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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살인, 그리고 '게이트'

살인, 그리고 '게이트'
입력 2014-07-14 09:40 | 수정 2014-07-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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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망받던 정치인에서 하루아침에 살인교사 피의자로 전락한 김형식 서울시 의원.

    지역 재력가의 피살과 10년 지기 친구에게 살인을 교사한 의혹을 받고 구속된 서울시 의원,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현실화됐는데..

    막장 살인극에서 끝나는 듯했던 사건은 피살된 재력가의 비밀장부가 발견되면서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비밀 장부에 김의원은 물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는 풍문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대형게이트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파장은 어디까지 갈까요?

    ========================================

    지난 3월 살인 사건이 벌어진 서울 강서구의 상가 건물.

    범행 현장엔 이미 다른 상가들이 입주해 당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동네 분위기는 여전히 흉흉합니다.

    ◀ 시민 ▶
    "왔다 갔다 하시면 안 돼요. 이것(살인사건) 때문에 손님도 많이 없고..."

    숨진 피해자는 이 지역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수천억 대 재력가, 게다가 살인을 사주한 것으로 지목된 사람이 다름아닌 이 곳 지역구 현직 시의원이라는 사실에 충격은 더했습니다.

    ◀ 시민 ▶
    "보지는 못 했어요. (그래도) 다 얘깃거리가 돼서 충분히 쑥덕거리니까..."

    현역 시의원이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재력가를 죽여달라고 청부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

    영화에서나 볼 법한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끝나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숨진 재력가가 적어놓은 비밀장부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또다른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팽 모씨.

    중국에 숨어있다 체포됐습니다.

    그러나 팽씨는 숨진 재력가 송 모씨와는 원한 관계는 물론, 심지어 만난 적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누군가의 청부를 받아 저지른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살인을 사주한 것으로 경찰이 지목한 사람은 바로 현직 서울시 의원 김형식씨입니다.

    어찌된 일일까.

    범행 직후, 팽 모 씨는 김형식 의원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을 전송했는데, 다른 말은 일절 없이 느낌표 한 개만 찍어서 보냈습니다.

    물음표는 실패, 느낌표는 성공.

    김 의원과 팽 씨가 미리 정해놓은 살인 암호였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송 씨의 얼굴과 행동 습관을 알려주고 범행 후 도망치는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준 것도 다름아닌 김 의원이었다고 팽 씨는 진술했습니다.

    ◀ 장성원 형사과장/서울 강서경찰서 ▶
    "오랜 기간동안 굉장히 치밀하고 잘 준비한 계획된 범행이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 공범들이 준비하고 예상했던대로 범행시부터 도주까지 움직였고..."

    10년 지기로 지내 온 동갑내기 친구 김형식 의원과 팽 씨.

    팽 씨는 김 의원으로부터 재력가 송 씨에게 진 5억 원 상당의 빚 때문에 갖은 협박을 받고 있다며, 가족들은 자신이 책임질테니 송 씨를 살해해 달라는 부탁을 지난 2012년부터 줄곧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실제 범행에 쓰인 흉기와 전기충격기도 김 의원 것이었습니다.

    2580은 팽 씨의 아내를 찾아갔습니다.

    팽 씨의 아내는 취재진과의 만남은 거부했지만 문자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들은 얘기를 구체적으로 전했습니다.

    사업 실패로 곤경에 빠진 남편을 김 의원이 이용했다는 겁니다.

    ◀ 팽 모 씨 아내 메시지 ▶
    "내가 이번에 재선 되면 너 먹고 살 수 있게 해 줄게. 한 번만 도와 줘, 사람 하나 죽여 줘. 이건 완벽하다, 완전범죄야. 혹시라도 잘못되면 내가 니 처자식은 평생 책임진다고.. 니가 안 하면 내가 한다 그러니까, 남편이 친구야 손에 피 묻히지 마라 그랬다는 거예요"

    김 의원은 팽 씨에게 만약 붙잡히면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까지 말했습니다.

