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송양환 기자
송양환 기자
정당방위의 조건
정당방위의 조건
입력
2014-11-10 08:42
|
수정 2014-11-10 16:03
재생목록
잠시 후 망치로 나를 죽이겠다는 남편을 살해한 여성, 집에 들어온 도둑을 잡으려다 뇌사에 빠뜨린 청년.
이들의 행동은 정당방위인가 과잉대응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참을 것인가.
나는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법조인들조차 단언하기 어려운, 그러나 생활 속에서 어느 순간 내 눈앞에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중요한 정당방위, 그 고차원 방정식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
여자친구와 배드민턴을 치고 함께 집으로 가던 27살 김 모씨.
갑자기 술 취한 20대 남성 5명이 접근해 여자친구를 희롱하자 맞서 싸웠습니다.
숫적으로 불리했던 김씨는 배드민턴 채를 휘둘렀고 2명에게 2~3주 정도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혔습니다.
우연히 만난 남성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25살 여성 박 모씨.
갑자기 남성이 강제로 입을 맞추자 깜짝 놀란 박씨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고, 남성의 혀는 3분의 1정도 절단됐습니다.
두 아이와 집에서 잠을 자던 주부 이 모씨.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있었는데 술취한 남성이 집으로 들어와 이씨의 몸을 만졌습니다.
깜짝 놀란 이씨는 머리맡에 있던 다리미로 남성의 머리를 때려 코뼈를 부러뜨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상황 속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앞서 보신 사례들은 자신을 위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정당방위를 인정받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3월 8일 새벽 3시 15분.
21살 최 모씨는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에 2층에 불이 켜있어 올라가보니 한 남성이 서랍장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최씨는 달아나려는 도둑을 붙잡아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에 발길질을 했습니다.
◀ 수사 담당 경찰
"집에 불이 켜져 있으니까 '무슨 일이지?' 하고 올라간 거거든요. 도둑하고 맞닥뜨린거죠. '당신 누구야' 그러니까 얼버무렸고 우물쭈물 하면서 뒷걸음질 치면서 도망갈 태세를 취했고. '도둑이구나 잡아야겠다' 이 생각을 한 거죠."
일단 제압하고 신고를 하려고 할 때 도둑은 다시 움직이며 도망치려했습니다.
완전히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에 최씨는 주변의 빨래건조대로 도둑을 내려쳤고, 허리띠도 풀어 때렸습니다.
도둑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자 최씨는 직접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 당시 출동 구급대원 ▶
"도착하니까 처음에는 엎어져 있는 상황이었어요 환자가. 경찰이랑 (환자) 몸무게가 좀 나가서 같이 도와서 구급차에 일단 태우고.."
의식을 잃은채 병원으로 옮겨진 도둑은 뇌사상태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최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흉기도 가지지 않고 저항없이 도망만 가려던 도둑의 머리를 장시간 심하게 때려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것은 방위 행위로서 도가 지나쳤다는 겁니다.
또 최씨가 도둑을 때릴 때 썼던 빨래건조대를 '위험한 물건' 즉 흉기로 보고 일반 폭행죄보다 가중처벌했습니다.
이웃들은 최씨가 억울하다며 탄원서까지 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 전영숙 / 이웃 주민 ▶
"엄청 얌전해요. 그런 환경을 만나지 않았으면 절대 그럴 아이는 아니에요. 먼저 (공격)할 아
이는 아니지."
이 경우는 어떨까요.
서울의 한 단독주택에 살던 49살 윤 모씨.
지난해 9월 윤씨는 지하 작업장에서 남편을 목졸라 살해했습니다.
그녀는 25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는데 남편을 살해하기 한 달 전 윤씨가 가출을 했다 돌아온 뒤 폭력은 더 심해졌습니다.
◀ 김OO / 윤OO 딸 ▶
"피바다를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면서 칼을 들고 다니세요 집에서. 그러면 저랑 제 동생은 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냥 잘못했다고 빌어야 되고.."
윤씨가 남편을 살해하기 사흘 전 남편은 노끈으로 윤씨의 목을 조르다
"아직은 죽일 때가 아니다. 더 있다 죽여주겠다"며 풀어줬습니다.
그리고는 사건 발생 직전, 남편은 망치로 작업장 스탠드를 깨 부수며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극한의 공포 속에 윤씨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남편을 살해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습니다.
