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조의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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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땅에서 말라죽은 농작물을 붙잡고…가뭄과의 사투
갈라진 땅에서 말라죽은 농작물을 붙잡고…가뭄과의 사투
입력
2015-06-22 10:03
|
수정 2015-06-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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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에 찾아온 대가뭄. 소양호가 바닥을 드러냈고 저수지가 사라졌습니다.
땅은 갈라지고 농민들의 마음은 타들어갑니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강 본류에서 물을 퍼다 산간지역으로 나르는 공수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이 없어 파종을 못하고 채소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엘니뇨 등 기후변화의 영향 등으로 이제는 일상적 현실로 다가와버린 시대.
이제 하늘만 쳐다보고 비를 기다리기만 하는 단계는 지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근본적 대책은 무엇일지 따져봅니다.
============================================================
논바닥은 갈라터지고, 벼는 시들었습니다.
“60만 평 중에 20만 평이 고사됐어요. (고사됐다면 아예) 죽었다는 거죠.”
물은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고
“이렇게 흙이 다 말라가지고요. 저수지가 먼지가 나도록 흙이 다 바싹 말랐어요.”
농부들은 여물기도 전에 말라 죽은 농작물만 붙들고 있습니다.
“다 바스러지잖아요 말라가지고. 이게 퍼래야 되는데.. 농민들은 어떻게 해야 돼요? 하늘밖에 쳐다볼 데가 없어요.”
강원도 산골짜기의 고랭지 배추밭, 김장철에 내놓을 배추가 한창 자랄 때지만 이제야 모종을 심고 있습니다.
심어놓은 배추가 일주일도 안돼 모두 말라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박민자 ▶
“우리가 잘못 심은 게 아니고 이게 가물어서 다 죽었단 말야. 젖은 흙이 안 나와요 (원래 겉흙은 말라도 파면은 원래 좀 젖어 있잖아요) 맞아. 젖어 있어야 맞지 그게. 이치상으론 맞는데 젖어 있는 게 없어. 이렇게 파도 안 나오잖아. 비 안온지 오래 됐잖아. 가뭄이 있어도 이런 건.. 이런 가뭄은 없어. 아유 무서워라 이거 어떡해...”
이렇게 오늘 다시 심고 있는 배추 모종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며칠 안에 모두 말라 죽어버릴지 모릅니다.
그걸 알면서도 일손을 멈출 수 없는 농민들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말라버린 하늘과 땅에 맞서는 승산 없는 싸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어디론가 출동 중인 소방차,
그런데 화재 현장이 아니라 말라붙은 논에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몇 년 째 이어진 강수량 부족 때문에 이곳 강화도의 열 다섯 개 공공저수지 가운데 열 한 곳은 물 한 방울 찾기 힘들만큼 바짝 말랐습니다.
소방차 열여섯 대가 매일같이 섬 곳곳에 부지런히 물을 실어 나르지만, 역부족입니다.
◀ 양재유 / 인천강화소방서 ▶
“하루에 5회밖에 급수를 못 해드립니다. 물론 새벽부터 밤새 다 해드리고 싶은데 저희 인력이라든가 장비라든가 또 시내에서 차량들이 장비가 와야 되기 때문에...”
농경지 400헥타르, 축구장 560개 면적의 논이 누렇게 빛을 잃은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한창 물을 머금고 자라야 할 벼들은 이미 생기를 잃은지 오랩니다.
◀ 고배근 ▶
“이런 거는 완전히 고사가 다 됐고 이런 거는 하나씩 남아 있는데..”
이미 모내기 철이 지난 상황이라 이제와서 비가 내린다 해도 최악의 흉작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 고배근 ▶
“일 년에 한 번밖에 못하는 거라. 지금 또 살려보겠다고 재이앙하는 사람도 있고, 근데 모가 없어가지고. 키울 예비모가 없어 가지고...”
강원도 춘천의 한 마을 저수지도 가뭄으로 말라붙었습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바닥은 손을 대자 힘없이 바스라집니다.
남은 물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자리엔 올챙이 몇 마리가 힘겹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수심이 깊으니 수영을 하지 말란 표지판이 무색합니다.
