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최 훈 기자
최 훈 기자
공포의 은퇴 천국
공포의 은퇴 천국
입력
2015-11-30 11:35
|
수정 2015-12-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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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한국인이 피살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올 한 해만 10명입니다.
이 가운데 6명은 은퇴 이민자 또는 사업가입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직접 사업체를 소유할 수 없는 필리핀만의 특이한 제도로 인한 사업체 이권을 노린 살인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살인사건의 표적이 되는 한국인 이민자들입니다.
필리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
지난 9월 필리핀 앙헬레스의 상가 건물 앞.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오고, 차에서 내린 남성이 건물 2층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50초 뒤.
이 남성이 급하게 뛰어 내려와 타고 온 차량 조수석에 타고 달아납니다.
잠시 뒤 건물 안에서 사람들에게 안겨 나온 60대 박모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앞의 남성에게 살해된 겁니다.
[목격자]
"총알 자국 여기 (아 이게 총알 자국이에요?) 쓰러지시고 걔가 여기 와서 확인 사살 네 방. 벽에 있는 게 처음에 쏜 총알입니다. 중앙에 있던 나무 파티션을 통과해서 벽에 맞은 총알 자국입니다."
당시 사무실엔 4명이 있었는데, 범인은 박 씨만 노렸습니다.
[목격자]
"'미스터 박이 누굽니까' 영어로 물었고, 회장 님이 등 뒤돌리고 계시다가 일어시면서 '내가 미스터 박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총을 쏜 거죠."
박 씨는 호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전문 살해범에게 청부 살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누가 살해를 지시했는지는 2달이 지나도록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교민]
"(범인이 잡혔나요?) 네 잡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누가 사주했는지도 나온 거예요?) 아직 밝혀 내진 못 했어요."
숨진 박 씨의 측근 김 모 씨를 취재진의 숙소에서 만났습니다.
김 씨는 이 사건 바로 다음 날 자신도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 ○○/고 박 회장 측근]
"호텔 관련 있는 분들 협박을 조금씩은 받았습니다. 필리핀 애들이 와서 한국을 가라. 내일까지 안 나가면 죽을 수도 있다."
김 씨는 이날 이후 총기를 소지한 보디가드를 고용해 항상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김 ○○/고 박 회장 측근]
"이 사건 이후에 제가 보디가드를 고용하게 됐습니다. (보디가드가) 현직 경찰이니까 총 소유하고 다닙니다. 그 대신 안 보이게끔 가방에 넣고."
필리핀에서 살해된 한국인은 올해만 10명, 최근 3년 동안 33명에 달합니다.
대부분 청부살해를 당했고, 범인은 거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은퇴이민을 왔거나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프로골퍼 봉진호 씨는 필리핀으로 이민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민자 골퍼 봉준호]
"(그 많은 나라 중에 필리핀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세요?) 첫 번째는 저는 영어고요. 애들 영어 때문에 이쪽으로 오게 됐고..."
집값이 한국보다 싼 것도 큰 장점입니다.
1천㎡가 넘는 땅에, 200㎡가 넘는 집을 짓는 데 든 비용은 4억 원 가량.
넓은 뒷마당에 골프 연습장도 설치했습니다.
[강채현/필리핀 이민자]
"저희가 1층에 사고 있고 위에 두 채는 렌트를 놓고 있어요. (그럼 임대료 또 나오겠네요?) 그렇죠. 임대 수익률이 꽤. 한 200만 원 이상이니까."
싼 인건비 덕분에 육아나 집안일은 필리핀 현지인이 다 합니다.
[강채현/필리핀 이민자]
"세 명을 쓴다 해도 한국에서 한 분 쓰는 거보다 훨씬 싸니까 부담스럽진 않죠. 여기 안 왔으면 어땠을 뻔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하여튼 너무 좋고 천국 같아요."
70대 김수택 씨도 노인들에겐 필리핀이 제격이라고 말합니다.
청소, 빨래, 식사까지 다 해주는 사람이 있고, 날씨도 따뜻해서 혼자 지내기엔 필리핀이 한국보다 훨씬 좋다는 겁니다.
[김수택/필리핀 이민자]
"여기 살인 사건이 났다고 하면 나한테 전화가 와요. 그 위험한 데 왜 와서 있느냐고 그런데 사실상 여기는 정말 안전지대거든요."
