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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강나림 기자

은행에서 사라지는 내 돈…유령이 찾아갔나?

은행에서 사라지는 내 돈…유령이 찾아갔나?
입력 2014-12-08 08:55 | 수정 2014-12-0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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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에 넣어둔 내 돈이 사라지고 있다!

    보이스 피싱에 당한 것도 아니고, 가짜 사이트에 속아 접속한 적도 없는데 마치 유령이 빼간 것처럼 돈이 사라졌다는 사람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져도 금융회사에겐 별로 바랄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해킹 등 범죄에 당해도 고객의 잘못, 개인정보가 유출돼도 고객의 잘못, 원인을 못 밝혀내도 고객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뭔가 잘못했으니까 돈이 빠져나갔을 거라는 금융 회사들.

    하루가 다르게 교묘해지는 금융범죄 앞에서 은행에 넣어둔 돈 마저 나 혼자 힘으로 지켜야 하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

    지난달, 조 모 씨의 통장에서 돈 515만원이 사라졌습니다.

    출금할 때 추가 인증을 거쳐야 하는 유료 서비스까지 가입해놨지만, 돈이 빠져나가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 조00 / 전자금융범죄 피해자 ▶
    돈이 이 통장에서 다 사라진거죠. 11월 4일 5일 6일날 3일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이미 돈이 다 인출됐고요.

    회사원 이 모 씨.

    새벽 시간에 누군가 텔레뱅킹을 통해 월급 통장에 있던 5백여만원을 전부 빼갔습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뱅킹만 사용해온 이 씨는 텔레뱅킹을 안 쓴지 1년이 넘었습니다.

    ◀ 이00 / 전자금융범죄 피해자 ▶
    잔액이 없다는거에요. 어 장난이겠지 장난이겠지? 소름이 진짜 확 끼치더라고요. 잔고 찍어봤더니 5천 원? 너무 충격받아가지고.

    지난 5월 외국에서 일하는 이 모 씨의 증권사 통장에서도 인터넷뱅킹으로 3백만 원이 감쪽같이 빠져나갔습니다.

    돈을 빼간 사람은 이씨가 가지고 있던 주식까지 팔았고, 그걸 담보로 1천만 원 넘게 대출까지 받아갔습니다.

    ◀ 황00 / 전자금융범죄 피해자 가족 ▶
    (돈이) 이상하게 계속 빠져나가고 온 주식이 다 매도처리가 되면서 대출담보 한 번도 해본적도 없는 사람 대출을 승인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정말..하룻밤에 그냥 다 없어진 거니까..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것도 아니고 가짜 사이트에 속아서 접속한 것도 아닌데 마치 유령이 가져간 것처럼 돈이 사라졌다는 사람들.

    가장 안전하다고들 믿는 은행 통장 속 내 돈은 정말 안전할까요.

    그리고 돈이 사라지면, 돌려받을 수는 있을까요.

    두 달 전, 필리핀 출장을 위해 아침 일찍 공항에 가던 김 모씨 부부의 휴대폰이 동시에 정지됐습니다.

    지금 사용하신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해 당분간 발신이 정지되어 있습니다.

    부부가 멀쩡히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이 이날 새벽 2시 쯤 분실 신고가 됐다는 겁니다

    뭔가 이상해 다급히 통장을 확인하니, 돈이 없었습니다.

    이날 새벽 2시 48분 인터넷뱅킹에서 김 씨 명의로 공인인증서가 재발급됐고, 새벽 4시 13분, 250만 원이 모르는 사람의 계좌로 빠져나갔습니다.

    아침 8시14분에 573만 원, 5분 뒤에 또 25만 원, 이렇게 총 848만 원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통장에서도 돈이 없어졌습니다.

    증권사 CMA 계좌에서 520만 원, 또 다른 증권 계좌에서 313만 원.

    김 씨가 가진 통장 네 개 중 세 개에서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김 씨 부인의 은행 통장에서도 누군가 인터넷으로 예금을 해지한 뒤 돈을 빼갔습니다.

    ◀ 김00(가명) / 전자금융범죄 피해자 ▶
    집사람 계좌도 제가 조회를 해봤더니 거기서도 이미 돈 800만 원 가까이 또, 또 빠져나간 거에요. 예금하고 적금까지 다 해지가 돼가지고 출금이 됐더라고요..

    휴대폰은 정지되고, 집 전화까지 엉뚱한 번호로 착신 전환돼 아무 연락도 못 받는 사이 부부의 전 재산 2천3백만 원이 사라진 겁니다.

