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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권희진 기자

폐업하는 날

폐업하는 날
입력 2015-08-24 12:05 | 수정 2015-08-2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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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년간 10만 7천 곳이 간판을 내렸습니다.

    자영업 이야기입니다.

    너무 많이 망하다 보니 영세 자영업자 수가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문 닫는 가게가 너무 많아 폐업 처리 업체들의 창고에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수거한 집기들이 쌓여 있습니다.

    정부는 우리 경제구조에서 자영업의 비중이 너무 크다며 창업보다는 재취업 쪽으로 유도하는 방식으로 자영업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취업의 기회가 적다 보니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폐업의 위험을 알면서도 다른 선택 없이 자영업의 정글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2580은 장사를 접고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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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덜컹..”

    작은 곱창집의 주방 벽을 지켰던 선반.

    생각과 달리 쉽게 떼어지지 않습니다.

    “위잉 위잉..”

    버스 종점 부근 주택가의 이 작은 가게에서만 10년.

    최근 들어 우두커니 손님만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건물주는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가게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박 모씨]
    “가게 세를 10만 원 올려달라고 하니까 이틀 고민 끝에 그럼 정리하겠다.. 그래서 그냥 보증금 빼고 나가는 거예요.”

    집기를 처분하고 나니, 팔다 남은 맥주와 소주, 약간의 식재료 정도만 남았습니다.

    [박 모씨]
    “10년이나 했으니 당연히 안 서운하다면 거짓말이겠죠. 거짓말이지 서운하죠. 서운한데 거기에 대한 미련이 없는 거지..”

    바로 어제 문을 닫은 박 씨의 가게를 비롯해 올 상반기에만 10만 7천 명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간판을 내렸습니다.

    새로 개업하는 것보다 망하는 가게가 훨씬 더 많다 보니 영세 자영업자 수는 20년 만에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포화상태인 자영업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되는 과정이라지만, 그 당사자가 내가 되는 고통은 혹독합니다.

    손님들이 몰리는 저녁 시간.

    족발을 다듬는 김연화 씨의 손이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족발에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굽는 일부터, 반찬을 내고, 족발을 포장하는 일이며 설거지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합니다.

    [김연화/자영업자]
    “중간중간 틈나는 대로 수시로 설거지해야 되고 수시로 재료 준비해야 되고..”

    돌볼 사람 없는 7살 딸은 늦은 밤까지 바깥 구경 한 번 못하고 엄마 곁을 맴돕니다.

    2년 전, 김 씨는 6천만 원을 빌려 이 족발집을 열었습니다.

    권리금 3천만 원에 시설비와 보증금 3천만 원.

    월 154만 원의 임대료를 내며 가게를 꾸려나가려면 종업원을 고용할 수가 없어 모든 걸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힘들어도 그냥 지나가겠지 지나가겠지 또 지나가니까.. 그 시간만 지나가면 숨 쉬고.. 또 생활이 되니까요.”

    지금은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꽤 될 만큼 제법 유명해졌지만 지난 2년을 돌아보면 김 씨에게도 어린 딸에게도 혹독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아이들은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해야 되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쟤가 참아야 되니까.. 그게 엄마로서 되게 힘들어요. 힘든 게 아니라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가슴이 미어지는 거 같아요..”

    그런데 지난달, 김 씨는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새 건물을 지어야 하니 다음 달까지 가게를 비우라는 것.

    그렇게 간단히 김 씨는 생업을 잃었고,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전 재산인 권리금과 시설 투자비 5천만 원을 어디서도 돌려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어려웠던 개업 초기, 몇 차례 월세가 밀렸던 게 화근이 됐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건물을 짓게 되면 건물주가 권리금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것도 저희가 법적으로 보호를 못 받는 게, 임대료를 밀렸기 때문에 저는 또 해당이 안 되는 거예요.”

    밀린 임대료는 보증금에서 제했기 때문에 건물주의 손해는 없지만, 임대료를 제때 못 냈다는 사실 하나로 전 재산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김연화/자영업자]
    “법이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어요. 이렇게 무서운 줄 알았으면 소상공인 대출받아서 그때그때 냈을 거예요. 근데 그땐 대출받는 것조차도 또 빚인 거잖아요.”

    꼼짝없이 빈손으로 거리에 나앉게 됐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나쁜 생각도 했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근데 지금도 마음 일부분은 그런 마음이 있는데.. 아직 9월이 온 게 아니니까.”

    늦은 밤,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손님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김종산]
    “가지고 있으면 속만 아프니까 차라리 없애고 잊어버리는 게 어떻게 보면 속 편할 수도 있고.”

    하나하나 기억이 생생한 물건들에 값이 매겨질 때,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집니다.

    [김종산]
    “냉온 풍긴 저건 얼마 안 됐어요. 에어컨하고 온풍기하고 같이 되는 거예요. 저게.”“가마솥은 거의 고 물값 밖에 안 쳐드려요.”

    [김종산]
    “(재료는 좋은 거 사셨네. 다.)”
    “스테인리스로. 천년만년 할 거라고.”

    천년만년 할 거라고 수천만 원 주고 사들인 집기와 도구들에는, 이 날 140만 원의 값이 매겨졌습니다.

    [김종산]
    “(140에 합시다.)”
    “허허 허허..”

    폐업하는 식당들이 넘쳐나면서 중고 주방 시설의 가격은 고물값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하근성/주방용품 유통업]
    “거의 뭐 의정부 한수 이북 지역에서는 100집이 오픈을 한다면 살아남는 집이 한 다섯 집이나.”