한국에서 온 필리핀 은퇴 이민자는 해마다 크게 늘어 지금은 7천 명이 넘었고, 곳곳에 이들을 위한 대규모 단지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주택 개발 업체 부민호]
"심한 경우는 건물을 올리지도 않고 선분양 된 경우가 일반적이고요. 건물이 짓는 대로 현재 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치안이 좋은 곳에 모여 살거나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 현지 교민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1시간 거리의 한 외진 마을.
여기에 살던 한국인 부부는 지난달 집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이동 활 회장 교민 보호단체 필리핀 112]
"한국인 부부 사망 사건인데 부인은 안에서 강도가 총을 쏘고 남편이 밖으로 도망가는 사이에 총으로 다리를 쏘고 밖으로 나와서 확인 사살을 하고."
인근의 또 다른 시골 마을.
여기에 살던 한국인 부부도 지난 8월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동활 회장 교민 보호단체 필리핀 112]
"담을 넘어와서 CCTV 전선을 자른 상태에서 부부를 총기로 두 방씩 쏴서 사살하고 내용물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그만 금고만 열렸고 그 외 귀중품은 손을 안 댄 걸 봐서."
현지 경찰은 이들 모두 은퇴 이민을 왔고,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다 원한을 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 원한을 사거나 동업자들끼리 분쟁이 생기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습니다.
하지만 유독 필리핀에선 살인사건이나 살해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필리핀의 특이한 법 때문입니다.
필리핀은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이 사업체 지분 40% 이상을 갖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사업자들은 지분 60%를 현지인 명의로 등록합니다.
이렇게 명의를 빌려준 현지인을 '더미'라고 하는데, '더미'사장이나 이들을 사주한 다른 한국인에 의해 사업체를 뺏기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겁니다.
앞서 본 청부살해 피해자 박모 씨는 필리핀에서 호텔을 운영하던 사업가였습니다.
이 호텔은 실제론 100% 박 회장 소유지만, 문서상으로는 필리핀 사람 3명과 숨진 박 회장 본인, 그리고 한국인 유모 씨가 주주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 씨가 숨진 뒤 호텔 주주 명단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필리핀인 3명은 모두 바뀌었고, 한국인 주주 유모 씨도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문서상으론 박 회장 지분은 불과 20%, 살해된 지 두 달 만에 호텔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겁니다.
[고 박 회장 지인]
"그 '더미'들이 박 씨가 죽고 나서 그쪽 필리핀 (더미들이) 돌아서 가지고. 물론 돈을 많이 받았겠죠. 그쪽(상대편)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한 겁니다."
필리핀 중앙 정보수사국 NBI는 누군가 이 주주 명부를 조작해 호텔을 가로챈 것으로 보고 박 회장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더미 피해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의 한 회사.
문종구 씨 부부가 한국인 동업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회사인데, 경비들이 못 들어가게 막아섭니다.
[문종구 씨 부인]
"내가 이 회사의 주주예요. 내가 이 회사 주인인데 무슨 허가를 받으란 거예요?"
문 씨는 이 회사에 2억 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이 돈을 동업자 P 씨가 횡령했다고 문제 제기 했고 이 때문에 갈등이 생긴 겁니다.
양측은 부산 법원에서 소송을 벌였지만 법원은 '더미' 사장이 승인했고, 문서상으론 문제가 없기 때문에 횡령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문 씨는 사장은 '더미'일 뿐 결정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문종구/필리핀 사업가]
"한국 사람이 더미 사장을 지시해가지고 돈을 인출해서 한국 사람이 썼으니까 횡령이다 그건데 필리핀 사람 대표이사가 승인해서 인출했고 그 사람이 썼다 이렇게."
회사에 들어가 봤습니다.
명의상 사장은 필리핀 여성 A 씨 그런데 사장 A씨 책상은 일반 사원 자리에 있습니다.
[문종구/필리핀 사업가]
"(A 씨는) 원래 경리직원이었어요. 경리 여직원이었고."
사장실처럼 보이는 가장 크고 좋은 방은 한국인이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한국인 회사지만, 문서상으로만 필리핀인 A 씨를 대표이사로 해 놓은 겁니다.
[사업가 조광래]
"6대 4라는 부분이 되다 보니까 필리핀 사람 앞으로 지분을 놓고 하다 보니까 60% 권리 넘어가 있는 상태라서 그런 부분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 같고..."
