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김현경기자
김현경기자
권리금, 아직도 폭탄 돌리기
권리금, 아직도 폭탄 돌리기
입력
2015-11-30 11:48
|
수정 2015-12-15 11:34
재생목록
지난주 서울 홍대 앞의 한 치킨가게에서 강제 퇴거를 놓고 임차인과 용역의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장사가 잘 되서 권리금이 높아지는, 이른바 '뜨는 상권'일수록 상인들은 권리금을 온전히 챙겨 받지 못하고 밀려나는 일이 빈번합니다.
지난 5월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의해 최초로 권리금이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는 곳곳에 존재하는데요.
주기만 하고 받을 길은 막막한 폭탄 돌리기, 권리금! 바람직한 개선방안은 없는 걸까요?
-----------------------------------------
"물러가라 물러가라."
지난 6일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의 한 치킨 집.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과 상인들 수 십 명이 맞붙어 격한 몸싸움을 벌입니다.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가게를 비워달라며 낸 소송에서 건물주가 이긴 뒤 법원 집행관과 용역업체가 강제집행에 들어간 겁니다.
지난 17일에도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용역업체 직원이 주먹을 휘두르자 60대 치킨집 상인 이순애 씨가 그대로 쓰러집니다.
[이순애/치킨집 세입자]
"이것이 인생이라면 절대 아닙니다. 내가 여기서 쓰러질 수 없고 내가 뺏길 수 없는 것입니다."
치킨집 사장이 계약기간이 지났는데도 가게를 비우지 않고 버티며 싸운 건 바로 권리금 때문이었습니다.
권리금은 앞서 장사를 하던 상인이 단골손님을 만들거나 인테리어 등 시설에 투자한 것에 대해 건물주와는 상관없이 세입자들끼리 주고받는 일종의 '자릿세'입니다.
지난 2007년 치킨집이 장사를 시작했을 당시의 권리금은 6천5백만 원.
그런데 이후 치킨집이 장사를 잘 한데다 홍대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권리금은 여섯 배 이상으로 솟구쳤습니다.
[공인중개사 A]
"(현재 해당 치킨집 권리금은) 4~5억 원 정도로 잡아서 이야기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을 하고요."
[이순애/치킨집 세입자]
"정말 7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임대료 한 번 밀리지 않았고 이 동네 상권도 좋아졌고 그러다 보니까 이 상가 건물 많이 가치가 높아진 거에요."
그런데 건물주는 계약 기간이 아직 3개월 남아있던 지난해 4월, 열흘 안에 가게를 비우라고 통보했습니다.
건물주가 제안한 권리금은 1억 5천만 원 하지만 열흘 안에 장사를 접는 것도, 1억 5천만 원으로 새 가게를 여는 것도 불가능했던 치킨집 측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양측은 명도소송을 벌이게 된 겁니다.
홍대 인근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했던 치킨집 권리금 분쟁은 결국 일주일 전, 세입자가 건물주로부터 1억 원을 보상받고 가게를 비우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도심 곳곳에선 지금도 권리금을 둘러싸고 상인들이 여전히 건물주와 싸우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좁은 골목이 인파로 북적입니다.
서울의 명소가 된 북촌입니다.
북촌에서 삼청동으로 향하는 골목 한 편에 자리 잡은 옷 가게.
8년 전 정명진 씨는 후미진 골목길이었던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보증금과는 별도로 권리금 2천만 원을 건물주에게 직접 줬습니다.
하지만 한적했던 북촌 일대가 주목받으면서 땅값과 권리금이 치솟자 2년 전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하겠다"며 가게를 비우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정명진/옷가게 세입자]
"그 때가 벌써 억대가 넘었어요 권리금이.(그래도) 내가 준 거 2천만 원만 돌려줘라. 그럼 내가 나갈 게 그랬어요. 그랬더니 임대인이 그러더라고요. 법에서 안 줘도 되기 때문에 너 받고 싶으면 법에 가서 받으라고.."
