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권희진 기자
권희진 기자
"벌금 낼 돈 없어서.." 교도소 가는 사람들
"벌금 낼 돈 없어서.." 교도소 가는 사람들
입력
2015-03-16 09:06
|
수정 2015-03-16 18:27
재생목록
주유소에서 1만6천9백 원을 빼돌려 야식을 사먹었다가 벌금 70만원을 내게 된 10대 알바생, 4명의 자녀를 키우며 살다 입원비을 140만원 못내서 70만원 벌금형을 받은 이혼 여성. 경찰에게 폭언을 했다가 선고받은 70만 원을 역시 내지 못해 교도소 에 가는 기초생활수급자.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로 '직행'해 '몸으로 때워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극빈층일수록 더욱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죄를 지은 것은 잘못이지만 당장 끼니를 때울 돈조차 없으니 분 할 납부라도 하게 해달라는 하소연. 한편에선 훨씬 큰 죄를 지어도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벌금도 내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데..우리의 벌금형은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질문을 던져봅니다.
===========================================================================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김 모 씨는 작년 1월, 주유비에서 1만6천9백원을 횡령했습니다.
4차례에 걸쳐 3,4천원씩 빼돌린 돈으로, 일하는 밤시간에 허기를 달랬습니다.
◀김 00▶
"제가 밤에 일을 했는데 하루 12시간 일하는데 밥값이 안나오니까 먹는거나 제대로 먹자해서 관행적으로들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던..“
그런데, 그동안 밀린 각종 수당 2백여 만원을 업주가 착복했다는 사실을 김 씨가 지방 노동청에 알리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김 00▶
"너 절도한 거 그거 고소 들어간다. 니가 이거 취하하면 나도 이거 취하해준다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니까.."
김 씨는 절도 혐의로 고소당했습니다.
◀김 00▶
"경찰에서 집으로 찾아왔죠. 그 다음에 검찰에서 연락이 왔고."
70만원의 벌금형.
김 씨는 전과자가 됐습니다.
법원은 벌금을 못 내면 10만원에 하루씩, 7일 동안 교도소에서 노역을 살아야 한다고 설명해줬습니다.
법정 납부 기한인 한 달 이내에, 70만원을 어디서 구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김 00▶
"주변에서 많이 걱정할테니까 그게 마음에 걸렸죠. 안 내면 노역가야 하니까. 벌금 안 내면 감옥 간다는데. 1815 걱정이 많았죠. 어떻게 해야 하나."
벌금을 나눠내거나, 조금만 말미를 달라고 요청해봤지만 모두 거부됐습니다.
◀김 00▶
"유예 신청하러 갔는데 소득없는 학생이니까 되지 않을까해서 검찰청을 갔는데 해당 사항 없다. 분납, 유예 둘 다 불가능하다..“
김씨는 결국 납부 마감일인 3월 11일을 지키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돼 강제노역을 할 처지가 됐습니다.
매년 4만 명 넘는 사람들이 김씨처럼 벌금형에 해당하는 가벼운 죄를 짓고도 실제로는 벌금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들어갑니다.
노역을 피해다니면 지명수배를 받게 되는데 런 벌금 지명수배자는 18만 명에 달합니다.
베란다 한 켠의 비좁은 창고. 책상도, 책꽂이도 없는 4명의 아이들이 여기에 책과 학용품을 두고 공부합니다.
◀김 00(여)▶
"저희가 수납공간이 없어 애들 거 책이고 화장품이고 다 여기다 놓고 쓰거든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4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는 김 씨의 수입은 한 달 142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가 전부입니다.
집세와 전기료 등 고정지출을 빼고 남은 40여만원을 생활비로 쓰며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 00(여)▶
"비싼 준비물을 친구들한테 빌리고 아니면 제가 아는 지인들한테 단 돈 몇 만원씩이라도 빌려서..그런 상황이거든요."
그러던 지난해 김 씨는 취객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치료비를 내겠다던 가해자가 사라지면서 입원비 140만원을 낼 일이 막막해졌습니다.
병원 측은 김 씨를 고소했습니다.