    ◀ 장성원 형사과장/서울 강서경찰서 ▶
    "그래서 팽이 실제 잡힌 다음에 유치장에서 중국에서 자살을 시도했대요. 그래서 중국에서도 완전히 다 묶여 있는 상태로 있었다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친구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
    "상당히 특이한 관계죠. 지금 이 사건에서팽 씨와 김 씨의 관계는 그야말로 주종관계 같은 이런 특이성 같은 것들이 존재하죠"

    이번 사건을 연구 중인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김 의원이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팽 씨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
    "이 사람이 친구를 그렇게 조종해서 결국 착취를 한다거나 또는 기만에 능수능란 하다거나 이렇게 보면 싸이코패스적 어떤 성격 특질같은 걸 가지고 있다고도 얘기해 볼 수 있겠죠"

    거리낌없이 규범을 어기면서 자신을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태도는 사이코패스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데, 의정활동 기간 중 보여준 김 의원의 행동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 2012년 7월 서울특별시의회 ▶
    "김형식 의원님, 잠깐만요. 복장이 파격적이네요."

    시정질문 자리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오는 등 일부러 돌발 행동을 보이거나,

    ◀ 김형식 서울시의원/2011년 12월 서울특별시의회 ▶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요. 사실은 남자친구하고 성애를 좀 나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정상적인 이성애자가 되어 있거든요."

    파격적인 발언을 꺼내 이목을 끄는 모습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자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
    "자랑스럽게 그런 것들을 떠벌리면서 이런 종류의 여러 가지 치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과대 자랑하고."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김 의원은 체포된 뒤에도 팽 씨에게 쪽지를 보내 진술을 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한편, 경찰에게는 팽 씨가 조직폭력배들과 연루됐을지 모른다며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아는 김형식 의원은 유능하고 예의바른,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의 모습이었습니다.

    ◀ 지역 주민 ▶
    "길에서도 자주 보고 그랬는데 선하게 보였어요 인상도 좋고 주위 사람들 평판도 좋고 악수할 때나 그럴 때도 웃으면서 하기 때문에.."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과반수 득표를 얻어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김 의원의 유일한 약점을 쥔 사람은 바로 숨진 재력가 송 씨였습니다.

    숨진 송 씨의 사무실 금고에서 발견된 차용증.

    김 의원이 송 씨에게 5억 2천만 원을 빌린 것으로 적혀 있고, 지장까지 찍혀 있었습니다.

    수사 당국은 지난 2011년부터 김 의원이 송 씨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이 돈을 모두 현찰로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송 씨 지인 ▶
    "다 관계가 있으니까 빌려준 거지. 빌려준 게 아니라 준 거지. 그 놈(송 씨)이 필요한 놈한테는 떡값을 줘. 관련 돼서 이권 개입이 되면 그런 거 따지면 막 주지."

    김형식 의원은 당선 직후인 지난 2010년, 의회에서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 김형식 서울시의원/2010년 8월 서울특별시의회 ▶
    "토목건설업자들의 이윤을 위해 쓰여진 우리 시민의 세금을, 이제는 교육과 복지로 돌려야 한다 이런 일관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실제 의정활동을 살펴보면 오히려 건설 규제를 푸는 쪽에 적극적이었고, 공교롭게도 대부분 송 씨의 부동산과 관련 있는 규제들이었습니다.

    김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서울시 조례안입니다.

    준공업지역에 고급 숙박시설인 레지던스 등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내용인데, 이 조례안이 발의되기 넉 달 전, 송 씨는 준공업지역에 위치한 서울 염창동의 한 스포츠센터를 매입해 호텔 형태로 개조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 전 스포츠센터 회원 ▶
    "건물을 다른 용도로 바꿔서 쓰겠다는 소문이 많이 돌았죠. 구청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워낙 돈이 많으니까."

