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이정은 기자
오늘도 배달시키셨습니까?…2500원에 목숨 건 질주
오늘도 배달시키셨습니까?…2500원에 목숨 건 질주
입력
2014-09-15 08:39
|
수정 2014-09-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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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야식부터 장보기까지, 이제 배달 없이는 하루도 살기 힘든 시대가 됐습니다.
이런 세태를 타고 오토바이로 배달만 전문으로 대행하는 새로운 업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데요.
여기에 유독 10대 아이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배달이 취소되면 음식값을 자기가 떠안아야 하고, 사고가 나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수수료 2,500원에 목숨을 걸고 달리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위험천만한 질주, 그 현장과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
행인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친 뒤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서행하는 차량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지나치는 오토바이.
사람이 적을 땐 인도를 내달리고 때론 역주행까지 불사하는 질주극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배달 오토바이입니다.
◀배달 아르바이트생▶
"과속은 일단 기본적으로 골목에서부터 다 하고 신호 같은 것도 되게 많이 무시하죠. 솔직히 말하면...신호 같은 것도 거의 없고...그렇게 위험해요."
이런 아찔한 질주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
속도를 줄이지 않고 좌회전을 하던 오토바이가 넘어지고, 역주행을 하던 오토바이는 유턴을 하던 승용차를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모두 음식 배달통을 뒤에 단 오토바이들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물건이나 음식을 배달시킨 게 있으십니까.
배달 온 젊은이들, 당연히 그 집 종업원일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상당수가 '배달 대행'이라는 새로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씩씩한 웃음 뒤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18살 기훈 씨는 작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음식배달일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저녁배달 주문이 들어오는 오후 5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주문이 들어오자 헬맷도 쓰지 않은 채 부리나케 달립니다.
직진을 하는가 싶더니 핸들을 꺾어 좌회전,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다, 인도에 올라서 피자집에 도착했습니다.
10분을 기다린 끝에 피자를 받고는 빨간불을 무시하고 교차로를 건너갑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그냥 멀리서부터 신호를 봐요. 본 다음에 배달을 어느 정도 하면 신호가 어떻게 바뀔지를 알아요. 이거 다음엔 뭐, 이거 다음엔 뭐, 그걸 보고 있다가 멀리서부터 쌩 하고 가는 거죠."
저녁 시간이 되자 주문이 밀리기 시작하고, 마음은 더 급해집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오거리에서 제가 신호 무시하는데 못 보고 무시하는데 옆에 차가 튀어나와가지고 좀 아찔했었죠."
중앙선을 넘어 내달리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차들 사이를 질주합니다.
기훈 씨는 이 피자집 일만 하는 게 아니라 구역을 정해놓고 여러 식당 배달일을 한꺼번에 합니다.
이런 걸 '배달대행'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치킨집.
치킨 전문점에서 주문의뢰를 받아 2.5km 남짓 떨어진 아파트로 배달 가는 길.
주문을 받고 5분 만에 치킨집으로 이동해 치킨이 다 튀겨질 때까지 15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신호를 위반하며 달린 끝에 4분 만에 배달지인 아파트에 도착, 전화 주문에서 배달까지 25분이 걸렸습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안녕하세요. 17500원이요. 맛있게 드세요."
기훈 씨가 4분 만에 간 길을 교통 법규를 지키며 가보니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손님과 업체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배달 시간, 30분을 지키려면 기훈 씨에게 신호 위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버렸습니다.
차량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기 위해 사이드미러도 다 떼어 버렸고, 시야를 가린다며 헬멧도 쓰지 않습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이거는 불편해요. 타고 다니니까 이게 튀어나오면 이 정도까지 나오잖아요? 이 정도까지 나오면 차들 사이를 갈 때 부딪쳐요. 백미러가 부딪쳐서 대부분 착용을 안 해요."
(그럼 좌회전 우회전은 어떻게 해요?)
"뒤보고 하죠. 타다가 뒤 한 번 보고 바꾸고"
배달대행 업체는 쉽게 말하자면 동네 음식점들의 배달업무만 맡아주는, 일종의 '외주업체' 입니다.