◀병원 관계자 전화▶
"도망갔어요. 치료를 받다가요. 퇴원 수속 없이..그러니까 저희 입장에서는 퇴원수속을 밟은 것도 아니고.."
김 씨는 사기죄로 벌금 70만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벌금을 낼 수 없었습니다.
◀김 00(여)▶
"생계비 나오는 걸로 70만원. 낼 수는 있는데 그걸 내고 나면 애들 학교는 못다녀요. 70만원이라는 돈 한 번에 내버리면."
벌금을 나눠내는 것도 불가능했고 아이들만 두고 교도소에서 노역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김 00(여)▶
"저 하나 들어가는 건 괜찮은데 애들은 누가 건사해주냐고. 그렇다고 큰 애를 아동학대식으로 집에 배치해놓고 동생들 학교 보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고 하니까 (검찰에서) 그건 아주머니 사정이래요."
벌금을 못 낸 김 씨는 지명수배자가 됐습니다.
◀김 00(여)▶
"그 쪽(검찰)에서 하는 말이 그냥 피해다니세요. 조심히 다니세요. 안 걸리게. 그 말만 하는데 하늘이 무너지죠. 나가지도 말라는 얘기 아니에요. 집에 있으면 집에 있다가 검거되라는 얘기고."
김 씨의 경우 벌금 70만원이면 하루 5만원씩, 14일 동안 수감돼야 합니다.
김 씨는 불시에 검거돼 교도소에서 노역을 해야 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했습니다.
◀김 00(여)▶
"벌금을 못내서 엄마가 교도소 가서 이만큼 살아야 돼. 애가 처음엔 말을 못해요. 근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검찰에서 오면 말도 안하고 그냥 데리고 가니까. 그래가지고 미리 말은 해놨어요. 큰 애 한테만."
70만원의 벌금형은 김 씨가 감당할 수 없는 형벌이 됐습니다.
◀이정엽 변호사▶
"죄가 경하기 때문에 벌금형을 선고 받았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징역형의 실형을 살아야하는 결과와 똑같이 되는 그런 과도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는 거죠"
징역을 살만큼 무겁지는 않은 죄라고 해서 내리는 벌금형.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결과적으로 더 가혹한 형벌이 됩니다.
벌금 낼 돈이 없으면 교도소를 가야 하고, 교도소를 다녀오면, 그나마의 직장도 잃거나 재기의 꿈마저 허물어져버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빚을 얻어 시작했던 사업이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된 기초생활수급자 김 모 씨.
이사를 하다 시비가 붙었는데, 이를 중재하던 경찰관에게 술에 취해 욕설을 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김 00▶
"니네 새끼들이 왜 그래. 우리 개인사정이니까 우리끼리 해결할 거니까 가라 개입하지 마라 그렇게 얘길 했어요. 그게 발단이 된 거예요."
공무집행 방해.
매달 50만원을 국가에서 받아 생활하는 수급자 김 씨는, 7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김 00▶
"우편함에서 고지서 받으니까 딱 열어서 보니까 70만원 봤는데 잠깐 아무 것도 안 보이더라고. 딱 생각나는게 정신 몽롱하고 그러니까 술 생각이 나데요."
김 씨가 70만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김 00▶
"나한테는 많이 큰 돈이죠. 나는 생활비가 50만원 나오는데 집세가 500에 25만원이에요. 500도 내 돈이 아니에요. 남의 돈이거든요."
벌금 독촉장이 몇 차례 날아든 뒤, 김 씨는 지명수배됐습니다.
◀검찰청 관계자 녹취 ▶
"지명수배 해제되는 방법은 완납을 하시는거 밖에 없어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김 씨는 잡혀가기 보다는 스스로 교도소를 찾는게 낫다고 결정했습니다.
◀김 00▶
"죄 지은 거 갚아야죠. 형량을 살아야지 돈 없으니까 가서 살아서 몸으로 때우고 나와야죠. 막상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그렇잖아요. 안 가고 싶죠. 도망가고 싶죠. 누가 와도 집에 문도 안 열어주고 싶고 그래요. 잡으러 올까봐. 잡으러 오면 가야 되잖아요. 교도소로 가야 돼요."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생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던 김 씨의 노력은 벌금 때문에 교도소를 가게 되면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김 00▶
"벌금 나오기 전엔 안 그랬어요. 조금이라도 내 기술이 있으니까 그걸 살려가지고 월급쟁이라도 한 번 들어가볼까. 그런 생각중에 벌금 맞으니까 이게 모든 게 다 없어지더라고."
