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조의명 기자
조의명 기자
도심의 천덕꾸러기 '길고양이'를 부탁해
도심의 천덕꾸러기 '길고양이'를 부탁해
입력
2014-01-06 08:54
|
수정 2014-01-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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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어귀에서, 자동차 밑에서 눈빛을 번득이며 어슬렁거리는 존재. 주인없이 떠도는 길고양이들이 점점 늘어 현재는 전국적으로 100만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럽다며 학대하기도 하고, '캣맘'들은 불쌍하다며 걷어 먹이기도 합니다.
아파트 지하 보일러실에 찾아든 길고양이들의 통로를 막아 그 안에서 굶겨 죽였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도심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길고양이들. 공존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
추운 날씨 탓에 오가는 사람도 드문 주택가 골목길.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불빛이 번뜩입니다.
쓰레기 봉투를 뒤지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비닐더미에 머리를 쳐박고 한참을 씨름한 끝에 빵조각 하나를 발견하고 뜯어먹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재빨리 줄행랑을 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도시의 풍경
어느 동네나 몇 마리씩은 있는 흔하디흔한 이들의 이름은 바로 길고양이입니다.
돌보는 사람도, 마땅히 의지할 곳도 없기에 이따금 이유 없는 괴롭힘의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를 커다란 개 두마리가 끌고 다니며 번갈아 물어뜯고 있습니다.
◀SYN▶
“고양이는 (해쳐도) 괜찮아. 먹지만 않으면 돼”
개 주인은 말리기는커녕 살아서 앞발을 휘적거리는 고양이를 걷어차 다리 밑으로 떨어뜨립니다.
자신의 SNS에 '고양이 잡은 날'이라는 제목으로 이 동영상을 올렸던 개주인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됐습니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서는 누군가 길고양이의 목을 매달아 철조망에 걸어놓는 끔찍한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지난 한 해 적발된 길고양이 학대 건수는 100여 건,
대부분은 울음소리가 거슬린다거나 화단을 망쳐놓았다든가 하는 사소한 이유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순 없지만 지자체 추산에 따르면 전국의 길고양이 수는 약 100만 마리.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지만, 함부로 죽이는 건 엄연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렇다고 개체수가 늘어나는 걸 무작정 지켜볼 수만은 없어 지자체들이 번식력을 없애는 중성화 수술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 역시 논란의 대상입니다.
길고양이 하면 왠지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요.
내쫓아야 할지, 가엾다고 보듬어야 할지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다보니, 길고양이 문제가 이웃 간의 분쟁으로 번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난달 길고양들이 추위를 피해 아파트 지하실로 몰려들자, 주민들이 피해를 막겠다며 지하실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러자 일부 주민들은 지하실 안에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갇혀 굶어 죽어가고 있다며 봉쇄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SYN▶ 아파트 주민
“살겠다고 추운 날 지하실로 몸을 숨겨서 들어가는데 굳이 그렇게 문을 닫아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좀 불쌍하죠.”
◀SYN▶ 아파트 주민
“밤에 고양이 딱 보세요. 얼마나 무서운데 이해를 못 하겠어. 다들 왜 남의 집 갖고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사는 사람들이 싫다는데.”
동물보호단체가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이 아파트에서 예전에도 몇 차례 지하실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고양이들이 떼로 굶어죽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주민들은 누군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수가 급증했다며, 고양이를 위해 지하실을 개방하라는 건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합니다.
◀SYN▶ 아파트 주민
“막 고양이 밭이에요. 우리 손녀딸 걔도 무서워서 내려오지 못한다고.. 뭐하러 여기다가 밥 갖다 놓으니까 이리로 다 몰려.”
고양이들이 갇혀 있다는 지하실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경계하듯 취재진을 쳐다봅니다.
벽 틈새, 배관 아래에 자리를 잡고 숨바꼭질을 하듯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들.
보일러 배관이 거미줄처럼 지나가는 이곳은 한겨울에도 난방을 한 것처럼 훈훈합니다.