◀ 최춘영 ▶
“여기가 만천리. 일만 만, 샘 천. 그러니까 곳곳에 샘이 터지는 데라서 그렇게 마르지 않았는데...”
곳곳에서 관정을 파고, 굴착기로 계곡 바닥을 파헤치고.
없는 물을 쥐어짭니다.
◀ 박용균 ▶
“한 달이 걸렸다고 물을. 한 달을 퍼서 가까스로 낸 거야. 지금 이거 물을 못 대면 한 일주일 못 대면 (벼가) 다 타죽어 버린다고.”
요즘 세상에 웬 기우제냐고들 하겠지만, 농민들 심정은 그게 아닙니다.
◀ 김신림 / 이장 ▶
“물을 푸는 것도 한정이 있어요. 지하수를 많이 끌어다 쓰다보니까. 하느님이 내려주지 않으면 농민들은 죽음에 가깝죠.”
물을 실을 수 있는 차량은 종류를 불문하고 가뭄 현장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산불 방재 차량에 심지어 소위 '물대포'라 불리는 경찰 살수차까지 동원됐습니다.
◀ 곽인호 경위 / 서울지방경찰청 ▶
“시위 진압용으로 쓰이는 차량인데요. 배추밭에 물을 준다는 게 생소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뭄 때문에 힘들어하는 농민들이랑 같이 할 수 있어서..”
대형 차량이 올라오기 힘든 해발 1100미터 고랭지 밭엔 인근 부대 장병들이 물통을 지고 올라옵니다.
◀ 박인복 ▶
“물을 줘도 밑에 수분이 없어서 이 정도면 지금 목숨 부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나마도 군인들이 와서 도와주니까 이정도라도 살려놓은 거죠.”
말라가는 건 농작물만이 아닙니다.
동네 가로수들에는 뿌리에 물을 대주는 링거 주사가 줄줄이 걸렸습니다.
◀ 장재혁 / 증평군청 ▶
“요즘같은 가뭄 시기에는 직접적으로 물을 주면 증발되는 양이 많아서 나무에 수분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던 비소식이 어제 들려왔지만, 서울에 40mm 넘는 많은 양이 내린 반면, 정작 가뭄이 극심한 대부분 지역엔 하루 종일 5mm도 채 내리지 않았습니다.
◀ 류두희 / 기상청 ▶
"부족한 강수량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가뭄 해갈을 위해선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야 되는데요."
기상청은 올해 장마가 오는 25일 제주 남해상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보하고 있습니다.
◀ 고배근 ▶
“그냥 집이 떠내려가도 300mm 이상 쏟아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상 기후 때문에 장마전선이 당분간 중부지방까지 올라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장마가 오더라도 강수량이 적은 마른 장마가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 반기성 ▶
“장마가 옛날 고전적인 장마같이 일주일 열흘씩 계속 흐리고 비가 오는 장마가 아니라 좀 간헐적인 비가 내리는 형태가 되지 않겠느냐...”
남한강의 젖줄인 충주호 상류인 이곳.
지난 겨울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수위가 30미터 넘게 내려가면서, 원래 물이 차 있던 이곳은 이렇게 풀이 무성한 풀밭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1994년 이후 최악의 물 고갈 상황입니다.
하늘에서 살펴보면 더 심각합니다.
배를 타는 선착장이 땅 위에 덩그러니 올라와 있고,
30년 전 사라졌던 수몰지역, 물속에 잠겨 있던 집터까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북한강 수계 소양강 댐 역시 역대 최저 수위에 다가섰습니다.
위성사진을 비교해보면 푸른 물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3년 전과 지금 모습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남한강의 충주댐과 북한강의 소양강댐, 수도권 물 공급의 75%를 담당하는 두 물줄기가 동시에 말라가고 있는 겁니다.
◀ 김경환 / 국토교통부 1차관 ▶
“경계 단계에 이르게 되면 농업용수의 감축이 불가피할 텐데 상황 대비에 만전을 기해주실
것을…”
강원도 속초를 지나는 하천인 쌍천.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물이 없습니다.
