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장인수 기자
장인수 기자
'증거조작' 파문 어디로?
'증거조작' 파문 어디로?
입력
2014-03-17 08:50
|
수정 2014-03-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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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기도, 국정원 압수수색..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수상합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데 이어 유우성이 간첩으로 기소되는 과정에서 제출됐던 증거들이 조작 또는 위조됐다는 정황이 속속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이례적으로 유감 표명까지 했고, 검찰은 국정원만 믿고 기소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등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키우고 있다. 도대체 기소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왔고, 이 사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할까요.
=============================
국정원 협력자 자살 소동, 국가정보원 압수수색, 정치권의 국정원장 사퇴요구, 간첩혐의 증거 조작 사건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법체계의 신뢰까지 뒤흔들며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추적했습니다.
북한 회령에 살던 화교 유우성씨는 2004년 탈북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2년 뒤인 2006년 5월 어머니 사망소식을 듣고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 나옵니다.
◀유우성▶
"어머니가 저하고 전화통화를 하다가 보위부에 이동탐지기에 전화 신호가 잡혀서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놀라서 돌아가셨거든요."
국정원은 유씨를 수상히 여겨 조사했지만, 검찰은 2009년 불기소 처분을 내립니다.
일단락되는 듯 했던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지건 동생 유가려씨가 2012년 10월 한국에 입국하면서부터 입니다.
동생 유씨는 오자마자 국정원 합동신문센터로 옮겨져 조사를 받습니다.
여기서 유씨는 본인과 오빠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자백합니다.
유우성은 당시 서울시 복지정책과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유우성/(서울시청 재직 당시)▶
"서울시 복지정책과의 유우성입니다."
검찰과 국정원은 유씨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밀입북했다 북한 보위부에 포섭됐고, 이후 남한에서 탈북자 신상정보를 수집해 동생 유가려를 통해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긴급체포된 유씨는 간첩혐의로 기소됩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이렇게 끝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 유가려씨가 합동신문센터에서 풀려나면서 상황은 완전 다른 국면으로 전개됩니다.
유가려가 자신의 자백을 뒤 짚은 겁니다.
작년 4월 27일, 유가려의 기자회견.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독방에 6개월 간 갇혀있다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유가려▶
"(거짓) 진술하면 오빠 도와주고 한국에서 살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따라갔죠."
유가려는 국정원 직원들의 가혹행위와 회유 때문에 거짓 자백을 했다며, 자신들은 간첩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넉 달 뒤, 1심 재판부는 유우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믿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유우성이 작년 1월 23일 북한 회령에서 찍은 것이라며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파일 대신 사진을 출력한 종이로 제출했습니다.
변호인 측이 사진 파일을 복구해봤더니 촬영 장소가 북한 회령이 아니라 중국 연변이었습니다.
◀김인성 교수/한양대 컴퓨터공학과▶
"무죄의 강력한 증거가 되는 이런 사진을 오히려 유죄 증거로 둔갑시킨 것은 제가 보기에는 지문을 바꿔치기한 수준이다."
유우성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2012년 1월 22일과 23일 중국에서 전화를 한 기록이 나옵니다.
국정원은 2012년 12월에 이 내역을 KT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 뒤 검찰은 유우성이 22일부터 24일까지 북한에 있었다며 기소했습니다.
중국에 있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북한에 있다고 한 겁니다.
유우성이 23일에 중국에 있었다는 게 사진을 통해 드러나자 검찰은 이 통화기록을 추가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24일은 통화 내역이 없으니까 그날 북한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겁니다.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거꾸로 유죄 증거로 냈다는 게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 김용민/변호사▶
"왜냐하면 유우성씨가 이미 (검찰 조사과정에서) 다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 사진들은 중국에서 찍었다. 중국에서 가족들과 노래방 간 사진도 있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 다 무시했죠. 검사는 (조작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증거까지 조작하며 국정원이 유 씨를 간첩으로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우성이 2006년 당시 몰래 북한에 다녀왔다는 점 때문입니다.
실제 국정원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간첩 혐의를 두고 3년간 유우성 주변을 조사해왔습니다.
중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유씨의 출입경 기록도 이상했습니다.
