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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장인수 기자

말 많고 탈 많은 공직사회의 '요지경' 업무추진비

말 많고 탈 많은 공직사회의 '요지경' 업무추진비
입력 2014-09-15 08:40 | 수정 2014-09-1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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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엔 '판공비'라 부르던 공무원들의 '업무추진비', 당연히 공적인 일에 사용돼야 하는 돈입니다.

    그런데 외교부의 한 부서가 지난 3년간 업무추진비를 부서 회식비로 써온 깨알같은 내역을 누군가 2580에 제보해왔는데..

    이 사용 내역에는 스페인 음식점, 한우 전문점 등 다양한 음식점을 돌며 회식을 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회식비를 사후 처리한 공문에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문화예술계 인사나 대학 교수 등 외부 관계자들 이름이 수두룩하게 적혀있습니다.

    자기들끼리 회식을 한 뒤 외부인들과 회의를 한 것처럼 허위로 공문을 작성한 것.

    그런가 하면 한 광역시 의회 의장은 자기 부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에 의원들을 데려가 업무추진비 카드를 결제해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말 많고 탈 많은 공직사회의 '요지경' 업무추진비, 그 이면을 들여다봤습니다.

    =============================

    서울 이태원의 한 스페인 식당.

    지난 2월 5일 저녁 외교부 문화예술협력과 직원 11명은 이곳에서 회식을 했습니다.

    과일을 섞어 만든 와인 세 병과 여러 가지 스페인 요리를 시켜 먹었습니다.

    ◀김 0 0/前 외교부 공익근무요원▶
    "뭐 새우로 만든 요리, 오징어 요리였는데 좀 많이 특이해서 새롭다고 신선하다고 이런데 예약 잘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총 비용은 61만 3천원.

    회식은 화기애애하게 끝났습니다.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회식이었습니다.

    과음을 하지도, 문제가 될 만큼 많은 돈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들의 회식을 조사했습니다.

    지금은 검찰까지 나서 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외교부 문화예술협력과는 한 달에 세 번, 정기적으로 회식을 했습니다.

    2주에 한번 월요일 점심을 함께 했고 저녁에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였습니다.

    과 서무가 식당을 예약한 뒤 메신저로 시간과 장소를 공지했습니다.

    주로 광화문과 경복궁 일대 맛집들이었습니다.

    ◀김 0 0/前 외교부 공익근무요원▶
    "외교부가 특이한, 우아한 분위기 있는 데를 많이 찾더라고요. 그래서 일반 서민들이 즐기기는 어려운 고급스러운 식당, 이태리 식당이나 좀 분위기 있는 곳을 많이 갔습니다."

    경복궁 근처의 이태리 음식점.

    지난 4월 2일 점심을 했던 곳입니다.

    샐러드와 피자, 스파게티를 주문해 25만원이 나왔습니다.

    결제는 부서 법인카드로 했습니다.

    ◀김 0 0/前 외교부 공익근무요원▶
    "저는 외교부가 예산이 많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결제하는 게 따로 뭐 직원들끼리 회식비를 위한 예산이 있나보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공익요원 김씨는 우연히 이 회식에 대한 공문을 보게 됐습니다.

    공문에는 그 자리에 없었던 문화예술단체 관계자 4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앞서 보았던 이태원의 회식도 마찬가지.

    외교부 직원끼리 밥을 먹었는데 한국예술종합대학교의 관계자 8명과 함께 있었다고 돼 있습니다.

    당사자들에게 확인해봤습니다.

    ◀0 0 0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이태원의 ***라는 스페인 식당에서 외교부 문화협력과 직원들하고 함께 직원들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신 적 있으신가요?)
    "이태원에서 한 일은 없는 거 같은데요."
    (캐나다 참전용사의 날 행사 관련 협의를 위해서 교수님을 그 식당에서 만났다고 했거든요?
    "캐나다 참전용사 행사에 일단 제가 갈 이유가 일단 없죠."

    한 직원이 SNS에 올린 사진에도 외교부 직원들만 있을 뿐 외부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공문을 허위로 작성한 겁니다.

    이들이 회식비로 결제한 돈은 업무추진비.

    예전엔 판공비라고 불렸던 이 돈은 공무원들이 업무를 추진하면서 관계자들을 만나 간담회를 할 때 쓰도록 한 예산입니다.

