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문 닫는 꽃분이네…국제시장에서 무슨 일이

문 닫는 꽃분이네…국제시장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15-01-26 08:55 | 수정 2015-01-26 15:04
재생목록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 덕분에 명소로 떠오른 부산 국제시장.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 덕에 모처럼 활기가 넘치고 있지만 속사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영화의 주 무대가 된 ‘꽃분이네’가 조만간 문을 닫고 떠납니다.

    꽃분이네 사장은 연신 눈물을 흘리고, 주변 가게들 분위기도 뒤숭숭합니다.

    국제시장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썰렁했던 골목이 북적이기 시작한 건 시작한 건 한 달 쯤 전부텁니다.

    최근 인기몰이를 한 영화의 제목이자, 실제 촬영지이기도 했던 부산 국제시장입니다.

    입구 앞엔 현수막이 내걸렸고

    ◀이기호/관광객▶
    아이들하고 국제시장 영화를 보고 또 부산에 와서 촬영지를 보니까 너무 감회가 새롭고요.

    영화 속 주인공 덕수의 가게인 꽃분이네 앞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주말이면 지나다니기 힘들 정돕니다.

    ◀김지영/관광객▶
    마침 영화도 하고 해서 자갈치 갈까 하다 먼저 여기 국제시장 쪽으로 와 봤어요. 딱 꽃분이네가 옆에 있네요.

    천만 영화의 흥행 덕분에 국제 시장은 하루 아침에 여느 관광지 못지 않은 유명세를 타게 됐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신바람이 나야 할 이곳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습니다.

    남들은 대박이라며 부러워한다는데 뭐가 걱정이란 걸까요.

    ◀신미란/'꽃분이네' 주인▶
    라인 잠시만 나와주세요 언니. 남의 가게 앞에서 나와주세요.

    양말이나 허리띠 등 의류잡화를 파는 꽃분이네.

    가게 주인 신미란 씨는 요즘 국제시장에서 제일 바쁜 사람입니다.

    ◀신미란/'꽃분이네' 주인▶
    영화 촬영하면 보통 열흘에서 길게는 보름, 한 달을 비워줘야 되는데 상인들 입장에서는 가게 통째로 못 비워주거든요. 근데 저희는 보시다시피 계절 상품이고 그리고 제가 좀 젊다보니까 재미있는 상황이라서 비워주게 됐어요.

    바닥에 포토라인을 그어야 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 교통 정리에 기념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주다보니 정작 장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신미란/'꽃분이네' 주인▶
    돈 많이 버는 것처럼 표면상으로 보면 많이 찾아 주시니까. 그 분들이 저희 양말이든 벨트든 사 가시면 저희 떼돈 벌겠죠. 근데 아니거든요.

    매출은 좀 오르긴 했지만, 구경만 하러 온 관광객이 대부분이라 따지고 보면 별로 실속은 없습니다.

    ◀신미란/'꽃분이네' 주인▶
    지금 보시다시피 사진 찍으러 오시는 분이 태반이고 옆 가게 욕 얻어먹어가면서도 돈 안 되는 거, 줄세우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 써야 될 판인데...

    그래도 멀리서 찾아주는 손님들이 신기하고 고맙다는 신 씨는 며칠 전 날벼락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꽃분이네 점포의 원 주인이 신 씨에게 장사를 계속 하려면 5000만 원의 권리금을 내놓으라고 한 겁니다.

    ◀신미란/'꽃분이네' 주인▶
    이 가게 (가치) 자체가 세 배 정도 올랐기 때문에 그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여러 업자들이 그렇게 얘길 하나봐요.

    결국 오는 3월 가게를 비워주기로 했습니다.

    ◀신미란/'꽃분이네' 주인▶
    비싼 임대료 내고 있었는데 거기에 권리금까지 이제 붙은 상황이다 보니까 저희는 나가는 게, 나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그것에 맞출 수는 없으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게다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다 보니 생각지 못한 문제까지 터졌습니다.

    ◀김한곤/국제시장 상인▶
    오히려 피해에요. 정말 피해에요. 옆에 보면은 일요일이나 공휴일 보면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지고 장사 정말 안 돼요.

    꽃분이네 맞은 편 가게는 영화 개봉 이후 주말이면 아예 장사를 포기하고, 가게 문을 닫고 있습니다.