지은 죄를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처지가 딱하니 덮어놓고 봐주자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실질적인 형벌의
무게가 달라진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입니다.
지난 2011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남이 자신의 재규어 승용차로 다른 차를 들이받은 뒤 달아났습니다.
도주 닷새만에 자수한 그에게 재판부는 벌금 7백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서류를 조작해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부정 입학시켰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며느리 박상아 씨와 현대가의 며느리 노현정 씨는 벌금 1500만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들은 별일 없이 벌금을 납부했습니다.
우리 법은 같은 잘못이라면 재벌이든 서민이든 사실상 같은 수준의 벌금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벌금의 위력은 저소득층에게 훨씬 더 크고 무겁게 나타납니다.
◀서보학 교수/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죄질이라든가 또 범죄 종류에 따라서 일정한 벌금액수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벌금형이 부자한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오히려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그런 문제가 있는 거죠."
이 때문에 소득에 따라 벌금 액수에 차등을 둘 수 있게 벌금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소득에 따라 벌금 액수에 차이를 두는 방식을 일수벌금제라고 하는데,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등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김희수 변호사▶
"가난하다는 것이 죄가 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야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그 돈을 낼 돈이 없어서 남들은 거꾸로 껌값인 돈 백만원 이백만원 때문에 감옥을 가서 살아야 되는 사태는 없어야 된다는 이야기에요."
벌금형에만 유독 예외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벌금형과 달리, 중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엔 오히려 집행유예로 수감되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징역 3년까지는 형 집행유예를 할 수 있어서 재벌 총수들은 중죄를 저지르고도 대부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아 수감생활을 피하곤 했습니다.
◀오창익 사무국장/인권연대▶
"징역 3년이란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단 하루도 교도소에 가지 않는데 벌금 백만원 때문에 20일동안 교도소에 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경제력에 따라 벌금을 달리하는 일수벌금제와 벌금제에도 징역형처럼 집행유예를 인정하자는 내용 등의 형법 개정안은 작년에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습니다.
◀김희수 변호사▶
"첫째가 국회의 무관심이고 두번째가 정부가 진정으로 그런 의지를 눈곱만큼도 안 갖고 있다 그러니까 한 발도 못나가는 겁니다."
"네 장발장 은행입니다."
이달 초, 벌금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가야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이 대출을 시작했습니다.
소설 속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로부터 은촛대를 선물받은 것처럼 죗값에 비해 삶이 지나치게 무너지는 걸 시민들의 선의로 막아주자는 취지입니다.
무이자로 벌금낼 돈을 빌려주고 다달이 나눠 갚게 하는 방식입니다.
◀오창익 사무국장/인권연대▶
"벌금은 지금 한달 내에 완납하도록 돼 있거든요. 카드도 안 받아요. 현찰로만 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걸 좀 나눠서 내게 하더라도 교도소에 가는 사람을 줄일 수 있는 거죠."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벌금을 빌려주겠다는 후원이 몰리면서 기금이 2주만에 7천만원을 넘어섰습니다.
이 돈으로 30여 명이 교도소에 가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장발장 은행' 기부자▶
"저희집이 가난했구요. 도시락 반찬을 공개를 할 때 친구들이 제 반찬을 보게 될테고 그게 되게 부끄러웠어요. 그런 가난한 열등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한테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죄의 무게에 따라 형벌의 크기가 달라지는 건 법이 가지는 당연한 원칙이지만, 돈있고, 돈없음이 형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일이 계속돼선 안될 겁니다.
◀이 00/벌금형 노역 경험자▶
"거기에만 4백명이 있어요. 1,2,3 층이 있는데 그것이 두 동이 다 벌금형 감옥입니다. 밤에 들어오면 딱 보고, 얼마짜리야 이게 인삽니다. 무슨 죄가 아니고 얼마짜리로 왔냐 이거죠."