온갖 수난을 무릅써가며 길고양이들이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건 이 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조만간 고양이들을 모조리 내쫓고 지하실 출입을 차단시킬 예정이라,
이곳을 맴돌며 겨울을 나고 있는 녀석들은 꼼짝없이 갇히거나, 아니면 바깥으로 내쫓겨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SYN▶ 박소연 대표/동물사랑실천협회
“고양이를 싫어하는, 혐오하는 분들이 고양이들을 자꾸 죽이려고 하고, 없애려고 하고 이런 문제들이 사실 비단 여기뿐만 아니고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고양이 보호소.
학대나 사고로 심하게 다치거나, 추위와 굶주림으로 병든 길고양이들이 서른 마리 가까이 모여 있습니다.
◀SYN▶
“길에서 힘겹게 살다가 구조된 아이인데요. 그래서 당뇨병을 앓고 있어요.”
낯선 사람을 보면 일단 경계하고 보는 게 길고양이의 습성.
그런데 처음 보는 취재진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다 버려졌을 가능성이 큰 데, 요즘 들어 이 보호소엔 이런 녀석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해마다 평균 3만 마리 넘는 집고양이들이 길고양이로 전락하는 걸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SYN▶ 박선미 운영위원/한국고양이보호협회
“저희가 길고양이 보호 관련 운동을 하지만 길고양이들이 증가를 한 결과적인 것은 유기묘들의 증가가 많아요. 버리는 사람들과 그걸 학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고양이는 암컷 한 마리가 한해 많게는 스무 마리까지 새끼를 낳을 만큼 번식력이 왕성합니다.
버려진 고양이는 한 마리지만 이로 인해 늘어나는 길고양이는 수십마리가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길고양이를 혐오하고 쫓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간과 공존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툼한 점퍼를 차려 입고 집을 나서는 주부 조영미 씨.
양 손에 가득 든 건 근처 아파트 단지에 사는 길고양이들에게 줄 먹입니다.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이곳저곳에 놓인 작은 밥그릇 가득 사료를 부어주는 영미 씨.
스스로를 고양이 엄마, 캣맘이라고 소개합니다.
◀SYN▶ 조영미/캣맘
“내가 안 챙겨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먹이를) 찾을 수 없으니까, 여기가 사냥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잖아요. 도심이라.”
혹시나 고양이들이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까 경비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고양이 좀 잘 봐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습니다.
◀SYN▶ 조영미/캣맘
“애들 불쌍하잖아요 추운데 있을 데도 없고.”
(글쎄 그런데 요즘 지하실에 들어와서 똥 싸고 그러잖아)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수고하세요.”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주차장 구석에서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 사람은 이 학교에 재직 중인 임기환 교수입니다.
차 트렁크에 사료를 실어 놓고 출근할 때 한 번, 퇴근할 때 한 번 밥그릇이 빌 때마다 채워주곤 합니다.
◀SYN▶ 임기환 교수/서울교육대학교
“학교에서는 여기 계시는 분들이 양해를 하고 그러니까 괜찮은데 그 전에 집에서 밥 주고 밤에 나가서 밥 주고 그럴 때 낯선 사람이 동네 다닌다고 신고를 해가지고 관리소에서도 쫓아오고.”
가끔 이런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일단 굶어 죽는 생명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컸다고 합니다.
◀SYN▶ 임기환 교수/서울교육대학교
“어느 날 딸아이가 밖에서 어미 잃은 고양이 다섯 마리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어요. 고양이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그 전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길에 다니는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서울 강동구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독특한 시범 사업 하나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청 현관 앞, 고양이가 그려진 나무 상자 안에 밥그릇과 물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이른바 고양이 급식소.
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관공서 앞마당 등 공공장소 주변에 캣맘들이 공식적으로 길고양이 밥을 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준 겁니다.
주민센터 앞에 차려진 급식소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습니다.
한입 삼킬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며 먹는 눈칫밥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차려진 밥상,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것보다는 확실히 형편이 나아진 셈입니다.