해마다 줄어들던 강물이 가뭄으로 고갈되면서 물 없는 강, 건천이 돼 버린 겁니다.
이곳을 10만 시민의 취수원으로 활용해 온 속초시는 결국 지난 17일부터 도시 전체에 야간 제한 급수를 시작했습니다.
◀ 김호정 / 속초시 상수도사업소 ▶
"비상 취수시설을 총 가동해서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득이 갈수기가 지속이 되면서 제한 급수를 시행하게 됐습니다."
물이 사라진 도시는 빠르게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 송영균 ▶
"당장에 물통도 미처 사지 못한 분들도 계셔가지고 저희도 저녁 영업 끝나면 저희 물통 쓰는 걸 다른 데 빌려줘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있는데.."
◀ 최창길 ▶
"10시부터 장사 시작인데 10시부터 안 나오기 시작하면 거의 뭐 (장사) 다했죠."
속초를 비롯해 현재 37개 지역 4만 8천 가구에 물 공급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가뭄이 길어질수록 그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허재영 교수 / 대전대 토목공학과 ▶
"우리가 평상시에 물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죠. 다만 이런 50년 빈도 100년 빈도의 가뭄이 왔을 때 그 가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 있는 것이죠."
물이 넘쳐나는 곳도 있습니다.
이곳은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남한강 하류 이포보입니다.
제 뒤로 보시는 것처럼 오랜 가뭄에도 둑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찬 만수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물을 가뭄 지역 해갈에 쓰면 되지 않을까, 그게 생각처럼 안 된다는 게 문젭니다.
2580은 이포보와 같은 행정구역인 여주시 대신면의 한 시골마을을 찾아갔습니다.
농가 마당의 수도꼭지에선 아무리 돌려봐도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른 땅에 콩을 심고 있는 농민을 만났습니다.
◀ 현정열 ▶
“(물은 또 어디서 길어오셨어요) 먹는 물 조금씩 주는거죠. (아 드시는 물로? 그럼 먹는물 모자랄텐데 그걸 밭작물 주시는 거예요?) 그래도 심어야 하잖아요.”
마실 물까지 부어 가며 농작물을 길렀지만, 가뭄 끝에 얻은 결실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 임종회 ▶
"이렇게 감자가 수확기에 좀 커야 할텐데 이게 크질 못하고 있잖아요. 이거 보세요. 열리지도 않고 더 크지도 않아요. 지금 수확기거든요."
가까운 곳에 물이 가득한 걸 알아도 끌어 올 방법이 없습니다.
홍수와 가뭄을 조절한다며 보에만 물을 가득 채웠을 뿐, 정작 주변 물길과 연결하는 관개수로는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임종회 ▶
"남한강 물이 암만 많으면 뭘 합니까 눈에 보이는 그림의 떡이지. 보고만 있는 거죠. 거기서 여기까지 수로나 뭐 양수기 이런 걸 해서 여기까지 끌어들일 때는 그 돈이 한두 푼 갖고 되겠어요?"
수자원공사는 뒤늦게 급수차 수십 대를 동원해 이포보 물을 마을 저수지에 공급하기 시작했지만, 물을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랍니다.
◀ 임종회 ▶
“밑으로 전부 다 스며들어가니까 마른 땅에.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 깨진 독에 물 붓기다 그런 말이 이런 데를 두고 하는 말이예요.”
◀ 이규남 / 수자원공사 한강통합물관리센터장 ▶
“지자체 정부협의를 통해서 4대 강 물 혜택을 먼 지역까지 보낼 수 있도록 고민하겠습니다.”
정부는 뒤늦게 4대강 16개 보의 물을 주변 농지로 보낼 수 있는 시설 확충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금 건설을 시작해도 공사 기간은 최소 10년, 예산도 수천억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 허재영 교수 / 대전대 ▶
"물이 부족하지 않은 지역에 보를 만들어서 그 물을 어디에 쓸지 모르는 상황이 돼 버린 거죠. 좀 더 체계적인 물 공급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고 그런 시설도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비가 오고 안 오고는 사람의 능력을 벗어난 문제입니다.
