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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허유신 기자

축의금, 얼마나 넣으십니까?

축의금, 얼마나 넣으십니까?
입력 2013-11-04 09:41 | 수정 2013-11-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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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결혼 시즌을 맞아, 청첩장을 예닐곱 장씩 받아들고, 얼마의 축의금을 봉투에 담을 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친소 관계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 하지만 피로연장 음식 수준과 동반 가족 수 등도 축의금 액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축하와 품앗이의 의미로 정착된 축의금 문화가 가계에 부담을 줄 만큼 액수가 커지고, 때로는 뇌물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하면서 축의금을 받지 말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 요즘, 축의금을 포기하는 쉽지 않습니다.

    받을땐 고맙지만, 건넬 땐 부담되는 결혼 축의금, 과연 안 받고 안 줄 수는 없는 것인지, 얼마를 주고받는 게 적정한 지 고민되는 요즘. 우리의 축의금 문화의 의미와 문제점을 짚어 봅니다.

    =============================

    손에 손에 흰 봉투를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결혼식 축의금을 전하려는 행렬입니다.

    더러는 식장에 와서야 지갑 속 돈을 꺼내 의금 봉투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객이 직접 가져오지 못한 봉투들은 한 데 모여 다발로 전달됩니다.

    결혼식에 가면 으레 모두가 내는 축의금.

    ◀SYN▶하객
    (오늘은 얼마나 내셨어요?) "10만원 정도 냈습니다"

    ◀SYN▶하객
    "5만원"

    ◀SYN▶하객
    "보통 5만원..최하가 5만원"

    봉투마다 든 액수가 다르지만, 실제로 축의금 장부에 적힌 숫자들을 보면 이른바 '표준 시세'라고 할 만한 금액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SYN▶ 이승재/축의금 접수자
    (대부분 얼마짜리예요?) "봉투들이 요새 5만원. 가까우신 분들은 7만원, 10만원.."

    지난 4월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도 '5만원을 넣는다'는 응답이 70%였고, 그 뒤가 10만원, 3만원 순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누가 결혼한다고 청첩장 내밀면 면전에선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도 속으론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바로 축의금 걱정 때문입니다.

    어쩌다 청첩장이 몇 장 씩 쌓여 고민이 깊어지다 보면, '왜 우리는 늘 이런 부담을 서로 주고받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2천년 이후 결혼식이 가장 많았던 달은 10월과 11월이었습니다.

    딱 이맘땝니다.

    ◀SYN▶ 한용석/하객
    "이달에는 12건 나는(웃음)..쫓아다니기 바빠요..오늘도 지금 두 군데인데 마누라가 다른 데 가고 내가 여기 오고.."

    직장에서도 동료들 몇 명 모이면 결혼 축의금 얘기가 화제에 오르곤 합니다.

    ◀SYN▶ 김현진/직장인
    "어느 정도 친분에 따라서 5만원, 10만원..그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해요. 왜 그렇게 택시요금마냥 금액이 정해져 있을까.."

    결혼 성수기이다보니, 청첩장 한 두 장쯤은 다들 받아놓은 눈치입니다.

    ◀SYN▶ 권명진/직장인
    "보통(결혼) 시즌이라는 기간이 되면 보통 서너 건은 되는 것 같아요"

    청첩장이 몰려들면, 축의금을 낼지 말지, 얼마를 넣어야 할지 누구나 고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SYN▶ 이주희/직장인
    "평소에 교류가 많이 없으시던 분들..인사만 하면서 지내던 분인데 그 분은 또 자기가 결혼하시는데 예의상(청첩장을) 주신 거죠. 근데 받자마자 되게 고민이 되는 거예요..이걸 얼마나 드려야 되지 하고.."

    그나마 돈벌이 수단이 있는 사람들은 사정이 좀 낫습니다.

    고만고만한 연금이나 자녀들의 부양에 기대 살림이 빠듯한 은퇴자들에게는 청첩장이 무서운 세금 고지서나 다름없습니다.

    73살 유종두씨 부부.

    자녀들이 매달 보내오는 생활비에서 집 임대료와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50만원 남짓 겨우 남습니다.

    그래서 요즘 같은 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SYN▶ 유종두/은퇴자
    "호주머니 사정이 뻔하니까..안 갈 수는 없고 가야되고 그러니까 고통스러, 고통스러우면서도 가는 거지."

    자녀들 혼사 때 받은 축의금 장부를 들여다보면서도 한숨이 깊어집니다.

    ◀SYN▶ 한군자/은퇴자
    "(축의금)받을 때는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인제 우리가 갚아야 되니까..그게 이렇게 부담이 가더라고요"

    자신의 경조사에 지인들을 부르는 것도 결국은 빚을 늘리는 거라는 생각에 ,3년 전엔 계획했던 칠순 잔치마저 취소했습니다.