    확인해보니 새벽 4시 쯤 중국에서 수십 차례 접속한 기록이 있고, 김 씨의 인터넷뱅킹 계좌엔 정체를 알 수 없는 PC가 등록돼 있었습니다.

    은행에 물어봐도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 00은행 ▶
    다 중국에 관련된 거니까 전화번호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못 찾습니다. 통장도 마찬가지로 다 대포통장으로 거래를 하기 때문에..

    김씨가 마음에 걸리는 건 하나.

    인터넷뱅킹때 쓰는 보안카드 번호를 문서로 기록해 암호를 걸어 놓고 컴퓨터에 보관해왔는데, 은행은 이게 바로 김씨의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 김00(가명)/전자금융범죄 피해자 ▶
    은행에서는 왜 OTP를 안 썼습니까, 왜 컴퓨터 안에 그거 저장해놨습니까..제가 잘못한, 실수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은행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제 개인의 책임이다..그랬다면 적극적으로 은행에서 OTP를 의무적으로 쓸 수 있도록 당연히 했었어야죠.

    경찰이 조사 중이지만, 이런 경우 컴퓨터가 악성코드에 감염돼 해킹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떻게 개인 PC에 있는 자료가 빠져나간 걸까.

    악성 코드를 심으면 김 씨처럼 문서에 암호를 걸어놔도, 입력하는 순간 실시간으로 해커 컴퓨터에 나타납니다.

    내 PC 화면을 해커가 그대로 들여다볼 수도 있고, 원격 조정해 공인인증서를 복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스마트폰 해킹은 더 간단합니다.

    보안카드를 촬영한 사진을 단 몇 분만에 해커 컴퓨터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개인 정보가 이미 유출된 상태에서 PC나 휴대폰 중 하나라도 악성코드에 감염되면 아주 간단하게 돈을 빼낼 수 있는 겁니다.

    ◀ 이규형 / 화이트해커 '락다운' 대표 ▶
    사진 빼는 것도 보여드렸지만 이보다 더한 행위도 할 수 있습니다. 소액 결제도 할 수 있고. 악성코드만 설치된다면 PC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기 때문에..사용자가 자기 PC를 사용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도 모르게 개인 정보가 유출되거나 내 PC가 악성코드에 감염되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보안카드를 어디엔가 저장해놓는 것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실수입니다.

    그런데 그런 실수가 전 재산을 잃어도 아무 말도 못할 만큼 엄청난 잘못일까요.

    우리나라에선 그렇습니다.

    모든 책임과 피해를 고객이 떠안아야 합니다.

    2년 전, 박 모 씨 부부의 통장에서 2억 원 가까이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인터넷뱅킹으로 저축은행 다섯 곳에 있던 예금을 전부 해지하고 돈을 빼간 겁니다.

    한 번에 적게는 60만 원, 많게는 299만 원 씩 불과 몇 시간 동안 무려 82번에 걸쳐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순간에도 다른 통장에서 돈이 나가고 있었습니다.

    ◀ 박00(가명) / 전자금융범죄 피해자 ▶
    (은행에) 전화를 순차적으로 걸어야 하잖아요. 동시다발로 못 걸고..이거 거는데 이 쪽에서 빠져 나가고 있던 거에요.

    박 씨 통장에서 1억3천만 원, 아내 통장에서 6천9백만 원이 사라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은행 한 곳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 박00(가명) / 전자금융범죄 피해자 ▶
    다 중도 해지거든요. 한 사람이 중도 해지를 3-4개..이상하잖아요 누가 봐도. 미친 사람 아니면 은행 이자 다 포기하면서. 천만 원 해지하고 299만 원 299만 원 299만 원 이렇게 인출해 가는데도 아무런 노티스를 못 받았어요.

    그러나 다섯 개 은행 중 단 한 곳만이 보험사를 통해 예금의 75%를 돌려줬고, 나머지 은행들은 돈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은행이 해킹당한 게 아닌 이상 부부가 뭔가 잘못했으니 사고가 났을 거라는 겁니다.

    ◀ 박00(가명) / 전자금융범죄 피해자 ▶
    자꾸 보험 사정인이 파고들어요. 두 분이 잘못한 거다, 두 분이 개인 정보를 동시에 유출한거다..당연히 개인 잘못이다라고 몰아왔어요.

    ◀ 00저축은행 ▶
    돈은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저를 강제로 두들겨패서 뺏아갈 수 있는 방법 외엔 없다고요.