배달할 일은 많아졌는데, 그렇다고 모든 가게가 배달할 사람을 각각 고용하기는 꺼려하면서 생겨난 업종입니다.
음식점 주인들이 한 달에 1,20만원씩 배달대행 업체에 회비를 내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의뢰하면 대행업체는 배달기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느 식당의 음식을 누구에게 배달하라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그리고 배달기사는 음식점에서 만 원짜리 음식을 7500원에 산 뒤 손님에게 제 값인 만원을 받는 식으로 차액을 남겨 건 당 2500원씩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런데 손님이 배달을 취소해버리면 이미 자기 돈을 내버린 배달기사가 손해를 감당해야 합니다.
배달비를 못 받는 것은 물론 음식 값까지 떠안는 겁니다.
교통신호고 뭐고 무조건 빨리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궁준현/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업체(식당)에서 일을 하면요. 신호를 다 지켜도 돼요. 어차피 시급 받으니까. 그런데 저희는 배달대행업체 콜인데요. 콜비 깎고 2천 원 빼고 저희가 사는 거예요. 막 바쁠 때는 밀리니까 손님들이 안 먹는다 할 때도 있어요. 그럼 저희 돈으로 저희가 사먹어야 되니까 늦으면 안 돼서.."
그런데다 빨리 오라고 채근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손님에게도 욕을 먹고, 배달업체 사장에게도 욕을 먹고, 음식점 주인에게도 욕을 먹습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늦게 가면 거래처 사장님도 욕하고 저희 사장님도 욕해요. 배달이 꼬여있는데 왜 늦게 가냐 이런식으로 손님한테도 욕먹고, 세 명한테 욕을 먹어요.
그래서 그 욕먹기 싫어서 좀 난폭하게 운전을 하죠."
손님이 음식을 물러도 배달기사가 책임지고 음식점과 대행업체는 손해 볼 게 없는 구조.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배달대행업이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A 배달대행업자▶
"이게 속된 말로 돈 백 만원 갖고 시작하면 바로 시작하는 거죠. 오토바이 리스비만 들 뿐이지 (다른 돈은) 하나도 안 들어요. 사무실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거죠.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리스비 20만 원이니까 쉽게 시작하고 쉽게 접을 수 있는 거죠."
음식점주 입장에선 배달 직원을 직접 채용하면 보통 200만 원 정도 월급을 줘야하고 사고라도 나면 일이 커지기 때문에 속편하게 대행업체에 맡겨버리는 겁니다.
◀음식점 업주▶
"첫째로 경제적으로 아낄 수 있으니까 금전적으로..그 다음에 사고 방지하기 위해서죠. 그게 제일 커요. 문 닫아야 되니까. 사고 나면 문 닫아야 돼. 무조건. 그럼 그 날 완전히 그게 한 달에 보통 4-5번 날 때도 있고 그리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대행업체에게는 새로운 창업 아이템이고 음식점은 배달업무를 간편히 처리할 수 있어 서로에게 이득인 듯 한 이 일에 유독 10대 아이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단 몇 만원이 아쉬운 청소년들에겐 하루 일당을 받을 수 있는 배달 일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운전이 익숙치 않은 아이들까지 이 일에 뛰어들어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천 심곡동의 한 사거리.
주택가 맛집 골목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해 이 동네 배달 오토바이들이 주로 지나가는 길목입니다.
교통량이 많아 평소에도 꼬리물기가 심한 이 곳에서 신호를 지키는 오토바이는 찾기 힘듭니다.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달 6일 오후.
배달 오토바이가 신호를 위반하고 나오다가 직진 신호를 받고 옆에서 오던 트럭과 그대로 충돌했습니다.
◀남궁준현/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
"이렇게 불법유턴서 이렇게 들어가려고 이렇게 가서 빵 치였어요. 그래서 오토바이 세우고 (친구를) 흔들었는데 안 일어나요. 머리 피나요..."
오토바이 운전자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 17살인 승환이.
친구가 하는 배달대행일을 며칠 대신 하러갔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박승환▶
"내 이름 뭐였지?"