급식소 설치를 처음 제안한 건 웹툰 작가 강풀 씨.
◀SYN▶ 강풀/웹툰작가
“가장 천대받고 피해 받는 동물이 길고양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얘네들이 눈치 안 보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스스로 생각했던 제가 제일 잘 한 일이 만화 그린 것도 아니고 이거인 것 같아요.”
급식소 설치를 위해 1500만 원을 선뜻 쾌척한 강풀 씨를 비롯해, 지역 캣맘들의 기부와 봉사로 운영되기 때문에 세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SYN▶ 이해식 구청장/서울특별시 강동구청
“쓰레기봉투 뜯고 우는 소리 나는 게 배고파서 그러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그 배고픔을 해결해 주면 우리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칠 정도로 그렇게 울음소리를 내거나 봉투를 뜯지는 않는단 말이죠.”
시작할 무렵엔 오히려 길고양이 수만 늘어나지 않겠냐며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행 반 년 만에, 쓰레기봉투를 뜯거나 집 앞에서 울어댄다는 피해 민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효과를 봤습니다.
◀SYN▶ 김미자 회장/강동구 캣맘 협회
“이렇게 동사무소 관공서 앞에 길고양이 밥을 주는 게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 이런 것하고 민원과 같이 해결을 한다하는 게 들어가 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의 보는 눈도 달라지고.”
급식소 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만 있다면 길고양이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동물이라는 사람들의 인식도 변할 거라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적절히 단속하고, 지나친 번식을 막기 위한 중성화 수술사업만 지원된다면 얼마든 인간과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SYN▶ 한선경/강동구 캣맘 협회
“밥을 주면서 주위에 청소 안 하고 어지럽히면요. 주는 캣맘들도 욕을 먹지만 고양이는 더 욕을 얻어먹어요. 고양이 밥만 열심히 줘서 고양이에게 이로운 건 아니에요. 사람한테도 잘 해야 해요.“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길고양이까지 걱정한다는 게 한가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동물과 더불어 사는 공생의 정신 역시 소중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단순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개인의 취향을 떠나 머리를 맞대고 길고양이 해법을 찾아야 할 때라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럽다며 학대하기도 하고, '캣맘'들은 불쌍하다며 걷어 먹이기도 합니다.
아파트 지하 보일러실에 찾아든 길고양이들의 통로를 막아 그 안에서 굶겨 죽였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도심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길고양이들. 공존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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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 탓에 오가는 사람도 드문 주택가 골목길.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불빛이 번뜩입니다.
쓰레기 봉투를 뒤지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비닐더미에 머리를 쳐박고 한참을 씨름한 끝에 빵조각 하나를 발견하고 뜯어먹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재빨리 줄행랑을 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도시의 풍경
어느 동네나 몇 마리씩은 있는 흔하디흔한 이들의 이름은 바로 길고양이입니다.
돌보는 사람도, 마땅히 의지할 곳도 없기에 이따금 이유 없는 괴롭힘의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를 커다란 개 두마리가 끌고 다니며 번갈아 물어뜯고 있습니다.
◀SYN▶
“고양이는 (해쳐도) 괜찮아. 먹지만 않으면 돼”
개 주인은 말리기는커녕 살아서 앞발을 휘적거리는 고양이를 걷어차 다리 밑으로 떨어뜨립니다.
자신의 SNS에 '고양이 잡은 날'이라는 제목으로 이 동영상을 올렸던 개주인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됐습니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서는 누군가 길고양이의 목을 매달아 철조망에 걸어놓는 끔찍한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지난 한 해 적발된 길고양이 학대 건수는 100여 건,
대부분은 울음소리가 거슬린다거나 화단을 망쳐놓았다든가 하는 사소한 이유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순 없지만 지자체 추산에 따르면 전국의 길고양이 수는 약 100만 마리.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지만, 함부로 죽이는 건 엄연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렇다고 개체수가 늘어나는 걸 무작정 지켜볼 수만은 없어 지자체들이 번식력을 없애는 중성화 수술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 역시 논란의 대상입니다.