    물건들이 실려나가는 이튿날, 손때묻은 집기들이 짐차에 하나씩 실리는 동안 김 씨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모 씨의 고깃집은 그런대로 사정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매출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올봄 불청객 메르스는 남은 희망까지 거둬가 버렸습니다.

    [이 모 씨/자영업자]
    “지금은 직원들 다 줄이고 지금 직원 다섯여섯 명 있던 거 다 줄이고 두 명, 저까지 세명 그래도 버티기 힘들죠.”

    직접 고기를 손질하고 만삭의 부인과 함께 애를 써봤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 모 씨/자영업자]
    “(아내가) 오전에 일하고 내일 출산인데 오늘까지 일했어요.”

    4천만 원의 권리금까지 포기하면서, 가게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지만 소식이 없습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월 540만 원의 임대료를 낼 사람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민정/공인중개사]
    “제가 손님을 많이 붙이기도 했는데 임대료에서 다 손들어버리더라고요. 임대료가 5백만 원이 넘는다고 그러면 거기서 장사를 얼마나 잘해야 되겠어요.”

    다음 달까지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 주방 시설을 고 물값에 처분하고 인테리어 철거 비용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합니다.

    망하면서 수천만 원의 손해까지 추가로 입게 되니, 월세 좀 내려달라고 건물주에게 사정도 해봤습니다.

    [이 모 씨/자영업자]
    “지금 매장을 내놨는데 보러 오긴 하는데 세가 워낙 비싸니까 다 고개를 흔들고 간다. 좀 어떻게 세를 좀 네고 해주시라 말씀드렸더니 처음엔 뭐 화를 냈어요.”

    주변 식당들도 겉으로 말을 안 할 뿐, 줄줄이 폐업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민정/공인중개사]
    “그럼 이 동네만 하더라도 열몇 개 나와있습니까?” “네 열몇 개 나와있죠.”

    그래도 임대료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습니다.

    [최민정/공인중개사]
    “(이 근처) 칼국숫집 같은 경우는 실평수 25평 정도 돼요. 그런데 유동인구도 없는데 3백만 원이 넘어요. 처음에는 거기도 종업원이 세명 정도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 내보내고 온 식구들이 하는데 임대료 내기도 정말 힘들다고 그러더라고요.”

    서울 황학동.

    폐업하는 식당의 주방기구를 매입해 되파는 업체들의 창고가 집기며 물품들로 가득합니다.

    보관할 곳이 없어 물건을 더 못 사들이는 건 경험하지 못 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정영일/주방용품 유통업]
    “예전에는 어느 정도 일대일 회전이 됐는데 물건이 좀 부족할 때도 있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게 아니고 물건이 빠지는 게 많죠. 물건 빠지는 게 10개라면 사려는 사람은 5명 밖에 안되는 거죠.”

    자영업으로 살아남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다들 알지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막상 이 길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습니다.

    재취업이 너무나 어렵다 보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결국 자영업에 뛰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년 전, 중견 기업의 임원으로 퇴직한 해외영업 전문가 51살 이 모 씨.

    정부가 지원하는 재취업 교육과 상담을 받았지만 내용을 보고는 한숨이 나왔다고 말합니다.

    이력서 쓰기, 프랜차이즈 산업의 이해, 성공을 부르는 얼굴 경영 같은 강의들이 이른바 재취업 교육입니다.

    [이 모 씨(51살/실직자)]
    “처음에는 기대를 해서 갔다가 받아보고 나서는 이게 아니네. 이래 가지고 그다음부터 잘 안 오거든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취업 교육, 하늘의 별 따기인 재취업.

    결국 직장을 잃으면 자영업 말고는 선택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이 모 씨(51살/실직자)]
    “카페를 해볼까. 빵 가게를 해볼까 김밥집을 해볼까 이런 생각들을 쭉 해보죠. 아 이 아이디어의 빈곤이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동안의 경력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쪽의 경험이 아니었으니까 수십 년이.”

    “에스프레소 4잔, 카푸치노 4잔입니다. 준비 시작!”

    커피를 가르치는 직업학원.

    커피를 갈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중장년층 남성들의 눈빛이 반짝입니다.

    식당 다음으로 폐업이 흔한 게 커피 전문점이라지만 이들 대부분은 최근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동근/52세]
    “자식들이 둘 다 대학생이기 때문에 재취업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죠. 그래서 뭐 카페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최소한 애들이 대학생활을 할 수 있게끔 뭐 그 정도는 돼야 되는 거고.”

    최근엔 50대를 제치고 40대의 창업률과 폐업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타의로 직장을 떠나는 나이가 점점 더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김광석/현대경제연구원]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임금근로자의 근로기간 자체가 조금 짧아지는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 있고요.”

    그리고 그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은 창업한지 5년 안에 문을 닫고 있습니다.

    [김광석/현대경제연구원]
    “재취업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창업하지만 창업해도 폐업률이 높기 때문에 상당히 이쪽으로 갈 수도 없고 이쪽으로 갈 수도 없는 굉장히 어려운 궁지에 몰려있지 않나..”

    정부는 최근, 해고를 좀 더 쉽게 하고, 대신 재취업 교육을 늘리고, 실업수당도 조금 더 올려주는 노동 정책을 내놨습니다.

    청년 취업을 늘리기 위한 대책이라지만, 이같은 방향이 자칫 더 많은 사람들을 이미 포화상태인 자영업으로 등 떠미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지, 현실은 좀 더 깊은 고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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