장발장 은행처럼 사람들의 선의에만 맡겨두는 데엔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해야 할 법이 어떤 이에게는 가볍게, 어떤 이에게는 유독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 법의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할 일이고, 국회와 정부, 법조계는 이를 위해 시급히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극빈층일수록 더욱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죄를 지은 것은 잘못이지만 당장 끼니를 때울 돈조차 없으니 분 할 납부라도 하게 해달라는 하소연. 한편에선 훨씬 큰 죄를 지어도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벌금도 내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데..우리의 벌금형은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질문을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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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김 모 씨는 작년 1월, 주유비에서 1만6천9백원을 횡령했습니다.
4차례에 걸쳐 3,4천원씩 빼돌린 돈으로, 일하는 밤시간에 허기를 달랬습니다.
◀김 00▶
"제가 밤에 일을 했는데 하루 12시간 일하는데 밥값이 안나오니까 먹는거나 제대로 먹자해서 관행적으로들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던..“
그런데, 그동안 밀린 각종 수당 2백여 만원을 업주가 착복했다는 사실을 김 씨가 지방 노동청에 알리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김 00▶
"너 절도한 거 그거 고소 들어간다. 니가 이거 취하하면 나도 이거 취하해준다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니까.."
김 씨는 절도 혐의로 고소당했습니다.
◀김 00▶
"경찰에서 집으로 찾아왔죠. 그 다음에 검찰에서 연락이 왔고."
70만원의 벌금형.
김 씨는 전과자가 됐습니다.
법원은 벌금을 못 내면 10만원에 하루씩, 7일 동안 교도소에서 노역을 살아야 한다고 설명해줬습니다.
법정 납부 기한인 한 달 이내에, 70만원을 어디서 구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김 00▶
"주변에서 많이 걱정할테니까 그게 마음에 걸렸죠. 안 내면 노역가야 하니까. 벌금 안 내면 감옥 간다는데. 1815 걱정이 많았죠. 어떻게 해야 하나."
벌금을 나눠내거나, 조금만 말미를 달라고 요청해봤지만 모두 거부됐습니다.
◀김 00▶
"유예 신청하러 갔는데 소득없는 학생이니까 되지 않을까해서 검찰청을 갔는데 해당 사항 없다. 분납, 유예 둘 다 불가능하다..“
김씨는 결국 납부 마감일인 3월 11일을 지키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돼 강제노역을 할 처지가 됐습니다.
매년 4만 명 넘는 사람들이 김씨처럼 벌금형에 해당하는 가벼운 죄를 짓고도 실제로는 벌금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들어갑니다.
노역을 피해다니면 지명수배를 받게 되는데 런 벌금 지명수배자는 18만 명에 달합니다.
베란다 한 켠의 비좁은 창고. 책상도, 책꽂이도 없는 4명의 아이들이 여기에 책과 학용품을 두고 공부합니다.
◀김 00(여)▶
"저희가 수납공간이 없어 애들 거 책이고 화장품이고 다 여기다 놓고 쓰거든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4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는 김 씨의 수입은 한 달 142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가 전부입니다.
집세와 전기료 등 고정지출을 빼고 남은 40여만원을 생활비로 쓰며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 00(여)▶
"비싼 준비물을 친구들한테 빌리고 아니면 제가 아는 지인들한테 단 돈 몇 만원씩이라도 빌려서..그런 상황이거든요."
그러던 지난해 김 씨는 취객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치료비를 내겠다던 가해자가 사라지면서 입원비 140만원을 낼 일이 막막해졌습니다.
병원 측은 김 씨를 고소했습니다.
◀병원 관계자 전화▶
"도망갔어요. 치료를 받다가요. 퇴원 수속 없이..그러니까 저희 입장에서는 퇴원수속을 밟은 것도 아니고.."
김 씨는 사기죄로 벌금 70만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벌금을 낼 수 없었습니다.
◀김 00(여)▶
"생계비 나오는 걸로 70만원. 낼 수는 있는데 그걸 내고 나면 애들 학교는 못다녀요. 70만원이라는 돈 한 번에 내버리면."