하지만 하늘만 쳐다보며 비가 오길 바라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자연재해에 대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 오래 전부터 국가가 해 왔던 몫입니다.
이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땅은 갈라지고 농민들의 마음은 타들어갑니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강 본류에서 물을 퍼다 산간지역으로 나르는 공수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이 없어 파종을 못하고 채소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엘니뇨 등 기후변화의 영향 등으로 이제는 일상적 현실로 다가와버린 시대.
이제 하늘만 쳐다보고 비를 기다리기만 하는 단계는 지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근본적 대책은 무엇일지 따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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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바닥은 갈라터지고, 벼는 시들었습니다.
“60만 평 중에 20만 평이 고사됐어요. (고사됐다면 아예) 죽었다는 거죠.”
물은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고
“이렇게 흙이 다 말라가지고요. 저수지가 먼지가 나도록 흙이 다 바싹 말랐어요.”
농부들은 여물기도 전에 말라 죽은 농작물만 붙들고 있습니다.
“다 바스러지잖아요 말라가지고. 이게 퍼래야 되는데.. 농민들은 어떻게 해야 돼요? 하늘밖에 쳐다볼 데가 없어요.”
강원도 산골짜기의 고랭지 배추밭, 김장철에 내놓을 배추가 한창 자랄 때지만 이제야 모종을 심고 있습니다.
심어놓은 배추가 일주일도 안돼 모두 말라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박민자 ▶
“우리가 잘못 심은 게 아니고 이게 가물어서 다 죽었단 말야. 젖은 흙이 안 나와요 (원래 겉흙은 말라도 파면은 원래 좀 젖어 있잖아요) 맞아. 젖어 있어야 맞지 그게. 이치상으론 맞는데 젖어 있는 게 없어. 이렇게 파도 안 나오잖아. 비 안온지 오래 됐잖아. 가뭄이 있어도 이런 건.. 이런 가뭄은 없어. 아유 무서워라 이거 어떡해...”
이렇게 오늘 다시 심고 있는 배추 모종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며칠 안에 모두 말라 죽어버릴지 모릅니다.
그걸 알면서도 일손을 멈출 수 없는 농민들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말라버린 하늘과 땅에 맞서는 승산 없는 싸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어디론가 출동 중인 소방차,
그런데 화재 현장이 아니라 말라붙은 논에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몇 년 째 이어진 강수량 부족 때문에 이곳 강화도의 열 다섯 개 공공저수지 가운데 열 한 곳은 물 한 방울 찾기 힘들만큼 바짝 말랐습니다.
소방차 열여섯 대가 매일같이 섬 곳곳에 부지런히 물을 실어 나르지만, 역부족입니다.
◀ 양재유 / 인천강화소방서 ▶
“하루에 5회밖에 급수를 못 해드립니다. 물론 새벽부터 밤새 다 해드리고 싶은데 저희 인력이라든가 장비라든가 또 시내에서 차량들이 장비가 와야 되기 때문에...”
농경지 400헥타르, 축구장 560개 면적의 논이 누렇게 빛을 잃은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한창 물을 머금고 자라야 할 벼들은 이미 생기를 잃은지 오랩니다.
◀ 고배근 ▶
“이런 거는 완전히 고사가 다 됐고 이런 거는 하나씩 남아 있는데..”
이미 모내기 철이 지난 상황이라 이제와서 비가 내린다 해도 최악의 흉작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 고배근 ▶
“일 년에 한 번밖에 못하는 거라. 지금 또 살려보겠다고 재이앙하는 사람도 있고, 근데 모가 없어가지고. 키울 예비모가 없어 가지고...”
강원도 춘천의 한 마을 저수지도 가뭄으로 말라붙었습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바닥은 손을 대자 힘없이 바스라집니다.
남은 물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자리엔 올챙이 몇 마리가 힘겹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수심이 깊으니 수영을 하지 말란 표지판이 무색합니다.
◀ 최춘영 ▶
“여기가 만천리. 일만 만, 샘 천. 그러니까 곳곳에 샘이 터지는 데라서 그렇게 마르지 않았는데...”
