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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어디에 맡겨야 하나요?"

"어디에 맡겨야 하나요?"
입력 2014-12-01 09:36 | 수정 2014-12-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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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18:1'... 대학입시보다도 힘들다는 유치원 입학 경쟁이 올해는 더 치열합니다.

    중앙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서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기 힘들다고 맞서면서,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던 학부모들까지 보육료 지원이 되는 유치원으로 몰린 탓이다.

    아이들을 맡겨야하는 학부모들의 혼란은 극심한데...

    매년 되풀이되는 예산 논쟁.

    올해는 우회지원이라는 임기응변으로 일단 합의했지만, 내년부터는 어떻게 해야할까?

    ===========================================================

    우리아이 어디에 맡겨야하놔요

    초등학교 운동장에 차들이 가득합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고, 급히 달려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최주경▶
    (처음 해보시는 거예요?)
    "네, 여기가 처음이에요"
    (주위에서 추첨하러 간다니까 뭐라고 해요?)
    "되면 로또라고..."

    대체 뭘 추첨하는 걸 까?

    ◀정윤미▶
    "18대 1이래요. 오늘 하는게 여기..."
    (아 그래요? 될 거 같으세요?)
    "네 될 거 같아요" "울고 나오는 건 아니겠지?"

    경쟁률도 만만치않은 이 행사는 다름아닌 이 초등학교에 딸린 유치원의 입학 추첨.

    혹시라도 당첨이 될까, 한 학부모가 요란하게 추첨용지를 섞어봅니다.

    너무 떨린 나머지 아이에게 용지를 건네기도 하고...

    "아 떨려..떨려.."

    합격의 주문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합격! 합격!"

    결과는 합격이 아닌 대기.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엄마를 바라봅니다.

    (엄마 왜?)
    "내일 (다른 유치원에 가서) 또 뽑아야 돼"

    탈락을 뽑은 한 엄마는 울기 직전입니다.

    "나 어제도 '죄송합니다' 받았어.'죄송합니다', 나 진짜 어떡해..."
    (어제는 어디갔다 오셨는데요?)
    "어제 여기요. 동생. 갈 데가 없어. 유치원 어디 보내. 나, 너무 속상해 어떡해"
    (작년에도 하셨어요?)
    "작년에도 여기. 유치원이 없어요. 다 했는데 작년에도 안 됐거든요. 갈 데가 없어. 아 나 어떡해..."
    "엄마들 울었다는 말이 이해가."

    이렇게 민감한 추첨이다보니 어떤 유치원에서는 공정을 기하기 위해 장갑까지 동원합니다.

    ◀이경희 / 유치원 원감▶
    "(촉감으로도) 판별이 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오늘 아침에 갑자기 준비하게 됐으니까 불편하시더라도 한 장씩 끼시고 (뽑아주세요)"

    이런 바늘구멍 경쟁을 뚫어낸 기분은 어떨까.

    ◀배미정▶
    "그냥 마음 비우고 뽑았는데 합격이라고 쓰여 있어서. 아 지금 꿈인가 생시인가.."
    (두분이 살아오시면서 이 정도 경쟁률 뚫어보신 적이 있나요?)
    "처음인 것 같아요. 저희 대학갈 때보다 더 떨렸던 것 같아요"

    탈락을 뽑은 엄마들은 낙담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다른 유치원에 지원하러 가야합니다.

    ◀정윤미▶
    (최대 몇번까지 넣을 생각이셨어요?)
    "7~8군데?"
    (사립까지 다 해서?) "네"
    (매번 가시기도 쉽지 않으시겠네요)
    "그런데 가야죠. 이번 주랑 다음 주는 그래서 스케쥴이 너무 바빠요. 2주 동안"
    "살인적인 스케쥴이죠"

    전국적으로 유치원 입학전쟁이 한창입니다.

    유치원이 많지 않다보니 원래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올해는 특히나 경쟁률이 더 치열해졌습니다.

    어린이집을 보내도 되는 부모들까지 대거 유치원 입학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인데요.

    지금까지 지원받았던 어린이집 보육료가 언제 없어질 지 모른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전북 전주의 한 맞벌이 부부 가정.

    오늘도 정신없이 하루가 시작됩니다.

    어린이집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30분 남짓.

    아이들 등원 준비에 출근 준비까지 분초를 쪼개써야 할만큼 바쁘지만 말썽꾸러기들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습니다.

    "빨리 가서 앉아서 먹고. 양치하고 옷입고 나가려면 늦는단 말야. 장난 그만하고"

    급한대로 먼저 출근하는 아빠.

    '아빠~ 다녀오세요'

    얼굴 한 켠엔 수심이 가득합니다.

    ◀최정한▶
    "한명도 아니고 두명인데..나라에서 지원했던 큰 애 작은 애 해서 50만원 넘는 돈이 갑자기 안 준다면 저희 같은 서민들은 어떻게 먹고 살아요...그렇게 된다면 배우자나 제가 둘 중 하나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양육을 해야되기 때문에..."

    오늘도 여느 날처럼 간신히 어린이집 차량에 아이들을 태웠습니다.

    ◀조민영▶
    "(아이들하고) 같이 있어도 되는 부분인데 생활적인 여유가 없다보니까 그래서 애들을 보내야 되잖아요"
    (아침엔 거의 이렇게 전쟁같으세요?)
    "예, 전쟁같아요. 그래도 오늘은 그나마..조금 수월한건데 원래는 진짜 말도 못하게 힘들어요"

    힘들게 출근한 직장에서도 동료 워킹맘들의 관심사는 단연 무상보육입니다.