변호사들을 만났지만 권리금은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돈이라 돌려받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명진/옷가게 세입자]
"병원에 가면 '암입니다' 하는데 안믿겨 지는 것 같이 '아니야 아니야 잘못 알고 있나 보다'해서 (변호사 사무실을) 한 5~6 군데를 갔어요 그날. 사람이 양심이란 게 있어야 되잖아요."
국내 전체 상가 권리금 규모는 무려 33조 원.
하지만 현실에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그동안 이른바 '폭탄 돌리기'로 불렸습니다.
정 씨와 같이 건물 주인에게 부당하게 권리금을 빼앗기는 사례들이 빈발하자 국회는 지난 5월 관련 법을 개정했습니다.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입니다.
권리금의 정의가 최초로 법 조항으로 명시됐습니다.
또 권리금을 세입자의 영업 가치로 인정해 건물주는 세입자가 다른 세입자로부터 권리금을 회수하는 것을 방해해선 안된다고 못 박았습니다.
[김승종/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
"권리금 자체가 임차인끼리 주고받고 하는 이런 부분들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임대인이 약탈하는 사례가 발생을 했고 그래서 이제 그런 부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도화가 됐다라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새 법이 시행된 지 이제 6개월.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상인들은 예전과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법의 구멍이 여전히 많다는 겁니다.
서울 신천역 부근에서 국수집을 운영하는 이대일씨.
손님이 끊기는 밤 9시가 되면 아내와 함께 식당을 정리합니다.
잠자리를 준비하는 곳은 식당 한 편.
[이대일/식당 세입자]
"아침에 일어나면 이거(이불) 개고 저 테이블 딱 땡기고 청소 딱해버리면 장사 준비되니까.."
가게가 곧 직장이자 집입니다.
이 씨는 30년 넘게 다니던 전자 회사에서 퇴직한 뒤 퇴직금과 은행 대출 등 1억 7천만 원을 들여 신천역이면 도로에 식당을 열었습니다.
이전 세입자에게 준 권리금만 투자금의 절반인 8천5백만 원.
하지만 장사 시작 불과 1년 만에 건물주가 바뀌었고, 새 건물주는 곧바로 "재건축을 할 테니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이 씨는 관련 법이 곧 개정될 거란 소식에 희망을 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정된 법에서도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는 경우엔 권리금을 보상받을 길은 없었습니다.
[이대일/식당 세입자]
"임대인한테 가서 우리 (다른 세입자에게) 양도양수를 하려고 합니다. 계약서 사인해주세요 그러면 임대인은 '나는 내년에 재건축을 할 것입니다. 그래도 들어올 것입니까?' (그러면) 누가 여기 들어옵니까. 들어올 사람이 없어요."
이 씨는 결국 다음 세입자에게 권리금과 시설비 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보증금 3천만 원을 제외한 1억 4천만 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습니다.
[이대일/식당 세입자]
"저 사람들이 내 행복을 갖다가 뺏으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 다 털어버리면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그럼 마지막까지 생각을 했는데요.."
같은 건물의 상인 10여 명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권리금과 투자금 모두 손해 보게 된 처지.
이 중 3명은 이미 지난 몇 달 사이 빈손으로 떠났습니다.
[이대일/식당 세입자]
"월세를 못 낼 정도가 되니까 자발적으로 그냥 나갔어요. (사장님은 이 분 나가실 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다음은 우리 차례구나 싶었죠."
이렇게 건물이 재건축되면서 세 들었던 상인들이 권리금과 투자금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하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임대차 분쟁 사례의 60%나 차지하지만 여전히 어디서도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김영주 변호사]
"임차상인들이 열심히 해서 상권이 발달할 때만 재건축을 하거든요. 우리 임대인들이 '아 내 건물 낡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 건물 좀 고쳐야겠다' 이런 분들은 없어요. (따라서 임차상인들의) 피해는 사실은 건축 비용에 고려가 돼야 하는 거죠 애시당초.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고.."
건물주가 기존 상인이 새 상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아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이색적인 맛 집이 늘면서 최근 1~2년 사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서울 연남동.