필리핀 곳곳에 보이는 한국인 식당과 식품점들.
이런 소매점들은 아예 외국인이 소유할 수 없어서 100% 필리핀인 '더미' 사장을 쓰고 있습니다.
조모 씨는 식품점을 운영하면서 '더미' 사장을 세워 놨는데, 또 다른 한국인이 더미 사장을 사주하는 바람에 식품점을 빼앗겼습니다.
[조 ○○/필리핀 식품점 운영]
"결국은 그 사람도 추방되고 저도 추방되고 결국은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결국은 필리핀 세상이지 않냐."
필리핀 경찰과 사법부의 부패가 극심하다 보니 법 규범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도 부실합니다.
필리핀 교민 김 모 씨는 콘도미니엄 2채를 구입해서, 그중 한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필리핀 경찰 10여 명이 영장도 없이 총을 들고 집 안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김 ○○/필리핀 콘도 구입]
"거의 납치에 가깝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총을 가지고 집을 부수고 들어와서 총을 머리에다 가슴에다가 열 명이 갖다 대고 팔을 비틀어서 끌고 나왔는데 그 모욕감 같은 건..."
경찰을 데리고 온 건 한국인 민 모 씨였습니다.
민 씨가 허위 문서를 들고 와서 자기 집이라고 우겼고, 필리핀 경찰이 개인적으로 돈을 받고 사설 경비 역할을 한 겁니다.
[김 ○○/필리핀 콘도 구입]
"한국에서 도망 온 전과자들이 경찰들 하고 이 나라 검사들 하고 짜고 제가 2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2채를 한 채 씩 나눠 갖기로 했어요. 저를 죄를 씌워서 구속 시켜서."
김 씨는 결국 이렇게 한 채에 1억 5천만 원 짜리 콘도미니엄 2채를 빼앗겼습니다.
김 씨는 이런 사실을 필리핀 경찰과 대사관, 우리나라 경찰과 검찰, 국민 신문고 등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김 ○○/필리핀 콘도 구입]
"이 나라에서는 돈 안 주면 안 나서줘요. 제가 아무리 정당해도 안 나서줘요. 한국 가서 경찰들 만나면 그런 나라가 어디 있냐고 제 말을 안 믿는데."
영어도 제대로 못 하지만 김 씨는 혼자서 소송을 냈고 2년 만에 필리핀 법원에서 어렵게 승소해 콘도미니엄 2채를 되찾았습니다.
김 씨는 요즘 콘도미니엄 관련 거래를 했던 사람들과 필리핀 검찰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김 ○○/필리핀 콘도 구입]
"(보디가드는 없으세요?) 돈 줘야 되잖아요. 사실 보디가드가 무서워요. 보디가드가 결국 이 나라 사람들인데 누구 사주를 받을 줄 알고... 아 눈물이 나오려고 그러네 아마 죽어서 지옥이 있으면 지옥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필리핀에선 불법 총기가 100만 정이 넘고,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보니 3,40만 원에도 청부 살해 의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동활 회장/필리핀 112]
"나는 지금 사기를 당해서 힘들고 생활이 어렵고 길거리에 나섰는데 그 사람은 잘 먹고 잘 살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 그걸 필리핀 현지인을 통해서 해결하는 게 그게 바로 해결점이 청부 살인이라는 겁니다."
경찰청은 필리핀 마닐라와 앙헬레스 2곳에 경찰 2명을 파견해 코리안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고, 정부도 위험 지역에 CCTV를 설치하는 등 교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올해 청부살해범이 잡힌 사건은 2건뿐이고, 청부 살해를 지시한 진짜 범인이 잡힌 건 한 건도 없습니다.
청부살해범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길에서 쏘고 달아나는데 헬멧을 쓰고 있어 신원을 밝히기 힘들고, 설령 잡히더라도 살해를 지시한 사람을 밝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필리핀 경찰은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우리 외교부도 다른 나라와 달리 경찰에 수사를 독려하지 않는다고 교민들은 불만입니다.
[살해 협박 피해자]
"중국 같은 경우에는 사건 해결을 위해서 대사관이 발 벗고 나서는 건 제가 알고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안 그래요?) 안 그렇더라고요."
은퇴 이후의 삺을 풍요롭게 보내겠다며 필리핀 이민을 택하는 사람들, 하지만 돈 많은 한국인을 노리는 현지의 청부살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불법'더미'를 고용하는 현지 투자 사업방식이 바뀌거나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 사업가들의 생명과 재산은 계속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입니다.