    ◀SYN▶ 유종두/은퇴자
    "내 칠순 때 아들이(결혼) 피로연을 하게 됐어요. 한 해에 (지인들을) 두 번 초청하기가 부담스러우니까 내가 포기를 했죠."

    축의금 봉투에는 축하하는 마음 이외의 다양한 계산 심리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업무상 관계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 '축의금 족쇄'에 묶여 사는 박정식 씨.

    13년째 자동차 판매 영업을 해온 박 씨는 청첩장을 받으면 고민 없이 축의금을 들고 예식장을 찾습니다.

    ◀SYN▶ 박정식/자동차 영업사원
    "이거는 해야 돼요. 당연히 해야 되는 거죠..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가듯이 주말이면(청첩장) 펼쳐보고 날짜 시간에 맞춰서 가는 겁니다..주말에는 늘 외식이죠, 뷔페.."

    기존 고객은 물론, 앞으로 자동차를 구입할 지 모를 잠재 고객들까지 챙기다 보니 청첩장을 매달 10여개쯤 받습니다.

    ◀SYN▶ 박정식/자동차 영업사원
    "안면만 살짝 터도 '저 친구는 영업사원이니까'라는 것 때문에 많이들 보내주는 것 같아요..많게 나갈 때는 월 100여만 원 나갈 때도 있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정성을 들인다고 금세 영업 성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SYN▶ 박정식/자동차 영업사원
    "경조사를 잘 참여한다고 판매가 늘진 않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 심리 이런 게 있을 뿐이지. 저희가 이제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 되다 보니까.."

    결혼 축의금은 이렇게,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갑을 관계'를 드러내는 단면이 되기도 합니다.

    ◀SYN▶ MBC뉴스데스크(2003.10.24)
    "식약청 국장이 아들 결혼 청첩장을 도저히 모른 체 할 수 없는 제약회사 임직원들에게 뿌렸습니다."

    10년 전, 현직 고위 공무원이 업무상 관련된 업체들로부터 아들 결혼 축의금으로 3억 원을 받아 파문이 일었습니다.

    '사실상 뇌물'이라는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공무원 행동 강령'이 엄격해졌습니다.

    공무원은 직무 관련자나 직무 관련 공무원에게 자신의 경조사를 알려서는 안 되고, 예외적으로 축의금품을 받더라도 5만원을 넘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 요즘의 현실은 어떨까.

    어느 광역 자치단체 소속 고위 공무원 자녀의 결혼식장.

    몰려든 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로비 벽면을 가득 메운 축하 화환들.

    중앙 부처 장관부터 기업 회장, 대표이사, 대학 총장까지...면면이 화려합니다.

    광역 자치 단체의 현직 간부인 혼주와 업무상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업체나 기관들이 대부분입니다.

    ◀SYN▶ 혼주하객
    "OO는 집안 행사 때문에 (내가) 대신 인사했어.." "(악수하며) 축하합니다."

    축의금을 받는 창구 역시 북새통.

    봉투를 받고 식권을 건네는 일에만 대여섯 사람이나 매달렸는데도 밀려드는 하객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엔 하객 명단을 한 명씩 장부에 적어 가더니, 얼마 못 가 포기합니다.

    수북히 쌓여 가는 돈 봉투 더미.

    급한 대로 봉투 겉면에 적기 시작한 일련번호는 예식이 끝날 때쯤 되자, 무려 860번을 넘기고 있습니다.

    하객들이 폭주해 식권을 몇 차례 추가로 받아온 탓인지, 피로연 대금 치르는 일로 혼선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SYN▶ 축의금 접수자들
    "(우리가) 식권 나눠 주는 걸로 (식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식당에서 (식권을) 받은 것 기준으로 한다고.. 식권을 (하객들에게) 몇 장 줬냐 그걸 세야죠..나중에 거기서도 헷갈려"

    접수가 끝난 축의금 봉투들은 바퀴가 달린 큰 여행 가방에 담겼습니다.

    공교롭게도 한 화면에 잡힌 사돈댁의 축의금 봉투 가방 크기와 한 눈에 비교됩니다.

    심심찮게 일어나는 축의금 도난사건 때문인지 가방을 둘러싼 사람들은 옴짝달싹 못 합니다.

    ◀SYN▶ 축의금 접수자들
    “가서 식사를 어떻게 할까요?" "이거(가방)를 갖고 있어야 돼"

    고위 공직자인 이 결혼식의 혼주가 공무원 행동강령을 제대로 준수했는지
    확인할 순 없습니다.

    다만 '힘 있는' 사람들의 경조사를 모른체 눈 감을 수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축의금을 주고받는 관습은 우리의 오랜 품앗이 전통에서 비롯됩니다.

    받으면 또 돌려줘야 하는 게 미덕인 겁니다.