그런데 상가 지하에서 10년째 당구장을 운영 중인 박춘옥씨에겐 동네가 북적이는 게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넉 달 전 바뀐 새 건물주가 곧바로 자신이 쓸 테니 가게를 비우라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박춘옥/당구장 세입자]
"다 나가라고 그냥. 기간 되면 나가라고 재계약 없다. 난 이걸로 사무실로 쓸 거다.."
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하려면 권리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임차인을 찾아 5천만 원에 가게를 넘기는 계약을 했다는 박 씨.
하지만 건물주는 그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개정된 법에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끝나기 3개월 전부터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길 수 있도록 보장돼 있지만, 건물주는 무조건 자신이 가게를 써야 한다며 계약을 막았습니다.
박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법적 분쟁을 시작했습니다.
[박춘옥/당구장 세입자]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사는 건데 변호사 비용이나 뭐 이런 것도 저희한텐 다 부담이죠. (그래도) 저희 이제 쫓겨나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지금 어디 가서 뭘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하겠어요."
갑자기 쫓겨나게 될 줄도 모르고 불과 몇 달 전 수백만 원을 들여 바꾼 간판을 보면 더 속이 상합니다.
[박춘옥/당구장 세입자]
"건물 가격이 올라가면 건물주가 좋은 거 아닌가요? 근데 왜 그걸로 인해서 상인들이 쫓겨나야 되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서울 북촌에서 잡화 상점을 운영하는 허한나 씨의 경우도, 장사 8년 만에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옮기려 하자 건물주가 계약을 가로막았습니다.
[허한나/잡화점 세입자]
"그냥 빈손으로 나가라. 자기네가 (가게를) 할 것이니까 그냥 보증금만 가지고 나가라는 거죠."
[건물주]
"(가게를) 내가 할 거라고, 내가 쓸 거라고. 뭐 법에서 날 갖다가 권리금 받지도 않은 거주라고 그래? 법이 그렇게 됐어도 해보자 이거야 참.."
건물주들이 세입 상인들을 권리금을 보상해주지 않고 무리하게 내쫓으려는 이유는 뭘까.
상당수는 월세를 높여 받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공인중개사 B]
"권리금이 없으면 이제 그 현재 임대료를 2배, 3배로 올려도 무권리금 상가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목돈이 안 들어가도 되기 때문에 권리금 없이 들어오는 자리는 임대료가 비싸도 (세입자가) 많이 와요."
여전히 건물주는 '갑'이고 세입자 상인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부족한 상황.
[공인중개사 A]
"(건물주 입장에서) 사실 임차인들을 괴롭힐 수 있는 옵션들은 무궁무진하고요. 임차인 입장에서는 영업이라는 게 흥이 나야 잘 될까 말까 한 거잖아요. 특히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러면) 그냥 내가 원래 을이니까 (가게를) 정리하자라고 하시는 경우들이 되게 많다라는 거예요."
이 때문에 상인들이 보다 쉽게 건물주에 대항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마다 분쟁 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임차기간을 지금의 5년보다 더 길게 늘리는 등의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김영주 변호사]
"지금 경제상황에서는 5년이면 (상인들이 투자한) 본전을 회복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간을 최소한 10년 정도는 넉넉히 해서 회복을 하도록 해보고 안되면 (가게를) 넘기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권리금에 대한 건물주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김승종/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
"(임대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건물만 있었을 뿐입니다. 나는 자본만 투자를 했고 그냥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고 임차인이 노력해서 영업적 가치를 높여서 그럼 영업적 가치가 높아지면 또 건물의 가격도 같이 올라가는 거거든요. 양쪽이 상생의 관계인데.."
서울시내 상가의 평균 임대기간은 21개월.
평균 30개월을 근무한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보다도 훨씬 불안합니다.
[신가람/맘편히 상인 모임 운영위원]
"많은 분들이 맨몸으로 쫓겨나는 상황이 되더라도 많이들 포기하세요. 동네방네 하소연하고 그렇게 해서야 겨우 조금 상식적인 수준의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정도거든요 현실이.."
들어갈 땐 내야 하지만, 나갈 땐 어찌 될지 모르는 권리금.