곳곳에서 관정을 파고, 굴착기로 계곡 바닥을 파헤치고.
없는 물을 쥐어짭니다.
◀ 박용균 ▶
“한 달이 걸렸다고 물을. 한 달을 퍼서 가까스로 낸 거야. 지금 이거 물을 못 대면 한 일주일 못 대면 (벼가) 다 타죽어 버린다고.”
요즘 세상에 웬 기우제냐고들 하겠지만, 농민들 심정은 그게 아닙니다.
◀ 김신림 / 이장 ▶
“물을 푸는 것도 한정이 있어요. 지하수를 많이 끌어다 쓰다보니까. 하느님이 내려주지 않으면 농민들은 죽음에 가깝죠.”
물을 실을 수 있는 차량은 종류를 불문하고 가뭄 현장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산불 방재 차량에 심지어 소위 '물대포'라 불리는 경찰 살수차까지 동원됐습니다.
◀ 곽인호 경위 / 서울지방경찰청 ▶
“시위 진압용으로 쓰이는 차량인데요. 배추밭에 물을 준다는 게 생소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뭄 때문에 힘들어하는 농민들이랑 같이 할 수 있어서..”
대형 차량이 올라오기 힘든 해발 1100미터 고랭지 밭엔 인근 부대 장병들이 물통을 지고 올라옵니다.
◀ 박인복 ▶
“물을 줘도 밑에 수분이 없어서 이 정도면 지금 목숨 부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나마도 군인들이 와서 도와주니까 이정도라도 살려놓은 거죠.”
말라가는 건 농작물만이 아닙니다.
동네 가로수들에는 뿌리에 물을 대주는 링거 주사가 줄줄이 걸렸습니다.
◀ 장재혁 / 증평군청 ▶
“요즘같은 가뭄 시기에는 직접적으로 물을 주면 증발되는 양이 많아서 나무에 수분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던 비소식이 어제 들려왔지만, 서울에 40mm 넘는 많은 양이 내린 반면, 정작 가뭄이 극심한 대부분 지역엔 하루 종일 5mm도 채 내리지 않았습니다.
◀ 류두희 / 기상청 ▶
"부족한 강수량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가뭄 해갈을 위해선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야 되는데요."
기상청은 올해 장마가 오는 25일 제주 남해상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보하고 있습니다.
◀ 고배근 ▶
“그냥 집이 떠내려가도 300mm 이상 쏟아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상 기후 때문에 장마전선이 당분간 중부지방까지 올라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장마가 오더라도 강수량이 적은 마른 장마가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 반기성 ▶
“장마가 옛날 고전적인 장마같이 일주일 열흘씩 계속 흐리고 비가 오는 장마가 아니라 좀 간헐적인 비가 내리는 형태가 되지 않겠느냐...”
남한강의 젖줄인 충주호 상류인 이곳.
지난 겨울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수위가 30미터 넘게 내려가면서, 원래 물이 차 있던 이곳은 이렇게 풀이 무성한 풀밭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1994년 이후 최악의 물 고갈 상황입니다.
하늘에서 살펴보면 더 심각합니다.
배를 타는 선착장이 땅 위에 덩그러니 올라와 있고,
30년 전 사라졌던 수몰지역, 물속에 잠겨 있던 집터까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북한강 수계 소양강 댐 역시 역대 최저 수위에 다가섰습니다.
위성사진을 비교해보면 푸른 물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3년 전과 지금 모습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남한강의 충주댐과 북한강의 소양강댐, 수도권 물 공급의 75%를 담당하는 두 물줄기가 동시에 말라가고 있는 겁니다.
◀ 김경환 / 국토교통부 1차관 ▶
“경계 단계에 이르게 되면 농업용수의 감축이 불가피할 텐데 상황 대비에 만전을 기해주실
것을…”
강원도 속초를 지나는 하천인 쌍천.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물이 없습니다.
해마다 줄어들던 강물이 가뭄으로 고갈되면서 물 없는 강, 건천이 돼 버린 겁니다.