◀ 김OO / 윤OO 딸 ▶
"아빠가 그렇게 잔인하게 무자비하게 행동을 해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대든 적도 없었고 무조건 빌기만 했거든요.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10분 전까지도 엄마는 아빠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윤씨의 딸과 변호인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1, 2심 법원은 이혼이나 경찰에 신고하는 등 다른 방법이 있었다며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정당방위는 형법 21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물리력을 가해 피해를 입히더라도
자기 또는 타인에 대한 현재의 위협을 피하기 위한 행위였을 때는 처벌하지 않고,
방위 행위의 정도가 지나쳤다 하더라도, 상황을 보고 판단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정도를 초과한 행위라도 밤시간 등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 흥분, 당황으로 인한 것일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위협이란 게 어디까지인지, 또 필요한 방어행위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는 당시 상황을 짐작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둑 뇌사 사건을 두고 법조인들마다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여상원 변호사 ▶
"들켜가지고 도망가려는 순간에 저항을 포기한 겁니다. 빨래건조대로 구타까지 해서 결국 뇌사상태 식물인간까지 빠지게 한 건데요 이 법원의 판단은 그렇게 무리한 것은 아니다."
◀ 설현천 변호사 ▶
"이 사람이 힘을 어느 정도 쓰거나 혹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위행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죄로 선고되어야 하는 판결이 아닌가.."
앞서 소개한 사건들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법조인들의 생각도 저마다 다른데 평범한 사람들이 어디까지가 정당방위일지 판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정당방위는 급박한 위험에 처했을 때 바로 우리들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580은 20대부터 60대까지 일반인 남녀 9명을 모아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여자친구를 지키기 위해 배드민턴 채를 휘두른 사건이나 성추행범의 혀를 절단한 사건, 집에 들어온 남성을 다리미로 때린 사건은 대다수가 정당방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도둑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뜨린 사건의 경우 고민이 깊었습니다.
5:4로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논리는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 허태호(37) / 회사원 (정당방위X) ▶
"이미 저항의 의지 자체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 빨래건조대 같은 걸로 사람을 또 친다든가 혁대까지 풀어서 그런 행위를 가한 것 자체가.."
◀ 최유진(22) / 대학생 (정당방위O) ▶
"이 학생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학생이 이렇게 폭행을 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저는 그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잘못이 있다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부인이 살해 위협을 당하다 남편을 살해한 사건은 6대 3으로 정당방위라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 나인화(39) / 회사원 ▶
"작업하는 테이블 위에 망치를 놓고 '이걸로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억압 아닌 억압을 했다면 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그런 심리적인 공포가 되게 심했던 상황이라고 보여지거든요."
사안마다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우리의 정당방위 기준이 애매하고 법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는데는 대체로 의견이 접근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바뀔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 서기철(32) / 회사원 ▶
"피해자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이런 걸 고려할 수 있는 정당방위 요건을 만드는 게 좀 시급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 요건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와있는 건 경찰의 폭력사건 수사지침 제4조.
침해행위에 방어하기 위한 행위여야 하고 침해가 저지, 종료됐을 때는 폭력행위를 하지 말아야한다는 등 8가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엔 위험한 물건을 쓰면 안되고, 상대방이 나보다 더 많이 다치면 안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침은 쌍방폭행 사건을 가정해 만들어졌고, 정당방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 김헌기 / 경찰청 강력범죄 수사과장 ▶
"신체적 요건이 다르다든지 피해자가 처한 상황이 매우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한 상황일 수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엄격하다라고 제시된 요건들은 저희들이 충분한 법리적 검토를 거쳐서 요건을 완화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정당방위는 꽤 논란이 많은 사안입니다.
지난달 25일 저녁 대만 타이베이의 한 주택에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도둑이 침입합니다.
그런데 불과 6분 뒤에 외출했던 집주인 부부가 돌아옵니다.
부인은 임신 8개월 상태.
해병대 출신 남편은 도둑을 제압하고, 경찰이 올 때까지 도둑의 목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식을 잃은 도둑이 결국 숨졌고 남편은 과실치사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이 떳떳다고 말하고
◀ 보하이 / 집주인 ▶
"무슨 일이 있든 가족을 지켜야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가족이 피해를 입도록 할 수는 없잖아요?"
숨진 도둑의 동생은 집주인을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요구합니다.
◀ 장OO / 도둑 동생 ▶
"집주인의 행동이 과하고 잔인했다고 생각합니다. 형은 이미 싸움에서 졌는데 굳이 쇼크상태까지 내몰아야 했을까요?"