그 부담을 언제나 '을'이 감당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싸우지 않으면 권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건물주도 임차 상인들도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대책이 아직 더 필요해 보입니다.
장사가 잘 되서 권리금이 높아지는, 이른바 '뜨는 상권'일수록 상인들은 권리금을 온전히 챙겨 받지 못하고 밀려나는 일이 빈번합니다.
지난 5월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의해 최초로 권리금이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는 곳곳에 존재하는데요.
주기만 하고 받을 길은 막막한 폭탄 돌리기, 권리금! 바람직한 개선방안은 없는 걸까요?
-----------------------------------------
"물러가라 물러가라."
지난 6일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의 한 치킨 집.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과 상인들 수 십 명이 맞붙어 격한 몸싸움을 벌입니다.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가게를 비워달라며 낸 소송에서 건물주가 이긴 뒤 법원 집행관과 용역업체가 강제집행에 들어간 겁니다.
지난 17일에도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용역업체 직원이 주먹을 휘두르자 60대 치킨집 상인 이순애 씨가 그대로 쓰러집니다.
[이순애/치킨집 세입자]
"이것이 인생이라면 절대 아닙니다. 내가 여기서 쓰러질 수 없고 내가 뺏길 수 없는 것입니다."
치킨집 사장이 계약기간이 지났는데도 가게를 비우지 않고 버티며 싸운 건 바로 권리금 때문이었습니다.
권리금은 앞서 장사를 하던 상인이 단골손님을 만들거나 인테리어 등 시설에 투자한 것에 대해 건물주와는 상관없이 세입자들끼리 주고받는 일종의 '자릿세'입니다.
지난 2007년 치킨집이 장사를 시작했을 당시의 권리금은 6천5백만 원.
그런데 이후 치킨집이 장사를 잘 한데다 홍대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권리금은 여섯 배 이상으로 솟구쳤습니다.
[공인중개사 A]
"(현재 해당 치킨집 권리금은) 4~5억 원 정도로 잡아서 이야기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을 하고요."
[이순애/치킨집 세입자]
"정말 7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임대료 한 번 밀리지 않았고 이 동네 상권도 좋아졌고 그러다 보니까 이 상가 건물 많이 가치가 높아진 거에요."
그런데 건물주는 계약 기간이 아직 3개월 남아있던 지난해 4월, 열흘 안에 가게를 비우라고 통보했습니다.
건물주가 제안한 권리금은 1억 5천만 원 하지만 열흘 안에 장사를 접는 것도, 1억 5천만 원으로 새 가게를 여는 것도 불가능했던 치킨집 측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양측은 명도소송을 벌이게 된 겁니다.
홍대 인근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했던 치킨집 권리금 분쟁은 결국 일주일 전, 세입자가 건물주로부터 1억 원을 보상받고 가게를 비우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도심 곳곳에선 지금도 권리금을 둘러싸고 상인들이 여전히 건물주와 싸우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좁은 골목이 인파로 북적입니다.
서울의 명소가 된 북촌입니다.
북촌에서 삼청동으로 향하는 골목 한 편에 자리 잡은 옷 가게.
8년 전 정명진 씨는 후미진 골목길이었던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보증금과는 별도로 권리금 2천만 원을 건물주에게 직접 줬습니다.
하지만 한적했던 북촌 일대가 주목받으면서 땅값과 권리금이 치솟자 2년 전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하겠다"며 가게를 비우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정명진/옷가게 세입자]
"그 때가 벌써 억대가 넘었어요 권리금이.(그래도) 내가 준 거 2천만 원만 돌려줘라. 그럼 내가 나갈 게 그랬어요. 그랬더니 임대인이 그러더라고요. 법에서 안 줘도 되기 때문에 너 받고 싶으면 법에 가서 받으라고.."
변호사들을 만났지만 권리금은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돈이라 돌려받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명진/옷가게 세입자]
"병원에 가면 '암입니다' 하는데 안믿겨 지는 것 같이 '아니야 아니야 잘못 알고 있나 보다'해서 (변호사 사무실을) 한 5~6 군데를 갔어요 그날. 사람이 양심이란 게 있어야 되잖아요."
