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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김현경 기자

고무장갑 낀 소방관…소방관을 구조하라

고무장갑 낀 소방관…소방관을 구조하라
입력 2014-06-09 08:40 | 수정 2014-06-0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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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차가 핸드 브레이크가 고장 나 비탈길에서 차가 흘러내린다면?

    방염과 내열이 필수인 소방관 장갑 대신 농·어업용 고무 장갑이 일선 소방관들에게 지급된다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내다보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 소방관은 화재 현장 수색에 필수적인 헤드 랜턴조차 지급받지 못해 외국에서 20만 원을 주고 직수입해 쓰고 있었습니다.

    중앙정부 지원은 2%에 불과,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만 운영되다보니 재정이 열악한 지역의 소방관들은 그야말로 '내 돈 들여 불끄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너도나도 안전을 외치는 지금, 대한민국 소방관의 현실을 진단합니다.

    =============================

    대기 중이던 소방대원들이 일제히 출동합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방화복은 달리는 차 안에서 입습니다.

    화재가 난 곳은 경기도 수원의 한 여관.

    3층 객실에서 연기와 불꽃이 솟아오릅니다.

    건물 안은 이미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한 치 앞을 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혹시나 갇힌 사람은 있을까 잠긴 문을 부수고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화재가 초기에 진압되긴 했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순 없습니다.

    ◀SYN▶
    "3층이랑 옥상 확인한 바 발견치 못함 이상 없어요."

    다행히 이날 사고의 인명 피해는 부상자 1명이었습니다.

    ◀지종완/소방관▶
    "뜨거움과 앞이 안보이기 때문에 연기 때문에 경험과 감각에 의존해서 상황을 헤쳐 나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불이 났을 때, 또는 응급 환자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들.

    소방관입니다.

    그런데 이 소방관들이 요즘 오히려 자신들이 구조 받아야 할 형편이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전라북도 한 119 소방지역대에 근무하는 16년차 소방관 고진영씨.

    도로변 풀밭에서 일어난 작은 불을 껐을 뿐인데 손이 물에 흠뻑 젖었습니다.

    장갑이 너무 낡아 구멍이 났기 때문입니다.

    ◀고진영/소방관▶
    "보시다시피 지금 화재 진압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지만 지금 현재 물이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로서.."

    보조용으로 지급된 장갑이 있긴 한데 일반 '고무 장갑'입니다.

    ◀고진영/소방관▶
    "여기를 보시면 뭐라고 써있죠? 농업용이라고 써있죠. 이것은 철물점에서 그냥 산거에요. 그래도 직원들을 챙겨주기 위해서 소방서에서 그래도 이런 것을 사주는 소방서는 신경을 많이 쓰는 소방서에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핵심 장비인 소방차.

    이 지역대에 딱 한 대 있는 펌프차는 무려 16년이나 됐는데 핸드 브레이크를 비롯해 말썽 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나명현▶
    "내가 여기서 13년째 살고 있거든요. 내가 이걸 계속 봐오는데 너무나 애로사항이 많아요. 이건 노후 차량이 아니라 완전 폐차죠."

    경사로에 세웠더니 차가 뒤로 줄줄 미끌어 집니다.

    할 수 없이, 브레이크에 임시로 만든 걸쇠를 걸어 운행하고 있습니다.

    ◀고진영/소방관▶
    "차가 너무 오래 돼가지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수리를 했을 경우에는 다른 부분에 문제가 발생해서 오히려 운행하는데 더 문제가 있겠다.."

    규정에 정해진 사용 기간 10년 보다 6년이나 초과됐지만 언제 새 차가 나올 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같은 지역에 이 차보다 더 오래된 차가 8대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고진영/소방관▶
    "이 차를 운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 차는 언젠가는 사고가 나겠다. 사고가 나서 인명 피해가 있으면, 소방관들 인명 피해가 있으면 바꿔주겠구나.' “

    강원도의 또 다른 119 소방 지역대.