집주인은 일단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재판에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미국은 정당방위를 꽤 폭넓게 적용하는 편입니다.
자기 집에 들어온 도둑이나 강도를 총으로 살해하거나,
자녀를 성폭행하는 범인을 때려 숨지게 한 경우에도 정당방위로 인정돼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집이나 직장, 자동차 같은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침해를 중범죄로 여기는 미국 법 문화의 특성 때문입니다.
◀ 안준성 / 미국 변호사 ▶
"일반적인 장소에서는 어떤 우리가 말하는 균형이 맞아야 되는, 상대방이 한 만큼 해야되지만 집에서 만큼은 치명적인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총기까지 포함되는, 총기를 사용해서 들어오는 사람을 사살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미국에도 논란은 있습니다.
지난 8월 미주리주에서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17살 흑인 소년 브라운에게 총 6발을 쏴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브라운이 지시에 불응하고 자신을 공격해 총을 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는데,
유족들이 반발하면서 흑인들의 폭동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파크스 / 브라운 가족 변호사 ▶
"해당 경찰관을 체포해야 합니다. 왜 브라운이 머리에 총을 맞아야 했습니까?"
우리나라 법이 정당방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그 안에는 선량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지켜주기 위해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를 넓혀야한다는 견해와,
◀ 백기종 / 경찰대 외래 교수 ▶
"내가 내 가정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자구행위가 설령 과잉방위가 된다 하더라도 정당방위의 폭을 좁혀버리면 모순덩어리가 생긴다.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 버리는.."
정당방위를 악용하는 범죄가 발생할 수 있어 확대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함께 존재합니다.
◀ 송강현 변호사 ▶
"오히려 자기에게 공격하는 사람을 이용해서 더 크게 보복하는 행위가 있을 수도 있고 경미한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넓게 인정되는 것을 이용해서 더 큰 위해를 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당방위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선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해 현행 법과 일반 정서 사이의 괴리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 정현미 / 이화여대 법학 교수 ▶
"제대로 그 사안을 본다면 일반인들도 상식선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부분으로 보입니다. 여론이 분분할 수 있는 사례에서는 국민참여재판도 하나의 좋은 판단 방법이라고 볼 수 있죠."
맞서야 하나 피해야 하나.
나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논란에 대한 해법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선량한 피해자가 억울한 가해자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한다는 정당방위의 정신은 지켜져야할 것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정당방위인가 과잉대응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참을 것인가.
나는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법조인들조차 단언하기 어려운, 그러나 생활 속에서 어느 순간 내 눈앞에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중요한 정당방위, 그 고차원 방정식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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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배드민턴을 치고 함께 집으로 가던 27살 김 모씨.
갑자기 술 취한 20대 남성 5명이 접근해 여자친구를 희롱하자 맞서 싸웠습니다.
숫적으로 불리했던 김씨는 배드민턴 채를 휘둘렀고 2명에게 2~3주 정도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혔습니다.
우연히 만난 남성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25살 여성 박 모씨.
갑자기 남성이 강제로 입을 맞추자 깜짝 놀란 박씨는 남성의 혀를 깨물었고, 남성의 혀는 3분의 1정도 절단됐습니다.
두 아이와 집에서 잠을 자던 주부 이 모씨.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있었는데 술취한 남성이 집으로 들어와 이씨의 몸을 만졌습니다.
깜짝 놀란 이씨는 머리맡에 있던 다리미로 남성의 머리를 때려 코뼈를 부러뜨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상황 속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앞서 보신 사례들은 자신을 위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정당방위를 인정받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3월 8일 새벽 3시 15분.
21살 최 모씨는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에 2층에 불이 켜있어 올라가보니 한 남성이 서랍장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최씨는 달아나려는 도둑을 붙잡아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에 발길질을 했습니다.
◀ 수사 담당 경찰
"집에 불이 켜져 있으니까 '무슨 일이지?' 하고 올라간 거거든요. 도둑하고 맞닥뜨린거죠. '당신 누구야' 그러니까 얼버무렸고 우물쭈물 하면서 뒷걸음질 치면서 도망갈 태세를 취했고. '도둑이구나 잡아야겠다' 이 생각을 한 거죠."
일단 제압하고 신고를 하려고 할 때 도둑은 다시 움직이며 도망치려했습니다.
완전히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에 최씨는 주변의 빨래건조대로 도둑을 내려쳤고, 허리띠도 풀어 때렸습니다.