길고양이 하면 왠지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요.
내쫓아야 할지, 가엾다고 보듬어야 할지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다보니, 길고양이 문제가 이웃 간의 분쟁으로 번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난달 길고양들이 추위를 피해 아파트 지하실로 몰려들자, 주민들이 피해를 막겠다며 지하실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러자 일부 주민들은 지하실 안에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갇혀 굶어 죽어가고 있다며 봉쇄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SYN▶ 아파트 주민
“살겠다고 추운 날 지하실로 몸을 숨겨서 들어가는데 굳이 그렇게 문을 닫아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좀 불쌍하죠.”
◀SYN▶ 아파트 주민
“밤에 고양이 딱 보세요. 얼마나 무서운데 이해를 못 하겠어. 다들 왜 남의 집 갖고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사는 사람들이 싫다는데.”
동물보호단체가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이 아파트에서 예전에도 몇 차례 지하실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고양이들이 떼로 굶어죽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주민들은 누군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수가 급증했다며, 고양이를 위해 지하실을 개방하라는 건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합니다.
◀SYN▶ 아파트 주민
“막 고양이 밭이에요. 우리 손녀딸 걔도 무서워서 내려오지 못한다고.. 뭐하러 여기다가 밥 갖다 놓으니까 이리로 다 몰려.”
고양이들이 갇혀 있다는 지하실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경계하듯 취재진을 쳐다봅니다.
벽 틈새, 배관 아래에 자리를 잡고 숨바꼭질을 하듯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들.
보일러 배관이 거미줄처럼 지나가는 이곳은 한겨울에도 난방을 한 것처럼 훈훈합니다.
온갖 수난을 무릅써가며 길고양이들이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건 이 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조만간 고양이들을 모조리 내쫓고 지하실 출입을 차단시킬 예정이라,
이곳을 맴돌며 겨울을 나고 있는 녀석들은 꼼짝없이 갇히거나, 아니면 바깥으로 내쫓겨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SYN▶ 박소연 대표/동물사랑실천협회
“고양이를 싫어하는, 혐오하는 분들이 고양이들을 자꾸 죽이려고 하고, 없애려고 하고 이런 문제들이 사실 비단 여기뿐만 아니고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고양이 보호소.
학대나 사고로 심하게 다치거나, 추위와 굶주림으로 병든 길고양이들이 서른 마리 가까이 모여 있습니다.
◀SYN▶
“길에서 힘겹게 살다가 구조된 아이인데요. 그래서 당뇨병을 앓고 있어요.”
낯선 사람을 보면 일단 경계하고 보는 게 길고양이의 습성.
그런데 처음 보는 취재진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다 버려졌을 가능성이 큰 데, 요즘 들어 이 보호소엔 이런 녀석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해마다 평균 3만 마리 넘는 집고양이들이 길고양이로 전락하는 걸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SYN▶ 박선미 운영위원/한국고양이보호협회
“저희가 길고양이 보호 관련 운동을 하지만 길고양이들이 증가를 한 결과적인 것은 유기묘들의 증가가 많아요. 버리는 사람들과 그걸 학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고양이는 암컷 한 마리가 한해 많게는 스무 마리까지 새끼를 낳을 만큼 번식력이 왕성합니다.
버려진 고양이는 한 마리지만 이로 인해 늘어나는 길고양이는 수십마리가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길고양이를 혐오하고 쫓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간과 공존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툼한 점퍼를 차려 입고 집을 나서는 주부 조영미 씨.
양 손에 가득 든 건 근처 아파트 단지에 사는 길고양이들에게 줄 먹입니다.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이곳저곳에 놓인 작은 밥그릇 가득 사료를 부어주는 영미 씨.
스스로를 고양이 엄마, 캣맘이라고 소개합니다.