이 가운데 6명은 은퇴 이민자 또는 사업가입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직접 사업체를 소유할 수 없는 필리핀만의 특이한 제도로 인한 사업체 이권을 노린 살인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살인사건의 표적이 되는 한국인 이민자들입니다.
필리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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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필리핀 앙헬레스의 상가 건물 앞.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오고, 차에서 내린 남성이 건물 2층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50초 뒤.
이 남성이 급하게 뛰어 내려와 타고 온 차량 조수석에 타고 달아납니다.
잠시 뒤 건물 안에서 사람들에게 안겨 나온 60대 박모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앞의 남성에게 살해된 겁니다.
[목격자]
"총알 자국 여기 (아 이게 총알 자국이에요?) 쓰러지시고 걔가 여기 와서 확인 사살 네 방. 벽에 있는 게 처음에 쏜 총알입니다. 중앙에 있던 나무 파티션을 통과해서 벽에 맞은 총알 자국입니다."
당시 사무실엔 4명이 있었는데, 범인은 박 씨만 노렸습니다.
[목격자]
"'미스터 박이 누굽니까' 영어로 물었고, 회장 님이 등 뒤돌리고 계시다가 일어시면서 '내가 미스터 박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총을 쏜 거죠."
박 씨는 호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전문 살해범에게 청부 살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누가 살해를 지시했는지는 2달이 지나도록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교민]
"(범인이 잡혔나요?) 네 잡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누가 사주했는지도 나온 거예요?) 아직 밝혀 내진 못 했어요."
숨진 박 씨의 측근 김 모 씨를 취재진의 숙소에서 만났습니다.
김 씨는 이 사건 바로 다음 날 자신도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 ○○/고 박 회장 측근]
"호텔 관련 있는 분들 협박을 조금씩은 받았습니다. 필리핀 애들이 와서 한국을 가라. 내일까지 안 나가면 죽을 수도 있다."
김 씨는 이날 이후 총기를 소지한 보디가드를 고용해 항상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김 ○○/고 박 회장 측근]
"이 사건 이후에 제가 보디가드를 고용하게 됐습니다. (보디가드가) 현직 경찰이니까 총 소유하고 다닙니다. 그 대신 안 보이게끔 가방에 넣고."
필리핀에서 살해된 한국인은 올해만 10명, 최근 3년 동안 33명에 달합니다.
대부분 청부살해를 당했고, 범인은 거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은퇴이민을 왔거나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프로골퍼 봉진호 씨는 필리핀으로 이민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민자 골퍼 봉준호]
"(그 많은 나라 중에 필리핀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세요?) 첫 번째는 저는 영어고요. 애들 영어 때문에 이쪽으로 오게 됐고..."
집값이 한국보다 싼 것도 큰 장점입니다.
1천㎡가 넘는 땅에, 200㎡가 넘는 집을 짓는 데 든 비용은 4억 원 가량.
넓은 뒷마당에 골프 연습장도 설치했습니다.
[강채현/필리핀 이민자]
"저희가 1층에 사고 있고 위에 두 채는 렌트를 놓고 있어요. (그럼 임대료 또 나오겠네요?) 그렇죠. 임대 수익률이 꽤. 한 200만 원 이상이니까."
싼 인건비 덕분에 육아나 집안일은 필리핀 현지인이 다 합니다.
[강채현/필리핀 이민자]
"세 명을 쓴다 해도 한국에서 한 분 쓰는 거보다 훨씬 싸니까 부담스럽진 않죠. 여기 안 왔으면 어땠을 뻔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하여튼 너무 좋고 천국 같아요."
70대 김수택 씨도 노인들에겐 필리핀이 제격이라고 말합니다.
청소, 빨래, 식사까지 다 해주는 사람이 있고, 날씨도 따뜻해서 혼자 지내기엔 필리핀이 한국보다 훨씬 좋다는 겁니다.
[김수택/필리핀 이민자]
"여기 살인 사건이 났다고 하면 나한테 전화가 와요. 그 위험한 데 왜 와서 있느냐고 그런데 사실상 여기는 정말 안전지대거든요."