    2인 1조, 3교대로 광주광역시만한 넓은 지역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산골이긴 해도 피서객이 많아 교통사고를 비롯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황선근/소방관▶
    "어제 같은 경우에도 동시다발로 4건이 거의 같은 시간대에 발생했는데 먼저 일어난 건수에 대비하다 보니까 나중에 일어난 건에 대해서는 대비하지 못해가지고 타 시군의 소방차를 지원받아가지고.."

    2580이 찾아간 날엔 산에서 실종된 등산객 2명을 인근 소방서 대원들과 함께 수색해 구조했습니다.

    장비가 허술하긴 여기도 마찬가지.

    방화복의 경우, 2인 1조로 함께 일하는 데도 한 명은 내열 온도가 더 높은
    황토색 신형 방화복을 아직 지급받지 못해 검정색 구형 방화복만 가지고 있습니다.

    필수적인 개인 장비도 일부는 아예 나오지가 않아서 사비를 들여 사서 쓰고 있었습니다.

    ◀이창연/소방관▶
    "제가 헤드 랜턴을 못 받았습니다. 이거는 제가 직수입해서 산겁니다.“
    (이거 한 세트 사시는데 얼마 드신 거예요?)
    "20만원 들었죠."

    이창연 소방관 한 명의 일이 아닙니다.

    최근 화제가 된 인터넷 글에는, 한 현직 소방관이‘화재 진압 장갑이 3년째 지급이 안 돼 사비로 외국 제품을 구입했다‘고 하자 다른 소방관의 아내가 ’나도 남편에게 사줘야겠다‘며 제품 이름을 묻습니다.

    또 다른 소방관은 ‘활동화가 떨어진지 2년 째’라고 하소연합니다.

    '내 돈 들여' 불 끄는 소방관들.

    단순히 몇몇 소방관들의 투정일까.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가장 사정이 좋다는 서울의 경우도 장갑 보유율은 77.9%. 필요한 양 보다 20% 넘게 모자랍니다.

    머리와 목을 보호하는 방화두건의 경우 보유율이 고작 52%에 불과하고 방화복 86%, 안전화 83% 등으로 전체 진압. 보호 장비의 20% 이상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나마 있는 장비도 낡은 것이 많아 무려 29%가 사용 기간이 지났습니다.

    전국에 있는 펌프차. 사다리차 같은 소방차 역시 21%는 교체가 필요한 노후 차량입니다.

    노후된 장비는 곧바로 소방관들의 안전사고로 이어집니다.

    작년 6월 경기도 성남시의 한 오피스텔 화재 진압 현장.

    고가 사다리차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소방관이 타고 있던 승강기가 빠른 속도로 추락합니다.

    안에 있던 노명규 소방장은 10층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왼쪽 어깨, 다리와 발을 크게 다쳤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재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순 없는 상태입니다.

    ◀노명규/소방관▶
    "팔은 안 올라가는 상태고 다리는 어떤 식으로 되냐면 앉아서 있다던가 양반자세로 앉을 수는 있는데 무릎은 못 구부리고요."

    사고가 난 사다리차는 11년 된 구형차였습니다.

    ◀노명규/소방관▶
    "신형차들은 사람이 올라갈 필요가 없어요. 밑에서 조정하고 쏘니까. 근데 구형은 밟고 올라가서 사람이 수동조작을 해야 돼요. 발 살짝 미끄러져 버리면 밑으로 떨어져 버리죠."

    이 사다리차는 사고 이후에야 물을 쏘는 부분이 사람이 올라갈 필요가 없는 자동식으로 교체됐습니다.

    지난 5년간 순직한 소방공무원은 모두 29명.

    순직율이 미국의 2배, 일본보다는 5배나 높습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관 10명 중 9명은 소방관의 사망과 부상을 막기 위해선 "현재보다 소방관 수를 늘리고, 개인별 안전장비를 확대 보급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개인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생명과 직결되는 장비만이라도 든든히 갖춰달라는 건데, 왜 해결되지 않고 있는 걸까.

