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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고조선에도 있던 간통죄, 역사속으로…처벌은 면했지만..

고조선에도 있던 간통죄, 역사속으로…처벌은 면했지만..
입력 2015-03-02 08:49 | 수정 2015-03-0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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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의 8조 법금에도 있었던 간통,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 62년 동안 존재해왔던 형법상의 간통죄가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난 1990년 이후 5번째 위험심판청구 끝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인데요.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너희 둘 간통죄로 처넣어 버릴 거야!”라는 대사도 ‘통행금지’, ‘장발족’ 같은 말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지난 62년 동안 간통죄로 처벌받거나 받을 예정이었던 사람은 10만여 명.

    간통죄에 얽힌 이야기와 위헌 결정의 의미, 이로 인한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짚어봅니다.

    ====================================================================================

    지난 목요일 헌법재판소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형법 241조,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즉 '간통죄'의 위헌여부를 가리는 자리.

    지난 20여년간 다섯차례나 헌법재판이 열릴 정도로 간통죄 존폐여부는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였습니다.

    이날 결정에선 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에 손을 듦으로써 간통죄는 결국 폐지됐습니다.

    ◀유미라/헌법재판소 공보심의관▶
    "이번 결정은 간통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거나 간통 행위 유소, 종용 개념이 불명확하고 징역형으로 규정돼 헌법에 위반된다는 겁니다."

    이번 결정으로 간통죄는 62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시대변화에 발맞춘 합리적인 결정이란 의견도 많지만, 앞서 네 차례나 합헌 결정을 얻어낼 정도로 간통죄 유지를 지지하는 여론도 만만찮았던만큼 파장도 클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드라마의 단골 소재.

    유명 배우, 스포츠 스타들의 간통 관련 소식이 신문 연예면을 장식하는 일도 과거엔 잦았습니다.

    부부의 정조의무 위반을 법으로 처벌함으로써 가정을 유지하자는 간통죄의 취지에 공감하는 여론이 그만큼 컸다는 겁니다.

    앞서 4차례 간통죄가 합헌 결정이 나온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1990년 9월 10일▶
    "간통죄는 건전한 성도덕이나 일부일처제란 혼인제도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1990년 첫 판결에선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합헌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이어 1993년 6:3, 2001년엔 8:1로 합헌 의견이 우세였지만, 2008년 네번째 판결에선 합헌 4, 위헌 5로 처음으로 위헌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위헌 정족수인 6명엔 모자라 가까스로 합헌을 유지한 간통죄는 결국 5번째인 이번 판결에서 7:2란 압도적 비율로 위헌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관들은 간통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는 있지만 법으로 처벌할 사항은 아니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혼인과 가정을 유지하는 것은 부부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법으로 강제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간통죄가 이미 파탄난 부부관계를 더 악화시키고 잘못이 더 큰 배우자의 이혼 수단으로도 악용된다고 지적했습니다.

    40대 후반 여성 박 모 씨.

    박 씨 부부는 6년전 경제문제로 사이가 나빠져 서로 '이혼하자'며 자주 다퉜습니다.

    이후 남편은 박 씨에게 생활비도 주지 않았고 각방을 쓰며 남남처럼 살아왔습니다.

    ◀박 씨▶
    "언제 들어오는지 모르게 안방에 들어와서 자고 나가고 저는 딸 방에서 애들하고 생활하고 양쪽 집에 간적도 없고 물어본 적도 없고 생활비 주는 것도 없고 가족이라는 게..."

    자녀 양육과 살림은 박 씨가 식당일 등을 하며 도맡아왔습니다.

    ◀박 씨▶
    "싫으면 나만 싫은거지 왜 애들한테까지 저렇게..대학가는 애들 여대생 딸을 일주일에 3만원 줘요. 그것도 애가 넣어달라고 통장으로 넣어달라고 넣어달라고.. 애가 대학을 졸업했는지도 모르고 졸업해서 언제 취업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고,, 왜? 학비를 제 때 내줘봤어야 몇 학년인지를 알죠. 그게 가족이야? "

    박 씨는 정식이혼절차를 밟자고 요구했지만 남편은 자녀들의 진학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그러다 박 씨는 최근 한 차례 외도를 했다는 얘기를 털어놨고, 남편은 박 씨를 간통죄로 고소했습니다.

    남편이 미리 녹음기를 준비하고 박 씨의 대답을 유도했던 겁니다.

    또, 그간 박씨 모르게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거나 거액의 담보대출을 받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박 씨▶
    "저 모르게 녹취를 했다가 그리고 소장이 날아오고 혹시나 싶어서 등기를 떼보니 엄청난 대출과 재산을 돌려놓은 상태고..5년전부터 치밀하게 해온거잖아요. 다 재산이고 뭐고 모르게끔 이렇게.."

    박 씨는 법정에서 "남편과 이미 이혼하기로 합의한 상태로, 더이상 혼인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간통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박 씨 부부가 이혼의사를 잠정적으로 밝히긴 했지만 외도하는 것을 용인할 정도로 확정적인 이혼 합의는 아니"라며 박 씨에게 징역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김혜진/변호사▶
    "다른 사례 같은 경우에 서로 사생활에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 이런 서면이 있었을 땐 (이혼 합의로) 인정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일반인들이 그런 거 까지 생각해놓고 서면을 쓰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다투다가 서로 대화를 아예 안하는 상황이고, 그런 증서 같은 걸 주고받을 생각을 못하겠죠."

