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이필희 기자
이필희 기자
"학교가 무서워요"
"학교가 무서워요"
입력
2014-11-24 08:33
|
수정 2014-11-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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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190명이 이웃 학교로 전학가고, 지금도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전학을 가겠다고 아우성인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2580이 가보니 학교 곳곳이 금이 가고, 갈라지고 뒤틀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급식동이 자리한 강당 건물은 안전검사에서 D(긴급 보수 필요)등급 판정을 받았고, 본관과의 연결통로는 E등급(즉각 사용 중단)을 받은 것입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며 발을 동동 구르지만 교육청과 건설사는 책임을 서로 미루기만 하고, 오늘도 이 학교에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
100여명의 학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한 초등학교로 들어갑니다.
1km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에서 전학을 하겠다고 한꺼번에 찾아온 겁니다.
(전학할 수 있는 수용 시설이 없습니다.)
"수용시설이 안 되면 만들어서라도 대책 방안을 주셔야죠."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수 없다는 말에 이번엔 교육청으로 향한 학부모들.
거센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고성..비명
"왜 막아요! 왜! 처음에 왔을 때 높은 분 계시면 누구누구를 만나서 얘기하자고 얘기하든지"
"우리 세금 꼬박꼬박 다 냈습니다. 우리 할 의무 다했습니다."
학부모들은 시교육청과 도교육청은 물론 세종시의 교육부까지 관련기관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전학 시켜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개교한 지 불과 4년여밖에 안 된 포항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놀라운 건 이미 190명 가까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겁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를 벌이고,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어떻게든 이 학교에서 떠나겠다는 학부모들.
이들의 아우성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초등학교 등굣길.
학생들이 이상한 얘기들을 합니다.
◀ 학생들 ▶
"뭔가 무너질 것 같아요 일층 아니면 여지없이 뛰어내리라고.."
(뛰어 내리라고? 다치면 어쩌려고?)
"다쳐도 돼요."
◀ 학생들 ▶
(너희도 학교에서 금간거 봤어?)
"네, 엄청 많이 봤어요."
(좀 무섭겠네?)
"안 무서워요."
(왜 안 무서워?)
"재밌잖아요."
(금 갔는데 뭐가 재밌어?)
"스릴감 있잖아요, 스릴감."
한 학부모와 함께 학교 안으로 들어가봤습니다.
빗물 배수구가 바닥에서 불룩하게 솟아 있습니다.
빗물이 모여야 할 배수구가 거꾸로 빗물을 흘려보내게 돼 있는 겁니다.
◀ 서현우 / 학부모 ▶
"경사도를 보시면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어요."
(물이 도저히 여기로 내려갈 수 없는 배수구네요.)
"이 물(옥상 빗물)만 받는 배수구가 돼 버린 거죠."
건물 뒷편으로 가봤습니다.
분리 수거장의 쓰레기 더미를 치워보니 건물 벽과 바닥 사이에 틈이 생겨,손 하나가 거뜬히 드나듭니다.
건물 외벽 곳곳에선 균열이 발견됐습니다.
연결통로 건물은 이미 철거중입니다.
수평을 유지해야 할 빔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교실이 있는 본관동과 강당동을 연결하는 이 연결통로는 지난 9월 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았습니다.
즉각 사용을 중단하고 보강 또는 개축을 해야 하는 정도인데, 연결통로가 E등급을 받은 건 이번이 두번쨉니다.
개교한지 1년만인 2011년 3월 E등급을 받고 그해 재시공을 했는데, 3년만에 또 E등급을 받은 겁니다.
◀ 엄정수/안전비상대책위 위원장 ▶
"학교가 위험하다고 하면 설령 50%는 안전하고 50%는 불안하다고 하면 그 불안전한 50%까지 없애줘야 합니다. 애들이, 미성년자가, 아주 어린 애들이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에.. "
급하게 철거가 결정되면서 학부모들은 수업 시간에도 공사가 진행됐다고 말합니다.
◀ 공사 관계자 ▶
"본인 애가 여기서 공부하면 공사를 하겠냐고요! 바로 옆에다가.."
(그래서 양해를 했잖아요)
"양해는 무슨 양해! 우리는 통보도 못 받고 연락도 설명도 아무것도 못 받았는데!"
위험 등급을 받은 건 연결통로뿐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급식실이 있는 강당동도 긴급한 보수, 보강이 필요해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D등급을 받았습니다.