    3만9천여명의 일선 소방관들은 국가직이 아닌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그래서 소방 관련 예산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있는데,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이나 경기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필요한 만큼의 예산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김성주 후생복지계장/소방방재청 ▶
    "사실 우리가 (장비를) 규정만큼 지급을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으로 충당을 하려고 하다보니까 지방자체단체 입장에서도 다른 어떤 현안 사업이 있을 경우에는 소방 투자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소방관들의 이런 열악한 현실은 사실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 일선 소방관들 사이에서 공개적인 불만의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신설되는 국가 안전처에 해경과 함께 소방방재청도 흡수되는 방침이 알려지면서부텁니다.

    지난달 29일 입법 예고된 국가안전처 신설안.

    차관급이 수장이었던 '소방방재청'이 해양경찰청과 함께 폐지되고, 차관보다 한 단계 낮은 1급이 본부장을 맡는 국가안전처 산하 '소방본부'가 됩니다.

    일선 소방관들은 "사실상 소방 조직의 강등"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안전을 강조하겠다는 정부가 지원을 더 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겁니다.

    ◀현직 소방관▶
    "재난 현장을 모르는 어떤 일반직 공무원들이 현장에 대한 컨트롤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거부감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정부는 "국가안전처가 신설되면 소방 조직의 기능과 인력을 확충해 보강하겠다"고 해명했지만 이번 기회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예산의 경우 현재 2%에 불과한 국비 지원 비율을 10% 이상인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 지역 간 편차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창원 교수/한성대 행정학과▶
    "소방대응 119 서비스 같은 거는요. 지역 간 격차가 단지 이 사람이 어디 A 지역에 있었으면 살 사람이 B라는 지역으로 갔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것은 국가 책임져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소방은 지자체의 업무"라며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 기획재정부 관계자▶
    "자기들이 (지자체가) 노력도 좀 하고 이런 게 이제 좀 선행되야 하지 않겠느냐 국가가 이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중점 투자해야하는 부분도 있고.."

    이참에 소방 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화해 아예 경찰과 같은 단일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창섭/세종특별자치시 소방본부장▶
    "국가안전처가 어떤 방향으로 편제가 되든 간에 재난 관리의 1차적인 대응을 책임지고 있는 소방 기관은 국가직으로서 일사분란한 지휘 체계 안에서 대응을 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가장 질이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선 소방관들은 재난의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현직 소방관▶
    "어떤 정책의 무게를 너무 위에 두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화재 현장, 구급 현장에서 어떻게 이 사람들이 움직이고 어떤 장비를 사용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밑바닥부터 밟아 가시면 훨씬 더 좋고 효율적인 재난 컨트롤타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31일 전남의 한 장례식장.

    장성 요양병원 화재로 아버지를 잃은 홍모 소방관이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화재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그는 아버지가 그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임무부터 수행했습니다.

    정신없이 환자들을 구조하고 난 뒤 아버지를 찾았을 때 아버지의 이름은 이미 '사망자 명단'에 올라있었습니다.

    ◀홍 o o/소방관▶
    (아버님 병실부터 가고 싶지 않으셨어요?)
    "환자분들이 많다보니까 그렇게 할 겨를이 없었어요. 제가 아니고 어떤 다른 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버님 목숨도 중요하지만 다른 분들도 똑같은 처지기 때문에.."

    소방관이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현장을 지킨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창원 교수/한성대 행정학과▶
    "대한민국 정부 조직 중에서 유일하게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 119 소방이에요. 국민들에게는 가장 가깝고 가장 서비스 위주로 돌아가면서 가장 인기 있어요.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조직이에요. 왜? 권력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안전'이란 구호로 떠들썩한 요즘,

    국민 안전의 최전방에서 손과 발 역할을 하고 있는 소방관들의 현실은 과연 어디쯤에 와있는 것인지 살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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