    규정상 이 돈으로 부서 직원들끼리 회식을 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서 직원들은 업무 관련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 것처럼 공문을 작성해 자신들의 회식비로 써왔던 겁니다.

    ◀김 0 0/前 외교부 공익근무요원▶
    "세금이 눈 먼 돈이라고 하잖아요. 전혀 뭐 거리낌 없이 이런 식으로 작성하는 걸 보고서 마치 이게 관행처럼 이뤄져 오니까.."

    이들이 지난해 말 송년회를 했던 광화문의 한 한우 전문점.

    한우 1인분에 5만3천원입니다.

    모두 79만9천원이 나왔는데 역시 업무추진비로 결제했습니다.

    이런 회식이 끝난 뒤엔 여지없이 허위 공문을 만들었고, 언론과 문화예술계 인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외국 외교관들의 이름까지 적어냈습니다.

    ◀박근용 협동사무처장/참여연대▶
    "중앙부처에서 엘리트 공무원들이 어떻게 먹지도 않은 사람들하고 식사를 한 것처럼 이건 도저히 좀..아, 공무원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었을까?"

    공익요원 김 씨의 신고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조사에 착수했고 이런 회식이 3년간 수십 차례나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권익위는 사안이 심각하다며 이들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거꾸로 제보자를 문제 삼았습니다.

    권익위 조사가 한창이던 지난 7월, 한 외교부 직원이 공익요원 김 씨를 불러내 일을 크게 벌이지 말라고 회유했습니다.

    ◀외교부 직원▶
    "알다시피 언론의 힘이 다 그렇잖아. 어떻게 오보가 되고 (국민들이) 오해를 하고, 오해가 쌓이면 외교부 전체의 일로 또 알 수도 있는 거잖아. 사실...여기서 그냥 좀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

    하지만 김 씨가 태도를 바꾸지 않자 외교부는 김 씨가 현재 근무하는 일산 서구청에 김 씨를 징계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김 씨가 외교부에 근무할 때 무단 조퇴를 한 적이 있는데 정상출근으로 처리했으니 일산 서구청이 대신 징계하라는 겁니다.

    ◀김 0 0/前 외교부 공익근무요원▶
    "제보자에 대해서 보복성 조치를 하니까, 얘네들이 공무원이 어떻게 이런 짓까지 할 수 있나. 이런 거는 심부름센터나 하는 짓인데"

    외교부는 이번 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과 함께 추후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외교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중앙과 지방, 선출직 공무원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업무추진비를 쌈짓돈 쓰듯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밥값 계산하는 수준을 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지난 7월 4일 노경수 인천시의장과 시의원들은 월미은하레일 현장을 방문하면서 근처 차이나타운의 한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값 80여만 원은 시의회 업무추진비로 결제했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점의 사장은 노 의장의 부인이었습니다.

    세금으로 자기 식당 매상을 올린 셈.

    동료 시의원들이 항의했지만 노 의장은 별 문제 아니라는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0 0 0 의원/인천시▶
    "가는 길이고 또 비용도 저렴하게 다 그런 생각까지 해서 그런 건데 그거에 대해서 너무 심하게 문제제기 하는 거 아니냐? 뭐 그런 정도로 얘기하셨죠."

    노 의장은 취재진과의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인천시 의장실 관계자▶
    "일정을 딱 잡고 오신 건 아니시죠?"

    서울시교육청 공무원들은 작년 1월부터 9월 사이 총 8차례 술집과 유흥업소에서 업무추진비를 썼고, 도봉구 의회의 한 상임위원장도 유흥업소에서 여러 차례 업무추진비를 결제했습니다.

    모두 규정 위반입니다.

    ◀박근용 협동사무처장/참여연대▶
    "이런 일이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걸 보면 공무원들의 생각의 변화가 20년 동안 하나도 없었다. 대단히 좀 놀라운 현상 아니냐"

    이런 일을 적발해야 할 감사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580이 입수한 서울시 감사담당관실의 업무추진비 내역.

    대부분 점심시간에 시 청사 주변 식당에서 결제됐습니다.

    감사담당관실마저 이러니 잘못된 관행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겁니다.

