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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김현경 기자

내 아이도 '수포자'?

내 아이도 '수포자'?
입력 2015-04-27 09:03 | 수정 2015-04-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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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g, ∫, √, lim,∮... 지금도 기억하는 수학 기호는 몇 개가 있을까?

    어른이 된 뒤에 생각하면 왜 이것 때문에 그렇게 속을 썩이고 고통스러웠을까 웃음 짓지만, 지금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라고 스스로를 자조하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이 대열에 끼지 않기 위해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배운다는 시대입니다.

    수학 포기=인생 포기처럼 되어 버리는 지금의 현실.

    우리는 대체 뭘 위해 수학을 배울까? 질문을 던져봅니다.

    ======================================================================


    "어떤 수를 46으로 나눌 때 나머지가 될 수 있는 수 중 가장 큰 자연수는 무엇일까?"
    -초등학교 3학년 수학

    거리에 나가 이 문제를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SYN▶모르겠어요.
    ◀SYN▶(초등학교 문제인데..)잘 모르겠어요.

    정답은 45.

    초등학교 문제지만 약 1시간 동안 정답을 쓴 사람은 10명도 채 안됐습니다.

    기본적인 수학 기호나 공식 앞에서도 선뜻 입이 안 떨어집니다.

    ◀SYN▶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루트가 뭐에 나왔었던 거더라?

    엉뚱한 대답도 튀어 나옵니다.

    ◀SYN▶
    이거 시그마 아니에요? (이건 어디에다 쓰는 거에요?) 무한도전 얘네들하고 비슷한 거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학창시절 가장 어려웠던 과목을 고르라면 수학을 첫번째로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선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 '수학을 아예 포기했다'는 의미로 '수포자'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렵길래 이런 말까지 나왔을까요.

    중학생, 초등학생 형제를 둔 백선숙씨.


    ◀ 심범기(초등학교 4학년) ▶
    10년 동안 태양 주위를 10바퀴 도는 거리가 약 몇 km입니까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범기에겐 요즘 수학이 골칫거리입니다.

    ◀ 심범기(초등학교 4학년) ▶
    '읽어 보시라'고 돼있는데 한국말로 적는거야 그냥?

    문제의 뜻 자체도 이해가 잘 안가는 눈치.

    결국 엄마가 하나하나 설명에 나섭니다.

    (여기에다가 10곱해야 되고.그렇지? 네(하품)(또 몇을 곱해?)1바퀴? (아니 1바퀴 였으니까 10바퀴. 또 몇을 곱하냐고.)10?

    한 문제를 푸는데 5분 넘게 씨름을 합니다.

    범기에게 '수학'하면 뭐가 떠오르냐고 물어봤습니다.
    ◀ 심범기(초등학교 4학년) ▶
    괴물 아니면 늪 뭐..

    이유를 물었습니다.

    ◀ 심범기(초등학교 4학년) ▶
    틀릴까봐 긴장되고 그래서.. (늪은 왜 늪이라고 한거예요?)계속 빠져있잖아요. 그만큼 빠져들 정도로 그렇게 계속 풀어야 되니까.

    이공계 박사 출신으로 수학만큼은 자신있는 범기 엄마.

    하지만 요즘 아이들 수학 시험은 너무 어렵다고 느낍니다.

    ◀ 백선숙/학부모 ▶
    큰 애 중1 때 시험지 제가 보고 너무 놀란 게 애 점수도 거의 바닥을 쳤지만, (반) 평균도 60점 정도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제가 풀어도) 70점도 못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포는 심해집니다.

    서울 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의 수학시간.

    "어려운 문젠데 이거 비슷한 문제가 자주 나오더라 이거예요. 다음주에 볼 중간고사에도 나오더라. 물론 숫자는 바뀔 수 있습니다."

    복잡한 수식이 칠판을 채워갈수록 학생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 고등학생 ▶
    그냥 좀..재미가 없어요.
    (뭐가 재미가 없어요?) 지루해요.

    고3 김 모양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대학 부설 수학 영재원에 다녔을 정도로 수학을 잘 했습니다.

    ◀ 김 00(가명)/고등학교 3학년 ▶
    그 때 꿈도 수학, 과학 쪽이니까 나는 수학을 잘하는구나..이래서 고등학교 가서도 잘 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즐거웠던 것 같아요. 내가 뭔가를 하나 특출나게 잘한다는 게..