벌금을 나눠내는 것도 불가능했고 아이들만 두고 교도소에서 노역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김 00(여)▶
"저 하나 들어가는 건 괜찮은데 애들은 누가 건사해주냐고. 그렇다고 큰 애를 아동학대식으로 집에 배치해놓고 동생들 학교 보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고 하니까 (검찰에서) 그건 아주머니 사정이래요."
벌금을 못 낸 김 씨는 지명수배자가 됐습니다.
◀김 00(여)▶
"그 쪽(검찰)에서 하는 말이 그냥 피해다니세요. 조심히 다니세요. 안 걸리게. 그 말만 하는데 하늘이 무너지죠. 나가지도 말라는 얘기 아니에요. 집에 있으면 집에 있다가 검거되라는 얘기고."
김 씨의 경우 벌금 70만원이면 하루 5만원씩, 14일 동안 수감돼야 합니다.
김 씨는 불시에 검거돼 교도소에서 노역을 해야 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했습니다.
◀김 00(여)▶
"벌금을 못내서 엄마가 교도소 가서 이만큼 살아야 돼. 애가 처음엔 말을 못해요. 근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검찰에서 오면 말도 안하고 그냥 데리고 가니까. 그래가지고 미리 말은 해놨어요. 큰 애 한테만."
70만원의 벌금형은 김 씨가 감당할 수 없는 형벌이 됐습니다.
◀이정엽 변호사▶
"죄가 경하기 때문에 벌금형을 선고 받았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징역형의 실형을 살아야하는 결과와 똑같이 되는 그런 과도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는 거죠"
징역을 살만큼 무겁지는 않은 죄라고 해서 내리는 벌금형.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결과적으로 더 가혹한 형벌이 됩니다.
벌금 낼 돈이 없으면 교도소를 가야 하고, 교도소를 다녀오면, 그나마의 직장도 잃거나 재기의 꿈마저 허물어져버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빚을 얻어 시작했던 사업이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된 기초생활수급자 김 모 씨.
이사를 하다 시비가 붙었는데, 이를 중재하던 경찰관에게 술에 취해 욕설을 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김 00▶
"니네 새끼들이 왜 그래. 우리 개인사정이니까 우리끼리 해결할 거니까 가라 개입하지 마라 그렇게 얘길 했어요. 그게 발단이 된 거예요."
공무집행 방해.
매달 50만원을 국가에서 받아 생활하는 수급자 김 씨는, 7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김 00▶
"우편함에서 고지서 받으니까 딱 열어서 보니까 70만원 봤는데 잠깐 아무 것도 안 보이더라고. 딱 생각나는게 정신 몽롱하고 그러니까 술 생각이 나데요."
김 씨가 70만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김 00▶
"나한테는 많이 큰 돈이죠. 나는 생활비가 50만원 나오는데 집세가 500에 25만원이에요. 500도 내 돈이 아니에요. 남의 돈이거든요."
벌금 독촉장이 몇 차례 날아든 뒤, 김 씨는 지명수배됐습니다.
◀검찰청 관계자 녹취 ▶
"지명수배 해제되는 방법은 완납을 하시는거 밖에 없어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김 씨는 잡혀가기 보다는 스스로 교도소를 찾는게 낫다고 결정했습니다.
◀김 00▶
"죄 지은 거 갚아야죠. 형량을 살아야지 돈 없으니까 가서 살아서 몸으로 때우고 나와야죠. 막상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그렇잖아요. 안 가고 싶죠. 도망가고 싶죠. 누가 와도 집에 문도 안 열어주고 싶고 그래요. 잡으러 올까봐. 잡으러 오면 가야 되잖아요. 교도소로 가야 돼요."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생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던 김 씨의 노력은 벌금 때문에 교도소를 가게 되면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김 00▶
"벌금 나오기 전엔 안 그랬어요. 조금이라도 내 기술이 있으니까 그걸 살려가지고 월급쟁이라도 한 번 들어가볼까. 그런 생각중에 벌금 맞으니까 이게 모든 게 다 없어지더라고."