    박 씨는 항소했습니다.

    이번에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박 씨는 무죄를 받게 되지만, 이와 별도로 진행되는 위자료와 재산분할 소송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박 씨▶
    "나한테 (혼인) 파탄의 죄가 있어서 3천만원이니 뭐니, 내가 내야한다는 거죠. 왜 그쪽에서는 이혼의 이자도 얘기안했대. 뭐 이런 거지같은...나는 못준다. 그 재산 다 뺏어가도 억울하죠. 5년 동안 우리 애를 거지 같이 키워놨는데."

    2008년 배우 옥소리 씨 역시 남편 박 철씨에게 간통죄로 고소당해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당시 법원도 박 씨가 가정에 소홀해왔다고 판시했습니다.

    ◀옥소리▶
    "엄청난 돈을 거의 술값으로 지출했습니다. 혼인 생활 십여년을 하면서 부부관계를 가졌던 기회는 단 십여차례...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게다가 둘은 재판과정에서 폭로전을 벌이며 사이만 더욱 나빠졌을 뿐, 이미 금간 이들의 가정을 유지하는데 간통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 통념과는 다르게 외도는 남성이 8배 가까이 많이 하는데 실제 간통죄로 기소된 비율은 오히려 아내가 6:4정도로 더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간통죄가 여성을 보호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런 논란을 반영하듯 법조계도 간통죄 적용에 소극적이어서 최근엔 간통죄로 기소되더라도 실제 징역을 사는 경우는 1%에 그칠 정도로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김경진/변호사▶
    "간통죄라고 하는 것이 불구속수사, 불구속재판, 집행유예로 99% 끝나는 이런 상황인데 이게 가정유지나 보호를 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있다. 이걸 공식적으로 폐지했다고 해서 껍데기만 남아있는 이 제도가 유지되는 것과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느냐"

    입법취지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점도 간통죄 폐지에 주요 이유 중 하나이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와 결혼, 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가식적이고 허울뿐인 부부생활을 끝내고 젊은 음악인과 사랑을 추구하는 문화계 인사.

    굳이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으로도 행복한 생활을 해나가는 젊은 커플들.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는 이들을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40%가 결혼을 반드시 해야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답한 것도 이같은 인식을 반영합니다.

    ◀송재룡/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이 가족구성원 간에도 더 우선시되어진 거에요. 그러니까 의무나 책임보다는 그래서 한국 가족의 구성원들간 관계 양식의 변화에 의해도 이번 위헌 판단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죠."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 넓어지고, 그에 따른 책임 역시 국가가 아닌 스스로가 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겁니다.

    ◀김경진/변호사▶
    "과거에는 가정이라든지 국가라든지 사회라고 하든지 이런 어떤 전체적인 시스템을 중시해서 바라보는 이런 생각들이 국민들 마음에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보다는 나 개인, 나 개인의 의사결정 나 개인의 행복, 나 개인의 성적 만족 이런 부분들의 우리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훨씬 중요하다."

    한 쪽에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간통죄 폐지로 불륜이 급증하고 가정이 파괴되는 일이 많아질 거란 우려도 큽니다.

    불륜과 외도가 단순히 '개인의 자유나 행복추구'로 미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정언희▶
    "법으로 제한을 해놨는데도 외도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걸 폐지를 하게 되면 법적으로 자유로워졌으니까 외도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배금자/변호사▶
    "너무 이건 이렇게 되면 노골적으로 간통을 하고도 굉장히 뻔뻔스러워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고.. 다른 여자하고 뻔뻔스럽게 생활을 하면서 그 사람들이 이혼해달라고 소송을 넣는거죠."

    ◀송재룡/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사람들은 구속력이 있는 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가정생활과 배우자에 마땅히 부여된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행사하거든요. 그렇게 우려하는것 만큼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다만, 형법상의 간통죄 처벌이 없어지면 불륜행위에 대한 민법상의 책임은 더 커질 거란 데는 대부분의 예측이 일치했습니다.

    간통죄 처벌로 불륜에 대한 댓가를 어느 정도 치렀다는 핑계가 없어지는 만큼 위자료나 재산분할, 자녀양육권 등의 민사재판에서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전보다 훨씬 더 불리해질 거란 얘깁니다.

    ◀송효진/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위자료 액수가 다른나라에 비해서 그렇게 높다고 생각되어지진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정신적 고통을 위로할 수 있는 현실적 액수가 보장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한다고 봅니다."

    가사, 양육 분담부터, 이혼 대비까지.

    서구사회에서나 보던 혼전계약서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배금자/변호사▶
    "간통죄가 폐지되면 모든 게 민사적인 문제로 해결해라.. 상대방이 뭔가 부정행위를 하거나 배신을 할 때 나중에 헤어지더라도 재산분할을 내가 더 유리하게 받는다거나 자녀의 친권양육권을 상대가 포기하게 한다던가 그런.. 장치로서 우리나라도 혼전 계약서가 도입돼야 하는 거죠."

    우리 사회의 변화에 따라 수명을 다하게 된 간통죄.

    이로 인해 발생할 파장이 사회 발전과 함께 자연스레 벌어질 일이었는지 또다른 변화를 불러오게 될지는 쉽게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는데 부부 서로간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가의 개입이 사라진 대신, 개인에게 그만큼 더욱 진지한 책임이 주어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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