(니 이름? 니 이름 뭐야?)
"몰라."
(지금 뭐라고 했어?)
"내 이름"
(뭐였지? 이름?)
"내 이름 뭐냐고"
(박승환 승환이 몇 살이야?)
"아 진짜 더워..."
(더워?)
"진짜 더워. 나 진짜 더워. 엄마 더워"
헬맷을 쓰지 않아 뇌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인지능력이 뚝 떨어졌습니다.
◀김 0 0/박승환 어머니▶
"모르겠어요. 지금 아무 생각 안 나거든요. 깜깜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 생각이 안 나고 꿈꾸는 것 같아요."
승환이는 원동기 면허증도 없습니다.
배달 대행업체가 늘어나고 배달기사가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자 자격도 없고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는 10대들이 이 자리를 채우게 된 겁니다.
◀곽 0 0/무면허 아르바이트생▶
"주말이나 비 오는 날 이런 날에 애들이 나가기 싫어하고 주말은 너무 사람들이 배달 많이 시키니까 (일이) 밀리니까 무면허를 계속 쓰려고 해요. (얼마나 많이 해봤어요?) 저요? 처음에 하게 된 건 비오는 날인데 그 이후로 하니까 이제 막 계속 시키더라고요."
빨리 배달을 잘 하는 게 우선이다 보니 면허가 있는지,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부모동의를 받았는지는 뒷전입니다.
◀남궁준현/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잘하면 소문이 나요. 배달 잘하면. 그래서 무면허인 줄 알고도 쓰는 거예요. 배달을 잘해서 만약에 헬맷 (미착용) 딱지 끊기면 면허 대잖아요. 주민번호 대잖아요. 그럼 저희가 저희랑 닮은 면허증을 쓰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돈이라도 벌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승환이처럼 다치면 골치가 아파집니다.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는 음식점에 직접 고용된 게 아니다보니 대리운전 기사처럼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간주돼 사고 보상 처리나 산업재해 인정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B 배달대행업주(사고업체)▶
"사고 난 건 저희가 동의해서 사고 난 것도 아니고 (승환이)본인이 혼자 스스로 타다가 사고가 났는데..."
모든 게 아이들 책임으로 돌아오기 일쑵니다.
◀B 배달대행업주(사고업체)▶
"왜 신호등 안 지키고 무시했냐고? 신호만 지켰어도 이런 일 없잖아. 누가 시켰나고!"
◀이수정 노무사/청소년 노동인권 네트워크▶
"이 아이들이 마치 개인사업자인 것처럼 돼버린 이런 구조에요. 사용자 감독 하에 임금을 받아가면서 일을 하는 그런 노동자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부에서는 뭘 해결해 줄 수가 없다, 이렇게 돼버리는 거죠."
승환이의 형도 3년 전 동생과 똑같은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다 똑같은 자리에서 크게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더 말리지 못했던 게 한스럽습니다.
◀박 0 0/박승환 형▶
"일당으로 그렇게 빨리 빨리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있어가지고 그쪽으로 더 몸이 가는 것 같아요. (그럼 본인은 하면서 왜 동생은 못하게 했어요?) 제가 너무 위험한 걸 아니까...동생만큼은 저처럼 되지 말라고 제발 안전하게 편의점 같은데 가서 일 하라고 했었어요. 너무 위험한 걸 알아가지고.."
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C 배달대행업자▶
(한 달 정도 일하면 얼마까지 받을 수 있죠?)
"열심히 하는 분은 3,4백 만 원? 적게 하는 분은 2백 만 원 단위 정도? 보통 배달 집보다는 임금이 세요."
그러나 위험한 도로위에서 이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궁준현/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솔직히 저흰 목숨 걸고 배달하는 건데 좀 이해 많이 해줬으면 좋겠죠. 업체 사장님들한테 전화가 오면 막 더 시급해져요. 차 신호도 더 많이 위반하게 되고 차 사이로 막 가고 전화 왔으니까 안 먹는다고 할까봐..."