한국에서 온 필리핀 은퇴 이민자는 해마다 크게 늘어 지금은 7천 명이 넘었고, 곳곳에 이들을 위한 대규모 단지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주택 개발 업체 부민호]
"심한 경우는 건물을 올리지도 않고 선분양 된 경우가 일반적이고요. 건물이 짓는 대로 현재 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치안이 좋은 곳에 모여 살거나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 현지 교민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1시간 거리의 한 외진 마을.
여기에 살던 한국인 부부는 지난달 집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이동 활 회장 교민 보호단체 필리핀 112]
"한국인 부부 사망 사건인데 부인은 안에서 강도가 총을 쏘고 남편이 밖으로 도망가는 사이에 총으로 다리를 쏘고 밖으로 나와서 확인 사살을 하고."
인근의 또 다른 시골 마을.
여기에 살던 한국인 부부도 지난 8월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동활 회장 교민 보호단체 필리핀 112]
"담을 넘어와서 CCTV 전선을 자른 상태에서 부부를 총기로 두 방씩 쏴서 사살하고 내용물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그만 금고만 열렸고 그 외 귀중품은 손을 안 댄 걸 봐서."
현지 경찰은 이들 모두 은퇴 이민을 왔고,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다 원한을 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 원한을 사거나 동업자들끼리 분쟁이 생기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습니다.
하지만 유독 필리핀에선 살인사건이나 살해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필리핀의 특이한 법 때문입니다.
필리핀은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이 사업체 지분 40% 이상을 갖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사업자들은 지분 60%를 현지인 명의로 등록합니다.
이렇게 명의를 빌려준 현지인을 '더미'라고 하는데, '더미'사장이나 이들을 사주한 다른 한국인에 의해 사업체를 뺏기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겁니다.
앞서 본 청부살해 피해자 박모 씨는 필리핀에서 호텔을 운영하던 사업가였습니다.
이 호텔은 실제론 100% 박 회장 소유지만, 문서상으로는 필리핀 사람 3명과 숨진 박 회장 본인, 그리고 한국인 유모 씨가 주주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 씨가 숨진 뒤 호텔 주주 명단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필리핀인 3명은 모두 바뀌었고, 한국인 주주 유모 씨도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문서상으론 박 회장 지분은 불과 20%, 살해된 지 두 달 만에 호텔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겁니다.
[고 박 회장 지인]
"그 '더미'들이 박 씨가 죽고 나서 그쪽 필리핀 (더미들이) 돌아서 가지고. 물론 돈을 많이 받았겠죠. 그쪽(상대편)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한 겁니다."
필리핀 중앙 정보수사국 NBI는 누군가 이 주주 명부를 조작해 호텔을 가로챈 것으로 보고 박 회장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더미 피해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의 한 회사.
문종구 씨 부부가 한국인 동업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회사인데, 경비들이 못 들어가게 막아섭니다.
[문종구 씨 부인]
"내가 이 회사의 주주예요. 내가 이 회사 주인인데 무슨 허가를 받으란 거예요?"
문 씨는 이 회사에 2억 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이 돈을 동업자 P 씨가 횡령했다고 문제 제기 했고 이 때문에 갈등이 생긴 겁니다.
양측은 부산 법원에서 소송을 벌였지만 법원은 '더미' 사장이 승인했고, 문서상으론 문제가 없기 때문에 횡령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문 씨는 사장은 '더미'일 뿐 결정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문종구/필리핀 사업가]
"한국 사람이 더미 사장을 지시해가지고 돈을 인출해서 한국 사람이 썼으니까 횡령이다 그건데 필리핀 사람 대표이사가 승인해서 인출했고 그 사람이 썼다 이렇게."
회사에 들어가 봤습니다.
명의상 사장은 필리핀 여성 A 씨 그런데 사장 A씨 책상은 일반 사원 자리에 있습니다.
[문종구/필리핀 사업가]
"(A 씨는) 원래 경리직원이었어요. 경리 여직원이었고."
사장실처럼 보이는 가장 크고 좋은 방은 한국인이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한국인 회사지만, 문서상으로만 필리핀인 A 씨를 대표이사로 해 놓은 겁니다.
[사업가 조광래]
"6대 4라는 부분이 되다 보니까 필리핀 사람 앞으로 지분을 놓고 하다 보니까 60% 권리 넘어가 있는 상태라서 그런 부분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 같고..."
필리핀 곳곳에 보이는 한국인 식당과 식품점들.