건물의 일부 지점이 심하게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급식실 바닥에 물을 부어봤습니다.
서서히 움직이던 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를 내며 운동장쪽으로 흘러갑니다.
◀ 정해은/대한시설물관리협회 경북회장 ▶
(저 방향으로 약간 기울었다고 보면 되는건가요?)
"그렇죠, 저 쪽으로..육안으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
이렇게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기우는 것은 땅이 가라앉고 있기 때문입니다.
착공 당시에 비해 무려 62cm나 내려앉았습니다.
이 지역은 원래 하천이 지나가던 야산 지대였습니다.
산을 깎아 평평하게 메우고 택지로 개발했는데, 땅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아 계속해서 내려앉고 있는 겁니다.
◀ 지역 건설업자 ▶
"쓰레기 매립장 뒤로는 하천이고 아파트 단지쪽은 산이었죠."
(이 사이에 하천이 지나가고 있었겠네요.)
"뻘이죠."
(거길 메워버린 거예요?)
"그렇죠. 스펀지 위에다 건물을 짓는 거랑 똑같죠."
그리고 연결통로와 강당동이 본관에 비해 지반침하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유는 공법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실이 있는 본관은 콘크리트 기둥을 박은 뒤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파일공법'을 사용했지만, 연결통로와 강당동은 건물이 무겁지 않다는 이유로 콘크리트 판을 60cm 두께로 만든 뒤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매트 공법'을 사용했습니다
연약지반에 건물이 고정되지 않다 보니 지반침하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겁니다.
◀ 김용훈/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장 ▶
"구조물이 기존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하중이 있다고..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밑바닥이 지반이니까 그 지반의 중요성은 건물의 안정성하고 직결되는거죠."
그러나 학부모들은 연결통로와 강당동 뿐 아니라 교실이 있는 본관동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곳곳에서 지반침하의 흔적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본관과 운동장 사이에 깔려있는 보도블럭은 건물쪽이 여러 차례 갈라지고 깨지면서 아예 잔디밭으로 바꿔놨습니다.
유치원쪽의 건물 출입구는 아이들이 한 걸음에 올라서기 부담스러울 만큼 훌쩍 높아졌습니다.
벽에 묻어 있는 흙이나 콘크리트 흔적은 그동안 땅이 얼마나 많이 내려앉았는지 가늠하게 해줍니다.
◀ 서현우/학부모 ▶
"흙 자국 보이시죠. 쭉..흙 자국이 이렇게 있는데 지금 차이가 이만큼 나는 거예요. 이걸 만든 게 여름에 만들었대요, 여름에."
특히 건물 내부의 균열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2층 도서관 앞 복도에는 벽 전체에 길게 균열이 가 있습니다.
3층과 4층의 같은 위치에서도 같은 균열이 발견됐지만 학교측은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 학교 관계자 ▶
"전체 한 동을 짓는 게 아니고 이만큼 잘라서 올리고 또 올리고 이렇게 한다 이 말이야. 그 사이란 말이지. 그 사이다. 그건 금이 간 게 아니다."
(둬도 안전한 상황인 거네요? 원래 그렇게 지어진 거니까..)
"원래 그렇지, 원래 그런 거지.."
◀ 남미정/학부모 ▶
"전문가들은 전부 다 괜찮다, 수치상으로 괜찮다 안전하다. 그러다 만에 하나 사고 나면 그거 누가 책임져요."
학부모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시공한 회사측과 교육청이 서로 책임을 미룬 채 시간만 흘려보내 왔다고 말합니다.
이 학교 건물이 교육청 아닌 민간 건설업체의 책임하에 짓는 소위 BTL 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란 겁니다.
BTL은 민간투자사업의 하나로 민간 자본이 공공시설을 지은 뒤, 국가나 지자체에 기부채납을 하고 일정기간동안 임대료를 받는 방식입니다.
양덕초등학교의 경우 경북교육관리라는 시행사가 건물을 짓고, 경북 교육청으로부터 분기마다 3억여 원씩, 20년동안 모두 240여억 원의 임대료를 받게 돼 있습니다.
교육청이 20년 동안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대신 시설물 유지에 대한 책임은 시행사가 지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이러다보니 지역의 학교를 책임져야 할 포항 교육청은 사실상 손을 놓았습니다.
◀ 장병태/포항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장 ▶
"학교 시설을 처음 건축할 때 BTL 사업으로 한 학교여서 저희들이 관리 권한이 없습니다."
