 먹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그래서 여기(텃밭에도) 한번 (벌통을) 놔도 되겠다 옥상에다.."

    양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박 진 대표는 벌을 키우는 데는 농촌보다 도시가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합니다.

    ◀SYN▶ 박 진
    "벌들이 도시에서 더 잘 살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온도와 습도입니다..벌들은 고온을 좋아하고 습도도 건조한 걸 좋아하는데 도시가 그거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도시 양봉'의 가능성을 확신한 박 대표는 본격적으로 벌 공부에 매달리다 결국, 다니던 공기업을 그만두고 올 봄 도시양봉 협동조합까지 설립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조합원이 30여 명이나 찾아왔고, 교육 프로그램에 밀려드는 수강생들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SYN▶ 박 진
    "일단 새롭고, 두 번째로는 단순하게 내가 하는 활동들이 나 혼자만 즐거운 게 아니고 자연에도 영향을 미치다 보니까..이제 도시양봉이 하나의 문화가 되고 도시민들의 휴가 레저 비슷한 걸로 많이 접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대표는 현재 서울 시내 서너 곳에서 교육과 보급을 위한 양봉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얻어진 벌꿀에 상표를 붙여 빵집에 납품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박 대표에게서 받은 벌꿀로 빵을 만드는 제과점 쪽에서도 호응을 얻어냈습니다.

    ◀SYN▶ 박흥식/제과점 운영
    "저희도 같이 벌을 키워서 실제적으로 저희의 이름을 붙인 꿀도 생산하고 그 꿀을 빵에도 넣고 그런 식의 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시 양봉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서울시가 시청사 옥상에 벌통을 시범 설치하면서부터였습니다.

    대기 환경에 민감한 꿀벌이 서울 하늘을 마음껏 누빌 수 있을 만큼 생태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서울시측의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SYN▶ 송임봉/서울시 도시농업팀장
    "도시 환경 지표의 가늠자 역할인 양봉을 통해서 (대기 환경을) 확인하기 위해서 작년에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는 서울의 환경이 되살아나 생태계 복원이라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서울에서는 현재 시 당국이 운영하는 곳을 포함해 대략 10곳 정도에 양봉터가 마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정원이 가꿔진 옥상 텃밭이나 공원, 야산 등지입니다.

    관악산을 끼고 있는 서울대 캠퍼스에서도 양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벌통을 설치한 환경대학원에 이어 공과대 옥상 정원에도 최근 벌통 2개가 들어왔습니다.

    ◀SYN▶ 백승현/서울대 대학원
    "그 전에 벌이 한 두 마리 날아오는 것만 봤는데, 벌통이 직접 들어오면 식물이 수분(꽃가루 받이)도 더 잘되고..신기하잖아요 사실 거기서 꿀도 만들어내서 꿀도 나눠준다고 하니까.."

    특히 벌의 개체 수가 농촌보다 적은 도시에서는 벌들의 꿀과 꽃가루 채위 경쟁도 상대적으로 약해 양봉에 유리한 측면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SYN▶ 이명렬 과장/농촌진흥청
    "오히려 도시 지역에서는 꿀벌 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충분한 먹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오히려 의외로 농촌 지역보다 꿀을 많이 채취하는 경우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점도 양봉의 매력입니다.

    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초보자도 10시간 정도만 교육을 받으면, 자기 벌통을 갖고 벌을 치면서 꿀과 밀랍까지 채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벌 키우는 재미는 물론, 수확의 기쁨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양봉.

    그래서 장애인이나 노숙인같은 소외 계층의 자활 수단으로도 양봉의 가치가 인정받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자락의 이 양봉터는 장애인단체가 서울시로부터 장비 등을 지원받아 벌통 50개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SYN▶ 고명석/장애인
    "저도 이제 심장 나빠가지고 움직이면 힘이 들고 그러니까 조금씩 움직여서 좀 나아졌어요..노는 거보다도 활동하고 병 고치고 건강 유지하는 것이니까.."

    꽃과 식물의 수분, 즉 꽃가루 받이를 담당하는 꿀벌은 지구 생태계 유지에 단연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전 세계 100대 작물 중 71종이 꿀벌에 의해 열매를 맺는 것으로 보고돼 있습니다.

    특히 아몬드, 사과, 양파, 오이 등의 주요 작물은 꿀벌이 없으면 사실상 경작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 16개 과일과 채소 작물의 생육에 꿀벌이 기여하는 가치는 무려 6조 원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 악화와 기후 변화, 과도한 농약 사용 등의 탓에 꿀벌 개체 수는 세계적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 40만을 넘던 우리나라의 토종벌 집단 수도 7년 만에 무려 10분 1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위기가 심각한 몇몇 나라에서는 국가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영국 양봉업자 거리 시위 "SAVE OUR BEES!!!"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호에서 꿀벌의 개체수 급감에 따른 지구촌의 위기를 표지 이야기로 다뤄 눈길을 끌었습니다.

    따라서 여러 선진국들에선 이미 그 해결책으로 '도시 양봉'이 생활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SYN▶ 미국 CBS 방송 뉴스
    "최근 도시 양봉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런던에서 시카고, 백악관, 뉴욕 등지로.."

    특히 이들 외국 주요 도시에서는 도심 대형 건물에 입주한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와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모임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SYN▶ 이명렬 과장/농촌진흥청
    "꿀벌이 도시에서 위치를 차지하면서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역할로 인해서 도시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준다는 개념도 있고요..도심에서도 건강하게 꿀벌을 키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도시 환경이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꿀벌의 부지런함과 벌꿀의 달콤함.

    이 두 가치에 생태계 복원에 대한 도시민들의 열망이 더해져, 도시 공간에 꿀벌들의 힘찬 날갯짓이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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