    ◀조민영▶
    "솔직히 저희가 일을 하려면 저녁까지 일을 하려면 애기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되는 게 맞는 거잖아요“

    ◀홍미셸▶
    "이렇게 보육료를 지원을 안 한다고 하면 전혀 이런 워킹맘들은 사회에 나갈 수가 없는 거죠“

    ◀조민영▶
    "그렇죠.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살아야죠"

    지금까지는 어린이집을 보냈던 건 유치원보다 저렴한 탓이 컸습니다.

    ◀박주영▶
    "가격 차이도 많이나요...그래서 유치원보다는 어린이집 쪽으로 시간적인 것도 있지만 제일 먼저 돈인 것 같아요 비용"

    하지만 보육정책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 닥치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조민영▶
    "당장 먼저 저희가 대책을 세워야 되는 건지 아니면 줄거 같은데 보육료 지원해 줄 건데 너희들 애타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건지.."

    이 모든 불안은 누리과정 예산이 두 달 가까이 표류했기 때문입니다.

    누리과정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다니는 만 3살에서 5살까지의 영유아 교육과정.

    지난 2012년부터 소득에 상관없이 매달 22만원 정도씩 보육료가 지원됐는데, 이 지원금이 내년 예산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교육부 소관인 유치원은 그대로 지원하지만, 보건복지부 관할인 어린이집 지원을 놓고 각 시도 교육청과 중앙정부가 서로 돈이 없다고 맞서면서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지 불투명해진 겁니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는 단계적으로 지자체와 교육청이 나눠부담하다가 내년부터는 교육청이 전액부담하게 돼있습니다.

    경제 성장에 따라 세수가 늘면, 세금의 일정 비율로 편성해 교육청에 내려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늘기 때문에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는 게 당시 정부의 예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세금이 적게 걷히면서 지난해부터 부족분이 생겼고 부족한 금액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황우여 / 교육부장관·10월 27일▶
    "누리과정이 5세에서 3,4세로 확대되면서 특히 복지부가 담당하던 재정부담을 교육부가 담당하게 된 부분이 (내년의 경우) 약 5천억에서 5천4백억 가량으로 추산이 됩니다."

    결국 부족한 이 5천억원 정도의 돈을 놓고 연말 정국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길고 팽팽한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정부는 법에 명시된 대로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해결하라고 주장했고 교육감들은 당초 세수 예측이 잘못됐으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민병희 / 강원도 교육감·11월 20일▶
    "지금 우리가 초중등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누리과정 예산없이 그걸 책임지라고 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집행될 돈을 다 빼서 거기 써야됩니다. 결국은 우리 아이들 교육이 황폐화되는 결과죠."

    학부모들은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성미 / 학부모▶
    "저희 학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기관에서 예산을 세워 지원하든 관심 없습니다. 다만 우리 자식들이 차별받지 않고 우리 아이에게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지켜주길 바랄뿐입니다."

    맘같아서는 속편하게 유치원으로 옮기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의 누리과정 대상 영유아는 모두 138만명.

    하지만 유치원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공립과 사립을 통털어 72만명에 불과합니다.

    시설숫자도 어린이집은 4만 3천여 개지만 유치원은 8천 5백여 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비용이 덜 드는 공립유치원은 전국 다 합쳐봐야 4천5백개 뿐인 상황이어서 입학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사립유치원들은 누리과정 지원금을 받아도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논란끝에 국회는 지난 28일 우회지원이라는 낯선 방법으로 합의안을 만들어냈습니다.

    누리과정 예산은 기본적으로 교육청이 부담하는 것으로 하되 이번만큼은 다른 사업 예산을 증액해줄테니 그 돈으로 부족분을 채우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해결책이라기보단 당장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번은 지나갈 수 있어도 매년 똑같은 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문진영 /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라는 것이 어떤 우리 사회를 밑바탕 시켜주는 도덕적 토대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것이 선거때 어떻게 유리할 것이냐', 정치공학적으로 접근을 했기때문에...상대방의 논리에 따라서 그걸 반대논리를 세우면서 흔들리고 계속 흔들리고 그러다보니까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죠"

    지금이라도 무상보육의 기준과 범위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승윤 /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보육서비스가 현재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모든 가정에 필요한가, 그 다음에 어느 정도의 보육서비스를 우리는 원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사실 정확한 분석과 의견수렴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종일 떨어져있던 아이와 엄마가 만나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도 엄마들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정윤희▶
    "이게 같은 세금을 내고도 어느 아이만, 특정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만 혜택을 받고 내 아이는 천대받는 느낌, 그런 것도 있고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계속 고민을 하면서 보낸다는 거에 대해서 회의도 좀 많이 느끼고 직장을 계속 다녀야 되나 이런 부분도 많이 회의가 들기도 하고..."

    ◀한희라▶
    "어린 아이들한테 지원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국민들한테 지키려고 하는 그런 의지만 보여줘도 국민들이 좀 덜 혼란스럽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 보육에 세금을 얼마나 쓸 것인가는 사회 전체의 진지한 논의와 그에 따른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승윤 /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만약에 국민들이 원하는 복지서비스라는 것이 합의가 됐다면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증세에 동의할 수 있는 의지와 여지가 있다는 것을 또 말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국민과 좀 더 합의와 대화를 통해서 공론화된 과정을 통해서 복지서비스가 차례대로 발전을 해야되는 겁니다"

    여야가 앞다퉈 내놓은 복지공약들이 막상 정책으로 실현될 때는 종종 예산이라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보육에 관한 정책만큼은 일관성을 유지해 달라는 목소리.

    내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울지보다 어디에 보낼 것인가를 먼저 걱정해야하는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작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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