(만약에 BTL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나요?)
"아니었으면 저희들이 다 해야되죠."
그런데 학교를 설계할 당시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발견됩니다.
교육청의 학교 배치 기본 계획을 시행사의 뜻대로 바꾼 겁니다.
◀ 이응직/경북도교육청 민자사업담당 ▶
"그 사람들이 나중에까지, 협상 때까지 계속 그 안을 그 사람들이 고집을 해서, 저희들이 바꿀 수가 없어서 그대로 제안한 대로 그대로 설계가 진행된 거죠."
교육청의 기본 계획은 학교 부지를 넓게 사용하는 안이었던 반면 시행사인 경북교육관리는 건물을 왼쪽으로 몰아놓고 오른쪽은 강당과 운동장으로 사용하는 안이었습니다.
◀ 조준영/경북교육관리 대표 ▶
"태양, 일층 가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통풍, 바람이 안 통하는 부분, 그런 부분 갖고 저희가 '어떤 안을 할래?' 공청회를 했더니 학부모들은 '그럼 그 안으로 하자' 해서 제안을 선정해 준 거죠."
하지만 설계를 바꾼 건 공사비 때문이었을 것이란 정황이 나오고 있습니다.
운동장과 강당이 있는 부지 동쪽은 암반이 깊숙히 있고 그 위에 진흙으로 이뤄진 연약지반이 있어 공사비가 부담스러웠을 거란 얘깁니다.
◀ 최병준/경북 도의원 ▶
(여기가 워낙 깊은 데니까 땅 파기 곤란하고?)
"파일을 박으려고 하면 공사비가 그만큼 더 들어가니까 결국은 이렇게 안 했나.."
학교를 설계한 건축사무소가 감사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2580이 입수했습니다.
이 의견서에는, 시행사가 건물 배치를 바꿔 공사비를 절감하려고 했다고 나와있습니다.
또 기대만큼 공사비 절감이 안되자 강당동의 건설방식을 파일 방식에서 매트 방식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 김성호 부회장/건축구조기술사회 ▶
"표면에서 약 5~10미터 내외 이 정도는 매립층 또는 붕격층이기 때문에 지반이 상당히 연약한 상태고 이런 정도 지반이라고 하면 여기에는 직접 기초를 하기에는 하자의 우려가 충분히 있다 이렇게 보여지는 거죠."
또 공청회를 통해서 배치 계획을 바꿨다고 하지만 참석한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 최병준/경북 도의원 ▶
"인근 학교 교장하고 학부모 이런 사람들 불러가지고 좋다라고 결정을 지어 왔거든.."
(실제 공청회는 안 한겁니까?)
"안 했죠."
(공청회 비슷한 형식으로?)
"형식은 빌려왔지.."
이렇게 배치부터 공법까지 공사가 시공사의 입맛대로 진행됐다는 겁니다.
공공시설, 더구나 초등학교에 이같은 방식을 적용한 것부터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 경기도의 경우 지난 2008년 이후 BTL로 건설한 학교 150여 곳에서 균열과 누수 등 370여건의 하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습니다.
◀ 최승섭/경실련 부동산감시팀 부장 ▶
"민자 사업 자체가 어쨌든 국가의 의무를 포기하고 민간사업자한테 모든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까지 다 떠넘긴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걸 시행한 공공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거고요."
시행사는 새로 기둥을 깊게 박아 추가 침하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경북교육청은 최근 실시한 본관 건물에 대한 정밀점검에서 안전등급 B등급이 나왔다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 엄정수/안전비상대책위 위원장 ▶
"건물 구조, 철근 콘트리트에 대해서 육안검사, 레이저 검사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왜 기초인 지반지질조사를 하지 않고 그냥 구조물에 대해서 조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위험한 급식실에 들어가게 둘 수 없다며 매일 도시락을 싸고,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일상은 오늘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 이재현/학부모 ▶
"아이들 안전이 걸린 문제니까 번거로워도 도시락을 싸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서..."
◀ 김성윤/학부모 ▶
"앞으로 나와서 하여튼 강당쪽으로 가면 안 돼. 해원이도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나가면 또 뛰어가는 거 아니가?"
(아니 못가게 천으로 막 이렇게..)
경주 마우나 리조트 천장 붕괴사고와 세월호 참사, 그리고 최근의 담양 펜션 화재사건까지.