이런 소매점들은 아예 외국인이 소유할 수 없어서 100% 필리핀인 '더미' 사장을 쓰고 있습니다.
조모 씨는 식품점을 운영하면서 '더미' 사장을 세워 놨는데, 또 다른 한국인이 더미 사장을 사주하는 바람에 식품점을 빼앗겼습니다.
[조 ○○/필리핀 식품점 운영]
"결국은 그 사람도 추방되고 저도 추방되고 결국은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결국은 필리핀 세상이지 않냐."
필리핀 경찰과 사법부의 부패가 극심하다 보니 법 규범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도 부실합니다.
필리핀 교민 김 모 씨는 콘도미니엄 2채를 구입해서, 그중 한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필리핀 경찰 10여 명이 영장도 없이 총을 들고 집 안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김 ○○/필리핀 콘도 구입]
"거의 납치에 가깝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총을 가지고 집을 부수고 들어와서 총을 머리에다 가슴에다가 열 명이 갖다 대고 팔을 비틀어서 끌고 나왔는데 그 모욕감 같은 건..."
경찰을 데리고 온 건 한국인 민 모 씨였습니다.
민 씨가 허위 문서를 들고 와서 자기 집이라고 우겼고, 필리핀 경찰이 개인적으로 돈을 받고 사설 경비 역할을 한 겁니다.
[김 ○○/필리핀 콘도 구입]
"한국에서 도망 온 전과자들이 경찰들 하고 이 나라 검사들 하고 짜고 제가 2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2채를 한 채 씩 나눠 갖기로 했어요. 저를 죄를 씌워서 구속 시켜서."
김 씨는 결국 이렇게 한 채에 1억 5천만 원 짜리 콘도미니엄 2채를 빼앗겼습니다.
김 씨는 이런 사실을 필리핀 경찰과 대사관, 우리나라 경찰과 검찰, 국민 신문고 등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김 ○○/필리핀 콘도 구입]
"이 나라에서는 돈 안 주면 안 나서줘요. 제가 아무리 정당해도 안 나서줘요. 한국 가서 경찰들 만나면 그런 나라가 어디 있냐고 제 말을 안 믿는데."
영어도 제대로 못 하지만 김 씨는 혼자서 소송을 냈고 2년 만에 필리핀 법원에서 어렵게 승소해 콘도미니엄 2채를 되찾았습니다.
김 씨는 요즘 콘도미니엄 관련 거래를 했던 사람들과 필리핀 검찰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김 ○○/필리핀 콘도 구입]
"(보디가드는 없으세요?) 돈 줘야 되잖아요. 사실 보디가드가 무서워요. 보디가드가 결국 이 나라 사람들인데 누구 사주를 받을 줄 알고... 아 눈물이 나오려고 그러네 아마 죽어서 지옥이 있으면 지옥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필리핀에선 불법 총기가 100만 정이 넘고,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보니 3,40만 원에도 청부 살해 의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동활 회장/필리핀 112]
"나는 지금 사기를 당해서 힘들고 생활이 어렵고 길거리에 나섰는데 그 사람은 잘 먹고 잘 살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 그걸 필리핀 현지인을 통해서 해결하는 게 그게 바로 해결점이 청부 살인이라는 겁니다."
경찰청은 필리핀 마닐라와 앙헬레스 2곳에 경찰 2명을 파견해 코리안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고, 정부도 위험 지역에 CCTV를 설치하는 등 교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올해 청부살해범이 잡힌 사건은 2건뿐이고, 청부 살해를 지시한 진짜 범인이 잡힌 건 한 건도 없습니다.
청부살해범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길에서 쏘고 달아나는데 헬멧을 쓰고 있어 신원을 밝히기 힘들고, 설령 잡히더라도 살해를 지시한 사람을 밝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필리핀 경찰은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우리 외교부도 다른 나라와 달리 경찰에 수사를 독려하지 않는다고 교민들은 불만입니다.
[살해 협박 피해자]
"중국 같은 경우에는 사건 해결을 위해서 대사관이 발 벗고 나서는 건 제가 알고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안 그래요?) 안 그렇더라고요."
은퇴 이후의 삺을 풍요롭게 보내겠다며 필리핀 이민을 택하는 사람들, 하지만 돈 많은 한국인을 노리는 현지의 청부살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불법'더미'를 고용하는 현지 투자 사업방식이 바뀌거나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 사업가들의 생명과 재산은 계속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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