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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합의하실래요?"

"합의하실래요?"
입력 2015-04-06 09:28 | 수정 2015-04-0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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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의 신청으로 연주한 결혼식 축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예쁜 글씨,

    일상속에 무심코 행한 이런 행동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저작권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새 벌어지는 저작권 침해 행위들.

    무조건적인 처벌 조항을 악용해 합의금 장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데..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통해

    문화산업을 발전시키자는 저작권법,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진 않은걸까요?

    =================================================================================

    웨딩 연주업체를 운영하는 이수민씨.

    악기를 조율하고, 악보를 확인하고.

    얼마전부터 이씨가 꼭 빼지 않고 점검하는 게 있습니다.

    ◀ 이수민 ▶
    (이거 클래식 곡이니까 안 걸리죠?) 그치 이 곡은 클래식 곡이니까 저작권에 전혀 상관없어 이것도 이것도 그렇고.

    이씨가 저작권에 민감해진 데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2013년 어느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로부터 행진곡을 연주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별 생각없이 연주를 했습니다.

    ◀ 이수민 ▶
    신랑 신부님들이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 그러면 저희는 그 음악을 연주해줘야 되거든요.

    그게 문제가 됐습니다.

    1년 뒤인 지난해 10월 이씨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됐습니다.

    ◀ 이수민 ▶
    연주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이게 저작권 침해로 고소가 됐다고 결혼식 한 시간동안
    웨딩연주를 하고 받은 금액은 15만 원.

    문제가 된 행진곡은 30초 정도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저작권자는 2백만 원의 합의금을 요구했고, 이씨가 거부하자 경찰에 고소한 겁니다.

    벌금 1백만 원을 청구받은 이씨는 민사소송까지 걱정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 이수민 ▶
    '다른 곡들도 다 고발을 할 거다. 각오하고 있어라' 이 소리가 이제 너무 부담이 되고 무서운 거예요. 많이 무섭죠. 솔직히 지금 심정은.

    연주는 물론 축가도 저작권이 있는 곡은 함부로 부르면 안됩니다.

    친구나 가족이 부르더라도 댓가를 받았다면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댓가 여부에 상관없이 이런 곡의 연주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건 불법입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통해 문화산업을 발전시키자는 취지의 저작권법.

    현재 우리 저작권법은 위반정도가 가볍고 무겁고를 떠나 일단 법에 저촉되면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형사처벌 조항을 빌미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고, 이로 인한 갈등과 시비가 잦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원주에서 격투기 도장을 운영하는 전찬준씨는 몇달 전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격투기 도장에 다니는 사촌동생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 좋아하는 글귀를 넣고 격투기 도장 전화번호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등기우편을 받았습니다.

    ◀ 전찬준 ▶
    뭔가 하고 열어봤더니 글씨체 저작권이 자기들한테 있는데 불법으로 썼다고 원만하게 합의를 보든지 아니면 법적인 처벌을 물어야한다.

    당황한 전씨는 사진을 블로그에서 내리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 전찬준 ▶
    '이거 본 사람 한 명도 없으니까 내리겠다' 그쪽에서는 '당신은 벌써 법을 어겼기 때문에 다운받아서 썼고 그것을 올렸고 지우더라도 소용이 없다. 우리는 당신이 블로그에 올렸던 자료를 가지고 있다'

    법무법인이 제시한 해결방법은 문제의 글씨체를 포함해 4백 개의 글씨체가 들어있는 90만 원짜리 CD를 사라는 거였습니다.

    ◀ 전찬준 ▶
    '얼마나 고마운거냐 다른데는 150개 이렇게 밖에 안하면서 금액은 비싸게 받는데'

    전씨는 글씨체 1개 사용료만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저작권은 4백 개가 묶여있어서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전씨는 고민끝에 합의 대신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기로 했습니다.

    ◀ 전찬준 ▶
    잘못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거는 분명히 사법기관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한데 그렇지 못하고 '니네 사법기관에 넘기지 않을테니까 나한테 금액적인 걸로 백만원에 잘못을 없애줄께' 이거는 절대로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작권법 위반 건수는 지난 2008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최근 5년동안은 23만 건이 넘습니다.

    하지만 정식재판까지 간 경우는 불과 0.3%, 약식재판을 포함해도 10%를 넘지 않습니다.

    대부분 중간에 합의금을 주고 사건을 무마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일부 사용자단체에선 법무법인들이 저작권을 내세운 합의금 장사에 나섰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 남희섭 이사 / 정보인권단체 ‘오픈넷’▶
    2008년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이 저작권 침해 행 위를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니고 이 저작권 침해로 인한 형사처벌 제도가 일종의 합의금 장사에 이용할 수 있다.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로 보고 이 점을 악용하기 시작한게 그때부터다.

    올해 고 3이 된 A군은 지난해 3월, 호기심에 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여성들이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는, 이른바 체벌영상을 공유하는 곳이었습니다.

    회원등급을 올리려면 특정 사이트에서 체벌영상을 퍼올리라는 카페 규칙에 따라, A군은 별 생각없이 영상을 복사해 올렸습니다.
    이후 흥미를 느끼지 못한 A군은 이틀만에 해당 카페에서 탈퇴한 뒤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저작권법을 위반했으니 합의금 500만원을 내지 않으면 경찰에 고소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A군 / 고3 ▶
    그냥 죽고싶다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부모님한테 알려질까봐 걱정되고..솔직히 액수도 너무 크고.. 나중에 공무원 되고 싶기도 한데

    영상의 내용이 특이하다보니 창피한 마음에 억울하다는 말도 못했습니다.