검찰은 2심 재판에서 간첩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라며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발급해 줬다는 이 기록을 보면 유 씨는 2006년 5월 23일 어머니 장례식 참석차 중국에서 북한으로 나갔다가 27일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유우성은 중국으로 들어온 지 50분 뒤인 11시 16분 다시 북한으로 나갔다 2주 만인 6월 10일 중국에 돌아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때 유 씨가 보위부에 포섭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 출입경 기록을 중국정부가 정식으로 발급한 것이 맞다는 중국 정부의 확인 공문까지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유 씨 변호인 측이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하자, 검찰은 추가로 문서를 제출하면서 자신들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지난달 14일,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세 가지 문서가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자신들니 낸 서류가 맞는 걸로 보인다는 내용의 삼합변방출입국관리소 전 직원 임 모씨의 진술서를 또다시 추가 증거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 진술서마저 국정원 정보원 김 모 씨가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지금까지 검찰과 국정원이 법정에 제출한 결정적인 증거들이 조작이나 위조로 드러난 겁니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해가며 무리한 수사를 했고, 검찰은 이걸 그대로 믿고 기소했다가 망신을 당한 형국입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전혀 몰랐던걸까.
검찰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단초를 2580은 이 사건의 첫 재판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작년 3월 4일 안산지원.
유우성은 피고인으로, 여동생 유가려는 증인으로 재판에 나왔습니다.
유가려는 법정이 아닌 영상증언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증언해야 했습니다.
유가려가 불안해한다며 오빠 유우성과 대면하지 않도록 격리시켜 달라고 검사가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유가려는 오빠 유우성의 간첩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2012년 1월, 설날 무렵 북한의 회령에 다녀온 사실이 맞냐는 검사의 질문에, 유가려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유우성은 그 당시 자신은 동생, 아버지와 함께 중국에서 설을 보내고 있었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사진관에 가서 찍었다는 가족사진을 증거로 꺼내들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당시 아버지 유진룡은 회령에 있었고 유우성이 1월 22일에 북한에 들어갔다는 유가려의 진술과 상반된 증거를 제시한 겁니다.
변호사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유가려는 가족사진은 설 전에 찍은 거라며 유우성의 말을 부인했지만, 재차 묻자, 세 가족이 함께 설을 보낸 게 맞으며 지금도 그 사진이 집에 걸려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반박은 계속됐습니다.
2012년 10월 아버지 유진룡을 연길에서 청도로 먼저 보내고 그 후 유우성과 둘이 비행기로 이동했다는 게 유가려의 진술이지만, 유우성은 이번에도 그게 아니라며 청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세 가족이 함께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꺼내 증거라고 보여줬습니다.
최근 밝혀진 증거 조작의 정황들이 사실은 이 사건의 첫 재판부터 제시됐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가려의 진술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가 현장에서 두 개나 제시됐지만 검찰은 확인해 보지 않았고, 결국 유가려의 최초 자백이 증언으로 채택됐습니다.
게다가 이 재판 이후 국정원은 유가려를 탈북자로 보호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법무부는 출국명령을 내렸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대로라면 그녀 역시 간첩인데 재판을 받게 하는 대신 외국으로 보내기로 한 겁니다.
유가려 씨는 합동신문센터에 있는 동안 철저히 외부와 차단됐습니다.
변호사들이 다섯 번이나 유가려를 만나기 위해 합동신문센터를 찾아가지만 국정원이 거절해 한 번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외부와 차단된 유가려는 자기 때문에 오빠가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가려에게 자백만 받고 외국으로 쫓아보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증거 조작에 개입한 국정원 협력자 김 씨가 최근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시도하면서 이번 사건의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습니다.
김 씨는 유서에서 국정원을 '국조원' 즉 국가조작원으로 표현했고 국정원으로부터 가짜 서류 제작비 1천만 원을 받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결국 지난 10일엔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밝혔습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지난 10일▶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정확하게 밝혀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검찰은 부랴부랴 수사팀을 다시 꾸려 국정원을 압수수색했고,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듭나겠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지만, 대한민국 두 권력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다시 한 번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보와 수사를 동시에 쥐고 있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우성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일각에서는 그래도 간첩은 맞는 것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2심 재판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유우성이 간첩이면 간첩인대로, 간첩이 아니라면 아닌대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그 과정은 정확해야 합니다.