    그러다 보니, 혼사를 치르는 입장에서도 청첩장을 어디까지 돌려야 할 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최근 아들 결혼식을 치른 계성만 씨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SYN▶ 계성만/혼주
    "축의금을 주고받고 하는 게 참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청첩장을 줄 때..여쭤보고 드리게 되요. (결혼 앞둔) 자제분 계시냐고 물어봐서 있다고 하면 드리고 없다고 하시면 오셔서 식사나 하고 가시라고 드리고 그러거든요."

    따지고 보면, 축의금을 받는다고, 혼주가 큰돈을 손에 쥐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SYN▶ 계성만/혼주
    "축의금 들어온 것이 거의 다 식비로 나가는 거거든요..애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식장 비용으로 거의 다 나가는 것 같아요. 손에 쥐는 것 없이..그런 것들이 좀 변화돼야 하지 않나.."

    손님을 모시는 혼주 입장에선 '축의금을 받으니 괜찮은 음식으로 잘 대접해야' 하고, 하객 쪽에선 '봉투에 밥값보다는 더 넣어야 한다'는 거북한 상황이 악 순환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비싼 피로연 음식이 잔칫날 흥을 돋울 만큼 입에 맞지도 않습니다.

    ◀SYN▶ 강현숙/하객
    "예식장 와서 밥 먹고 '이 집 괜찮다는 집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또 사람이 한꺼번에 뭉치니까 밥을 먹는 건지, 줄을 선 건지 모르잖아요.."

    실제로 예식업체들도 밥값이 품질에 비해 과도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SYN▶ 예식장 관계자
    "옛날 같은 경우에는 예식홀에서 다 드레스 입고 이런 걸 했단 말이에요. 지금은 거기서 진행이 안 되니까. 그걸 식사에서 남긴 다고 보셔야죠."

    새삼스럽지도 않은 축의금 문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부담스러워지는 건 왜일까.

    예전 신문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1970년대 주고받던 축의금 액수는 대략 3천원에서 5천원 정도였습니다.

    5만원에서 10만 원 정도인 요즘과 비교하면 대략 20배 정도가 오른 셈입니다.

    서민 물가의 척도인 자장면 값과 견주어 봐도 축의금만 크게 오른 건 아닙니다.

    문제는 결혼식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화려해 지면서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잔치 국수 먹던 피로연에서 갈비탕으로, 다시 뷔페 음식으로, 호텔 스테이크로 계속 음식 수준도 높아져 혼주나 하객에게 모두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SYN▶ 강학중 소장/가정경영연구소
    "농경사회에서는 지극히 초청하는 범위가 가족 중심이었죠. 가족 친척 위주에서 근데 도시화되고 산업화 되면서 관계가 훨씬 많이 늘어가는 겁니다 거기다가 점점 비교하잖아요. 과시하고 싶음 사회 풍조까지 겹쳐서 그것이 좀 더 심해지지 않았나"

    탁 트인 통유리창 너머로 청와대가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이는 곳.

    청와대 사랑채에서 신혼부부 한 쌍이 탄생합니다.

    예식장 대여료는 없고, 주례도 사회단체에서 명사들을 무료로 주선해 줍니다.

    다만 하객 수를 양가 합쳐 100명 정도로 제한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거품을 뺀 혼사를 치를 뿐 아니라, 주변 지인들에게도 과도한 부담을 끼치지 않습니다.

    ◀SYN▶ 이효창/'작은 결혼식' 신랑
    "이 곳에서 결혼식을 하니까 밖에서 하는 결혼식보다는 10분의 1로 (비용이) 줄었습니다. (청첩장은 몇 장정도 찍으셨나요?) 청첩장은 130장 정도 찍었습니다.

    피로연은 근처 삼계탕 집을 빌렸습니다.

    한 그릇에 1만 5천원.

    하객 답례품으로 준비한 우산까지 합쳐도 하객 접대에 1인당 2만원 남짓,

    웬만한 예식장 뷔페 식당 값의 절반도 되지 않는 예산입니다.

    하객들의 만족도 역시 높습니다.

    ◀SYN▶ 조성순/하객
    "뷔페를 먹잖아요? 그보다는 삼계탕은 보양도 되고 더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아요"

    덕분에 축의금에 대한 부담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SYN▶ 박상훈/하객
    "많이 비용을 안 내는 그런 결혼식을 오다 보니까 저도 (축의금) 내면서 부담도 없고 '더 많이 내야 되나' 하는 생각도 안 들고 어느 정도 정성만 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신혼집 마련비용을 빼고도 결혼식 한 번에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실속은 없이 봉투만 오가게 되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도 늘어나는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꼭 축하하고 싶은 사람, 기쁜 마음으로 선뜻 와 줄 사람들만 초청해 과소비 없는 알뜰한 예식을 치른다면 덜 주고 덜 받는 축의금 문화도 가능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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