    이런 줄다리기가 2년째.

    은행에 돈 넣은 걸 후회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박00(가명) / 전자금융범죄 피해자 ▶
    아 내가 잘못했구나, 관리를 잘못했구나, 은행에 넣지 말아야겠구나 차라리 땅에 묻었어야, 묻고 써야 되겠구나...

    금융기관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문제는 보이스피싱이든 해킹이든 범죄에 당하면 그건 모두 고객의 중대한 '과실'이고, 금융기관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미국에선 고객이 보안카드나 공인인증서를 분실, 도난당한 걸 은행에 신고만 하면 50달러 이내에서만 고객이 책임지고, 정보가 유출되거나 해킹당한 경우는 아예 고객의 책임이 없다고 봅니다.

    또 사고가 터지면 일단 고객에게 먼저 돈을 돌려주고, 금융기관에서 조사를 벌인 뒤 결과에 따라 회수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객에게 몇 배로 보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이준길 / 미국 법학박사 ▶
    만약 열흘 안에 (고객) 돈을 재입금을 안 시켰다. 그럴 경우 세 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매긴다고 해놨어요. 압박을 하지 않으면 거대한 기관인 금융기관이 말을 안 들을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만든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금융기관도 지금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 김승주 교수 /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
    전자금융을 우리나라처럼 많은 액수를 광범위하게 쓰는 데가 없죠. 인터넷뱅킹을 하면 은행들은 이득입니다. 그럼 안전한 시스템을 보급할 의무가 있는데..우리나라는 사실 고객에게 너무 많은 과실의 책임을 지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상의 인터넷뱅킹 사이트입니다.

    수상한 계좌로 돈이 빠져나가자 곧바로 거래가 중지됩니다.

    해외 IP로 접속하거나, 애매한 금액이 연속으로 출금되는 등

    평소와 다른 형태의 거래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차단하는 이상거래탐지 시스템, FDS입니다.

    ◀ 김태봉 / FDS 산업포럼 부회장 ▶
    (신용카드로 치면) 노인 분께서 유흥주점에서 갑자기 안하던 술값을 많이 긁었다, 이런 이상 징후를 탐지하는 거죠. 이체 직전에 잡아내는 거죠. 이상 있으면 거래 중지시키고 추가적으로 본인 확인하거나, 콜 센터에 전화해서 확인하도록 유도하죠.

    FDS를 도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억 원 정도.

    신용 카드 업계에선 이미 1998년부터 정착시켜온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은행은 대부분 올해부터 도입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 김승주 교수 /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
    왜 도입을 안 하느냐, 은행이 손해배상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굳이 예산을 들여서 그걸 설치해야되냐는 말이죠.

    FDS를 도입하더라도 고객의 거래 정보가 오랫동안 쌓여야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큰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으로선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인 OTP를 사용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자금융 범죄가 날로 진화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아무리 조심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 김태봉 / FDS 산업포럼 부회장 ▶
    최근 만들어지는 악성코드는 일반적인 백신에 탐지가 안 되게 우회를 합니다. 지능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OTP도 100% 안전하다고 절대 장담할 수 없거든요. 이미 그런 사례들 사고들이 있기 때문에..

    돈이 사라졌다고 호소하는 고객을 나몰라라 하고,

    ◀ 00은행 ▶
    고객님께서 순전히 그런걸 보관하고 있다가 분실한건데..저희 쪽에서 책임질 그런..부분이 없다보니까

    도리어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큰 소리 치는 금융기관들.

    ◀ 00증권사 ▶
    그러면 저희 당사가 귀책 사유가 있다라는 것을 고객님이 저희한테 증빙을 하시던지요. 저희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조치할 게 없다는 말씀 드리는 거에요 고객님. 최종 답을 왜 저희한테 물으시는데요!

    믿고 돈을 맡겼던 고객 입장에선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입니다.

    ◀ 김00 / 해킹 피해자 ▶
    싸워야 한다, 엄두가 안 나고 뭐부터 해야할지도 모르고 막막한 거밖에 없는거에요. 은행을 믿지 못하고, 은행에 우리가 돈을 맡길 수 없다면 정말 뭐 다 장롱 안이나, 장판 밑에 넣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은행을 찾는 건 내 돈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흔들리는 지금 계속 고객 탓만 한다면, 그래서 은행에 넣어둔 돈도 나 혼자 힘으로 지켜야 한다면, 은행이 있어야 하는 이유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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