모두가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하다 벌어진 사고들입니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외치지만 개선은 더디기만 한 사이, 아이를 지켜야 할 책임은 여전히 학부모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2580이 가보니 학교 곳곳이 금이 가고, 갈라지고 뒤틀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급식동이 자리한 강당 건물은 안전검사에서 D(긴급 보수 필요)등급 판정을 받았고, 본관과의 연결통로는 E등급(즉각 사용 중단)을 받은 것입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며 발을 동동 구르지만 교육청과 건설사는 책임을 서로 미루기만 하고, 오늘도 이 학교에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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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명의 학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한 초등학교로 들어갑니다.
1km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에서 전학을 하겠다고 한꺼번에 찾아온 겁니다.
(전학할 수 있는 수용 시설이 없습니다.)
"수용시설이 안 되면 만들어서라도 대책 방안을 주셔야죠."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수 없다는 말에 이번엔 교육청으로 향한 학부모들.
거센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고성..비명
"왜 막아요! 왜! 처음에 왔을 때 높은 분 계시면 누구누구를 만나서 얘기하자고 얘기하든지"
"우리 세금 꼬박꼬박 다 냈습니다. 우리 할 의무 다했습니다."
학부모들은 시교육청과 도교육청은 물론 세종시의 교육부까지 관련기관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전학 시켜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개교한 지 불과 4년여밖에 안 된 포항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놀라운 건 이미 190명 가까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겁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를 벌이고,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어떻게든 이 학교에서 떠나겠다는 학부모들.
이들의 아우성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초등학교 등굣길.
학생들이 이상한 얘기들을 합니다.
◀ 학생들 ▶
"뭔가 무너질 것 같아요 일층 아니면 여지없이 뛰어내리라고.."
(뛰어 내리라고? 다치면 어쩌려고?)
"다쳐도 돼요."
◀ 학생들 ▶
(너희도 학교에서 금간거 봤어?)
"네, 엄청 많이 봤어요."
(좀 무섭겠네?)
"안 무서워요."
(왜 안 무서워?)
"재밌잖아요."
(금 갔는데 뭐가 재밌어?)
"스릴감 있잖아요, 스릴감."
한 학부모와 함께 학교 안으로 들어가봤습니다.
빗물 배수구가 바닥에서 불룩하게 솟아 있습니다.
빗물이 모여야 할 배수구가 거꾸로 빗물을 흘려보내게 돼 있는 겁니다.
◀ 서현우 / 학부모 ▶
"경사도를 보시면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어요."
(물이 도저히 여기로 내려갈 수 없는 배수구네요.)
"이 물(옥상 빗물)만 받는 배수구가 돼 버린 거죠."
건물 뒷편으로 가봤습니다.
분리 수거장의 쓰레기 더미를 치워보니 건물 벽과 바닥 사이에 틈이 생겨,손 하나가 거뜬히 드나듭니다.
건물 외벽 곳곳에선 균열이 발견됐습니다.
연결통로 건물은 이미 철거중입니다.
수평을 유지해야 할 빔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교실이 있는 본관동과 강당동을 연결하는 이 연결통로는 지난 9월 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았습니다.
즉각 사용을 중단하고 보강 또는 개축을 해야 하는 정도인데, 연결통로가 E등급을 받은 건 이번이 두번쨉니다.
개교한지 1년만인 2011년 3월 E등급을 받고 그해 재시공을 했는데, 3년만에 또 E등급을 받은 겁니다.
◀ 엄정수/안전비상대책위 위원장 ▶
"학교가 위험하다고 하면 설령 50%는 안전하고 50%는 불안하다고 하면 그 불안전한 50%까지 없애줘야 합니다. 애들이, 미성년자가, 아주 어린 애들이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에.. "
급하게 철거가 결정되면서 학부모들은 수업 시간에도 공사가 진행됐다고 말합니다.
◀ 공사 관계자 ▶
"본인 애가 여기서 공부하면 공사를 하겠냐고요! 바로 옆에다가.."
(그래서 양해를 했잖아요)
"양해는 무슨 양해! 우리는 통보도 못 받고 연락도 설명도 아무것도 못 받았는데!"
위험 등급을 받은 건 연결통로뿐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급식실이 있는 강당동도 긴급한 보수, 보강이 필요해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D등급을 받았습니다.
건물의 일부 지점이 심하게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급식실 바닥에 물을 부어봤습니다.