이곳을 10만 시민의 취수원으로 활용해 온 속초시는 결국 지난 17일부터 도시 전체에 야간 제한 급수를 시작했습니다.
◀ 김호정 / 속초시 상수도사업소 ▶
"비상 취수시설을 총 가동해서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득이 갈수기가 지속이 되면서 제한 급수를 시행하게 됐습니다."
물이 사라진 도시는 빠르게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 송영균 ▶
"당장에 물통도 미처 사지 못한 분들도 계셔가지고 저희도 저녁 영업 끝나면 저희 물통 쓰는 걸 다른 데 빌려줘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있는데.."
◀ 최창길 ▶
"10시부터 장사 시작인데 10시부터 안 나오기 시작하면 거의 뭐 (장사) 다했죠."
속초를 비롯해 현재 37개 지역 4만 8천 가구에 물 공급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가뭄이 길어질수록 그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허재영 교수 / 대전대 토목공학과 ▶
"우리가 평상시에 물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죠. 다만 이런 50년 빈도 100년 빈도의 가뭄이 왔을 때 그 가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 있는 것이죠."
물이 넘쳐나는 곳도 있습니다.
이곳은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남한강 하류 이포보입니다.
제 뒤로 보시는 것처럼 오랜 가뭄에도 둑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찬 만수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물을 가뭄 지역 해갈에 쓰면 되지 않을까, 그게 생각처럼 안 된다는 게 문젭니다.
2580은 이포보와 같은 행정구역인 여주시 대신면의 한 시골마을을 찾아갔습니다.
농가 마당의 수도꼭지에선 아무리 돌려봐도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른 땅에 콩을 심고 있는 농민을 만났습니다.
◀ 현정열 ▶
“(물은 또 어디서 길어오셨어요) 먹는 물 조금씩 주는거죠. (아 드시는 물로? 그럼 먹는물 모자랄텐데 그걸 밭작물 주시는 거예요?) 그래도 심어야 하잖아요.”
마실 물까지 부어 가며 농작물을 길렀지만, 가뭄 끝에 얻은 결실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 임종회 ▶
"이렇게 감자가 수확기에 좀 커야 할텐데 이게 크질 못하고 있잖아요. 이거 보세요. 열리지도 않고 더 크지도 않아요. 지금 수확기거든요."
가까운 곳에 물이 가득한 걸 알아도 끌어 올 방법이 없습니다.
홍수와 가뭄을 조절한다며 보에만 물을 가득 채웠을 뿐, 정작 주변 물길과 연결하는 관개수로는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임종회 ▶
"남한강 물이 암만 많으면 뭘 합니까 눈에 보이는 그림의 떡이지. 보고만 있는 거죠. 거기서 여기까지 수로나 뭐 양수기 이런 걸 해서 여기까지 끌어들일 때는 그 돈이 한두 푼 갖고 되겠어요?"
수자원공사는 뒤늦게 급수차 수십 대를 동원해 이포보 물을 마을 저수지에 공급하기 시작했지만, 물을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랍니다.
◀ 임종회 ▶
“밑으로 전부 다 스며들어가니까 마른 땅에.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 깨진 독에 물 붓기다 그런 말이 이런 데를 두고 하는 말이예요.”
◀ 이규남 / 수자원공사 한강통합물관리센터장 ▶
“지자체 정부협의를 통해서 4대 강 물 혜택을 먼 지역까지 보낼 수 있도록 고민하겠습니다.”
정부는 뒤늦게 4대강 16개 보의 물을 주변 농지로 보낼 수 있는 시설 확충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금 건설을 시작해도 공사 기간은 최소 10년, 예산도 수천억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 허재영 교수 / 대전대 ▶
"물이 부족하지 않은 지역에 보를 만들어서 그 물을 어디에 쓸지 모르는 상황이 돼 버린 거죠. 좀 더 체계적인 물 공급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고 그런 시설도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비가 오고 안 오고는 사람의 능력을 벗어난 문제입니다.
하지만 하늘만 쳐다보며 비가 오길 바라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자연재해에 대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 오래 전부터 국가가 해 왔던 몫입니다.
이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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