전화 한 통이면 30분 안에 식지 않은 음식이 배달되는 편리함.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 편리함은 어쩌면 2,500원을 위해 아찔하게 질주하는 아이들의 목숨 값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세태를 타고 오토바이로 배달만 전문으로 대행하는 새로운 업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데요.
여기에 유독 10대 아이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배달이 취소되면 음식값을 자기가 떠안아야 하고, 사고가 나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수수료 2,500원에 목숨을 걸고 달리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위험천만한 질주, 그 현장과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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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친 뒤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서행하는 차량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지나치는 오토바이.
사람이 적을 땐 인도를 내달리고 때론 역주행까지 불사하는 질주극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배달 오토바이입니다.
◀배달 아르바이트생▶
"과속은 일단 기본적으로 골목에서부터 다 하고 신호 같은 것도 되게 많이 무시하죠. 솔직히 말하면...신호 같은 것도 거의 없고...그렇게 위험해요."
이런 아찔한 질주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
속도를 줄이지 않고 좌회전을 하던 오토바이가 넘어지고, 역주행을 하던 오토바이는 유턴을 하던 승용차를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모두 음식 배달통을 뒤에 단 오토바이들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물건이나 음식을 배달시킨 게 있으십니까.
배달 온 젊은이들, 당연히 그 집 종업원일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상당수가 '배달 대행'이라는 새로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씩씩한 웃음 뒤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18살 기훈 씨는 작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음식배달일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저녁배달 주문이 들어오는 오후 5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주문이 들어오자 헬맷도 쓰지 않은 채 부리나케 달립니다.
직진을 하는가 싶더니 핸들을 꺾어 좌회전,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다, 인도에 올라서 피자집에 도착했습니다.
10분을 기다린 끝에 피자를 받고는 빨간불을 무시하고 교차로를 건너갑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그냥 멀리서부터 신호를 봐요. 본 다음에 배달을 어느 정도 하면 신호가 어떻게 바뀔지를 알아요. 이거 다음엔 뭐, 이거 다음엔 뭐, 그걸 보고 있다가 멀리서부터 쌩 하고 가는 거죠."
저녁 시간이 되자 주문이 밀리기 시작하고, 마음은 더 급해집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오거리에서 제가 신호 무시하는데 못 보고 무시하는데 옆에 차가 튀어나와가지고 좀 아찔했었죠."
중앙선을 넘어 내달리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차들 사이를 질주합니다.
기훈 씨는 이 피자집 일만 하는 게 아니라 구역을 정해놓고 여러 식당 배달일을 한꺼번에 합니다.
이런 걸 '배달대행'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치킨집.
치킨 전문점에서 주문의뢰를 받아 2.5km 남짓 떨어진 아파트로 배달 가는 길.
주문을 받고 5분 만에 치킨집으로 이동해 치킨이 다 튀겨질 때까지 15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신호를 위반하며 달린 끝에 4분 만에 배달지인 아파트에 도착, 전화 주문에서 배달까지 25분이 걸렸습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안녕하세요. 17500원이요. 맛있게 드세요."
기훈 씨가 4분 만에 간 길을 교통 법규를 지키며 가보니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손님과 업체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배달 시간, 30분을 지키려면 기훈 씨에게 신호 위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버렸습니다.
차량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기 위해 사이드미러도 다 떼어 버렸고, 시야를 가린다며 헬멧도 쓰지 않습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이거는 불편해요. 타고 다니니까 이게 튀어나오면 이 정도까지 나오잖아요? 이 정도까지 나오면 차들 사이를 갈 때 부딪쳐요. 백미러가 부딪쳐서 대부분 착용을 안 해요."
(그럼 좌회전 우회전은 어떻게 해요?)
"뒤보고 하죠. 타다가 뒤 한 번 보고 바꾸고"
배달대행 업체는 쉽게 말하자면 동네 음식점들의 배달업무만 맡아주는, 일종의 '외주업체' 입니다.
배달할 일은 많아졌는데, 그렇다고 모든 가게가 배달할 사람을 각각 고용하기는 꺼려하면서 생겨난 업종입니다.