서서히 움직이던 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를 내며 운동장쪽으로 흘러갑니다.
◀ 정해은/대한시설물관리협회 경북회장 ▶
(저 방향으로 약간 기울었다고 보면 되는건가요?)
"그렇죠, 저 쪽으로..육안으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
이렇게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기우는 것은 땅이 가라앉고 있기 때문입니다.
착공 당시에 비해 무려 62cm나 내려앉았습니다.
이 지역은 원래 하천이 지나가던 야산 지대였습니다.
산을 깎아 평평하게 메우고 택지로 개발했는데, 땅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아 계속해서 내려앉고 있는 겁니다.
◀ 지역 건설업자 ▶
"쓰레기 매립장 뒤로는 하천이고 아파트 단지쪽은 산이었죠."
(이 사이에 하천이 지나가고 있었겠네요.)
"뻘이죠."
(거길 메워버린 거예요?)
"그렇죠. 스펀지 위에다 건물을 짓는 거랑 똑같죠."
그리고 연결통로와 강당동이 본관에 비해 지반침하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유는 공법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실이 있는 본관은 콘크리트 기둥을 박은 뒤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파일공법'을 사용했지만, 연결통로와 강당동은 건물이 무겁지 않다는 이유로 콘크리트 판을 60cm 두께로 만든 뒤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매트 공법'을 사용했습니다
연약지반에 건물이 고정되지 않다 보니 지반침하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겁니다.
◀ 김용훈/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장 ▶
"구조물이 기존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하중이 있다고..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밑바닥이 지반이니까 그 지반의 중요성은 건물의 안정성하고 직결되는거죠."
그러나 학부모들은 연결통로와 강당동 뿐 아니라 교실이 있는 본관동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곳곳에서 지반침하의 흔적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본관과 운동장 사이에 깔려있는 보도블럭은 건물쪽이 여러 차례 갈라지고 깨지면서 아예 잔디밭으로 바꿔놨습니다.
유치원쪽의 건물 출입구는 아이들이 한 걸음에 올라서기 부담스러울 만큼 훌쩍 높아졌습니다.
벽에 묻어 있는 흙이나 콘크리트 흔적은 그동안 땅이 얼마나 많이 내려앉았는지 가늠하게 해줍니다.
◀ 서현우/학부모 ▶
"흙 자국 보이시죠. 쭉..흙 자국이 이렇게 있는데 지금 차이가 이만큼 나는 거예요. 이걸 만든 게 여름에 만들었대요, 여름에."
특히 건물 내부의 균열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2층 도서관 앞 복도에는 벽 전체에 길게 균열이 가 있습니다.
3층과 4층의 같은 위치에서도 같은 균열이 발견됐지만 학교측은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 학교 관계자 ▶
"전체 한 동을 짓는 게 아니고 이만큼 잘라서 올리고 또 올리고 이렇게 한다 이 말이야. 그 사이란 말이지. 그 사이다. 그건 금이 간 게 아니다."
(둬도 안전한 상황인 거네요? 원래 그렇게 지어진 거니까..)
"원래 그렇지, 원래 그런 거지.."
◀ 남미정/학부모 ▶
"전문가들은 전부 다 괜찮다, 수치상으로 괜찮다 안전하다. 그러다 만에 하나 사고 나면 그거 누가 책임져요."
학부모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시공한 회사측과 교육청이 서로 책임을 미룬 채 시간만 흘려보내 왔다고 말합니다.
이 학교 건물이 교육청 아닌 민간 건설업체의 책임하에 짓는 소위 BTL 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란 겁니다.
BTL은 민간투자사업의 하나로 민간 자본이 공공시설을 지은 뒤, 국가나 지자체에 기부채납을 하고 일정기간동안 임대료를 받는 방식입니다.
양덕초등학교의 경우 경북교육관리라는 시행사가 건물을 짓고, 경북 교육청으로부터 분기마다 3억여 원씩, 20년동안 모두 240여억 원의 임대료를 받게 돼 있습니다.
교육청이 20년 동안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대신 시설물 유지에 대한 책임은 시행사가 지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이러다보니 지역의 학교를 책임져야 할 포항 교육청은 사실상 손을 놓았습니다.
◀ 장병태/포항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장 ▶
"학교 시설을 처음 건축할 때 BTL 사업으로 한 학교여서 저희들이 관리 권한이 없습니다."
(만약에 BTL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나요?)
"아니었으면 저희들이 다 해야되죠."