도둑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자 최씨는 직접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 당시 출동 구급대원 ▶
"도착하니까 처음에는 엎어져 있는 상황이었어요 환자가. 경찰이랑 (환자) 몸무게가 좀 나가서 같이 도와서 구급차에 일단 태우고.."
의식을 잃은채 병원으로 옮겨진 도둑은 뇌사상태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최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흉기도 가지지 않고 저항없이 도망만 가려던 도둑의 머리를 장시간 심하게 때려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것은 방위 행위로서 도가 지나쳤다는 겁니다.
또 최씨가 도둑을 때릴 때 썼던 빨래건조대를 '위험한 물건' 즉 흉기로 보고 일반 폭행죄보다 가중처벌했습니다.
이웃들은 최씨가 억울하다며 탄원서까지 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 전영숙 / 이웃 주민 ▶
"엄청 얌전해요. 그런 환경을 만나지 않았으면 절대 그럴 아이는 아니에요. 먼저 (공격)할 아
이는 아니지."
이 경우는 어떨까요.
서울의 한 단독주택에 살던 49살 윤 모씨.
지난해 9월 윤씨는 지하 작업장에서 남편을 목졸라 살해했습니다.
그녀는 25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는데 남편을 살해하기 한 달 전 윤씨가 가출을 했다 돌아온 뒤 폭력은 더 심해졌습니다.
◀ 김OO / 윤OO 딸 ▶
"피바다를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면서 칼을 들고 다니세요 집에서. 그러면 저랑 제 동생은 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냥 잘못했다고 빌어야 되고.."
윤씨가 남편을 살해하기 사흘 전 남편은 노끈으로 윤씨의 목을 조르다
"아직은 죽일 때가 아니다. 더 있다 죽여주겠다"며 풀어줬습니다.
그리고는 사건 발생 직전, 남편은 망치로 작업장 스탠드를 깨 부수며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극한의 공포 속에 윤씨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남편을 살해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습니다.
◀ 김OO / 윤OO 딸 ▶
"아빠가 그렇게 잔인하게 무자비하게 행동을 해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대든 적도 없었고 무조건 빌기만 했거든요.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10분 전까지도 엄마는 아빠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윤씨의 딸과 변호인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1, 2심 법원은 이혼이나 경찰에 신고하는 등 다른 방법이 있었다며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정당방위는 형법 21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물리력을 가해 피해를 입히더라도
자기 또는 타인에 대한 현재의 위협을 피하기 위한 행위였을 때는 처벌하지 않고,
방위 행위의 정도가 지나쳤다 하더라도, 상황을 보고 판단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정도를 초과한 행위라도 밤시간 등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 흥분, 당황으로 인한 것일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위협이란 게 어디까지인지, 또 필요한 방어행위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는 당시 상황을 짐작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둑 뇌사 사건을 두고 법조인들마다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여상원 변호사 ▶
"들켜가지고 도망가려는 순간에 저항을 포기한 겁니다. 빨래건조대로 구타까지 해서 결국 뇌사상태 식물인간까지 빠지게 한 건데요 이 법원의 판단은 그렇게 무리한 것은 아니다."
◀ 설현천 변호사 ▶
"이 사람이 힘을 어느 정도 쓰거나 혹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위행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죄로 선고되어야 하는 판결이 아닌가.."
앞서 소개한 사건들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법조인들의 생각도 저마다 다른데 평범한 사람들이 어디까지가 정당방위일지 판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정당방위는 급박한 위험에 처했을 때 바로 우리들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580은 20대부터 60대까지 일반인 남녀 9명을 모아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여자친구를 지키기 위해 배드민턴 채를 휘두른 사건이나 성추행범의 혀를 절단한 사건, 집에 들어온 남성을 다리미로 때린 사건은 대다수가 정당방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도둑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뜨린 사건의 경우 고민이 깊었습니다.
5:4로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논리는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 허태호(37) / 회사원 (정당방위X) ▶
"이미 저항의 의지 자체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 빨래건조대 같은 걸로 사람을 또 친다든가 혁대까지 풀어서 그런 행위를 가한 것 자체가.."
◀ 최유진(22) / 대학생 (정당방위O) ▶
"이 학생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학생이 이렇게 폭행을 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저는 그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잘못이 있다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부인이 살해 위협을 당하다 남편을 살해한 사건은 6대 3으로 정당방위라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 나인화(39) / 회사원 ▶
"작업하는 테이블 위에 망치를 놓고 '이걸로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억압 아닌 억압을 했다면 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그런 심리적인 공포가 되게 심했던 상황이라고 보여지거든요."