국내 전체 상가 권리금 규모는 무려 33조 원.
하지만 현실에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그동안 이른바 '폭탄 돌리기'로 불렸습니다.
정 씨와 같이 건물 주인에게 부당하게 권리금을 빼앗기는 사례들이 빈발하자 국회는 지난 5월 관련 법을 개정했습니다.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입니다.
권리금의 정의가 최초로 법 조항으로 명시됐습니다.
또 권리금을 세입자의 영업 가치로 인정해 건물주는 세입자가 다른 세입자로부터 권리금을 회수하는 것을 방해해선 안된다고 못 박았습니다.
[김승종/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
"권리금 자체가 임차인끼리 주고받고 하는 이런 부분들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임대인이 약탈하는 사례가 발생을 했고 그래서 이제 그런 부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도화가 됐다라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새 법이 시행된 지 이제 6개월.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상인들은 예전과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법의 구멍이 여전히 많다는 겁니다.
서울 신천역 부근에서 국수집을 운영하는 이대일씨.
손님이 끊기는 밤 9시가 되면 아내와 함께 식당을 정리합니다.
잠자리를 준비하는 곳은 식당 한 편.
[이대일/식당 세입자]
"아침에 일어나면 이거(이불) 개고 저 테이블 딱 땡기고 청소 딱해버리면 장사 준비되니까.."
가게가 곧 직장이자 집입니다.
이 씨는 30년 넘게 다니던 전자 회사에서 퇴직한 뒤 퇴직금과 은행 대출 등 1억 7천만 원을 들여 신천역이면 도로에 식당을 열었습니다.
이전 세입자에게 준 권리금만 투자금의 절반인 8천5백만 원.
하지만 장사 시작 불과 1년 만에 건물주가 바뀌었고, 새 건물주는 곧바로 "재건축을 할 테니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이 씨는 관련 법이 곧 개정될 거란 소식에 희망을 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정된 법에서도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는 경우엔 권리금을 보상받을 길은 없었습니다.
[이대일/식당 세입자]
"임대인한테 가서 우리 (다른 세입자에게) 양도양수를 하려고 합니다. 계약서 사인해주세요 그러면 임대인은 '나는 내년에 재건축을 할 것입니다. 그래도 들어올 것입니까?' (그러면) 누가 여기 들어옵니까. 들어올 사람이 없어요."
이 씨는 결국 다음 세입자에게 권리금과 시설비 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보증금 3천만 원을 제외한 1억 4천만 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습니다.
[이대일/식당 세입자]
"저 사람들이 내 행복을 갖다가 뺏으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 다 털어버리면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그럼 마지막까지 생각을 했는데요.."
같은 건물의 상인 10여 명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권리금과 투자금 모두 손해 보게 된 처지.
이 중 3명은 이미 지난 몇 달 사이 빈손으로 떠났습니다.
[이대일/식당 세입자]
"월세를 못 낼 정도가 되니까 자발적으로 그냥 나갔어요. (사장님은 이 분 나가실 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다음은 우리 차례구나 싶었죠."
이렇게 건물이 재건축되면서 세 들었던 상인들이 권리금과 투자금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하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임대차 분쟁 사례의 60%나 차지하지만 여전히 어디서도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김영주 변호사]
"임차상인들이 열심히 해서 상권이 발달할 때만 재건축을 하거든요. 우리 임대인들이 '아 내 건물 낡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 건물 좀 고쳐야겠다' 이런 분들은 없어요. (따라서 임차상인들의) 피해는 사실은 건축 비용에 고려가 돼야 하는 거죠 애시당초.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고.."
건물주가 기존 상인이 새 상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아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이색적인 맛 집이 늘면서 최근 1~2년 사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서울 연남동.
그런데 상가 지하에서 10년째 당구장을 운영 중인 박춘옥씨에겐 동네가 북적이는 게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넉 달 전 바뀐 새 건물주가 곧바로 자신이 쓸 테니 가게를 비우라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박춘옥/당구장 세입자]
"다 나가라고 그냥. 기간 되면 나가라고 재계약 없다. 난 이걸로 사무실로 쓸 거다.."