    이름과 주소가 적힌 반성문을 보내면 미성년자는 선처해준다는 고소인의 글이 있었지만 막상 반성문을 올린 사람들의 말은 달랐다고 합니다.

    ◀ A군 / 고3 ▶
    미성년자는 선처해준다고 쓰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막 반성문 쓰고
    내니까 개인정보로 막 고소당하고 그런 거예요.


    A군과 같은 건으로 합의금을 요구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6백여 명, 요구한 합의금 액수는 수십억원에 달합니다.

    ◀ 정상조 교슈 / 서울대 법학과 ▶
    우리가 저작권 침해를 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 부분은 인정을 하고 반성을 하는 부분이고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함정을 파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요구를 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했거든요. 저작권 침해 가운데 범죄로써 처벌해야될 것만 제한해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겠죠. 어떤 청소년은 그러한 불안감때문에 자살을 하는 경우까지 우리 저작권법이 만들어낸 희생양이 아닌가 싶습니다.

    체벌영상의 저작권 인정여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내내 종아리만 맞고있는 영상.

    고소인들은 성 소수자를 위한 독립영화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영상에까지 저작권을 인정해야 하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 양홍석 변호사 ▶
    예술적인 가치나 저작물로서의 가치 자체가 일반인이 볼때는 글쎄요..그다지 보호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조금 갸웃한 생각이 좀 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박 모씨는 컴퓨터를 켜 놓은 채 파일공유 사이트에 자동로그인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 사이 박 씨의 컴퓨터에서 자기도 모르게 소설 30권 분량의 파일이 공유됐고,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당했습니다.

    ◀ 박○○ ▶
    누군가 포인트를 노렸는지 악의적으로 저작권 (장사)를 하려고 올렸는지 몰라도 저작권 막혀있는 (소설) 파일을 올렸더라고요. 저는 소설 자체를 안 읽어요.

    해당 소설 저작권을 가진 출판사측은 합의를 요구해왔습니다.

    ◀ ○○ 법무법인 ▶
    이거 뭐 합의 의사는 있으세요? 그러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이거 형사단계에서 민형사상 다 끝내려면 지금 작가분이 200만원을 원하거든요. 한 종류당 50만원씩 해서..어떻게 의향 있으세요? (50만원이요? 일단 조사받고 제가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조사받고 연락하지 마시고 (합의하실 거) 아니면 조사받으시고 민사소송 청구를 해요. 그 때 되서 서울 오셔가지고 재판 받으시면 돼요

    인터넷에서 가입자들끼리 파일을 주고받는 p2p 프로그램.

    일부 p2p사이트는 본인은 다운로드만 받고싶다 해도 기술적으로 업로드가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현재 법으로는 모두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P2P 사이트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의 가입자수만 12만 명.

    이런 문제가 빈번하다보니 저작권법 개정 요구도 거셉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관련 법안만 27건입니다.

    ◀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 ▶
    사회적 구성의 이익이 더 증대되기는 커녕 오히려 사회적 비용 또는 전과자 양산 또 잘 모르
    는 무심코 했던 청소년들의 형사처벌로 인한 문제 폐해 이런 것들을 시정하고 균형을 잡기 위
    해서 사소한 것은 책임을 묻지 않는 쪽으로

    물론 창작물의 저작권을 함부로 침해해서 입는 피해 또한 많습니다.
    낚시나 물고기에 대한 칼럼을 쓰는 김지민씨는 어시장이나 바닷가등 현장을 다니며
    취재한 뒤, 사진과 글을 정리해 잡지사에 기고하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에 올립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자신이 블로그에 올린 새우 구별법에 대한 사진과 글을 누군가 허락도 없이 가져다 썼다는 걸 알았습니다.

    ◀ 김지민 / 어류 칼럼리스트 ▶
    사실 이게 몇 년 전부터 제가 써야지 하다가 미루고 하다가 이번 가을에 쓴 거거든요.

    무단으로 글을 퍼간 sns 계정은 팔로워만 10만명이 넘는 곳이었습니다.

    ◀ 김지민 / 어류 칼럼리스트 ▶
    제가 아무리 혼자 힘들게 취재를 하고 열심히 글을 써도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득을 취하는 사람을 따로 있다' 라는 현실이 씁쓸한 거죠

    더 화가 났던 건 상대가 전혀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았다는 겁니다.

    결국 김씨는 해당 sns 계정 운영자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 김지민 / 어류 칼럼리스트 ▶
    '블로그 글이지만 함부로 가져다 쓰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거죠.

    저작권법이 합의금 장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벗으려면 시급한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 남희섭 이사 / 정보인권단체 ‘오픈넷’▶
    저작권자들의 피해가 심하다 이러면 피해를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따로 고민을 해야지 '형사처벌을 받든지 그게 안되면 합의금을 내는 이런 상황으로 갈 수 밖에 없으니까 네가 조심해서 피해라' 이렇게 하는 제도는

    과도한 규제는 모두에게 손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 정상조 교슈 / 서울대 법학과 ▶
    저작물을 보호 강화하는 것만이 상책이 아니고 이용을 활성화하면서 그 수익을 나눠갖는 그런
    효율적인 저작권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거든요.

    창작자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저작권 침해는 분명 엄히 다스려져야할 범죄입니다.

    하지만 법이 권리를 지켜주는 방패를 넘어 누군가를 협박하는 창으로 악용될 수 있다면, 좀 더 신중히 따져볼 필요도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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