사안마다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우리의 정당방위 기준이 애매하고 법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는데는 대체로 의견이 접근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바뀔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 서기철(32) / 회사원 ▶
"피해자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이런 걸 고려할 수 있는 정당방위 요건을 만드는 게 좀 시급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 요건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와있는 건 경찰의 폭력사건 수사지침 제4조.
침해행위에 방어하기 위한 행위여야 하고 침해가 저지, 종료됐을 때는 폭력행위를 하지 말아야한다는 등 8가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엔 위험한 물건을 쓰면 안되고, 상대방이 나보다 더 많이 다치면 안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침은 쌍방폭행 사건을 가정해 만들어졌고, 정당방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 김헌기 / 경찰청 강력범죄 수사과장 ▶
"신체적 요건이 다르다든지 피해자가 처한 상황이 매우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한 상황일 수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엄격하다라고 제시된 요건들은 저희들이 충분한 법리적 검토를 거쳐서 요건을 완화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정당방위는 꽤 논란이 많은 사안입니다.
지난달 25일 저녁 대만 타이베이의 한 주택에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도둑이 침입합니다.
그런데 불과 6분 뒤에 외출했던 집주인 부부가 돌아옵니다.
부인은 임신 8개월 상태.
해병대 출신 남편은 도둑을 제압하고, 경찰이 올 때까지 도둑의 목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식을 잃은 도둑이 결국 숨졌고 남편은 과실치사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이 떳떳다고 말하고
◀ 보하이 / 집주인 ▶
"무슨 일이 있든 가족을 지켜야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가족이 피해를 입도록 할 수는 없잖아요?"
숨진 도둑의 동생은 집주인을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요구합니다.
◀ 장OO / 도둑 동생 ▶
"집주인의 행동이 과하고 잔인했다고 생각합니다. 형은 이미 싸움에서 졌는데 굳이 쇼크상태까지 내몰아야 했을까요?"
집주인은 일단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재판에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미국은 정당방위를 꽤 폭넓게 적용하는 편입니다.
자기 집에 들어온 도둑이나 강도를 총으로 살해하거나,
자녀를 성폭행하는 범인을 때려 숨지게 한 경우에도 정당방위로 인정돼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집이나 직장, 자동차 같은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침해를 중범죄로 여기는 미국 법 문화의 특성 때문입니다.
◀ 안준성 / 미국 변호사 ▶
"일반적인 장소에서는 어떤 우리가 말하는 균형이 맞아야 되는, 상대방이 한 만큼 해야되지만 집에서 만큼은 치명적인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총기까지 포함되는, 총기를 사용해서 들어오는 사람을 사살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미국에도 논란은 있습니다.
지난 8월 미주리주에서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17살 흑인 소년 브라운에게 총 6발을 쏴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브라운이 지시에 불응하고 자신을 공격해 총을 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는데,
유족들이 반발하면서 흑인들의 폭동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파크스 / 브라운 가족 변호사 ▶
"해당 경찰관을 체포해야 합니다. 왜 브라운이 머리에 총을 맞아야 했습니까?"
우리나라 법이 정당방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그 안에는 선량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지켜주기 위해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를 넓혀야한다는 견해와,
◀ 백기종 / 경찰대 외래 교수 ▶
"내가 내 가정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자구행위가 설령 과잉방위가 된다 하더라도 정당방위의 폭을 좁혀버리면 모순덩어리가 생긴다.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 버리는.."
정당방위를 악용하는 범죄가 발생할 수 있어 확대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함께 존재합니다.
◀ 송강현 변호사 ▶
"오히려 자기에게 공격하는 사람을 이용해서 더 크게 보복하는 행위가 있을 수도 있고 경미한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넓게 인정되는 것을 이용해서 더 큰 위해를 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당방위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선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해 현행 법과 일반 정서 사이의 괴리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 정현미 / 이화여대 법학 교수 ▶
"제대로 그 사안을 본다면 일반인들도 상식선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부분으로 보입니다. 여론이 분분할 수 있는 사례에서는 국민참여재판도 하나의 좋은 판단 방법이라고 볼 수 있죠."
맞서야 하나 피해야 하나.
나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논란에 대한 해법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선량한 피해자가 억울한 가해자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한다는 정당방위의 정신은 지켜져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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