    ◀여병율/국제시장 상인▶
    여기가 좀 협소하지 않습니까. 근데 이 공간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면 주로 앞에서 죽 찍거든요... 그래서 손님들 편의를 위해서 저희가 토요일 일요일 날 희생하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단골이 끊길 형편이란 겁니다.

    ◀여병율/국제시장 상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시다보니까 좀 밀려다니는 형편이라서 조금 정작 시장에서 뭘 사시고 싶어 하시는 분들은 발길을 돌리는 그런 역작용도 조금 있는 것 같고요.

    따지고 보면 꽃분이네의 잘못도 아니지만, 왠지 죄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신미란/'꽃분이네' 주인▶
    간판 하나로, 간판 올렸다고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으러 오실 줄도 몰랐고 이게 정말 주위에 이렇게 피해를 끼칠 줄도 이슈가 될 줄도 몰랐어요. 근데 저는 다 같이 먹고 사는 건 줄 알았거든요. 같이 상생할 줄 알았는데...

    한 달 사이 국제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열 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꽃분이네 뿐 아니라 다른 가게들의 임대료도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습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
    (이미) 웬만큼은 다 올랐고.. 이제 나중에 되면 권리금.. 조금 더 달라고 하겠죠 아무래도?

    사실 국제시장에서 파는 물건 대부분은 잡화나 도매 상품같이 살 사람만 사는 것들.

    사람이 늘어봐야 매출은 제자리, 그마저도 언제 사그러들지 모를 유행인데 무슨 임대료 인상이냐고 상인들은 말합니다.

    ◀강재순/국제시장 상인▶
    우리는 지금 장사 너무 안 되기 때문에 주인이 오히려 (임대료) 내려 줄 것이다 생각을 하는데 국제시장 촬영지 저것 때문에 너무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주인들이...

    건물주의 전화 한 통에도 가슴이 떨립니다.

    ◀김한곤/국제시장 상인▶
    "국제 시장 영화 때문에 사람이 많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장사 잘 되느냐고. (안부 물어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은근히 뭐 집세라도 뭐 이런 생각 안 하겠습니까?

    갑작스런 유명세는 대박은 커녕,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겨준 셈이 됐습니다.

    ◀신미란/'꽃분이네' 주인▶
    참 웃기죠 사는 게. 다들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기회라고 잘 해보라고 했는데 기회가 기회가 아닌 것 같은 그런...

    기타를 든 남자가 골목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발길을 멈추고 나도 모르게 손뼉으로 장단을 맞춥니다.

    금세 작은 공연장이 되어 버린 골목길.

    노래와 벽화로 채워진 이곳은 대구의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입니다.

    지난 2009년부터 퇴색한 재래시장 빈 골목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낡은 담벼락은 아름다운 벽화로 채워졌고 이곳 출신인 가수 고 김광석 씨를 소재삼아 거리 모습을 180도 바꿔 놓았습니다.

    시청과 구청도 나서서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약속하며 이 곳을 아예 관광상품으로 띄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하루에 많게는 만 명 넘게 몰리는 지역 최고의 명소가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거리 공연을 하는 아마추어 가수 신승호 씨는 사람들이 몰려오면서부터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신승호/아마추어 가수▶
    "제가 처음에 찾았을 때는 이 거리가 약간 골목 냄새가 많이 났고...
    (요즘엔)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조금 상업적인 분위기가 나서 아쉬운데"

    월세 10만원으로도 작업실을 얻을 수 있었던 이곳의 땅값은, 작년 한 해 다섯 배가 올랐습니다.

    예술가들은 하나둘 밀려났고, 낡은 공방과 무명 화가의 갤러리가 있던 자리엔 어김없이 고깃집과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채정아/관광객▶
    작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거든요. 작년에는 거리만 이렇게 있었는데 지금은 상점이 많으니까 약간 좀...

    거리의 상징인 김광석 동상을 만든 손영복 작가.

    이 동네에 몇 안 남은 예술가인 손 씨도 지금은 작업을 멈추고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손영복/조각가▶
    제가 거의 마지막일 것 같아요. 언젠가는 나가야지 스스로 생각은 있었는데... 제가 나가는 거는 관계 없지만. 과연 거기는 또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방들이나 그런 것들이 들어올 수 있을까.