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하려면 권리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임차인을 찾아 5천만 원에 가게를 넘기는 계약을 했다는 박 씨.
하지만 건물주는 그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개정된 법에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끝나기 3개월 전부터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길 수 있도록 보장돼 있지만, 건물주는 무조건 자신이 가게를 써야 한다며 계약을 막았습니다.
박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법적 분쟁을 시작했습니다.
[박춘옥/당구장 세입자]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사는 건데 변호사 비용이나 뭐 이런 것도 저희한텐 다 부담이죠. (그래도) 저희 이제 쫓겨나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지금 어디 가서 뭘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하겠어요."
갑자기 쫓겨나게 될 줄도 모르고 불과 몇 달 전 수백만 원을 들여 바꾼 간판을 보면 더 속이 상합니다.
[박춘옥/당구장 세입자]
"건물 가격이 올라가면 건물주가 좋은 거 아닌가요? 근데 왜 그걸로 인해서 상인들이 쫓겨나야 되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서울 북촌에서 잡화 상점을 운영하는 허한나 씨의 경우도, 장사 8년 만에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옮기려 하자 건물주가 계약을 가로막았습니다.
[허한나/잡화점 세입자]
"그냥 빈손으로 나가라. 자기네가 (가게를) 할 것이니까 그냥 보증금만 가지고 나가라는 거죠."
[건물주]
"(가게를) 내가 할 거라고, 내가 쓸 거라고. 뭐 법에서 날 갖다가 권리금 받지도 않은 거주라고 그래? 법이 그렇게 됐어도 해보자 이거야 참.."
건물주들이 세입 상인들을 권리금을 보상해주지 않고 무리하게 내쫓으려는 이유는 뭘까.
상당수는 월세를 높여 받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공인중개사 B]
"권리금이 없으면 이제 그 현재 임대료를 2배, 3배로 올려도 무권리금 상가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목돈이 안 들어가도 되기 때문에 권리금 없이 들어오는 자리는 임대료가 비싸도 (세입자가) 많이 와요."
여전히 건물주는 '갑'이고 세입자 상인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부족한 상황.
[공인중개사 A]
"(건물주 입장에서) 사실 임차인들을 괴롭힐 수 있는 옵션들은 무궁무진하고요. 임차인 입장에서는 영업이라는 게 흥이 나야 잘 될까 말까 한 거잖아요. 특히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러면) 그냥 내가 원래 을이니까 (가게를) 정리하자라고 하시는 경우들이 되게 많다라는 거예요."
이 때문에 상인들이 보다 쉽게 건물주에 대항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마다 분쟁 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임차기간을 지금의 5년보다 더 길게 늘리는 등의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김영주 변호사]
"지금 경제상황에서는 5년이면 (상인들이 투자한) 본전을 회복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간을 최소한 10년 정도는 넉넉히 해서 회복을 하도록 해보고 안되면 (가게를) 넘기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권리금에 대한 건물주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김승종/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
"(임대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건물만 있었을 뿐입니다. 나는 자본만 투자를 했고 그냥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고 임차인이 노력해서 영업적 가치를 높여서 그럼 영업적 가치가 높아지면 또 건물의 가격도 같이 올라가는 거거든요. 양쪽이 상생의 관계인데.."
서울시내 상가의 평균 임대기간은 21개월.
평균 30개월을 근무한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보다도 훨씬 불안합니다.
[신가람/맘편히 상인 모임 운영위원]
"많은 분들이 맨몸으로 쫓겨나는 상황이 되더라도 많이들 포기하세요. 동네방네 하소연하고 그렇게 해서야 겨우 조금 상식적인 수준의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정도거든요 현실이.."
들어갈 땐 내야 하지만, 나갈 땐 어찌 될지 모르는 권리금.
그 부담을 언제나 '을'이 감당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싸우지 않으면 권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건물주도 임차 상인들도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대책이 아직 더 필요해 보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