그런데 학교를 설계할 당시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발견됩니다.
교육청의 학교 배치 기본 계획을 시행사의 뜻대로 바꾼 겁니다.
◀ 이응직/경북도교육청 민자사업담당 ▶
"그 사람들이 나중에까지, 협상 때까지 계속 그 안을 그 사람들이 고집을 해서, 저희들이 바꿀 수가 없어서 그대로 제안한 대로 그대로 설계가 진행된 거죠."
교육청의 기본 계획은 학교 부지를 넓게 사용하는 안이었던 반면 시행사인 경북교육관리는 건물을 왼쪽으로 몰아놓고 오른쪽은 강당과 운동장으로 사용하는 안이었습니다.
◀ 조준영/경북교육관리 대표 ▶
"태양, 일층 가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통풍, 바람이 안 통하는 부분, 그런 부분 갖고 저희가 '어떤 안을 할래?' 공청회를 했더니 학부모들은 '그럼 그 안으로 하자' 해서 제안을 선정해 준 거죠."
하지만 설계를 바꾼 건 공사비 때문이었을 것이란 정황이 나오고 있습니다.
운동장과 강당이 있는 부지 동쪽은 암반이 깊숙히 있고 그 위에 진흙으로 이뤄진 연약지반이 있어 공사비가 부담스러웠을 거란 얘깁니다.
◀ 최병준/경북 도의원 ▶
(여기가 워낙 깊은 데니까 땅 파기 곤란하고?)
"파일을 박으려고 하면 공사비가 그만큼 더 들어가니까 결국은 이렇게 안 했나.."
학교를 설계한 건축사무소가 감사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2580이 입수했습니다.
이 의견서에는, 시행사가 건물 배치를 바꿔 공사비를 절감하려고 했다고 나와있습니다.
또 기대만큼 공사비 절감이 안되자 강당동의 건설방식을 파일 방식에서 매트 방식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 김성호 부회장/건축구조기술사회 ▶
"표면에서 약 5~10미터 내외 이 정도는 매립층 또는 붕격층이기 때문에 지반이 상당히 연약한 상태고 이런 정도 지반이라고 하면 여기에는 직접 기초를 하기에는 하자의 우려가 충분히 있다 이렇게 보여지는 거죠."
또 공청회를 통해서 배치 계획을 바꿨다고 하지만 참석한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 최병준/경북 도의원 ▶
"인근 학교 교장하고 학부모 이런 사람들 불러가지고 좋다라고 결정을 지어 왔거든.."
(실제 공청회는 안 한겁니까?)
"안 했죠."
(공청회 비슷한 형식으로?)
"형식은 빌려왔지.."
이렇게 배치부터 공법까지 공사가 시공사의 입맛대로 진행됐다는 겁니다.
공공시설, 더구나 초등학교에 이같은 방식을 적용한 것부터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 경기도의 경우 지난 2008년 이후 BTL로 건설한 학교 150여 곳에서 균열과 누수 등 370여건의 하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습니다.
◀ 최승섭/경실련 부동산감시팀 부장 ▶
"민자 사업 자체가 어쨌든 국가의 의무를 포기하고 민간사업자한테 모든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까지 다 떠넘긴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걸 시행한 공공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거고요."
시행사는 새로 기둥을 깊게 박아 추가 침하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경북교육청은 최근 실시한 본관 건물에 대한 정밀점검에서 안전등급 B등급이 나왔다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 엄정수/안전비상대책위 위원장 ▶
"건물 구조, 철근 콘트리트에 대해서 육안검사, 레이저 검사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왜 기초인 지반지질조사를 하지 않고 그냥 구조물에 대해서 조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위험한 급식실에 들어가게 둘 수 없다며 매일 도시락을 싸고,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일상은 오늘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 이재현/학부모 ▶
"아이들 안전이 걸린 문제니까 번거로워도 도시락을 싸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서..."
◀ 김성윤/학부모 ▶
"앞으로 나와서 하여튼 강당쪽으로 가면 안 돼. 해원이도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나가면 또 뛰어가는 거 아니가?"
(아니 못가게 천으로 막 이렇게..)
경주 마우나 리조트 천장 붕괴사고와 세월호 참사, 그리고 최근의 담양 펜션 화재사건까지.
모두가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하다 벌어진 사고들입니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외치지만 개선은 더디기만 한 사이, 아이를 지켜야 할 책임은 여전히 학부모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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