    공들여 만든 예술가의 거리를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손영복/조각가▶
    굉장히 서운해 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없지 않아 그런 점이 있죠. 사실 이런 분들이 여기서 계속 활동을 하면서 이 분들이 제 2, 제 3의 김광석이 될 수 있는 꿈도 꾸고 (했어야 하는데)...

    김광석 거리 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른바 '뜨는 동네' '핫 플레이스'가 새로 떠오를 때마다, 지역의 개성을 대변하던 사람과 문화가 오히려 밀려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신현준 교수/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오히려 기획상 만드는 것 같아요. 아, 다음은 어디일까. 다 떨어졌어 소재가. 그러면 만드는 거죠. 여기가 지금은 덜 핫하지만 곧 핫할 것이다."

    사람이 몰리면 돈이 뒤따르고, 그러다보면 풍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는 건 어쩔수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집 앞 골목이 유흥가로 바뀔 수도, 땅값과 집세에 밀려 쫓겨나는 사람이 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남의 얘기로 흘려 들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경복궁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촌, 서울에 몇 안 남은 오래된 주택가입니다.

    이 동네 토박이인 한철구 씨의 꽃집은 올해로 19년이 됐습니다.

    ◀한철구/서촌 주민▶
    나는 계속 아파트 같은 데서 안 살아봐서 우리 동네만 살아서 모든 동네가 이렇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러니까 강남 같은 데 가면 나는 되게 낯설어요. 이상한 동네 같고 정신 없고."

    하지만 조용하던 서촌에도,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땅값이 치솟았고, 한 씨가 변두리로 밀려나며 판 옛집은 술집으로 바뀌었습니다.

    ◀한철구/서촌 주민▶
    이게 내 집이었는데 팔고 나서 바로 술집이 돼 버려서... 그 사람들도 먹고 살겠다고 들어왔는데 그걸 또 어떻게 해요.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이웃집이 있던 자리는 무엇이 들어설지 모를 공사장으로 바뀌고.

    동네 작은 우유 보급소, 세탁소가 있던 곳엔 커피숍이 생겼습니다.

    주민들의 일상은 더이상 옛날같지 않습니다.

    ◀한철구/서촌 주민▶
    "집 앞에까지 찜닭집이 들어와서.. 우리집 옆의 옆 집 정도 되는 거죠. 시끄럽고 한 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나와서 담배피는 것 때문에 냄새도 나지.."

    모두 어디로 떠나간 걸까.

    ◀세탁소 주인▶
    (건물 주인이) 월세 올려달라는 얘기도 안 하고... 가게를 비워 달라 이렇게 하더라고요. 애 엄마랑 사정도 해 봤는데 세탁소 (세) 줄 생각은 아예 없더라고 보니까.

    16년을 서촌에서 장사하다, 지난해 성북동으로 가게를 옮겼다는 세탁소 사장은 옛 단골들에게 부끄럽다며 얼굴은 내지 말아 달라 취재진에게 당부했습니다.

    ◀세탁소 주인▶
    젊은 사람들이 안 몰려왔으면 내가 굳이 그렇게 쫓겨날 이유도 없고, 갑자기 그렇게 쫓겨날 이유도 없고... 내가 멍청한건지 세월에 밀린 건지 둔한 건지 좀 그렇더라고...

    낡은 가게 하나, 오래되고 소박한 풍경들.

    사람들이 서촌을 찾는 이유는 그런 소박함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윤어울/관광객▶
    "아기자기한 것들이 옛날 느낌도 많이 나고 또 골목에서 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무척 따뜻한 느낌이 동네에서 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개발'이란 이름 아래 가장 먼저 사라지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그 소박함입니다.

    ◀김남균 대표/문화연구공간 <그문화>▶
    "소비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예요... 결국 그렇게 되면 우리가 가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은 전부 복사한 것처럼 획일화 되어 있는 프랜차이즈만 만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오는 거죠."

    국제시장 상인들도, 서촌 주민들도 지금의 유행과 바람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찾아왔던 이유가 그 바람에 실려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버텨보는 것 뿐입니다.

    유행과 바람이 지나가도 남아야 할 것이,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는 일은 그래서 소중합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