지은 죄를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처지가 딱하니 덮어놓고 봐주자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실질적인 형벌의
무게가 달라진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입니다.
지난 2011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남이 자신의 재규어 승용차로 다른 차를 들이받은 뒤 달아났습니다.
도주 닷새만에 자수한 그에게 재판부는 벌금 7백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서류를 조작해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부정 입학시켰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며느리 박상아 씨와 현대가의 며느리 노현정 씨는 벌금 1500만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들은 별일 없이 벌금을 납부했습니다.
우리 법은 같은 잘못이라면 재벌이든 서민이든 사실상 같은 수준의 벌금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벌금의 위력은 저소득층에게 훨씬 더 크고 무겁게 나타납니다.
◀서보학 교수/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죄질이라든가 또 범죄 종류에 따라서 일정한 벌금액수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벌금형이 부자한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오히려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그런 문제가 있는 거죠."
이 때문에 소득에 따라 벌금 액수에 차등을 둘 수 있게 벌금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소득에 따라 벌금 액수에 차이를 두는 방식을 일수벌금제라고 하는데,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등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김희수 변호사▶
"가난하다는 것이 죄가 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야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그 돈을 낼 돈이 없어서 남들은 거꾸로 껌값인 돈 백만원 이백만원 때문에 감옥을 가서 살아야 되는 사태는 없어야 된다는 이야기에요."
벌금형에만 유독 예외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벌금형과 달리, 중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엔 오히려 집행유예로 수감되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징역 3년까지는 형 집행유예를 할 수 있어서 재벌 총수들은 중죄를 저지르고도 대부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아 수감생활을 피하곤 했습니다.
◀오창익 사무국장/인권연대▶
"징역 3년이란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단 하루도 교도소에 가지 않는데 벌금 백만원 때문에 20일동안 교도소에 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경제력에 따라 벌금을 달리하는 일수벌금제와 벌금제에도 징역형처럼 집행유예를 인정하자는 내용 등의 형법 개정안은 작년에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습니다.
◀김희수 변호사▶
"첫째가 국회의 무관심이고 두번째가 정부가 진정으로 그런 의지를 눈곱만큼도 안 갖고 있다 그러니까 한 발도 못나가는 겁니다."
"네 장발장 은행입니다."
이달 초, 벌금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가야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이 대출을 시작했습니다.
소설 속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로부터 은촛대를 선물받은 것처럼 죗값에 비해 삶이 지나치게 무너지는 걸 시민들의 선의로 막아주자는 취지입니다.
무이자로 벌금낼 돈을 빌려주고 다달이 나눠 갚게 하는 방식입니다.
◀오창익 사무국장/인권연대▶
"벌금은 지금 한달 내에 완납하도록 돼 있거든요. 카드도 안 받아요. 현찰로만 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걸 좀 나눠서 내게 하더라도 교도소에 가는 사람을 줄일 수 있는 거죠."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벌금을 빌려주겠다는 후원이 몰리면서 기금이 2주만에 7천만원을 넘어섰습니다.
이 돈으로 30여 명이 교도소에 가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장발장 은행' 기부자▶
"저희집이 가난했구요. 도시락 반찬을 공개를 할 때 친구들이 제 반찬을 보게 될테고 그게 되게 부끄러웠어요. 그런 가난한 열등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한테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죄의 무게에 따라 형벌의 크기가 달라지는 건 법이 가지는 당연한 원칙이지만, 돈있고, 돈없음이 형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일이 계속돼선 안될 겁니다.
◀이 00/벌금형 노역 경험자▶
"거기에만 4백명이 있어요. 1,2,3 층이 있는데 그것이 두 동이 다 벌금형 감옥입니다. 밤에 들어오면 딱 보고, 얼마짜리야 이게 인삽니다. 무슨 죄가 아니고 얼마짜리로 왔냐 이거죠."
장발장 은행처럼 사람들의 선의에만 맡겨두는 데엔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해야 할 법이 어떤 이에게는 가볍게, 어떤 이에게는 유독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 법의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할 일이고, 국회와 정부, 법조계는 이를 위해 시급히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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