적법한 수사와 투명한 재판은 민주주의의 기반이고, 이를 의심받는다면 사법제도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이야말로 그 시험대입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데 이어 유우성이 간첩으로 기소되는 과정에서 제출됐던 증거들이 조작 또는 위조됐다는 정황이 속속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이례적으로 유감 표명까지 했고, 검찰은 국정원만 믿고 기소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등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키우고 있다. 도대체 기소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왔고, 이 사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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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협력자 자살 소동, 국가정보원 압수수색, 정치권의 국정원장 사퇴요구, 간첩혐의 증거 조작 사건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법체계의 신뢰까지 뒤흔들며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추적했습니다.
북한 회령에 살던 화교 유우성씨는 2004년 탈북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2년 뒤인 2006년 5월 어머니 사망소식을 듣고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 나옵니다.
◀유우성▶
"어머니가 저하고 전화통화를 하다가 보위부에 이동탐지기에 전화 신호가 잡혀서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놀라서 돌아가셨거든요."
국정원은 유씨를 수상히 여겨 조사했지만, 검찰은 2009년 불기소 처분을 내립니다.
일단락되는 듯 했던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지건 동생 유가려씨가 2012년 10월 한국에 입국하면서부터 입니다.
동생 유씨는 오자마자 국정원 합동신문센터로 옮겨져 조사를 받습니다.
여기서 유씨는 본인과 오빠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자백합니다.
유우성은 당시 서울시 복지정책과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유우성/(서울시청 재직 당시)▶
"서울시 복지정책과의 유우성입니다."
검찰과 국정원은 유씨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밀입북했다 북한 보위부에 포섭됐고, 이후 남한에서 탈북자 신상정보를 수집해 동생 유가려를 통해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긴급체포된 유씨는 간첩혐의로 기소됩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이렇게 끝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 유가려씨가 합동신문센터에서 풀려나면서 상황은 완전 다른 국면으로 전개됩니다.
유가려가 자신의 자백을 뒤 짚은 겁니다.
작년 4월 27일, 유가려의 기자회견.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독방에 6개월 간 갇혀있다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유가려▶
"(거짓) 진술하면 오빠 도와주고 한국에서 살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따라갔죠."
유가려는 국정원 직원들의 가혹행위와 회유 때문에 거짓 자백을 했다며, 자신들은 간첩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넉 달 뒤, 1심 재판부는 유우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믿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유우성이 작년 1월 23일 북한 회령에서 찍은 것이라며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파일 대신 사진을 출력한 종이로 제출했습니다.
변호인 측이 사진 파일을 복구해봤더니 촬영 장소가 북한 회령이 아니라 중국 연변이었습니다.
◀김인성 교수/한양대 컴퓨터공학과▶
"무죄의 강력한 증거가 되는 이런 사진을 오히려 유죄 증거로 둔갑시킨 것은 제가 보기에는 지문을 바꿔치기한 수준이다."
유우성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2012년 1월 22일과 23일 중국에서 전화를 한 기록이 나옵니다.
국정원은 2012년 12월에 이 내역을 KT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 뒤 검찰은 유우성이 22일부터 24일까지 북한에 있었다며 기소했습니다.
중국에 있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북한에 있다고 한 겁니다.
유우성이 23일에 중국에 있었다는 게 사진을 통해 드러나자 검찰은 이 통화기록을 추가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24일은 통화 내역이 없으니까 그날 북한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겁니다.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거꾸로 유죄 증거로 냈다는 게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 김용민/변호사▶
"왜냐하면 유우성씨가 이미 (검찰 조사과정에서) 다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 사진들은 중국에서 찍었다. 중국에서 가족들과 노래방 간 사진도 있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 다 무시했죠. 검사는 (조작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증거까지 조작하며 국정원이 유 씨를 간첩으로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우성이 2006년 당시 몰래 북한에 다녀왔다는 점 때문입니다.
실제 국정원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간첩 혐의를 두고 3년간 유우성 주변을 조사해왔습니다.
중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유씨의 출입경 기록도 이상했습니다.