◀SYN▶ 조영미/캣맘
“내가 안 챙겨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먹이를) 찾을 수 없으니까, 여기가 사냥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잖아요. 도심이라.”
혹시나 고양이들이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까 경비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고양이 좀 잘 봐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습니다.
◀SYN▶ 조영미/캣맘
“애들 불쌍하잖아요 추운데 있을 데도 없고.”
(글쎄 그런데 요즘 지하실에 들어와서 똥 싸고 그러잖아)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수고하세요.”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주차장 구석에서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 사람은 이 학교에 재직 중인 임기환 교수입니다.
차 트렁크에 사료를 실어 놓고 출근할 때 한 번, 퇴근할 때 한 번 밥그릇이 빌 때마다 채워주곤 합니다.
◀SYN▶ 임기환 교수/서울교육대학교
“학교에서는 여기 계시는 분들이 양해를 하고 그러니까 괜찮은데 그 전에 집에서 밥 주고 밤에 나가서 밥 주고 그럴 때 낯선 사람이 동네 다닌다고 신고를 해가지고 관리소에서도 쫓아오고.”
가끔 이런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일단 굶어 죽는 생명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컸다고 합니다.
◀SYN▶ 임기환 교수/서울교육대학교
“어느 날 딸아이가 밖에서 어미 잃은 고양이 다섯 마리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어요. 고양이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그 전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길에 다니는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서울 강동구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독특한 시범 사업 하나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청 현관 앞, 고양이가 그려진 나무 상자 안에 밥그릇과 물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이른바 고양이 급식소.
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관공서 앞마당 등 공공장소 주변에 캣맘들이 공식적으로 길고양이 밥을 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준 겁니다.
주민센터 앞에 차려진 급식소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습니다.
한입 삼킬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며 먹는 눈칫밥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차려진 밥상,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것보다는 확실히 형편이 나아진 셈입니다.
급식소 설치를 처음 제안한 건 웹툰 작가 강풀 씨.
◀SYN▶ 강풀/웹툰작가
“가장 천대받고 피해 받는 동물이 길고양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얘네들이 눈치 안 보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스스로 생각했던 제가 제일 잘 한 일이 만화 그린 것도 아니고 이거인 것 같아요.”
급식소 설치를 위해 1500만 원을 선뜻 쾌척한 강풀 씨를 비롯해, 지역 캣맘들의 기부와 봉사로 운영되기 때문에 세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SYN▶ 이해식 구청장/서울특별시 강동구청
“쓰레기봉투 뜯고 우는 소리 나는 게 배고파서 그러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그 배고픔을 해결해 주면 우리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칠 정도로 그렇게 울음소리를 내거나 봉투를 뜯지는 않는단 말이죠.”
시작할 무렵엔 오히려 길고양이 수만 늘어나지 않겠냐며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행 반 년 만에, 쓰레기봉투를 뜯거나 집 앞에서 울어댄다는 피해 민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효과를 봤습니다.
◀SYN▶ 김미자 회장/강동구 캣맘 협회
“이렇게 동사무소 관공서 앞에 길고양이 밥을 주는 게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 이런 것하고 민원과 같이 해결을 한다하는 게 들어가 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의 보는 눈도 달라지고.”
급식소 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만 있다면 길고양이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동물이라는 사람들의 인식도 변할 거라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적절히 단속하고, 지나친 번식을 막기 위한 중성화 수술사업만 지원된다면 얼마든 인간과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SYN▶ 한선경/강동구 캣맘 협회
“밥을 주면서 주위에 청소 안 하고 어지럽히면요. 주는 캣맘들도 욕을 먹지만 고양이는 더 욕을 얻어먹어요. 고양이 밥만 열심히 줘서 고양이에게 이로운 건 아니에요. 사람한테도 잘 해야 해요.“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길고양이까지 걱정한다는 게 한가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동물과 더불어 사는 공생의 정신 역시 소중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단순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개인의 취향을 떠나 머리를 맞대고 길고양이 해법을 찾아야 할 때라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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