음식점 주인들이 한 달에 1,20만원씩 배달대행 업체에 회비를 내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의뢰하면 대행업체는 배달기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느 식당의 음식을 누구에게 배달하라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그리고 배달기사는 음식점에서 만 원짜리 음식을 7500원에 산 뒤 손님에게 제 값인 만원을 받는 식으로 차액을 남겨 건 당 2500원씩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런데 손님이 배달을 취소해버리면 이미 자기 돈을 내버린 배달기사가 손해를 감당해야 합니다.
배달비를 못 받는 것은 물론 음식 값까지 떠안는 겁니다.
교통신호고 뭐고 무조건 빨리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궁준현/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업체(식당)에서 일을 하면요. 신호를 다 지켜도 돼요. 어차피 시급 받으니까. 그런데 저희는 배달대행업체 콜인데요. 콜비 깎고 2천 원 빼고 저희가 사는 거예요. 막 바쁠 때는 밀리니까 손님들이 안 먹는다 할 때도 있어요. 그럼 저희 돈으로 저희가 사먹어야 되니까 늦으면 안 돼서.."
그런데다 빨리 오라고 채근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손님에게도 욕을 먹고, 배달업체 사장에게도 욕을 먹고, 음식점 주인에게도 욕을 먹습니다.
◀이기훈/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늦게 가면 거래처 사장님도 욕하고 저희 사장님도 욕해요. 배달이 꼬여있는데 왜 늦게 가냐 이런식으로 손님한테도 욕먹고, 세 명한테 욕을 먹어요.
그래서 그 욕먹기 싫어서 좀 난폭하게 운전을 하죠."
손님이 음식을 물러도 배달기사가 책임지고 음식점과 대행업체는 손해 볼 게 없는 구조.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배달대행업이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A 배달대행업자▶
"이게 속된 말로 돈 백 만원 갖고 시작하면 바로 시작하는 거죠. 오토바이 리스비만 들 뿐이지 (다른 돈은) 하나도 안 들어요. 사무실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거죠.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리스비 20만 원이니까 쉽게 시작하고 쉽게 접을 수 있는 거죠."
음식점주 입장에선 배달 직원을 직접 채용하면 보통 200만 원 정도 월급을 줘야하고 사고라도 나면 일이 커지기 때문에 속편하게 대행업체에 맡겨버리는 겁니다.
◀음식점 업주▶
"첫째로 경제적으로 아낄 수 있으니까 금전적으로..그 다음에 사고 방지하기 위해서죠. 그게 제일 커요. 문 닫아야 되니까. 사고 나면 문 닫아야 돼. 무조건. 그럼 그 날 완전히 그게 한 달에 보통 4-5번 날 때도 있고 그리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대행업체에게는 새로운 창업 아이템이고 음식점은 배달업무를 간편히 처리할 수 있어 서로에게 이득인 듯 한 이 일에 유독 10대 아이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단 몇 만원이 아쉬운 청소년들에겐 하루 일당을 받을 수 있는 배달 일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운전이 익숙치 않은 아이들까지 이 일에 뛰어들어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천 심곡동의 한 사거리.
주택가 맛집 골목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해 이 동네 배달 오토바이들이 주로 지나가는 길목입니다.
교통량이 많아 평소에도 꼬리물기가 심한 이 곳에서 신호를 지키는 오토바이는 찾기 힘듭니다.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달 6일 오후.
배달 오토바이가 신호를 위반하고 나오다가 직진 신호를 받고 옆에서 오던 트럭과 그대로 충돌했습니다.
◀남궁준현/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
"이렇게 불법유턴서 이렇게 들어가려고 이렇게 가서 빵 치였어요. 그래서 오토바이 세우고 (친구를) 흔들었는데 안 일어나요. 머리 피나요..."
오토바이 운전자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 17살인 승환이.
친구가 하는 배달대행일을 며칠 대신 하러갔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박승환▶
"내 이름 뭐였지?"
(니 이름? 니 이름 뭐야?)
"몰라."
(지금 뭐라고 했어?)
"내 이름"
(뭐였지? 이름?)