    고3이 된 지금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 김 00(가명)/고등학교 3학년 ▶
    정말 하기 싫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그냥 되게 수학책 찢어버리고 싶은 그런 느낌인데, 이게 안 하면 또 막 감당이 안되는..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고1 때 잠시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가 1년 뒤엔 마음을 다잡았지만 수학 점수만큼은 도무지 만회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놓쳐버린 앞부분을 복습해 보긴 했지만 멀찌감치 앞서가는 학교 진도를 도저히 따라잡기 어려웠습니다.

    어렸을때 느꼈던 흥미는 온데간데 없이 이제는 풀든 찍든 답만 맞히자는 상황입니다.

    ◀ 김 00(가명)/고등학교 3학년 ▶
    애들끼리 '나 수포자야, 수포자' 이러면서 그냥 말로는 '내 나이만큼 점수 받았다' 100점 만점 중에 19점'.'망했다' 이러면서 웃으면서 '하이 파이브'하고 이러는데 속은 이제 타들어가는 거죠. (수학 공부) 양 자체가 너무 많고요.한 번 해야하는 양이.

    고등학교 수학은 입시 준비로 파행이 일상화 돼있습니다.

    교과서는 이과의 경우 3년에 맞춰 여섯 권으로 나눠져 있지만 보통 2학년 때 다 끝냅니다.

    3학년 한 해는 입시대비 문제풀이.

    여기에 수능문제가 출제된다는 EBS 교재가 5권.

    이렇게 문제 풀이에만 매달리니 교과 과정이 별 의미가 없고, 쫓아오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도 사실상 손을 놓는 분위기입니다.

    ◀ 박 00/고등학교 2학년 ▶
    (수학) 선생님이 시작하기 전에 '하고 싶은 공부하라'고 그래요. 꼭 수학 안해도 되니까 애들이 수업을 안들으니까 얘네는 빨리빨리 하고 그냥 진도 빨리 빼고 다른 공부 하라고.

    2580과 만난 현직 수학교사는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교사로서 자괴감을 느낄 정도라고 털어놓습니다.

    ◀ 윤민지/고등학교 수학교사 ▶
    (수학 선생님들끼리) '오늘은 특히 오후에 수업했더니 정말 몇 명 없더라.' '2~3명 데리고 했다.'뭐 이런 식의 얘기도 사실은 공공연히 하는..

    결국 1,2년 미리 앞서 교과과정을 공부해두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학부모들의 말입니다.

    선행학습을 시작하는 나이는 점점 낮아지고 안 그래도 어려운 수학은 더 어려워집니다.

    심지어 영재고나 과학고 입학을 노리는 이른 바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 중학교 2학년 학부모/서울 대치동 ▶
    (사교육을) 7세 때부터 시작해가지고 다양하게. 그래서 한 (초등학교) 4학년 말이나 그 정도 되면 (고등학교 과정인) '수학의 정석'이 들어가는 거에요.

    일반고등학교의 경우도 선행 학습 없이는 시험 대비가 사실상 힘들다고 학생들은 말합니다.

    ◀ 주수아/고등학생 ▶
    (선행학습을 안하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학교에서도 아예 프린트를 주거든요 이제는.그런데 프린트 문제를 보면 어떤 느낌이냐면요 '자 이제 걷는 방법을 가르쳐줬으니 50미터를 3초 안에 돌파해보아라.' 약간 이런 느낌이에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는 1위.

    하지만 흥미도는 전체 34개 국가 중에 28위.

    말자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수학은 '잘하긴 하지만 재미없는 과목'이란 뜻입니다.

    2580이 한 입시학원과 함께 2015학년도 수능시험 결과를 분석해보니 국어, 영어 같은 다른 과목은 성적 분포 그래프가 정상적인 포물선 모양, 즉 중위권이 많지만 수학만은 예외입니다.

    성적 양극화가 심해 중간이 푹 꺼진 M자 모양입니다.

    ◀ 임성호/하늘교육 대표 ▶
    수능 시험에서 (수학이) 30점도 안 나오는 학생들이 약 한 40% 정도 된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40% 이상 있다고 일단 봐야하죠.

    왜 많은 학생들이 포기를 해야 할 만큼 수학문제가 어려워야만 하나.