    ◀이득형/시민 옴부즈맨▶
    "우리가 꼭 세금을 내야 되는 건가 이게 우리가 낸 혈세가 공무원들의 밥값으로 쓰인다? 아니 밥값도 (현금으로) 따로 주고 있단 말이에요. 한 달에 14만원씩.."

    업무추진비는 종류도 많습니다.

    일정 직급 이상 간부들에게 지급되는 직책업무추진비, 사업별로 쓸 수 있는
    시책업무추진비, 기관운영업무추진비와 부서운영업무추진비, 정원가산 업무추진비까지 있습니다.

    이런 저럼 명목을 다 합칠 경우, 중앙행정부의 한해 업추비만 2천억에 이르고, 우리나라 전체 공직사회를 합할 경우, 일조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송석휘 교수/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여섯 가지 업무추진비 내용들 자체가 구분하기가 상당히 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좀 단순화 할 필요는 있다"

    허술한 규정도 문제입니다.

    업무추진비 결제액이 50만원 미만일 경우엔 어떤 목적으로 누구와 식사를 했는지 증빙자료를 첨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끼리 식사한 뒤 업무 관련자와 함께했다고 주장하면 밝혀낼 방법이 없습니다.

    결제액이 50만원이 넘었더라도 빠져나갈 방법은 있습니다.

    한 서울시 구의회의 업무추진비 결제내역.

    지난해 6월 19일 한 식당에서 45만원을 결제했는데 정확히 36초 뒤에 다시 44만원을 결제했습니다.

    이 식당에서 89만원을 써놓고 한번 결제액이 50만원을 넘지 않도록 나눠서 카드를 긁은 겁니다.

    이런 걸 '카드 쪼개기'라고 부릅니다.

    업무추진비는 이처럼 각종 편법과 꼼수로 이름만 '업무추진비'일뿐, 사실상 밥값의 또 다른 이름처럼 굳어져왔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쓰는지 누구도 따지지 않는 게 관행이다 보니, 잘못을 고치려 해도 허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7월 22일 서울 강남구 의회.

    한 의원이 구의회 업무추진비를 공개하자고 제안합니다.

    ◀한용대 의원/서울 강남구▶
    "우리 의원님들이 구청에는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의회는 그걸 공개 안하면 그거는 문제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공개를 하고 있죠. 구청에서는? (네,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의회도 해야죠. 당연히"

    그러나 곧바로 다른 의원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송만호 의원/서울 강남구▶
    "의원들을 위해서 다 쓰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갖다가 공개를 하자고 하면 우리 의원들한테 못질하는 거지요."

    ◀한용대 의원/서울 강남구▶
    "저는 좀 생각을 달리하는 게 의원들한테 쓰면 더더군다나 떳떳하게 공개를 할 수가 있죠. 그거야."

    ◀송만호 의원/서울 강남구▶
    "그게 공개됐을 때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들은 매일 그 카드 가지고 다니면서 술이나 먹고 밥이나 먹고 이런 꼴 밖에 안 돼요. 그거는 솔직히 얘기해서.."

    잘못된 관행을 고쳐야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순순히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 공직사회의 현실입니다.

    많은 선진국들이 업무추진비 자체가 없거나 있어도 극히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경우 업무추진비를 부정하게 쓰다 걸리면 반드시 환수조치하고 형사처벌까지 하고 있습니다.

    ◀송석휘 교수/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사실은 사용내역에 대한 것들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은 거의 없거든요. 이거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상당히 좀 시급하지 않나.."

    최근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업무추진비 내역을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지자체도 하나둘 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광주광역시, 서울 관악구, 부산교육청 등이 업무추진비를 공개하고 있고

    서울 서대문구청의 경우는, 아예 구청에서 쓰는 모든 업무추진비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문석진/서대문구청장▶
    "공개한다는 게 아주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에 쓸 때부터가 이걸 제대로 쓰는 것인가에 대한 자기 점검이 가능할 거라고 보거든요. 애매한 거면 안 쓰면 돼요."

    업무추진비는 원래 그 경계가 애매하다고들 말합니다.

    아주 많은 액수도 아니고, 그래서 하나하나 따져보는 게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송석휘 교수/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굳이 그렇게 뭐 밥을 먹어가면서 열띤 토론을 할 그런 주제들이 있는지. 일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고 업무추진비 자체를 좀 없애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아니겠나."

    액수와 상관없이 그 씀씀이를 투명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공무원들을 믿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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