"내 이름 뭐냐고"
(박승환 승환이 몇 살이야?)
"아 진짜 더워..."
(더워?)
"진짜 더워. 나 진짜 더워. 엄마 더워"
헬맷을 쓰지 않아 뇌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인지능력이 뚝 떨어졌습니다.
◀김 0 0/박승환 어머니▶
"모르겠어요. 지금 아무 생각 안 나거든요. 깜깜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 생각이 안 나고 꿈꾸는 것 같아요."
승환이는 원동기 면허증도 없습니다.
배달 대행업체가 늘어나고 배달기사가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자 자격도 없고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는 10대들이 이 자리를 채우게 된 겁니다.
◀곽 0 0/무면허 아르바이트생▶
"주말이나 비 오는 날 이런 날에 애들이 나가기 싫어하고 주말은 너무 사람들이 배달 많이 시키니까 (일이) 밀리니까 무면허를 계속 쓰려고 해요. (얼마나 많이 해봤어요?) 저요? 처음에 하게 된 건 비오는 날인데 그 이후로 하니까 이제 막 계속 시키더라고요."
빨리 배달을 잘 하는 게 우선이다 보니 면허가 있는지,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부모동의를 받았는지는 뒷전입니다.
◀남궁준현/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잘하면 소문이 나요. 배달 잘하면. 그래서 무면허인 줄 알고도 쓰는 거예요. 배달을 잘해서 만약에 헬맷 (미착용) 딱지 끊기면 면허 대잖아요. 주민번호 대잖아요. 그럼 저희가 저희랑 닮은 면허증을 쓰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돈이라도 벌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승환이처럼 다치면 골치가 아파집니다.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는 음식점에 직접 고용된 게 아니다보니 대리운전 기사처럼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간주돼 사고 보상 처리나 산업재해 인정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B 배달대행업주(사고업체)▶
"사고 난 건 저희가 동의해서 사고 난 것도 아니고 (승환이)본인이 혼자 스스로 타다가 사고가 났는데..."
모든 게 아이들 책임으로 돌아오기 일쑵니다.
◀B 배달대행업주(사고업체)▶
"왜 신호등 안 지키고 무시했냐고? 신호만 지켰어도 이런 일 없잖아. 누가 시켰나고!"
◀이수정 노무사/청소년 노동인권 네트워크▶
"이 아이들이 마치 개인사업자인 것처럼 돼버린 이런 구조에요. 사용자 감독 하에 임금을 받아가면서 일을 하는 그런 노동자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부에서는 뭘 해결해 줄 수가 없다, 이렇게 돼버리는 거죠."
승환이의 형도 3년 전 동생과 똑같은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다 똑같은 자리에서 크게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더 말리지 못했던 게 한스럽습니다.
◀박 0 0/박승환 형▶
"일당으로 그렇게 빨리 빨리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있어가지고 그쪽으로 더 몸이 가는 것 같아요. (그럼 본인은 하면서 왜 동생은 못하게 했어요?) 제가 너무 위험한 걸 아니까...동생만큼은 저처럼 되지 말라고 제발 안전하게 편의점 같은데 가서 일 하라고 했었어요. 너무 위험한 걸 알아가지고.."
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C 배달대행업자▶
(한 달 정도 일하면 얼마까지 받을 수 있죠?)
"열심히 하는 분은 3,4백 만 원? 적게 하는 분은 2백 만 원 단위 정도? 보통 배달 집보다는 임금이 세요."
그러나 위험한 도로위에서 이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궁준현/배달대행 아르바이트생▶
"솔직히 저흰 목숨 걸고 배달하는 건데 좀 이해 많이 해줬으면 좋겠죠. 업체 사장님들한테 전화가 오면 막 더 시급해져요. 차 신호도 더 많이 위반하게 되고 차 사이로 막 가고 전화 왔으니까 안 먹는다고 할까봐..."
전화 한 통이면 30분 안에 식지 않은 음식이 배달되는 편리함.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 편리함은 어쩌면 2,500원을 위해 아찔하게 질주하는 아이들의 목숨 값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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