    전문가들은 입시에서 변별력의 도구로 수학이 이용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정답과 오답이 명확한 수학이야말로 문제가 어려울수록 학생별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란 겁니다.

    특히 2018년도 수능부터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기로 한 입시정책이 발표된 뒤 이런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 이 범/교육평론가 ▶
    기계적으로 표준적으로 외우다시피해서 풀어내는 이런 훈련을 시켜야 하는 거고 수능이 그런 식으로 돼 있으니까 고등학교 수학, 중학교 수학이 다/그런 일변적인 수학으로 가버린 거죠.

    안 그래도 어려운데 정신없이 나가는 진도, 결국 선행학습, 그마저 못 따라가면 수포자가 되는 악순환.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3년 전 초등학교부터 새로운 방식의 교과 과정을 도입했습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 수학. 그런데 이게 또다른 걱정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수학 교과서.

    '6명이 잠수함 2대에 나눠타는 방법'을 묻는 이 문제는 문장이 무려 6줄입니다.

    단순 계산만 시키지 말고, 이야기를 통해 흥미를 느끼게 해주자는 취지지만 초등학교 2학년 국어 실력으론 문제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 백선숙씨/학부모 ▶
    저희 (초등학교 4학년) 작은 애는 사실 국어도 조금 늦거든요. 국어가 안되니까 수학 스토리텔링이 오히려 더 또 하나의 문장제화된 부담스러운 수학이 된 거죠.

    초등학교 2학년인 박 모양은 1학년 때부터 수학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 김 00/초등학교 2학년 박 00 어머니 ▶
    스토리텔링은 결국은 논술이 뒷받침 돼야 해서 국어 논술을 하고 있고 수학 동화라고 그런 것도 많이 읽히고 또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수학의 연산 그러니까 덧셈,뺄셈,곱셈,나눗셈을 철저하게..

    결국 박 양은 수학 한 과목을 위해

    1. 수학 학원
    2. 독서.논술 방문학습
    3. 연산 학습지
    4. 수학 동화책
    5. 유행하는 심화 문제집 풀기
    까지 다섯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 김 00(가명) 초등학교 2학년 박 00 어머니 ▶
    저도 사실 제가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참 힘들었겠다라고 싶을 정도예요. 어리고 힘들긴 하지만 지금부터 여러가지 기초 교육을 시켜야 된다고 생각해서..

    어렸을 때는 창의력, 그러다 학년이 올라가면 문제풀이, 더 헷갈리는 겁니다.

    "수학을 잘하면 뭐합니까? 싫어하는데. 수학 점수가 높으면 뭐합니까? 수학을 거들떠 보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왜 모든 아이들이 어려운 수학을 획일적으로 많이 배워야 하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수학 과정의 범위 자체를 20~30% 정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 윤지희/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
    외국에만 나가면 모든 (한국) 아이들이 수학 영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학을 너무 잘한다. 그리고 거꾸로 (외국에서) 한국에만 들어오면 '수포자'가 되어버리는. 이것은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나라 수학 교육에 책임이 있다.."

    교육부도 '수포자'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오는 9월 새로운 수학 교육 과정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체험과 탐구 중심으로 쉽고 재미있게 개편한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그러나 수학이 사실상 입시에 맞춰져 있는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스토리텔링 수학'의 전철을 되풀이할 거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 김윤배 교수/성균관대 물리학과 ▶
    '교육'에 목표를 잡는 게 아니라 '입시'에 목표를 잡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상위권만 보죠. 이제는 학령 인구가 줄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의 명운은 상위권이 진 게 아니고 중하위권 3분의 2 아이들이 얼마나 훌륭한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느냐

    뭘 위해 수학을 배우는지, 수학 포기가 곧 인생 포기가 돼야 하는지.

    이런 아이들의 물음에 자신있게 답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 윤민지/고등학교 수학교사 ▶
    애들한테 그렇게 꿈을 짓밟아주는 그런 과목이 되어선 안되잖아요. 다시 교사가 된다면 정말 모든 애들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과목의 교사가 되고 싶어요.

    수학은 모든 학문을 하기 위한 기초학문이라고들 합니다.

    논리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게 수학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에게 수학이란 과목이 '포기'와 '좌절'을 먼저 가르치고 있다면, 그래서 수학 배우기 싫다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왜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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