    송 씨 소유의 건물이 밀집된 발산동 인근 지역도 한때 상업지구로의 용도 변경 계획이 추진됐습니다.

    현재 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이 땅이 상업지역으로 바뀌면, 건물을 더 높게 지을 수 있어 부동산 가치도 갑절 이상 뛰게 되는데, 김 의원은 송 씨와 함께 건축사를 만나 이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의회에서의 발언 내용도 처음과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 김형식 서울시의원/2011년 11월 서울특별시의회 ▶
    "솔직히 지역사업이 나쁜 사업입니까? 지역구민들이 원하는 사업입니다. 우리는 지역구민들이 원하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 뽑힌 사람들이고요."

    하지만 이런 계획은 특정 지역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지적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고, 송 씨의 지인들은 이 문제로 김 의원과 송 씨 사이에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을 거라 말합니다.

    ◀ 송 씨 지인 ▶
    "돈 줄 때는 그만한 각서를 받아 놓지. 너 이 XX 돈 먹었잖아. 나 안 도와주면 폭로할거야 이렇게 하지."

    살인을 저지른 팽씨 역시 김 의원이 송씨로부터 돈을 갚으라는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고 진술했습니다.

    김형식 의원은 송 씨 뿐 아니라 철도 부품 업체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 의원이 송 씨의 돈만 받은 게 아니었듯, 송 씨도 김 의원 한 사람에게만 손을 뻗친 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숨진 송 씨가 남긴 한 권의 장부 속엔 권력층과 이어진 대규모 비리 의혹, 이른바 '게이트'의 불씨가 숨어 있었습니다.

    송 씨가 1991년부터 숨지기 직전까지 자신이 만난 사람과, 쓴 돈의 내역 전부를 기록했다는 이른바 '매일기록부'.

    2580 취재진이 입수한 매일기록부 발췌본을 살펴보면, 지역 경찰관에게 커피 한 잔을 샀다는 등의 사소한 내용부터, 지인에게 천 만원을 줬다는 내역까지 날짜별로 꼼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아무개 소장, 아무개 이사 하는 식으로 이름 대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직함으로 써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송 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매일기록부를 보여주며, 자신이 유력인사들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자랑해 왔습니다.

    ◀ 이혜자/송 씨 지인 ▶
    "장부책에 다 기록해 놨어 이거면 지들도 꼼짝 못하고 내 말을 들어주게 돼 있어. 법이든 뭐든 난 다 이겨, 이 말이에요."

    송 씨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강서구 일대는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습니다.

    공무원과 지역 정치인 가운데 그동안 송 씨로부터 크고 작은 향응이나 금품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겁니다.

    ◀ 전 강서구의원 ▶
    "(송 씨가 운영하는) 골프장이 있는데.. 구청 간부급들이 거기에서 골프 안 친 사람이 없었어요. 이 양반이 큰 스폰서였어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송 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재산 형성 과정에서 각종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 때문에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렸는데, 이때 법조계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거액을 뿌렸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 이혜자/송 씨 지인 ▶
    "자기는 뭐 돈을 원래 많이 먹이기 때문에 너 같은 건 재판은 우습다. 요번 형사 재판 고등법원에서는 24억 원에 해결됐다.."

    실제 검찰은 장부 속에서 현직 검사의 이름과 수백만 원의 금액이 적힌 내역을 발견하고, 금품수수 여부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입수한 매일기록부 원본 속에는 적어도 10여 명의 공직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장부 속에서 김형식 의원과 함께 언급된 이름들을 중심으로, 계좌 추적 등을 통해 검은 돈의 흐름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 서보학 교수/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
    "그것을 단서로 해서 철저하게 불법 행위를 파헤치고 사법처리를 하겠다 이런 의지가 있다면 상당 부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되는데요"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유착의 고리가 살인이라는 극단적 모습으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이번 사건.

    지금까지 드러난 이야기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다시한번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실망과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불신을 씻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수사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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