검찰은 2심 재판에서 간첩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라며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발급해 줬다는 이 기록을 보면 유 씨는 2006년 5월 23일 어머니 장례식 참석차 중국에서 북한으로 나갔다가 27일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유우성은 중국으로 들어온 지 50분 뒤인 11시 16분 다시 북한으로 나갔다 2주 만인 6월 10일 중국에 돌아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때 유 씨가 보위부에 포섭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 출입경 기록을 중국정부가 정식으로 발급한 것이 맞다는 중국 정부의 확인 공문까지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유 씨 변호인 측이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하자, 검찰은 추가로 문서를 제출하면서 자신들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지난달 14일,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세 가지 문서가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자신들니 낸 서류가 맞는 걸로 보인다는 내용의 삼합변방출입국관리소 전 직원 임 모씨의 진술서를 또다시 추가 증거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 진술서마저 국정원 정보원 김 모 씨가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지금까지 검찰과 국정원이 법정에 제출한 결정적인 증거들이 조작이나 위조로 드러난 겁니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해가며 무리한 수사를 했고, 검찰은 이걸 그대로 믿고 기소했다가 망신을 당한 형국입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전혀 몰랐던걸까.
검찰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단초를 2580은 이 사건의 첫 재판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작년 3월 4일 안산지원.
유우성은 피고인으로, 여동생 유가려는 증인으로 재판에 나왔습니다.
유가려는 법정이 아닌 영상증언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증언해야 했습니다.
유가려가 불안해한다며 오빠 유우성과 대면하지 않도록 격리시켜 달라고 검사가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유가려는 오빠 유우성의 간첩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2012년 1월, 설날 무렵 북한의 회령에 다녀온 사실이 맞냐는 검사의 질문에, 유가려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유우성은 그 당시 자신은 동생, 아버지와 함께 중국에서 설을 보내고 있었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사진관에 가서 찍었다는 가족사진을 증거로 꺼내들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당시 아버지 유진룡은 회령에 있었고 유우성이 1월 22일에 북한에 들어갔다는 유가려의 진술과 상반된 증거를 제시한 겁니다.
변호사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유가려는 가족사진은 설 전에 찍은 거라며 유우성의 말을 부인했지만, 재차 묻자, 세 가족이 함께 설을 보낸 게 맞으며 지금도 그 사진이 집에 걸려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반박은 계속됐습니다.
2012년 10월 아버지 유진룡을 연길에서 청도로 먼저 보내고 그 후 유우성과 둘이 비행기로 이동했다는 게 유가려의 진술이지만, 유우성은 이번에도 그게 아니라며 청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세 가족이 함께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꺼내 증거라고 보여줬습니다.
최근 밝혀진 증거 조작의 정황들이 사실은 이 사건의 첫 재판부터 제시됐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가려의 진술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가 현장에서 두 개나 제시됐지만 검찰은 확인해 보지 않았고, 결국 유가려의 최초 자백이 증언으로 채택됐습니다.
게다가 이 재판 이후 국정원은 유가려를 탈북자로 보호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법무부는 출국명령을 내렸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대로라면 그녀 역시 간첩인데 재판을 받게 하는 대신 외국으로 보내기로 한 겁니다.
유가려 씨는 합동신문센터에 있는 동안 철저히 외부와 차단됐습니다.
변호사들이 다섯 번이나 유가려를 만나기 위해 합동신문센터를 찾아가지만 국정원이 거절해 한 번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외부와 차단된 유가려는 자기 때문에 오빠가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가려에게 자백만 받고 외국으로 쫓아보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증거 조작에 개입한 국정원 협력자 김 씨가 최근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시도하면서 이번 사건의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습니다.
김 씨는 유서에서 국정원을 '국조원' 즉 국가조작원으로 표현했고 국정원으로부터 가짜 서류 제작비 1천만 원을 받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결국 지난 10일엔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밝혔습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지난 10일▶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정확하게 밝혀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검찰은 부랴부랴 수사팀을 다시 꾸려 국정원을 압수수색했고,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듭나겠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지만, 대한민국 두 권력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다시 한 번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보와 수사를 동시에 쥐고 있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우성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일각에서는 그래도 간첩은 맞는 것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2심 재판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유우성이 간첩이면 간첩인대로, 간첩이 아니라면 아닌대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그 과정은 정확해야 합니다.
적법한 수사와 투명한 재판은 민주주의의 기반이고, 이를 의심받는다면 사법제도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이야말로 그 시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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